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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162. 형량협상(2) (162/730)



〈 162화 〉162. 형량협상(2)

“이곳은 왕국의 중진들이 모여서 왕국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그대가 사적으로 놀러오는 곳이 아니에요! 말과 행동에 예의를 갖추도록 하세요!”

참고 참았던 디아네 왕비가 결국 노호성을 내질렀다.

“아, 그건 저도 아는데요. 왕비님께선 공작께공적인 게 아닌 사적인 무언가로 처벌을 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모습은 명백히 이 나라의 어머니이자 왕비인 자신을 조롱하는 태도.

“감히…어느 안전에 그딴…!”

“성검을 바치겠습니다.”

“…뭐라고요?”

“사죄의 뜻으로 공작가문의 가보인 성검, 듀란달을 헌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것으로 다른 귀족들과 같은 수준의 처벌로 내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은현! 성검은!”

황급히 은현의 말을 제지시키려는 알렉스의 행동을 아브로스가 막아선다.
동시에 공작가문의 가보를 선뜻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혀오자 궁정 내의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공작가문의 사람도 아닌 그대가 공작가문의 가보를  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당연히 없죠. 하지만….”

“제가 승낙하겠습니다.”

은현이 몸을 틀어 입구 쪽에 있는 엘레노아를 정중히 가리킨다.

“엘레노아….”

엘레노아는 알렉스를 잠시간 응시하고 다시 디아네 왕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공작 가문의 당주와 소공작이 연행되어  지금 상황에서 가문의 의사를 결정할  있는 다음 결정권자는 공작부인이신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결정의 권한을 양도하셨어요. 그러니 제가  자리에서 공작가문을 대표해 왕비마마께 간청하겠습니다. 과거 페르니아스 왕가에서 직접 하사해주신 성검, 듀란달을 다시 왕가에 헌상하겠습니다. 그러니…부디 다른 비리 귀족들과 같은 강도의 처벌을 내려주세요.”

“…….”

디아네 왕비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성검 듀란달은 아브로스가 지원하고 있는 헬레나 후비의 아들, 에반 왕자를 왕세자로 옹립시키기 위해 그에게 쥐어주기로 했던  왕가의 무기이다.
공작파벌의 입장에서는 에반 왕자를 밀어주기 위한 몇 안 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저것을 뺏어와 자신의 아들인 데미안에게 쥐어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에반 왕자의 왕세자의 옹립 가능성을 거의 빼앗음과 동시에 데미안의 입지가더더욱 단단해지는 초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저 요청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저 남자가 제안해온 것이기 때문일까.’

굉장히 꺼림직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데미안을 위해, 성검이 탐이 나는 것도 사실.
디아네 왕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타협점을 입에 담았다.

“엘레노아 공녀의 간청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리의 주모자를 다른 자들과 똑같이 처벌 할 수는 없습니다. 가중처벌의 강도는 완화하도록 하죠. 1년 안에 백금화 200닢으로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엘레노아는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검을 받아 쳐 먹고도 가중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이가 갈릴 뻔했다.
하지만 6개월에 백금화 300닢에 비하면 확실히 나은 수준이라는  또한 사실.

“젠장….”

변경된 벌금의 금액과 기한을 들은 알렉스도 속으로 욕을 내뱉고, 리오드 또한 참담한 얼굴로 알렉스와 아브로스를 살피고 있는 가운데,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한 남자만이 계속해서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네. 여기 있습니다. 백금화 200닢.”

“…뭐?”

“지금…뭐라고 했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은현의 말에 지금 이 순간만큼 자신의 승리를 직감한 디아네 왕비조차 동료를 숨기지 못하고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낸 은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벌금 백금화 200닢. 제가 납부하겠다고요. 버나드 재무장관님.”

“뭐, 뭐지…?”

느닷없는 은현의 지목에 지금껏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버나드가급하게 대답했다.

“백금화 200닢입니다. 직접 확인해보시고 납부의 확인 사실을이 자리에서 선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은현의 요구에 조심스레 그의 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받아들고 천천히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200닢…맞습니다.”

