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151. 가문의 위기(4)
촤아악!
강한 물세례가 얼굴을 강타하면서, 엘레노아는 조금씩 자신의 의식을 각성시켰다.
“으윽….”
인상을 찡그리면서 몸을 조금씩 뒤척이더니 이내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서서히 그녀의 눈이 떠졌다.
“여기는…신전?”
평범한 신전은 아니었다.
신전의 건물 안에는 예배를 하러 오는 많은 수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다란 예배용 의자들 수십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군데군데가 낙후되고 먼지가 자욱한 신전의 내부의 모습은 이제는 운영되지 않는 신전인 것 같았다.
“아가씨, 정신이 들어?”
한 손에 바가지를 들고 있는 추레한 몰골의 남자가 낄낄거리며 엘레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은 몇 일 동안 씻지 못했는지, 꾀죄죄하고, 낡은 바지나 민소매도 세탁을 하지 못했는지 누런 얼룩과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전형적인 슬럼가의 건달과도 같은 인상이었지만, 아직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엘레노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정신을 차린 엘레노아가 두 눈을 뜨고 몸을 움직여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려했지만.
“아….”
양 손목을 수갑으로 채워져 구속당한 자신의 손이 쇠사슬에 의해 허공에 고정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멍하니 고개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양손을 구속시킨 쇠사슬을 바라보자, 쇠사슬의 끝자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베스타상을 확인한다.
자신이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이 신의 상징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경악하는 것도 잠시, 조금씩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상기시켰다.
엘레노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레노…. 레노와 마르탄은?’
늦은 밤, 자신을 습격한 암살자들의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지키며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두 호위 기사들의 존재를 떠올린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두 호위 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와…저와 함께 있던 기사 두 분은 어디 있죠?”
“나야 모르지.”
엘레노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던 건달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뭐, 그렇게노려보지 말라고. 우리는 여기 있다가 시간이 되면, 아가씨를 깨우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니까. 이외엔 아무것도 몰라. 질문한다고 아가씨의 물음에 대답해줄 수도 없어.”
“여긴 어디죠?”
“린데발트.”
“린데…발트라고요…?”
“응? 아가씨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
“린데발트 자작령은 2년 전에 몰락했던 걸로 아는데….”
“오?”
엘레노아의 표정을 본 건달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일반적으로 귀족가의 여식들은 아이테르에서 교양의 일환으로 기본적인 역사나 상식을 배우면서 귀족으로써의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성장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에 나서서 뛰어드는 여성귀족의 경우 대표적으로는 디아네 왕비나, 테레지아 같은 특이한 케이스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였다.
국가 내부의 정세나 사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는 여성은 매우 드문 편이지만, 엘레노아는 신전의 사제이면서 공작가문의 여식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정과 애슈턴의 수작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특히나 린데발트 자작령은2년 전, 신전에서 성기사와 사제들을 파견하여 이교도의 앞잡이라는 린데발트 자작의 일가를 모조리 체포하여 참수했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장소이기도 했다.
다른 지역이라면 몰라도, 사제로서 그 당시의 사건에 매우 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엘레노아가 린데발트라는 지명을 모를 리가 없었다.
‘린데발트 자작령…. 그것보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엘레노아는 자신이 정신을 잃은 것이 길어봐야 하루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르닌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마차를 타고 오더라도, 닷새는 걸릴 정도로 터무니없이 긴 거리를 어떻게 반나절에서 하루 사이에 도달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째서 굳이 린데발트의 폐쇄된 신전으로 자신을 옮겨다 놓은 것인지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들었다.
“오오, 안 그래도 깨어났다고 보고하려 했는데, 알아서 와주시네.”
“……?”
콰앙!
신전의 입구 쪽을 응시한 건달의 시선을 따라 엘레노아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낙후되어 제대로된 문의 기능도 상실한 낡아빠진 나무문을 걷어차고, 한 남자가 중앙의 베스타상에 구속되어 있는 엘레노아의 모습을 보고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엘레노아도 신전에 모습을 드러내며, 등장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
“오랜만이군.”
“…애슈턴 오라버니.”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내 동생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애슈턴은 에린의 몸에 빙의했던 구미호에게 모든 마력을 빨리면서 비쩍 마른 미이라의 상태는 매우 호전된 듯 보였지만, 아직도 핼쑥한 얼굴이나 수척한 몸은 그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하였음을 보여주고있었다.
“어째서 절 납치하신 거죠?”
“아버지가 날 버렸으니까.”
“아버지를 실망시키신 건 오라버니세요.”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말랬지!”
