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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화 〉160. 왜 당사자들만 모를까(2) (160/730)



〈 160화 〉160. 왜 당사자들만 모를까(2)

“공작! 계속 그렇게 부정만을 하실겁니까!”

“…나와 알렉스는 레니온 헤르샤의 배임횡령에 공모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발뺌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전 소공작이었던 애슈턴 아르미타스가 레니온 헤르샤와 함께 이 나라의 세금을 빼돌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거기에 이 공모자 리스트에는  소공작 뿐만이 아니라, 현 소공작과 공작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지 않습니까!”

“그 증거는 가짜다. 조작됐다.”

“아직도 발뺌을!”

“어찌 이리도…!”

궁정회의 겸, 청문회는 닷새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높은 상석에 위치한디아네 왕비의 입회 아래, 레니온 헤르샤와 함께 배임횡령을 공모했던 핵심 주모자로 누명이 씌워진 아브로스와 알렉스는 닷새 동안 이어진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의 취조 속에서도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닷새 동안 취조를 받으면서 아브로스와 알렉스는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꾸밈없이 성실하게 임했지만, 누명이 씌워진 공모죄에 관해서는 한사코 부정했다.

“왕비마마! 더 이상의 청문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아브로스 공작을 포함한 배임횡령에 공모한 귀족들에게 벌을 내려  사건을 엄중히 다뤄야할 것을 건의합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디아네 왕비에게 건의를 하는  귀족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아브로스가 이끄는 공작파벌 귀족들의 쇠퇴를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아브로스가 후원하고 있던 헬레나 후비와 에반 왕자의 지지기반 세력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디아네 왕비의 아들이 왕세자의 자리에 책봉이 된다면, 그것은 결국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지지했던 왕당파벌 세력의 승리를 뜻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지금 궁정회의에 출석한 귀족들은 모두 왕당파벌의 귀족들이며, 그들은 모두 왕세자가 된 데미안 왕자와 디아네 왕비의 위세를 업고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를 야욕에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디아네 왕비의 입이 열렸을 때.

“그러면 공작가문을 포함한 공모자리스트의 귀족들을….”

콰앙!

“실례합니다아아아아아!”

“뭐냐! 누구야!”

“신성한 궁정회의에서 무슨 소란을…!”

“저, 저 자는…!”

거칠게 문을 걷어차고, 궁정회의장에 난입한 은백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보고 많은 귀족들이 표정을 굳힌다.

“으, 은색 뱀….”

“또 저 자인가!”

“훗.”

청문회의 중심, 마치 처형대에 올라와 있는 것 마냥 덩그러니 놓인 책상과 의자에 앉아있던 아브로스가 은현의 등장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의 등장이 기뻤던 것은 알렉스와 말없이 피식 미소를 지었던 리오드 또한 마찬가지.

“이야~늦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네요?”

“네 놈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누가  자식을 왕성 안으로 들여보냈어!”

“근위기사단! 당장  자를…”

은현의 소란스러운 등장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단숨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당신! 좀 천천히 갈  없어요?!”

“너무 늦었다가는 ‘엘레노아’의 소중한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목이 날아가게 생긴 판국인데요?”

“그, 그건 그렇지만…후우, 후우.”

사실 목이 날아갈 정도의 사안은 아니겠지만, 내뱉는 농담의 수준이 너무나도 질이 떨어지는 것에 엘레노아가 가쁜 숨을 들이쉬며 인상을 찡그렸다.

황급히 은현의 뒤를 쫓아온 엘레노아가 아직도 숨이 찬지, 숨을 고를 여유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리아, 그것들 바닥에 내려놔.”

“명령을 수락합니다!”

에밀리아가 자신의 양쪽 어깨에 한명씩 들쳐 업었던 애슈턴과 바르크를 바닥에 냅다 집어던졌다.
포박된 상태인 두 사람이 거칠게 바닥에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살며시 내려놔야지.”

“그런 명령은 받지 않았습니다.”

에밀리아는 마치 더러운 것을 운반했다는 것처럼 바르크를 들쳐 업었던 어깨를 자신의 손으로 털어냈다.
바르크를 들쳐 업도록 명령했을 때, 두꺼비에 손도 대고 싶지 않다고 명령의 수정을 요구했던 그녀의 요망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은현에게 보이는 작은 반항이었다.
피식 웃음을 지는 은현이 이내 가장 끝자락의 중앙, 상석에 앉아서 은현을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디아네 왕비에게 말을 걸었다.

“왕비님, 아무래도 우리 자주 뵙는  같습니다. 벌써  번째네요?”

“…이곳은 외부인은 출입 금지된 곳입니다. 아무리 엘레노아 공녀의 신분 보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궁정회의에는 허가 없이 참가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의 법이에요. 당장 나가도록….”

“레니온 헤르샤와 배임횡령을 공모했던 주모자를 잡아왔는데요?”

“…….”

은현이 자신의 발로 기절해있는 애슈턴을 툭툭 건드리자, 디아네 왕비의 표정이 더더욱 일그러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이 나라의 귀족도, 백성도 아닙니다. 관계가 없는 부외자는 당장 나가세요! 월터!”