“정확히 나라의 예산 운용에 써주시죠.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야 나라가 어디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마치 배임횡령에 공모했던, 파벌의 구분도 필요 없는 수많은 귀족들이 대놓고 들으라고 말하는 비아냥이었다.
디아네 왕비는 이빨을 까득 깨물었다.

‘이래서는….’

배임횡령으로 조만간 처벌을 받아 왕당파벌 귀족들의 세력이 깎여나갈 것을 감안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공작가문에 제대로  목줄도 쥐지 못한  그냥 놓아주는 꼴이 되었지 않은가.
도대체 개인이 일시불로 납부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닌 백금화 200닢을 어떻게 준비한 것일까.

‘애초에 저 자는 왜 저렇게 거금을 들여서까지 공작가문을 돕는 거지?’

그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로 약혼자인 엘레노아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다.
방금 전까지 은현은 아브로스가 발언한 ‘엘레노아와 은현’의 약혼 사실에 대해 금시초문인 표정을 지었었다.
둘의 관계가 어떤지는 둘째치고, 은현이 공작가문을 돕는 데에 애정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건 확실했다.

‘이유를모르겠어….’

그의 돌발 행동은 디아네 왕비 뿐 만이 아닌, 아브로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네 녀석은 도대체….”

순식간에 자신의 목에 채워져 있던 목줄이 풀리는 경험을 한 아브로스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뭐…결혼식의 지참금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지금은 이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그렇게 은현이 서두를 띄움과 동시에.

“실례합니다! 왕비마마!”

“…무슨 일이죠?”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가 궁정회의의 참석을 요청해 오셨습니다!”

회의장 안으로 들어선 어린 소녀의 모습에 회의에 참석한 수많은 귀족들이 말을 잃고 멍하니 금발의 어린 소녀를 바라본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끌리지 않기 위해, 두 명의 여사제가 소녀의 머리카락 끝을 정돈해주고 바닥에 닿지 않도록 들러리의 역할을 수행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러리의 사제 둘의 뒤를 따르는 두 명의 성기사들.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신성력의 기운과 어우러져,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최고위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어린 소녀의 외관은 누가 보더라도 이질적이다.

“저렇게…어린 소녀가 대주교…?”

아무리 왕국의 귀족의 자리에 위치해있다고는 하지만,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베스타 신전의 모든 주교들의 위에 서있는 대주교를 보는 것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하는 기회나 마찬가지.
베스타 신을 섬기는 성국을 다스리는 교황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대주교가, 한창 아이테르에  입학해야할 수준의 연약한 체구의 소녀라는 것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귀족들의 두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베스타를 섬기는 사제, 아니에스 예르살레카 대주교가 페르니아스의 왕비마마께 인사드립니다.”

“…대주교의 방문을 환영하죠.”

디아네 왕비는 궁정회의에 아니에스가 참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나라의 귀족으로써 실질적으로 왕가의 신하로 위치한 리오드와는 다르며, 이 나라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일리아나처럼, 쉽사리 건드릴  없는 여자가 아니에스다.
그 이유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대주교라는 지위가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에레니아 신성국의 주인인 교황 때문.
아니에스에게 무례하고 소홀한 대응을 했다가는 그것은 곧바로 에레니아 신성국과 페르니아스 왕국간의 국제 문제로 벌어질 가능성까지 존재했다.

‘영웅이라는 것들은,정말로…하나 같이 귀찮기 짝이 없어.’

디아네 왕비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왕가에 대해서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트집 잡을  없는 존재인 고위자릿수 마법사 ‘일리아나’
왕가의 신하이면서 왕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오로지 ‘왕국의 수호’만을 고집하며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왕국 최고의 기사 ‘리오드’
여신의 대변인, 또는 성녀라는 칭호와 함께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아니에스’
영웅들 하나하나가 디아네 왕비의 입장에서는 통제가 되지 않고, 귀찮고, 짜증나고, 눈엣가시의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왕국에서 치워버릴  없는 이유는그들의 명성과 이용가치가 너무나도 높기 때문이다.

“사정이있어  나라에 입국을 하였음에도, 왕국에 저의 입국 사실을 미처 알려드리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소의 가볍고 거친 비속어를 남발하던 아니에스와는 다른, 차분하고 가녀린 인상을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성녀 그 자체.

