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1화 〉171. 사냥개들(1) (171/730)



〈 171화 〉171. 사냥개들(1)

“실례합니다.”

“오, 저 아가씨들은?”

에린과 에밀리아를 알아본  기사가 눈썹을 치켜뜨며 휴게실에 찾아온 그녀를 알아보자, 다른 기사들도 둘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아, 안녕하세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들이 살짝 부담스러웠던 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며 작게 인사를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야? 오늘도 에이라를 만나러 왔나?”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에이라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서, 자신에게는 아가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호의를 보내오는 것이 에린은 조금 낯설었다.
아르티아 단장인 리오드의 딸이라고 하더라도, 기사단 내에선 평단원보다 아래인 견습 단원에 해당하는 에이라에게는 철저한 위계질서가 적용되었기에 생긴 결과다.
정작 리오드를 존경하는 기사들로만 구성된 아르티아의 단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에이라를 귀여워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평단원 취급해주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 또한 미묘하다.

“아, 네. 그, 사실은 아르티아 단장님께 상담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상담?”

에린에게 말을 건 기사가 살짝 인상을 쓰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으음, 아가씨가 온 문제니까,  양반 관련된 문제이기도 할 테니, 평범한 문제는 아니긴 하겠지만…. 안 그래도 지금 더럽게 바빠 죽겠는데….”

키메라 마수 토벌 사건 때부터, 은현에 대한 신뢰가 쌓인 아르티아의 단원들은 비공식적인 은현의 제자인 에린에게도 나름대로의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용건으로 자신의 상사이자, 기사단의 단장인 리오드를 만나러 왔다고 하더라도, 기사는 분개하지 않았다.
 가지 신경쓰였던 것은 에린이 어떤 용건을 들고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건지 물어봐도 되려나?”

“…잠시 귀를  빌려주시겠어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단원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에린이 흔쾌히 고개를 숙여 귀를 빌려준 기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닥대며 사정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뭐!? 페르닌을 습…흐읍!?”

“쉬이잇!”

깜짝 놀라 되물으려던 기사의 입을 황급히 에린이 틀어막았다.
이내 진정된 기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 서야 기사의 입을 틀어막았던 에린의 손이 풀렸다.

“아가씨…이거 진짜야?”

“…네.”

“하아, 염병, 귀족들의 취조로 더럽게 바빠 죽겠는데, 하필 이때…. 아니, 지금이니까 인가?”

“많이 바쁜가요?”

생각해보니 언제나 휴식을취하는 기사들로 가득 채우던 휴게실이 생각보다 한적했다.

“아~조금? 그래도 아가씨의 건도 무시할 수 있는 노릇이니까. 일단 단장님께 말씀은 드려볼게. 단장님이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

잠시간 휴게실에 가만히 앉아있자, 리오드에게 용무를 전달하고 온 기사가 에린을 단장실로 안내했다.
두 번의 노크 후, 허가를 받고 단장실로 들어가자,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리오드의 말에 에린도 덩달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 된 와중에, 이전처럼 단장실 안에 있는 리오드와 카인, 에이라를 차례차례 응시하다가 못 보던 얼굴의 한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응?”

“오, 오오….”

“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남자의 반응을 보고, 에린이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시선을 움직여 남자의 행색을 살폈다.
연배는 조금 있어 보이는 30대의 중년이었지만, 큰 장신과 말끔한 인상을 겸비한 차림새는 굉장히 품격 있는 미중년을 연상케 한다.
처음 에린이 리오드를 보고 떠올린 인상을 간결이 설명하자면, 무덤덤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사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반면 검은 머리카락을 말끔히 위로 넘기고 이마를 드러낸 깔끔한 인상에, 딱 맞는 핏의 검은색 줄무늬 정장을 입은 눈앞의 남자는 마치 대규모의 상단을 운영하는 사업가를 보는 것 같은 예의바른 신사의 모습이었다.

‘와,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사람….’

