소설리스트

〈 173화 〉173. 사냥개들(3) (173/730)



〈 173화 〉173. 사냥개들(3)


폐건물로 쌓인, 이제는 버려진 장소의 부지는 굉장히 싸늘하고, 탁한 먼지가 가득했다.
에린과 에이라는 경계를 풀지 않고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폐건물들이 즐비한 부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에게는 ‘글레오르 폐창고’라는 장소는 모두 어느 의미로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
에린은  폐창고의 건물들 어딘가에서 애슈턴의 도를 넘어선 행동으로 납치를 당해 일방적인 폭력을 얻어맞거나, 그에게 사주를 받은 남학생들에게 강간당할 뻔했던 전적이 있었다.
에이라는  장소에서 은현과 엘빈의 사투를 직접 목격하면서 은현의 싸움법을 모방한 움직임을 생각해내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런데…그분 정말로 영웅이셨네요….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기척조차 잡아낼  없었어요.”

마치 물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감마냥,  전체가 공기 중에 녹아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스르르 형체가 사라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도 그의 기척을 감지할 수가 없었던 것을 떠올리며 에린이 소름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데, 없는 것처럼….”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보다 기습이라는 형태라면, 아버지도 대처하기 껄끄러운 분이라고 말씀을 직접 듣긴 했지만…직접 보면 정말로 차원이 다르네….”

에이라도 에린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껏 에이라가 만나본 영웅은 아버지인 리오드를 제외하면 일리아나나 아니에스 뿐이었으며, 제대로 전투에 임하는 것을 본적도 없었고, 애초에 기사와 마법사, 사제 간에 무력을 비교할 수 있는 요소는 동일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나마 비교해볼 수 있는 사람이 새로 등장한 은현이었는데, 리오드는 대부분의 면에서 자신이 은현보다 나은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고 은현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애초에 마법사도 아닌 은현이 일리아나에게 마법사로서의 성장과 싸움방법을 가르친 사람이라는 것에, 에이라도 은현을 평가할 수 없는 규격외의 존재로 보고 있다.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네요….”

“그러게.”

“생각해보면 현이의 그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이동하는 기술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은현의 이형환위를 통해서 잔상을 남기며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지만 제라드가 선보였던 은신과 어느 쪽이 더 무섭냐고 한다면.

“그래도 저는 저 사람 쪽의 저 기술이 더 무서워요. 자연스럽게 제 뒤에 다가올 것 같아서….”

제라드가 자신에 보여주었던 알 수 없는 호의와 저 기술이 합쳐진다고 상상하니, 굉장히 싫은 기분이 들었다.

“네 안의 제라드님이 어떤 인상으로 굳혀졌는지 대강 상상이 되네.”

첫인상부터가 굉장히 강렬했던 만큼, 아마 터무니없는 변태로 낙인이 찍혀있지 않을까.

“사람의 소리가 감지되었습니다.”

앞장서 걷고 있던 에밀리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한 방향을 응시하며 말을 잇자, 두 사람도 표정을 굳히며 에밀리아가 응시하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다른 폐건물보다 큰 규모의 가지고 있는 건물을 확인한 에린이 에이라에게 눈짓하며 들어갈지 말지에 대한 의견을 구한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가자는 에이라의 대꾸에 에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담담히 앞장을 서는 에밀리아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최대한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폐건물의 문짝은 이미 너덜너덜하여 입구가 개방된 상태, 잔뜩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천천히 폐건물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을 때.

“그렇게 쫄지 않아도 되는데.”

“읏…!”

비웃음이 담겨있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온다.
에밀리아는 처음부터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에린과 에이라는 목소리를 들은 순간에서야 어깨를 움찔 떨며 황급히 시선을 위로 옮겼다.
무너진 건물의 천장 위, 건물의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에 비쳐진 한 남자를 발견한다.

“뭐야. 손님이 올 거라더니, 여자 셋? 게다가 셋 다 한참 어리잖아?”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에린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붉은색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의 눈매를 가지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에린 일행을 훑어보았다.
말투와 눈썹의 모양이 인상적인 얼굴 표정에서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기색이 흘러나왔다.
굉장히 가벼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풍기고 있는 분위기가 매우 범상치 않았음에 에린이 그를 노려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저어린애는…뭐야. 그 괴물 녀석 쪽의 사람이었나?”

“괴물…녀석?”

