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47. 성검 복원(3)
“…….”
“왜 그러세요?”
복원작업이 끝나고, 은현이 모루 위에 있는 성검을 가만히 응시하고만 있자, 멀찍이서 성역의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엘레노아가 작업이 끝난 은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
무언가 잔뜩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성검을 노려보기만 하는 은현은 엘레노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
그런 은현의 반응이 이상했는지 그가 응시하고 있던 성검에게로 자연스레 엘레노아의 시선이 옮겨진다.
“이 검에 뭔가 문제가 있나요?”
“문제는 있지만…공녀님. 이 검 손잡이 한 번 잡아보시겠어요?”
“네? 그게 무슨….”
“위험한 거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알겠어요.”
엘레노아는 순순히 은현의 말을 따르며 성검의 손잡이를 자신의 가녀린 손으로 움켜잡았고, 이제 됐냐는 표정을 지으며은현의 표정을 살핀다.
그녀의 행동을 본 은현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지는 것이 마치 다 키워놓았는데 자신을 배신한 괘씸한 자식새끼를 보는 표정이다.
“왜 그래요? 내가 성검을 만진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자기가 만지라고 해놓고?
엘레노아의 입장에서는 은현의 반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접 보시죠.”
엘레노아의 손을 떼고, 곧바로 은현이 성검에 다가가 손잡이를 만지려 손을 뻗었지만.
우우웅
“……?”
엘레노아는 방금 검이 스스로 움직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은현이 다시 한 번 손을 움직여 손잡이를쥐려하는 움직임을 성검은 명백히 스스로의 의사를 가지고 피하고 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자신의 손길에는 성검이 저항하지 않았던 걸까,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정말 싫은 상상을 입에 담고 만다.
“설마 성검의 주인이….”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공녀님은 성검의 주인이 아니에요. 단지 일반인이 검을 만져도 이 검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뿐입니다. 단지…이렇게 접촉거부의의사를 표시하는 케이스가 정말로 드문 것뿐이죠.”
“성검은 악인의 접촉을 거부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역시 당신은 악인에업신여겨지는 걸 좋아하는 변태였던 건가요?”
“갑자기 왜 저한테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 성검이 저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자신의 신성력을 받아먹고 복원된 성검이 자신을 거부한다니.
은현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상황이었다.
“일단은 알렉스를 깨워서…?”
그리고 뒤를 돌아본 은현은 대장간의 입구에 마련된 의자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있는 일행들을 보고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지금 시간이 몇 시죠?”
“새벽이에요.”
“내가 몇 시간 동안 작업한 건지 아십니까?”
망치질에 열중했던 은현은 어느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복원 작업에 몰두해있었다.
“15시간이요. 자각이 없으셨던 건가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던 탓에….”
“…….”
엘레노아는 뺨을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을 보이는 은현을 질린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한숨도 자지 않고, 묵묵히 망치로 성검을 단련시키는 은현의 모습은 끈기와 노력을 넘어서 과도한 집착과 광기의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작업이 끝난 그의 몸은 엉망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땀의 배출로 전신이 홀딱 젖어 수분을 쥐어 짜낸 육체는 비쩍 말라있다.
아무리 성역화의 결계를 통해서 화상을 치료하고 육체의 손상을 보존시키고 있었다 하더라도, 신체와 정신에 쌓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피로는 해소시킬 수 없는 문제였다.
“오라버니는 제가 불러와서 성검을 옮기도록 할게요. 당신은 일단….”
엘레노아는 작업하던 모루에서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 놓아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를 담았던 접시의 내용물이 비어있는 것을 바라보고, 왠지 모를 기쁜 감정을 억지로 숨겼다.
“좀 쉬세요. 꼴이 말이 아니에요.”
“하, 그래야겠네요.”
은현도 동의하는 듯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그의 눈가에는 피로로 찌들어있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한 몰골이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온 것일까, 엘레노아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으응…끝났어?”
때마침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킨 일리아나가 망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며 은현에게 물었다.
“어, 끝났어.”
“흐아암…. 도대체 몇 시간 동안 두들긴 거야?”
“15시간이래.”
“돌았어. 진짜…? 에휴.”
한숨을 쉰 일리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는 은현의 몸을 부축했다.
