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167. 진짜 배후(2)
“조져!”
우두머리로 보이는 건달의 호령과 동시에, 두 건달들이 에린을 향해 달려든다.
자신을 향해주먹을 날리는 건달들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발걸음을 옮긴 에린은 아까 전 자신이 떨어뜨렸던 꼬치구이의 봉투를 다시 주워들었다.
“이게 미쳤나, 진짜.”
이 상황에서 떨어뜨린 음식이 든 봉투를 다시 줍고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는 건달들의 눈에는, 에린이 자신들을 두고 여유롭다 못해 장난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교복을 입은 소녀 하나한테 자존심을 구겨진다는 것을 자각하고, 짜증을 낸 건달들이 다시 에린에게 달려든다.
건달들의 돌진을 확인한 에린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건달들을 향해 꼬치구이가 든 봉투를 냅다 던졌다.
‘아저씨! 진짜로 죄송해요!’
웃으면서 자신에게 닭꼬치를 팔았던 노점상의 주인에게 죄악감을 가지며 속으로 사죄한다.
“으아악!”
허공을 날던 봉투 속에 있던닭꼬치의 소스가 건달들의 얼굴에 튀면서시야를 가리기를 몇 초.
에린은 바닥에 떨어진 닭꼬치 하나를 주워들고 꼬치에 꿰어져 있는 닭고기들을 모두 빼내고 꼬치를 손에 쥐며 건달들을 향해 겨눴다.
“그깟 나무꼬챙이 하나 가지고 뭘 어쩌겠다고!”
비아냥대던 건달의 외침을 무시하고, 에린이 자세를 낮추면서 양 무릎을 오므렸다.
언제라도 달려들 수 있도록 온 힘을 집중하고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날렵한 맹수처럼 돌진해온 에린의 접근에 건달들이 깜짝 놀라며 행동이 굳어버린다.
“크윽!?”
건달들의 눈에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마냥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의 접근에 주춤거리기를 잠시, 에린은 그들의 당황스러운 반응을 매섭게 캐치해내고 매서운 찌르기를 통해 건달의 어깨에 나무꼬치를 꽂아 넣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얇은 나무꼬치가 살을 찌르고 뼈를 관통하여 뚫어버리는 광경에 건달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깨를 찔린 건달이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나무꼬치를 뽑아들고, 건달의 팔, 다리 등, 급소를 제외하고 행동불능 상태에 이르게 할 부위들을 차례차례 찌르기를 반복하던 도중.
빠득
“아.”
맹공을 퍼부으며 건달의 몸을 찌르던 나무꼬치가 허약한 내구성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으아악! 아파! 아프다고!”
뒤늦게 찾아오는 전신의 고통 속에서 건달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 년이!”
동료 건달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자, 다급함을 감추지 못한 다른 건달이 다리를 들어 에린의 옆구리를 걷어차기 위해발길질을 했지만, 에린은 발걸음을 옆으로 쓱 옮겨 피할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대로 자신의 왼쪽을 지나쳐 허공을 내지르는 건달의 품으로 파고들고 오른쪽 팔꿈치를 휘둘러, 건달의 턱을 정확히 가격한다.
“으…그흑!”
얼굴이 뒤틀리고 하관에 직격된 충격으로 머릿속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초점을 잃고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 완벽한 무방비의 상태.
“하앗!”
기합소리와 함께 에린이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면서 다리 한쪽을 들어 횡으로 회전하는 궤도를 그리며 턱을 가격당하면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달의 관자놀이에 하이킥을 꽂아 넣었다.
치마가 펄럭이면서 하나의 화려한 꽃잎들이 나풀거리는 것만 같은 장면이 연출되며 아름다운 라인이 강조되는 에린의 다리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
“크악!”
몸을 회전시키면서 속도가 붙은 에린의 발차기를 정통으로 맞은 건달이 짧은 비명을 내지름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스스륵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윽고 순식간에 건달 셋을 정리한 에린은 시선을 옮겨 우두머리 격의 건달을 바라보았다.
에린의 시선을 받은 건달이 움찔 몸을 떨며 욕지기를 내뱉는다.
“젠장….”
순식간에 자신의 패거리를 정리한 실력을 보아, 에린이 보통의 실력을 가진 소녀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
에린이 천천히 자신 쪽으로 걸어올 때마다, 건달이 에린과의 간격을 유지라도 하듯이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소녀에게 기세부터 눌리고 있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기분을 누릴 여유도 없이, 건달은 잔뜩 동요하고 있었다.
“오, 오지 마!”
“…….”
