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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화 〉159. 왜 당사자들만 모를까(1) (159/730)



〈 159화 〉159. 왜 당사자들만 모를까(1)

“당신 정말로…엄청 변태 같은 거 알아요?”

매트리스와 시트, 배게를 모두 새것으로 소환시킨 은현이 엘레노아를 그 위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엘레노아가 갑작스레 은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작은 투정을 부린다.

“엘레노아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잖아요.”

“아까  얼굴을…보여주기 싫었어요. 너무 천박해보였으니까.”

“이제 와서?”

“여자한텐…이런 저런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후우….”

엘레노아가 갑작스레 한숨을 내뱉자, 은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은현의 얼굴을 바라본 엘레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서요. 당신과 결혼을 하기에는…이렇게 육체적으로 이어지는 것보다, 주위의 상황을 납득시키는 게  힘들 것 같아서….”

“그건 그렇죠….”

은현도 엘레노아가 딱히 이성으로써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녀를 거절하려 했던 게 아니다.
은현과 엘레노아 사이가 연인관계로 발전이 되기에는  장애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신분의 차이, 서로의 입장, 주변의 관계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단지 엘레노아가 은현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간미수와 미약의 최음효과로 인해, 그녀의 멘탈이 심각하게 흔들렸던 것이 원인.
은현에 대한 마음을 자각한 것도 원인이지만, 지적이고 책임감이 강한그녀가 공작가문의 여식으로써의 의무와 책임을 던져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정도로, 그만큼 그녀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엘레노아가 현재 가장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는 문제는 다름 아닌, 현재 은현의 연인인 ‘일리아나 케니퍼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였다.
자칫 잘못하면 도둑고양이년 취급을 받고 자신의 전신이 불태워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한 생각도 든다.
엘레노아는 그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잔뜩 끌어안은 은현의 상체에 얼굴을 묻었다.

“마녀님도, 아버지도 오라버니도, 이 나라의 귀족들도 모두 설득하고, 마녀님과 당신 사이에 나도 들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 책임져야 해요?”

“…알겠습니다.”

공작가문의여식이자, 차기 성녀로 간접적으로 신의 간택을 받은 ‘페르닌의 꽃’은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채로, 새로운 성벽을 일깨워 타락해버린 순간이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일리아나가 있으면서, 자신의 여신인 베르단디를 안았던 것과는 명백히 경우가 다르다.
집에 돌아간다면, 일리아나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은현은 고민에 빠졌고, 체력이 방전된 듯 그대로 잠들어버린 엘레노아의 팔을 풀고, 침대에 눕혔다.

[흠, 흠.]

“…여신님?”

갑작스레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그리운 여성의 목소리에 은현이 깜짝 놀라며 베르단디를 바라보았다.
멋쩍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은현이 순간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엘레노아를 한 번 바라보고, 베르단디에게 물었다.

“혹시…다 보셨어요?”

[후우, 맞다.]

“…….”

한숨을 내쉬며 긍정하는 베르단디의 반응에 은현이 할 말을 잃어버린다.

[내 젖을 맛있게 빨았던 귀여운 아이가, 나나 마녀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를 안는다니, 뭔가 복잡한 심경이다.]

베르단디는 은현의 행동에대해서 과하게 간섭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가슴 속에 품는 복잡한 감정은 어쩔  없는 문제다.
은현은 이내 쓴웃음을 짓고는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신계에 무슨 일이 생기셨나요? 굉장히 오랜만에 내려오셨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내려오시지 못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그, 그건….]

“여신님?”

허를 찔린 표정을 지으며 은현의 시선을 피하는 베르단디의 표정이 이상하다.
묘하게 여신의 표정이 붉은 것을 확인하고 은현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나도 아이가 하계로 내려가고, 곧바로 하계를따라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마녀 아이와 그것을 시작하니까…내려갈 수가 없게 되지 않았느냐.]

“아니, 그래도 그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

이후 성검을 복원시키고, 일리아나와의 결혼식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어째서 베르단디는 하계를 내려오지 않았을까.