 미중년의 신사가 이내 진지한 결심을 띄운 얼굴로 에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왜, 왜 그러세요…?”

“…….”

남자는 당혹스러운 에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겨 한데 모은다.
진지하면서도 정중한 목소리로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와 결혼 해주시겠습니까?”

“…네?”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성은 처음 봤습니다. 아아,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머리카락, 사람을 홀리는 미색이 짙은 얼굴, 가녀려 보이면서도 건강하게 단련된 다리와 허리, 부디 저와 결혼해주신다면 제 재산과 제 마음과 몸을 모두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잘못 봤어! 멋있기는커녕 이상한 사람이야!’

불타오르는 열정어린 눈빛과 잔뜩 흥분하여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면서, 격렬하게 구애해오는 신사의 행동에 에린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것 좀 놓고 얘기를….”

“아아,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손이라니, 한시도 검을 놓지 않았던 노력의 흔적이 당신의 몸을 더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군요! 제 마음이 더더욱 당신에게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 말을 좀 들어요!”

에린이 기겁을 하며 신사에게 붙잡힌 양손을 어떻게든 뿌리치려 노력했지만, 호리호리한 체영의 신사는 에린의 저항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뭐야. 이 사람 진짜…?’

뿌리치려하면 할수록, 더욱더 자신의 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변태 신사가 하악거리는 뜨거운 숨결을 계속 토해내며 에린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아니, 단장님….  양반 저거 말려야하는  아니에요?”

“아버…단장님….”

 광경을 지켜보던 카인과 에이라도 차마 직접적으로 신사의 몸을 붙잡아 제지를 시키지 못하고 어서 도와주라는 시선을 리오드에게 보냈다.
짜증이 난 리오드가 어쩔 수 없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신사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그를 불렀다.

“제라드.”

“아아, 어찌 이리도 아름다우면서도 순수함의 결정체가 존재할 수 있다니….”

제라드라고 불린 신사는 리오드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

“저, 저기요. 이거 놓고 얘기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가씨.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대답해드리면 손을 놓아주실 건가요?”

“네. 그러죠. 아가씨는 혹시….”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걸까.
에린은 괜히 침을 삼키며 긴장을 했다.

“처녀이십니까?”

“네?”

이해할 수 없는 제라드의 질문에 에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녀? 처녀라는 건 결혼하지 않은 성인 여자를 말하는 거잖아?’

누가 봐도 아직 나이가 어린 소녀에 불과한 자신인데 어째서 굳이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나이어린 에린은 아이테르에서도 소녀의 특수한 입장 때문에 친구가 없어 겉도는 입장이며, 엘빈이나, 은현도 그녀를 너무 끔찍이 아끼는 나머지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지식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제라드!”

“형님.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지금  운명의 상대를 만나 열렬히 구애를 하는….”

“그 아이는 미성년자다. 그리고 은현이 키우고 있는 아이지.”

“…….”

제라드의 말이  끊겼다.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오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제라드는 에린의 양손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풀지 않았다.

“진짜로…현이 형님이 되살아나신 겁니까…?”

“그래.”

“아, 아아아….”

“응…?”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제라드의 양손의 갑작스레 심하게 떨리면서, 그 진동이 제라드의 손에 꽉 쥐어져 있는 에린의 손에 느껴졌다.
에린이 고개를 올려다보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공포의 감정을 얼굴 전체로 표현하고 있는 제라드의 반응을 보고 당황했다.

“왜,  그러….”

“아아아아! 죄송합니아아아아!”

제라드가 황급히 에린에게서 손을 떼고, 사죄를 하며 거리를 벌린다.
이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손을 모아 이마를 땅에 부딪치며 석고대죄를 했다.

쿵!

얼마나 크게 찧었는지 단장실 안을 바닥에 이마를 찧는 소리가 다 퍼질 정도.

“아니, 저기 도대체가….”