“어쩔 수 없었겠죠. 하르칸 주교와  일파의 비리 행각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나 되는 고위층 인사가 아무런 사전의 통보도 없이 페르니아스 왕국에 몰래 입국한 사실이 왕국의 입장에서는 조용히 넘어갈  없는 문제였다.
본래엔 일리아나의 느닷없는 텔레포트를 통해서 순식간에 페르닌으로 전이되어 온 것이었지만, 대외적으로 아니에스의 비밀스러운 페르닌 지부의 신전 방문은 하르칸 주교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잠행수사로 일단락이 되었다.

“신전의 인선과 재정비의 일로 바쁘실 텐데, 굳이 대주교께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신 용무를 여쭤 봐도 될까요?”

“하르칸  주교의 비리 행각을 파헤치는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입니다.”

“연장선상…?”

아니에스는 천천히 시선을 옮겨 은현의 앞에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있는 거대한 체구의 남자 바르크를 응시했다.

“자, 그럼 대주교님도 오셨으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꺼림직 한 느낌을 잔뜩 받던 디아네와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느닷없이 대화에 끼어들어 대화의 흐름을 또 다시 붙잡은 은현의 얼굴을 보며 디아네 왕비가 인상을 찡그렸다.

“제가 아까 드렸지 않습니까. 도대체 누가 ‘엘레노아 아르미타스’를 납치하려는 술수를 짰는지, 그리고 어째서 제가 하르칸 전 주교의 아들인 이자를데려왔는지에 대한 말씀을.”

은현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바르크의 몸뚱이를 발로 툭툭 건드리자, 디아네왕비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바르크를 응시했다.

“설마…공녀를 납치한 자들 사이에 하르칸 전주교를 필두로  베스타 신전이 엮여있다?”

“이보게! 어찌 그런 섬뜩한 말을!”

한 가설을 세운 귀족의 중얼거림을 듣고,다른 귀족이 그를 다그쳤다.
자신이 무슨 말을 중얼거렸는지 깨달은 귀족이 화들짝 놀라며 아니에스의 눈치를 살핀다.
자칫 잘못하면 왕국과 성국 사이에 큰 불화가 소지가 생길  있는 발언을 내뱉었다는 것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아예 연관이 없지는 않습니다.”

모든 귀족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렸으면서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중앙에  있는 은현이 내뱉었다.

“그, 그게 무슨!”

“해서 될 말이 있고! 안  말이…!”

“설명해.”

“크으….”

은현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애슈턴의 어깨를 치며 건드리며 설명을 재촉했다.
상처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은현의 경고서린 날이 선 목소리를 떠올린 애슈턴은 그때의 공포를 떠올리고 자신의 추악한 만행들을 모조리 자백했다.
가장 먼저 엘레노아를 납치시키고, 혼란한 틈을 타 정보 길드에 아브로스와 알렉스를  먹이기 위한 조작된 장부를 왕당파벌의 귀족들에게 흘러들어가도록 손을 썼다.
이후 린데발트 자작령에서 엘레노아를 구속시켜둔 채로 미약을 먹이고, 몰락한 영지에 눌러 붙어 살고 있던 건달들에게 집단으로 윤간을 당해 강제로 임신시키도록 했다는 것까지.

“이 개X끼가!”

애슈턴의 자백을 듣고 있던 알렉스가 자신의 여동생이 겪었던 고초를 상상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애슈턴에게 달려들려 했던 알렉스의 행동을 리오드가 재빨리 제지시켰다.

“그만둬라.”

“후작! 놓아주십시오! 제 동생을,아무리 배가 다르더라도, 자신의 여동생의 인생을 망가뜨리려  개자식입니다! 제가 직접…”

“공작이라고 너와 다른 기분일 것 같나?”

“크…으윽!”