[그…이후로 나도 아이와 마녀 아이의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나도 나 자신을 위로하다보니….]

“예?”

[그러다가 아이와 했던 기억이 새삼 부끄러워져서 마음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

뭘까, 이 감성은.
민망한 듯 얼굴을 돌리는 자신의 여신은 신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었던 모성애가 가득한 여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첫날밤을 치르고 난 다음날 남편을 바라보는 새댁 같은 반응이 아닌가.
그런 여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게 은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우, 웃지 말거라! 아?]

자연스레 베르단디의 뺨에 은현이 손을 가져다대며 그녀를 만지자, 베르단디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아이야…? 어째서 아이가 나를 만질  있는 것이냐?]

언제나 일방통행에 가까운 불합리한 섭리에 얽매여 베르단디 쪽에서만 은현을 만질  있었던 규칙을 깨고,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은현의 행동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여신님. 잊으셨어요? 저 이제 신력 가지고 있잖아요.”

[아….]

언제나 베르단디가 제공해주는 신력을 사용하고 있던 은현이었지만, 신들이 무구인 ‘불카노스의 망치’와 ‘아이기스’를 제공받은 은현은 스스로의 영혼 속에 신력을 만들어낼  있는 엄연한 ‘반신(半神)’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카테고리에 속해있으면서, 신의 영역에 손가락을 집어넣게 된 지금의 은현은 격의 차이는 행성과 작은 돌만큼의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엄연히 베르단디와 동격의 존재였다.

[아, 아이가 하계에서 나를 만질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다니….]

“저도 굉장히 기뻐요.”

[혹시…이곳에서도 나와 아이는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냐?]

묘한 기대감이 섞인 여신의 질문에 은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는데요….”

◆ ◆ ◆

[결국 베스타의 아이에게도 손을 대버린 것이냐….]

“어쩔 수 없었어요….”

[위에서 보고 있었으니, 아이의 상황은 알고 있었다. 단지…후우, 이건 언제 한  베스타와 상의를 해보아야할 것 같구나.]

‘베스타님…?’

엘레노아는 자신의 머릿속을 직접적으로 들어와 의사가 전달되는 기묘한 감각과, 밤새 자신의 몸속을 탐했던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희미해졌던 의식을 각성시켰다.

“아….”

갑작스레 눈을  엘레노아가 작게 탄식하며 누워있는 채로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으윽….”

이내 몸을 일으키려던 엘레노아가 자신의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린다.

‘아직도 뱃속에 그 사람의 물건이 가득 차있는 느낌이야….’

그리고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극심한 통증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미약 때문에 증폭된 쾌감이 고통을 덮어씌웠을 뿐이지,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관계를 맺으면서 생긴 상처와 몸 안의 통증은 당연히 남아있었으니, 미약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다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파….”

“많이 아파요? 못 움직이겠어요?”

“좀 버텨보고 도저히 못 움직이겠으면 신성마법으로 회복시킬게요. 곧장 페르닌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아버지랑 오라버니가…읏!”

“너무 무리하지 마요. 제가 업고서 달려도 되니까.”

“고마워요. 그런데….”

엘레노아의 시선이 은현의 뒤를 넘어가 허공으로 향한다.

[음?]

“엥?”

그녀의 시선이 무엇을,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를 깨달은 은현이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에 휩싸였다.
멍하니 허공에 떠있는 존재를 응시하고 있는 엘레노아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 경악하는 베르단디나,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제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죠?”

“이건….”

어떻게  것인지영문을 몰라, 은현이 베르단디를 흘끗 바라본다.
베르단디는 엘레노아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녀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통해서 원인을 알아차렸다.

[…아이가 원인이구나.]

“제가요?”

[아까 전 아이가 직접 설명하지 않았느냐,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해서.]

“아, 그럼 설마….”

[아이의 추측이 맞다. 아무래도…아이가 저 귀족 아이의 뱃속에 사정을 하면서, 그 안에 섞여 있던 나의 신력이 흘러들어간  같구나.]