“죄송합니다아아! 제발! 제발 부디 현이 형님에게 이 사실만은 함구해주세요!”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잃은 에린의 반응을 보고, 한숨을 쉰 리오드는 강제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화제를 전환했다.

“…에린 저건 무시하고, 네 용건을 말해라.  정보는 도대체 뭐지?”

“아, 네….”

에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를 재개했다.
일리아나의 주택에 슬럼의 허름한 차림의 남자를 통해서 비밀스러운 편지가 전달된 일.
그리고 그 편지의 내용과 에밀리아의 안내를 따라 정보 길드,흑랑단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들었고, 페르닌을 습격한 서큐버스와 이어져 있던 또 다른 배후의 존재, 그리고 그 배후가 엘빈을 흑마법사로 만든 흑마법사를 제공한 것으로 추측되며 흑마법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까지.

“후우…. 차례차례로 피곤한 사실만이 엮여오는 군….”

“시간은 오후 8시로 글레오르 폐창고라고 했어요.”

“쯧….”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리오드의 얼굴에 에린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나서주실 수 없는 건가요?”

“…….”

리오드는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좀 곤란한 상황인 건 맞다. 하필 이 타이밍이라니 너무 노골적이야. 작위적으로 이 상황을 유도했다고  수밖에 없어.”

이해할 수 없는 중얼거림에 에린이 더더욱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낯빛이 어두워져간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기도 하지. 제라드.”

리오드의 호령에 제라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솔직히, 여기서 이렇게 길이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천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아, 네….”

에린은 잘도 저런 느끼한 대사를  밖으로 꺼낸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는 상종하고 싶지 않아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가져온 정보가 호재라는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에린. 이 남자에게 그 장소를 안내해라.”

리오드가 제라드를 가리키자, 에린이 펄쩍 놀라며 경기를 일으켰다.

“이, 이 사람하고요!?”

절대로 싫다고 울상을 짓는다.
이내 억울한 에린의 감정이 이상한 방향으로 에밀리아에게 불똥이튀었다.

“에밀리아! 방금 나 엄청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안 막았어!”

“……? 본 개체는 남성의 행동에 적대의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여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 앞으로 저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무조건 막아!”

“…명령을 수락합니다.”

“단장님.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에이라. 이건은 매우 위험하다. 견습단원인 네가 함부로 끼기엔….”

“에린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에린과 합을 맞춰온 건, 저에요. 그리고 에밀리아라는 든든한 호위도 있고, 단장님과 마찬가지로 대영웅님도 계시잖아요?”

“예?”

에이라의 말을 들은 에린이 펄쩍 놀라, 에이라가 눈짓한 곳에 있는 제라드를 바라보았다.

“저…분이 대영웅이라고요…?”

믿을  없는 사실에 에린이 경악한 표정으로 제라드의 옆 얼굴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저 변태가?’

“…절대로 다치지 마라.”

“네. 주의할게요.”

에린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 이야기는 어느 샌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거부할 틈도 없이 제라드의 동행이 몹시 불편했던 에린은 결국 포기했다.

“후후. 에린, 잘 부탁해.”

“네…. 에이라 언니. 그런데요.”

“응?”

에린은 아까 전에 제라드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 중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떠올렸다.
차마 제라드에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고, 그나마 물어볼 수 있는 대상이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친한 언니인에이라 밖에 없었던 것이 한정된 선택지였다.
17살의 소녀가 질문을 입에 담았다.

“처녀가 뭐에요?”

순수한 소녀의 질문에 두 사람과 인형의 발걸음이  멈췄다.

“에, 에린…그건….”

“이럴 수가….”

두 사람 모두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당황의 이유는 달랐다.
미성년자인 여동생 같은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하나 고민을 하는 에이라.
반면 제라드는.

“처녀의 뜻을 모르다니…. 이 얼마나 순수한 영혼의 결정체인지….”

“…본 개체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생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왠지 모를이유로 감격하고 있는 제라드를, 에밀리아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체로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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