“으아아아아!”
에린이 미동도 보이지 않자, 결국 이판사판으로 에린에게 달려들기까지.
그 행위에는 에린에게 위협은커녕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두려움에 젖은 남자의 발악일 뿐이다.
에린은 무작위로 휘두를 뿐인 건달의 주먹을 피하고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복부 부위에 다섯 손가락을 오므린 상태로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이내 손바닥의 끝에 마력을 집중시키고 일정 이상 응축시킨 마력을 단 번에 터뜨린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胡蝶發勁)]
손바닥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터뜨리면서, 강력한 충격파가 만들어지고, 건달의 복부에 직격되면서 내장을 뒤흔든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충격의 여파로 건달의 몸이 튕겨져 허공을 날고, 빠른 속도로 골목 벽에 처박혔다.
“우웨애액!”
내장을 뒤흔들린 여파로, 건달이 구토를 하는 광경을 에린이 멍하니 바라봤다.
‘서, 성공했다….’
은현에게서 배운 기술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감각은 에린에게 신선하면서도 짜릿한 감각을 선사했다.
‘나, 나중에 현이한테 자랑하고 칭찬해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뛸 듯이 기쁜 감정을 뒤로하고, 모든 건달들을 정리한 것을 확인한 에린은 곧장 마르바의 손목을 붙잡고 자리를 옮기려 했다.
“가자.”
“이거 놔!”
“응…?”
“내가…내가 언제 너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했어? 그냥 도망이나 칠 것이지!”
“그게 무슨….”
에린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역정을 내는 마르바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하필 너인 거야…. 어째서 이런 꼴을 너한테 보여야 하는 거냐고….다른 누구도 아닌 너한테….”
자신이 실컷 업신여기고 조롱하며 인격을 무시했던 에린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그녀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시키고 스스로를 자조하는 모습이 에린의 눈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도대체 마르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 무슨 소란인 가요!”
이윽고 건달들의 비명과 골목의 벽이 파손되는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온다.
“이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익숙한 목소리라는 기시감을 느끼며, 에린은 고개를 돌려 철컹거리는 갑옷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방향을 응시했다.
“무슨 일이…어머? 에린?”
“…에이라 언니?”
뜻밖의 만남에 당황스러운 것은 에린 뿐만이 아니라, 견습기사로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에이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마셔. 코코아야.”
“아, 감사합니다.”
에린은 에이라가 가져다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좀 어떠세요? 견습기사의 생활은?”
“으음, 쉽지는 않지. 안 그래도 아버지의 눈이 너무 엄격해서…그래도 다른 분들이 잘 해주셔서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어.”
결국 아르키스 대미궁에서의 훈련을 마치고도,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성장을 아버지이자, 아르티아의 단장인 리오드에게 증명해낸 에이라는 아르티아의 견습기사로서의 입단을 정식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뵈는 것 같아요. 학교에도 잘 나오시지 않으니까.”
“나야 이미 졸업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에이라는 이미 4학년 막바지에 달했으며, 항상 최상위의 성적을 유지해온 모범생이었으며, 견습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인정받은 특례중의 특례였다.
이제 졸업만을 앞두고 있던 그녀가 더 이상 학교에서 쌓을 수 있는 배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조기졸업의 형태와도 같은 영광스러운 특례를 받은 것.
동경하던 아버지의 기사단에 입단하면서, 고되고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에이라 자신은 그 일에 대해서 매우 보람찬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마르바는…어떻게 된 건가요?”
“자세한 건, 위에서 판단하겠지만…. 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
“불길한 생각인가요?”
“최근에 마르바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학생들도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거든.”
“피…해?”
“응.”
“에이라. 심문 끝났다. 곧장 그 아이를 데리고 단장실로 와.”
“아, 알겠습니다.”
설명을 해주려던 찰나, 에이라를 호출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타이밍을 놓치고 선배단원에게 대답했다.
“가자. 에린.”
“……? 네.”
에린은 아르티아의 단장인 리오드가 굳이 직접 자신에게 설명을 해주겠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굳이 이 의문을 해소하지 않고, 앞장서서 단장실로 걷는 에이라의 뒤를 순순히 따라갔다.
똑똑
“단장님. 에린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라.”
정중한 노크와 알림을 통해서 허가를 받고 단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에이라의 태도는 명백히 부녀지간의 사적인 관계보다는, 기사단장과 기사단원의 공적인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다.
단장실 안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에린은 싸늘한 시선이 자신의 몸을 꿰뚫는 것을 느끼며 몸을 살짝 떨었다.