“엉?  은발 적안의 괴물 얘기한 거였는데, 모르는 건가?”

“……!”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은발에 적안을 가진 사람은 단 한명 밖에 없다.
게다가 에밀리아의 얼굴을 알아본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반응을 보니, 맞군? 그런 외향을 가진 녀석이 흔하지는 않지. 흐흐흐.”

붉은 머리카락의 사나운 인상을 가진 남자는 어딘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그놈이 나타났다고?”

“뭐? 진짜로?”

“조장! 정말입니까?”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동료로 보이는 이들이 하나둘씩 반응하며 흥미로운 기색으로 에린을 쳐다보며 관찰했다.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진귀한 동물을 구경하는 것만 같은 시선에 거북해진 에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현이를…알아?”

“알다, 마다! 내 부하를 다섯이나 죽이고 멀쩡하게 도망친 녀석인데! 세상에 그렇게 괴물 같은 강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바론의 그런 기색을 보고 에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도 어딘가 뒤틀려 있어.’

자신의 사람이 은현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슬픔이나 분노보다는 기대가 가득 찬 환희의 시선을 띄우는 남자.

“너는  괴물과 어떤 관계지?”

“현이를 괴물이라고 부르지 마. 나는…그 사람의 제자야.”

순간 에린은 은현과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할지 고민했지만, 이내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입에 담았다.

“호오. 제자? 제자라….”

“그 괴물이 제자도 키워?”

“강하려나?”

“아직 어린애 같은데?”

에린의 대답을 들은 이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수군거리고 있을 때.

“소란스럽군.”

이내 바론의 뒤, 어두운 곳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달빛에 비쳐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보고 에린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저 마력은…?’

에린의 몸에 깃든 신수는 인간의 몸속에 내재된 정, 또는 마력을 탐하여 자신의 힘을 축적시키는 능력을 가진 구미호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기운에 대해 민감한 감각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에린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
에린의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매우 민감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의 마력의 색깔을 확인하고,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꾸물거리는 검은색, 마치 살아있는  같아. 굉장히…기분 나빠.’

은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밝은 은색빛을 띄운다.
무의식적으로  따뜻함과 포근함이 동반된 애정을 계속해고 느끼고 싶어 하던 에린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은현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은현의 몸속에 품고 있는 기운이 신력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기운의 정갈함을 에린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반면, 남자가 풍기고 있는 기운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짙은 검은색이다.
에린은 본능적으로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싸움이 벌어질 때를 대비하여, 자연스레 허리춤의 레이피어에 손을 가져다대고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력을 방출하며 임전태세를 취하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에이라도 긴장한 기색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이, 고용주! 손님이 저것들 맞아? 들었던 거랑 조금 틀린데?”

“흐음.”

바론과 사냥개들의 주인, 고용주의 자리에 위치해있는 란델이 에린 일행을 한차례 훑어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흑랑단이 아니군. 설마 내 제안을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란델은 현재 흑랑단의 입장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왕국의 왕당파 귀족들에게 거금을 받는 조건으로 공작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는 키워드를 제공하여 결탁했다.
결과적으로 공작가문은 책임을 지고 군무장관의 자리를 사퇴하긴 했지만, 다른 귀족들과 달리, 은현의 덕으로 막대한 양의 백금화를 왕가에 벌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부담은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면했다.
현 상황에서 양쪽 파벌들의 비리귀족들이 징계를 받게 되면서 파벌 세력의 크게 위축이 되었고, 왕당파벌은 나 몰라라 하며 흑랑단과의 관계성을 일체 부정하며 흑랑단을 버렸다.
다른 귀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재한 공작가문의 앞으로 있을 보복이 올 것을 기다리며 흑랑단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기분을 느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란델은  이상 뒤가 없이 구석에 몰린 흑랑단에게 거금을 제시하여 유혹하고 그들에게 살길을 열어주겠다는 말로 구슬려 이용할 생각이었다.

‘설마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줄은, 무언가 다른 줄을 잡은 건가?’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은 적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청색 머리카락의 소녀다.

“고용주! 용건이 없다면 우리가 놀아도 되겠지? 저 녀석의 스승이 그때 그녀석이라고! 린데발트에서 혼자의 힘으로 우리를 압도했던 그  말이야!”

“뭐?”