애슈턴은 마치 분노조절장애라도 온 것 마냥 엘레노아에게 버럭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실망을 시켜드렸다고?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나는 공작가문의 후계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성검을 부활시키는데 필요한 자본이 턱없이 부족해서 골머리를 썩으시던 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위해서 자금을 융통했을 뿐이야! 그런데 그것의 어디에! 도대체 나의 무엇에 실망을 했다는 거야!”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라는 걸 모르시겠나요?! 오라버니가 융통하려했던 그 자금은 이 나라의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려서 노력으로 일궈낸 세금들이었어요! 어떻게 그 일부를 가로챌 수가 있는 거죠?!”
“백성들이 귀족들에게 돈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들은 평민이고, 나는 이 나라의 2인자인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소공작이었으니까!”
안 된다. 틀렸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미 애슈턴의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던 선민사상은 뽑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은 상태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같은 집안에서,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애슈턴은 알렉스와 엘레노아와는 달리, 지나치게 뒤틀린 상태로 성장했다.
동일한 조건 속에서 오히려 장남이자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던 애슈턴이 더 많은 특혜와 관심을 받았으면받았지, 절대로 대우 면에서 알렉스와 엘레노아 남매가 우대를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남자로 성장을 한 것일까.
도대체 어째서 애슈턴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엘레노아를 납치할 정도로 과격한 행동을 감행했던 것일까.
엘레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평민을 처리하려 했던 것도 그래! 그깟 평민이 뭐가 대수라고! 게다가 그 평민은 모종의 악마와 같은 술수로 내 몸 속의 모든 마력을 빼앗아간 가증스러운 계집이야! 어떻게 그 사건 이후 나를 버리고 그 계집을 옹호하는 것도 모자라, 알렉스 자식을 소공작의 자리에 앉힐 수가 있는 거지!”
에린을 납치하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면서 자신과 가녀린 소녀 사이에 존재한 신분과 신체의 격차를 찍어 누르는 폭거를 저질렀음에도, 애슈턴은 일말의 양심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말도 안 되는 사상과 사고방식에는 이성적인 논리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폭거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애슈턴을 바라보는 엘레노아는 포기하지 않고 애슈턴을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저를 풀어주고 아버지께 용서를 빌어요. 이건 저나 오라버니나, 아버지께도 모두에게 좋은 해결 방법이아니에요.”
“흥, 이미 늦었어.”
“뭐…라고요?”
“이미 나와 거래를 진행했었던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해두었지. 나를 포함한 공작파 귀족들이 함께 공모했던 배임횡령의 사실이 왕당파의 귀족들에게 흘러가도록 말이지.”
“그게 무슨….”
“게다가 나 뿐 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알렉스도 함께 공모했다는 ‘사실’까지 섞어서 말이야.”
“그게…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엘레노아가 양팔이 허공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몸을 들썩이며 애슈턴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지. 내 잘못도 함께 책임을 져주셔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조롱하는 애슈턴의 표정을 본 엘레노아가 마침내 설득을 포기하고 분개하기 시작했다.
“당신이…당신이 어떻게 아버지에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아버지야말로 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됐지! 이건 가문에 대한 나의 복수야!날 버린 대가로 모두 몰락해버리라고! 하하하하하하!”
엘레노아의 얼굴을 본 애슈턴이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마침내 폭소를 터뜨렸다.
“당신이 어떻게 아버지한테….”
엘레노아의 얼굴은 당혹, 분노, 끝에는 냉정을 찾기 시작한다.
“…날 풀어줘.”
엘레노아의 얼굴에는 더 이상 애슈턴에 대한존중의의미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오라버니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존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애슈턴은 개의치 않았다.
“크큭, 내가 왜?”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엘레노아는 이 말을 입 밖에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엘레노아는 다른 수단이 없으면서 절박한 상황.
“아, 그래도 너를 아버지께 보내드릴 예정이긴 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엘레노아의 표정이 신전 안으로 들어오는 수십 명의 남자들을 보고 급격하게 굳기 시작한다.
“흐흐흐.”
“굉장히 고운데?”
“얼마만의 여자냐.”
“설마….”
상상도 하기 싫은 가능성을 떠올린 와중에, 남자들의 사이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경멸의 표정을 떠올렸다.
“바르크 사제….”
하르칸 주교의 아들, 바르크 중위 사제의 모습을 확인한 엘레노아는 급격히 전신에 오슬오슬 퍼져오는 두려움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
“흐, 흐흐…. 에, 엘레노아…. 드, 드디어 너를 내가….”