리오드의 옆에 서서 열중 쉬어 자세를 취하고 에린을 노려보고 있는 아르티아의 부단장, 카인의 매서운 눈이 에린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 으아아…위압감이 장난 아니야….’
저택이나 사적으로도 몇 번인가 만났던 리오드도 평소와는 달리 업무모드로 들어서 있는 상태로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단장실 내부의 공기가 매우 싸늘해져 덩달아 에린도 긴장했다.
아르티아의 단장과 부단장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에린의 몸이 자동적으로 움츠러든다.
“두 분, 조금만 표정을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에린이 너무 긴장을 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가능하면 공적인 자리에서 견습기사의 신분인 에이라는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해 간섭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굳어있는 에린을 보고 있자니, 조금이나마 에린을 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실례를 범했군요. 그 양반이 직접 키우고 있는 제자라고 해서 저도 모르게 분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양반이라면….”
자신을 키워주며 지금까지 이끌어준 정신적인 지주는 엘빈과 은현 뿐이었다.
오빠인 엘빈보다는 리오드와의 연관성이 짙은 은현을 먼저 떠올린 에린은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현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싱긋 웃어 보이며 준남작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나이 어린 소녀에게 존대를 해주는 카인의 얼굴에는 아까까지 에린을 노려보며 분석하던 매서운 눈빛은 없었다.
“후우….”
약간의 숨통이 트였음을 느낀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리오드에게 물었다.
“저어…단장님, 굳이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물론 귀족영애를 위험에서 구하고, 수상한 괴한들을 제압한 것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도 있지만…진짜 용건은 너에게 따로 부탁을 하기 위함이다.”
“부탁이요?”
“그래. 이걸 그 녀석들에게 전해줄 수 있겠나?”
리오드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종이로 감싸인 봉투와 편지를 에린에게 내밀었다.
“현이와 일리아나님한테요?”
“음.”
“이게 뭔가요?”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수사의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아직 밝힐 수는 없는 내용이다.”
“저어, 그런데…현이는 지금 집에 없는데요?”
“…그런가?”
“네, 조사할 게 있다고 당분간 집에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 녀석의 조언을 받기엔 글렀군. 카인.”
“네.”
“이걸 세실리아에게 보내서 성분 분석을 의뢰해.”
“알겠습니다.”
“음….”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은 진중하고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리오드의 반응을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에린은 구태여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아무리 모르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자신은 아르티아의 단원도 아니었으며, 기사도 아니다.
우연히 마르바와 건달들을 발견하고 건달들을 제압했다지만, 아르티아가 에린에게 이것에 관한 내용을 밝힐 의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에린은 자신의 입장과 지켜야할 선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건 저희의 수사에 큰 도움을 주신 에린 양에게 드리는 작은 보상입니다.”
“아…네.”
품에서 꺼낸 주머니를 받아든 에린은 주머니 속에 든 은화다발들의 내용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상금이…이렇게 많나요?”
“그만큼 에린 양이 저희 수사에 큰 공헌을 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네 명의 괴한들을 제압한 솜씨, 아주 훌륭했습니다. 아이테르를 졸업하신다면 따로 생각해둔 진로는 있으신가요?”
“네? 아, 그게…아, 아직….”
에린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번 생각해보시죠. 에린 양의 실력이라면, 입단은 별로 문제도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아, 네….”
자신의 진로라니,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다.
지금껏 죽기 살기로 은현의 트레이닝을 견뎌내고 그 훈련들을 견뎌내게 만들어준 원동력에는 은현에 대한 정성과 자신의 오빠인 엘빈의 명예를 되찾고 싶다는 막연한 염원 때문이었다.
‘여기사라….’
에린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선배나 다름없는 에이라를 흘끗 바라보았다.
구체적으로 엘빈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이 아르티아의 기사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계속해서 엘빈에 대한 얼굴이 떠오른다.
이 나라의 엘리트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궁정마법사단인 메이거스에 재능 없는 평민의 신분으로 입단하는 명예로운 업적을 선보였음에도, 평민의 피라는 신분 때문에 마법사단 내에서 배척받고 모멸과 조롱을 받아야 했던 엘빈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에린은 마음 속 한켠으로 카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망설임이 존재했다.
이 아르티아는 에이라가 있고,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주는 카인 같은 남자와 리오드가 있기 때문에 엘빈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박힌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전히 에린의 마음의 문제였다.
에린은 최대한 자신의 떨떠름한 기분을 숨기며 미소를짓고는 대답했다.
“제안 정말 감사해요. 한 번…생각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