신계에서 은현이 마셨던 베르단디의 모유가 다량의 신력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은현의 정액 속에도 그가 보유하고 있던 신력이 소량으로 포함되고 있었던 것이 결정적인 원인.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은현이 중얼거린다.

“뭐 이런 경우가….”

[애초에 아이 같은 케이스가 매우 드문 경우이니, 처음 보이는 현상도 어찌 생각해보면 새로운 발견과도 같구나. 후후.]

베르단디가 엘레노아의 앞에 날아와 그녀의 뺨에 여신의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엘레노아의 뺨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투과되는 자신의 손을 확인한 베르단디가 이해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미약한 신력만이 흘러들어가 그저 나를 인식할  있는 수준일 뿐이구나. 하지만…이건 베스타가 조금 불만을 가질수도 있겠어.]

자신이 사도 후보로 점찍어둔 아이의 몸속에 다른 신의 신력이 깃들어 있다니, 베스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자신 쪽에서 먼저 사과를해두는 게 도리다.

“베스타님…?”

사제인 자신이 모시는 신을 ‘님’자도 없이, 이름만으로 부르는 베르단디의 말투에 엘레노아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내 흘끔 은현을 바라보고.

“혹시 이분은…?”

“네. 제가 모시는 여신님이에요.”

“맙소사….”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은현의 반응에, 엘레노아가 표정을 굳혔다.
처음부터 범상치 않고, ‘신’이라는 존재가 죽음 속에서 은현을 끌어올려 되살렸다는 이야기는 쉽사리 믿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은현의 말이었기에 믿었으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대체 어떤 남자와 엮이게 된 것인지를 재차 실감하며 절망어린 표정을 띄웠다.

“엘레노아?  그러세요?”

“저는…저는 당신을 가지기 위해서 신님도 설득을 해야 하는 건가요…?”

[후후, 귀족 아이야. 그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치를 잔뜩 보는 엘레노아의 모습에 베르단디가 훈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아이에게 해가 되는 방향만 아니라면, 아이의 의사를 존중한다.  아이가 귀족 아이를 안은 것은 내 아이의 선택이었으니,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하니 눈치   없다.]

“가, 감사합니다….”

 짐을 덜었다는 듯 엘레노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귀족 아이는 그 마녀 아이를 설득하는 일이 있지 않느냐. 괜히 나까지 나서서 짐을 지울 생각은 없다.]

“으….”

일리나아의 존재가 언급되자, 엘레노아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떨었다.

“자세한 상황은 나중에 정리하죠. 일단은 어서 야영장을 정리하고, 페르닌으로 복귀하는 걸 우선으로 두겠습니다. 엘레노아, 몸 움직일 수 있겠어요?”

“좀 힘들긴 하지만…치유의 기도로 몸을 회복시킬게요.”

곧장 신성력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킨 엘레노아가 자신이 발현시킨 신성 마법의 위용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위계가…조금이지만 더 상승했어…. 도대체 왜…?”

간단한 치유의 기도였을 뿐인데, 평상시와는 다르게,  상태를 단번에 쾌적하게 회복시키는 기적의 변화를 엘레노아가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명백히 은현의 정액 속에 있었던 극소량의 신력을 흡수한 것이원인이라고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엘레노아는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현재 알몸상태에 가까운 그녀가 입을 만한 비슷한 디자인의 사제복을 만들어 소환한 은현이 엘레노아에게 옷을 건내고, 곧장 텐트를 나갔다.

“마스터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텐트 앞에서 계속 주위를 경계하며 밤새 대기하고 있던 인형소녀는 자신의 주인이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의 카드를 꺼냈다.

“뭔데.”

“본 개체의 데이터에는 ‘배란’, ‘수정’, ‘착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무엇을 뜻하는 용어인지, 자세한 설명을….”

“집에 가서 알려줄게. 지금 당장 인벤토리에서 ‘레토나’ 꺼내.”

“…명령을 수락합니다.”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에밀리아는 주인인 은현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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