겉으로 보기엔 인자한 사제의 표본과도 같았던 하르칸 주교의 인상과는 달리, 바르크는 거대한 체구와 불룩 튀어나와 축 늘어지다 못해 접히기까지 하는 뱃살,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서 배출되는 땀 냄새를 풀풀 풍기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야 하는 성스러운 ‘주교의 아들’보다는 탐욕적인 개구리와도 같은 모습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이 구속되어 있는 엘레노아의 모습을 훑어본 바르크의 아래, 바지가 불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으….”
“지금부터 너는 이 신전에 와있는 20명의 남자들을 모두 상대해야할 거야. 그리고 약 반년 뒤즈음에 누구의 씨인지도 모른 채로 임신해서 불룩해진 배를 아버지와 알렉스에게 보여주는 거지. 정말로 재미있겠지?”
“안 돼….”
“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 일 테니 내가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품에서 꺼낸 포션을 꺼낸 애슈턴은 그대로 마개를 연 뒤 강제로 엘레노아의 턱을 붙잡아 입을 벌리고는 포션의 입구를 그녀의 입속에 쑤셔 넣었다.
“읍?! 우으읍?!”
순식간에 턱을 빼앗겨 병 속에서 있던 액체가 입 안을 가득 채웠고,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엘레노아가 알 수 없는 포션을 꿀꺽 꿀꺽 삼켰다.
“푸하아! 나한테 대체 뭘 먹인…읏?!”
“사창가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미약인데. 바로 효과가 오는 것 같군?”
“하…하으읏….”
순식간에 전신이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뱃속이 욱신거리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지의 감각에 엘레노아가 조금씩 몸을 움찔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인간…쓰레기…!”
굴욕감과 분노가 찬 얼굴로 엘레노아가 애슈턴을 노려보았지만, 애슈턴은 오히려 그런 그녀의 반응에서 통쾌함과 희열을 느끼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엘레노아의 독설에 전혀 개의치 않던 애슈턴은 가만히 엘레노아의 사제복의 가슴 쪽에 손을 가져다 댔고, 옷감을 움켜쥐고는 거칠게잡아 뜯는다.
부아악
“꺄악!”
사제복이 뜯겨지면서, 속옷의 브래지어까지 우악스럽게 뜯겨져 나간다.
엘레노아의 양쪽 유방이 너무나도 허무하고 무방비하게 노출이 됐다.
“으윽!”
황급히 자신의 가슴을 가리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녀의 양손은 수갑이 채워져 쇠사슬로 허공에 고정이 되어 있는 상태.
“자! 밥상은 모두 차려줬다! 모두 맛있게 먹도록!”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영한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그의 허가를 기다리며 굶주리고 있었던 남자들이 발정난 개 마냥 침을 흘리며 엘레노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지…마….”
“으흐흐흐!”
“안 돼….”
“피부가 진짜 곱네.”
“싫어….”
“내, 내가 가장 먼저야!”
다른 남자들을 밀치고 엘레노아의 앞에 바르크가 섰다.
“크하하하! 장관이군! 장관이야!”
자신의 배다른 여동생이 범해지는 광경을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던 애슈턴이 폭소하기 시작한다.
“흐, 흐흐! 이, 이게 엘레노아의 젖꼭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고 그 누구도 핥아본 적이 없었던 그녀의 유두에 두꺼비 같은 남자의 혓바닥이 닿으려는 순간.
쨍그랑!
높은 위치에 있는창문이 깨지면서, 두 존재가 난입하여 아래로 떨어진다.
“뭐, 뭐야!”
높은 위치에 있는 창문이 깨지면서, 검은 색조의 코트를 입고 있는 한 남자와 어린 소녀가 바닥에 착지했다.
검은 색조의 코트와 달리,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백은발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적색의 시선을 받은 남자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뭐야, 저 새끼는?’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애슈턴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백은발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네, 네놈은!”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자신이 이 꼴이 된 원흉이 저 남자가 상황에 난입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을 수 없었던 애슈턴이 백은발의 남자를 증오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면서, 은현은 무심한 시선으로 대꾸하고는 엘레노아의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최대한 표정에 드러나지 않으려 했지만 은현이 보였던 표정은 명백한 동요의 표정이었다.
“리아, 계획을 수정한다.”
“수정 내용의 갱신을 요구합니다.”
“저 새끼랑 저 새끼 빼고.”
정확하게 애슈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 다음에는 바르크를 가리킨 뒤.
“모조리 쓸어버려.”
“명령을 수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