란델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에린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미 정보통을 통해서 그때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풀어놓은 사냥개들을 압도하고, 납치된 엘레노아를 구하고, 사건의 주범이었던 애슈턴과 바르크를 생포해 왕궁 궁정회의장에 난입해 사건을 무마시킨 남자.
그리고 애슈턴을 앞장세워 나라의 세금을 조금씩 갉아먹게 했던 비리를 까발리고, 페르닌 습격사건에서 서큐버스 악마인 리라를 저지했던 에린의 보호자.
결과적으로 왕국에 수작질을 걸었던 자신의 계획에 모두 엿을 먹였던 인물.

“…수은의 뱀?”

‘독을 품은 은색뱀’, ‘마녀의 애완뱀’, ‘마녀의 연인’ 등의 이명으로 왕국 안에서 최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래! 왕국 안에서는 그 이름으로 불린다지!? 그 놈의 제자가 지금 눈앞에 있는데….”

“잠깐, 그렇다면 네가 ‘에린 헤르샤’인가?”

“……!  이름을 어떻게…!”

“리라에게 조영술의 지식이 담긴 흑마법서를 제공한 건 나였으니까.”

“아…!”

“에린!”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던 에린을 크게 부르며 에이라가 그녀의 행동을 다그쳤다.

“언니….”

“아니야. 아직  돼.”

뿌득

성급하게 검을 뽑고 달려들지 말라는 에이라의 충고는 옳다.
감정의 충동에 맡겨, 당장이라도 란델을 죽이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는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참을 수가…없어요. 저 사람만, 저 사람만 아니었다면 우리 오빠가 흑마법사가 되는 일은….”

“그래도 안 돼.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어떤 수를 쓰는지도 하나도 모르잖아. 그리고….”

제라드가 란델을 죽이기 위해 어둠속에 숨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목적은 빈틈을 만드는 거야. 그걸 잊지 마.”

“아….”

자신들이 달려든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상기시켜주고, 에이라는 억지로 에린을 다그쳤다.
그리고는 에이라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올려다보며 란델과 사냥개 무리들을 응시했다.

‘공녀님이 납치당하셨던 그때, 은현님이 조우했던 사냥개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고용주라고 불리우는 란델이라는 남자는 애슈턴을 앞세우고 뒤에서 배임횡령의 상황이 조장되도록 판을 짜,  나라를 더욱 개판으로 만든 원흉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 배임횡령부터, 페르닌을 습격한 악마 사건, 엘레노아의 납치와 공작가문을 무너뜨리려는 수작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페르니아스의 국력을 약화시키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어째서죠?”

“응?”

“당신의 목적은 뭐죠?”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고,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에이라는 일부러 란델에게 질문을 던졌다.

“목적이라…. 그걸 내가 너희에게 말해줘야 할 이유라도 있나?”

“…….”

은현의 존재를 떠올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란델은 에린 일행에게서 등을 돌려 다시 어두운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론.”

“뭐야?”

“상관없다. 다 죽여도.”

“으하하! 얘들아! 사냥이다! 좋은 먹잇감이 들어왔으니, 놀아보자!”

“오오! 드디어!”

“얼마나 강할까!”

주인의 허가가 떨어지자, 사냥개들이 환희의 미소를 띄우며,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갑작스럽게 폐건물의 내부가 사냥개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요동치는 마력으로 진동하기 시작한다.

“으…!”

피부가 오싹해지는 전투태세의 분위기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찾아와 에린과 에이라의 몸을 움찔 떨게 만들었고 뒤늦게 검을 뽑아 임전태세를 취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인형 또한 마찬가지.

“살의와 위협을 감지. 전투태세로 전환합니다.”

“가자아아아!”

천진한 살인전투광의 호령에 따라 여기저기서 사태를 관망하며 사냥감을 물어뜯을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냥개들이 에린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전혀 흥미가 없던 란델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설마 흑랑단이 아예 미끼도 물지 않을 줄은. 이건 상정 외였어.’

다음의 계획을 짜기위해 깊은 생각에 잠긴 란델은 건물 전체가 진동하는 주위의 소란스러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라는 것 뿐.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홀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란델은 방안에 제도 인식하기도 힘든 어두운 형체 하나가 자신에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내 란델의 의자 뒤를 점령한 어두운 형체가 자신의 손에 쥔 단검을 높이 들어 올렸고.

“죽어.”

담담한 목소리로 사형을 선고하며, 란델의 목에 단검을 내려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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