“예! 왕비마마!”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은현은 자신의 얼굴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곧바로 디아네 왕비가 거부할 수 없는 ‘다음 카드’를 제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시면 후회하실 텐….”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왕비님. 심지어  사건에서 부외자도 아닙니다.”

“엥?”

뜬금없이 은현의 말을 끊고 은현과 디아네 왕비의 대화에 아브로스가 난입해왔다.

“지금 뭐라고 했죠. 공작? 저 남자가 부외자가 아니라고요?”

“그렇습니다. 저 남자, 은현은…내 사위가 될 사람입니다.”

“…뭐요?”

얼빵한 목소리를 내는 은현도아브로스의 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
은현이 ‘저 양반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인 건지 모르겠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디아네 여왕이 할 말을 잃으면서 궁정회의 전체에 일순 정적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정적은 어마어마한 반동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었고.

“뭐라고?!”

“엘레노아 공녀가 결혼을?!”

“이게 대체 무슨!”

“‘페르닌의 꽃’이 약혼자가 있었단 말인가?!”

“저 남자는 납치된 내 딸이자, 자신의 약혼자를 구하러 갔으며, 이 사건의 관계자이자, 당사자입니다. 정당하게 저 남자도  청문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습니다.”

담담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폭탄을 터뜨린 아브로스의 돌발행동으로, 회의장 내부가 시끄러워져갔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회의장 안에서, 분위기와 맞지 않게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있는 두 남녀가 조용히 아브로스와 알렉스를 바라본다.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알렉스의 태도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아, 아버지…!?”

어떻게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시킬지 고민하고 있던 엘레노아의 결심이 무색해질 정도로 엘레노아의 표정이 당혹감이 서렸다.
가만히 은현을 응시하고 있는 리오드의 얼굴 또한, 마치 알고 있었다는 표정.
은현이 아브로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은현의 몸이 잔상을 남기며 스르륵 사라지면서, 이형환위의 능력을 선보이며 아브로스의 바로 앞에서 몸을 드러낸다.

“뭣!?”

“저 움직임은 도대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고속의 이동을 두 눈으로 목격한, 월터를 포함한 근위기사단의 경악스러운 얼굴을 짓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충격과 인상을 심어주면서 그 누구도 반응하여 은현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아브로스가 앉아있는 의자 옆으로 다가온 은현이 아브로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십니까?”

“뭐가 말이지?”

“저와 ‘공녀님’의 관계를 허위로 퍼뜨렸지 않습니까. 아무리 저를 이 회의에 참석시키려는 수단이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좋은 수가 아닙니다. 악수이지 않습니까.”

그만큼 은현과 엘레노아의 혼담의 이야기는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백성도 아니며, 심지어 평민의 신분을 가진 남자에게 공작이자신의 딸을 내어준다는 말의 의미는 아르미타스 공작가문 안에서만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외모와 공작가문이라는 처가의 위세, 그녀 자체의 사제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눈독에 들이고 있었던 귀족들은 왕국 안에서도 많이 있다.
심지어 은현과의 결혼이 왕국의 국익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왕가는 물론이고 많은 귀족들이 이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고 혼란에 빠져 소란스러운 상황이 그 증거.
기를 쓰고 은현과 엘레노아의 결혼을 뜯어말릴 것이 틀림이 없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사실, 일리아나가 알면, 저 진짜로 죽어요. 공작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뭐요?”

“이미 마녀에게는 허락을 받아둔 상태니.”

“무슨…? 아.”

- 다치지 말고 살아서 돌아만 와. 그러면 다른 여자를 만들어서 와도 다 용서해줄 테니까.

“설마….”

은현이 일리아나의  말을 떠올린다.
어째서 당사자들만이 모르는 약혼과 결혼이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성립됐는지, 심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후후!]

베르단디가 이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사도의 은백색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이럴 예정이 아니었나?”

“…뭐가 말입니까?”

“네 녀석이 부르는  딸의 호칭이 변경된 걸 깨닫고, 나는 너희들의 관계가 바뀐 줄….”

이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아브로스가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혼란한 회의장 속에서 은현을 노려본다.
은현은 평소 엘레노아를 부를 때는 ‘공녀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친숙하게 대하면서도 지극히 공적인 말투로 대하는 은현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것을 깨닫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변화했음을 직감하고 재빨리 선수를 쳤던 것이었다.
‘공녀님’이라는 호칭이 아닌 ‘엘레노아’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던 작은 변화를, 아브로스는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엘레노아를 부르는 호칭이 또 다시 ‘공녀’로 바뀌어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아브로스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잘못 짚은 건가? 아니면…관계는 바뀌었지만, 설마 손을 대놓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도대체 공작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만 묻겠다. 엘레노아에게는 손을 댔나?”

“……!”

은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떨며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갑작스러운 아브로스의 돌발선언에 당황하지 못하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엘레노아나, 뒤늦게 회의장의 중심, 아브로스 옆으로 다가온 은현을 제지하기 위해 다가오는 크라시르 근위기사대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네.”