알렉스는 이를 갈며 자신과 똑같은 심정일 아브로스를 바라보았다.
아브로스는 가만히 애슈턴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

아무런 말도 없이그저 바라 볼 뿐, 하지만  시선 속에 담겨져 있는 많은 감정들을 알렉스는 읽을 수 있었다.
아브로스의  속에 담겨있는 분노, 배신감, 그리고 실망, 마지막에는 인간으로써 해서는 안 됐을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경멸까지, 고스란히 그 감정들이 담겨져 있는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지금 당장이라도 애슈턴을 자신의 손으로 처벌하고 싶다는 충동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허탈해진 알렉스도 힘을 풀었다.
애슈턴의 자백을 듣고, 인상을찡그리던 귀족들이 대다수 있던것도 마찬가지.
그들 모두가 애슈턴을 비웃음과 경멸의 시선으로 애슈턴을 바라보고 있다.

“자, 대강의 전말은 이해가 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여기서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님이 이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은 바로 ‘린데발트 자작령’에 대한 재조사입니다.”

애슈턴이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듯이 은현이 입을 열었다.

“…재조사?”

“린데발트 자작령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린데발트 자작과  일가가 이교도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하르칸 주교의 통제 아래, 성기사들에 의해서 숙청된 사건이죠. 엄연히 페르니아스 왕국의 영토에 속한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국이 아닌 신전의 주도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

디아네 왕비의 얼굴이 굳어진다.
언뜻 보기에는 타국이나 다름없는 신전 세력의 외부간섭이었지만, 이것은 당시 페르니아스 국왕이 건재했을 때 국왕이 직접 승인한사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로만 알고 있었지, 하르칸 주교와 국왕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승인되었는지까지는 디아네 왕비도 알지 못했다.

“뭐, 당시 국왕님과 하르칸  주교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아들인바르크가 버젓이 린데발트 자작령의폐쇄된 신전을 애슈턴에게 엘레노아 공녀님을 납치 감금할  있는 장소로 제공한 시점에서 신전도 무관하지는 않겠죠. 그렇죠. 대주교님?”

싱긋 웃어 보이며 확인 차, 질문하는 은현의 표정이 너무나도 띠꺼워서 하마터면 아니에스는 이마에 힘줄이 돋을 뻔 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페르니아스의 궁정회의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이유는 저기 쓰러져있는 저 둘을 심문하고, 린데발트 자작령과의 연관관계를 밝혀내고, 바르크의 아버지, 파면당한 하르칸이 과거에 저질렀던 비리를 모조리 밝혀내기 위해서 왕비마마께  사람의 신변의 양도를 간곡히 요청하기 위해서입니다.”

“…….”

디아네 왕비는 아니에스의 정중한 요청을 듣고, 이 요청을 수락해야할지 거절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애슈턴의 배임횡령 건은 순전히 왕국 내부의 문제였으며,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게도, 은현이 떡하니 백금화다발의 주머니를 버나드에게 제시함으로써 아브로스의 목에 목줄을 채우려던 계획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엘레노아의 납치 건의 주범인 애슈턴과 바르크는 바르크와 린데발트 령도 엮여있었기 때문에, 아니에스 쪽의 요청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디아네 왕비가 고민했던 이유는….

‘왜 이렇게 꺼림직 하지?’

이들을 신전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에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엘레노아 공녀는 베스타의 사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엄연히 이 나라의 귀족 여식입니다. 그리 간단히 이들을 넘겨줄 수는….”

“제가 파악한 바로는, 왕비마마께서는 엘레노아 공녀의 납치 건은 방치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

“많이 바쁘신 것 같으니, 이건에 대한 심문은 저희 쪽에서 진행하려 합니다. 왕국의사정과 일정에 맞춰드릴 수 없는 급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리오드, 엘레노아 공녀의 호위 기사 살인 사건과 납치된 공녀의 추적에 대한 수사, 왕국에서 막았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이다.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의 비리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우선으로 하라고 내려왔었지.”

뿌득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은현과 리오드의 대화에 디아네 왕비가 손에 쥐고 있던 부채가 부러지고 열이 받은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본다.
왕비의 노골적인 노기 어린 시선을 받은 리오드는 오히려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에스가 디아네 왕비를 천천히 응시하며, 결정타로 신전의 의사를 발표하여 쐐기를 박았다.

“왕국 쪽에서는 비리를 수사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계신 것 같더군요. 저 둘의 심문은저희 신전 쪽에서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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