상황이 상황이었고, 결국 그녀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수 없었던 은현이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안았다고는 하지만, 이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았기에 은현은 따로 변명하지 않고 긍정의 대답만을 내놓았다.

“후우….”

마지못해 긍정의 답변을 들은 아브로스의  눈이 꿈틀거림과 동시에 그의 양손이 강하게 주먹이 쥐어졌다.
귀족가문의 여식으로써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지 못한 딸, 자신의 딸에 손을 대버린 남자, 두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나 분노는 아니었지만, 막상  사실을 전해들은 아브로스의 마음에는 복잡함이 맴돌며, 얼굴에는 수심을 가득 채웠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은현을 잔뜩 노려보며, 아브로스는 입을 열었다.

“책임지기로 했으면 확실히 져라.”

- 책임이라…꽤나 무거운 단어를 쓰는군.  말, 정말로 책임질  있나?

“…알겠습니다.”

은현은 앞으로 엘레노아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녀를 책임질 결심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결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자각하지 못한 딸의 마음을 눈치 챈 아브로스가 일리아나를 끌어들여 이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 심히 마음에 걸렸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선 리오드가 디아네 왕비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납치된 약혼자를 되찾아온 당사자입니다! 심지어 주모자를 잡아오면서 용감한 모습을 보인 남자! 은현의 궁정회의 출석을 요구합니다!”

리오드의 우렁찬 목소리의 요청이 회의실 안을 울리자, 소란스럽던 귀족들의 어수선한 소리들이  끊기고, 회의장 안의 모든 귀족들이 이 요청의 결정권자나 다름없는 디아네 왕비를 응시했다.
은현 또한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 근위기사들을 응시하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끝나면 할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후후! 아이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구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시작만 해도 은현과 공작 가문의 관계는 좋은 말로도 좋다고는 할  없는 관계였는데,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은현에게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뭐가 재미있는지 은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다른 한손으로 입을 가려 우아한 웃음을 짓고 있는 베르단디를 뒤로하고.
은현은 근위기사대와 디아네 왕비를 응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리아, 그 둘, 이쪽으로 던져.”

“…두꺼비와 접촉을 하기 싫으므로 명령의 수정을…명령을 수락합니다.”

재차 은현의 얼굴을 바라본 에밀리아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애슈턴과 바르크의 옷을 붙잡고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부아악

“…….”

애슈턴이 허공을 날아, 그의 몸이 중앙으로 내던져진 것과는 달리, 바르크는 어마어마한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옷이 찢어져 다시 바닥에 떨어진다.
직접적으로 바르크의 피부와 닿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에밀리아는 눈썹을 모아 경멸하는 시선을 지었다.
끔찍한 오물을 만지는 것만 같은 손동작으로 바르크를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애슈턴이있는 회의장의 중앙에 집어던졌다.

쿠웅

바르크의거구가 바닥에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에 몸을 떤 것도 잠시, 13살 정도 되는 작은 체구의 어린 소녀가 몇 배나 되는 거대한 체구의 바르크를 간단하게 들어 올린 것도 모자라 공을 던져대듯 대하는 광경을 수많은 귀족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력을 통한 신체강화도 보이지 않았는데….”

굉장히 정교하고 작은 수천, 수만 개의 부품들로 이루어진 마도과학의 정수가 집약된 인형, 또는 골렘의 모습은 다른 귀족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다.
은현의 난입부터, 아브로스의 돌발 선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틈을 타, 은현은 회의장의 귀족들과 왕비가 정신을 차리고 주도권을 지킬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왕비는 은현의 난입 허가를한 적이 없지만, 아브로스와 리오드의 지원을 통해서 어느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한 지금이 적기인 것은 맞았다.

“일어나.”

에밀리아에 의해서 던져져,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애슈턴의 멱살을 붙잡고,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는 은현이 흘끗 아브로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가 저지른 죄에대한 반성을 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에 지배되어 복수심을 불태운 아들의 몰골을 보고, 아브로스가 자신의 이빨을 꽉 깨물고 쥐어진  주먹이 바들거리며 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을막 대하는 은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식에 대한 정을 버리지 못하고, 애슈턴을 모질게 처벌하지 못한 결과가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 때문에 딸의 인생이 망가질 뻔했고, 가문 전체가 무너질 뻔한 결과를 초래했음을 자각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은현과 애슈턴에게서 시선을 돌린 아브로스의 얼굴을 본 은현은 그가 결국에는 자신의 아들을 포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선을 돌리며 아예 포기를 했다는 뜻은 은현에게 애슈턴에 대한 처우를 맡기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은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디아네 왕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움켜쥐고 있던 애슈턴의 멱살을 앞으로 집어던지자, 애슈턴의 몸이 휘청거리며 허무하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  입으로 증언해. 네가 했던 모든 짓거리들을.”

“크…윽!”

그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달은 애슈턴이 치욕스러운 눈으로 은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이를 간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은현은 붕대가 감겨져 기초적인 회복마법으로 지혈된 애슈턴의 어깨의 상처를 발로 짓밟았다.

“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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