“공녀님. 이 상자 안에 성검의 칼집이 들어있습니다. 아마 알렉스라면 주인으로 인정받지 않았어도 검을 만질 수는 있겠죠. 그럼 뒤처리는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곧바로 오라버니를 깨워서 성검을 옮기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은현은 일리아나에게 부축 받은 상태로 엘레노아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야, 똑바로 안 걸어?”
“미안, 솔직히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 일단은 사람들부터 깨우자, 이곳에서 자게 둘 수는 없잖아.”
쓰게 웃으면서 은현은 일리아나의부축을 받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리오드는 테레지아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이미 위로 올라간 뒤였다.
일리아나와 은현, 엘레노아는 아니에스와 아브로스, 알렉스의 세 사람을 각자 한 명씩 맡아 그들을 잠에서 깨웠다.
“공작님. 끝났습니다.”
“으음…. 드디어 끝난 건가?”
아브로스는 은현의 목소리만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의식을 각성시켰다.
“복원은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나머지는…성검이 누구를 자신의 주인으로 판별하느냐가 관건이겠죠. 그럼 저는 이만…먼저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피곤해서요.”
“그렇군. 너에게는 많은 빚을 졌다. 감사를 전하지.”
“별 말씀을 다 인생 좀 편하게 살자고 이해가 일치해서 도와드린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아브로스는 은현의 말에 무언가를 대꾸하려했지만, 이내 말을 멈추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복원하고 남은 오리하르콘의 양이 좀 되는데, 이건 제 쪽에서 만들고 싶은 물건이 있습니다. 사용해도 될까요?”
“애초에 네 녀석이 준 돈으로 산 금속이었다. 성검이 부활된 지금, 그것을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웃긴상황이지.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쿨하게 많은 양의 오리하르콘을 포기하는 아브로스의 태도에 은현은 피식 미소 지었다.
애초부터 은현이 건 내준 백금화로 구매한 오리하르콘이었기에, 아브로스는 성검을 복원하고 남은 금속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럼저는 이만.”
“알았다.”
“와, 이 X끼…, 진짜로 15시간 동안 망치질만 했네?”
일리아나에 의해서 잠에서 깬 아니에스는 모루위에서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성스러운 기운을 발산시키고 있는 성검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어코 성공을 시켰다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고생했다. 공녀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저보다는….”
엘레노아는 아니에스와 함께 몇 시간 씩 교대를 해가면서 정기적으로 신성력을 결계 속에 주입시킨 것 밖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는 달리 교대도 없이 쉴 새 없이 망치를 두들긴은현에게 고생했다는 이야기를들어봤자, 곤란할 뿐이었다.
은현은 그렇게 엘레노아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대장간을 나갔다.
자연스레 반대쪽을 부축해주기 위해, 아니에스가 은현의 한쪽 팔을 어깨에 두르려 했지만, 은현은 아니에스의호의를 사양했다.
“괜찮아. 넌 너무 작아서 오히려 부축을 받기가 더 불편해.”
“돌았냐? 호의를 보내주려고 해도 말을 그딴 식으로 밖에 안하네.아, 안 해, 안 해.”
인상을 찡그린 아니에스가 자신의 콤플렉스인 작은 신장을 언급하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성을 냈다.
그 광경을 본 일리아나가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었다.
“아, 있잖아.현아.”
“응?”
“나 너한테 요리 좀 배우고 싶어.”
일리아나의 말을들은 은현이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고,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푸흡!”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은 듯 은현이 일리아나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의 반응을 본 아니에스가 웃음을 터뜨리자, 일리아나가 매서운 표정으로 아니에스를 째려봤다.
“뭐가 웃겨?”
“아니, 푸흡…얘, 표정이 아까 전의 리오드랑 똑같은 표정이잖아! 푸하하하!”
“…….”
“리오드가?”
“현아. 너도 그렇게생각해?”
“어?”
“내가 요리를 하는 게 그렇게 안 어울려?”
“아니, 안 어울린다기보다…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거야?”
은현이 없을 동안, 20년 동안 혼자 살면서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칼 한 번 잡아보지 않은 여자가 일리아나였으며, 그녀에게 음식은 그저 에너지의 섭취의 일환이었을 뿐, 스스로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느끼는 즐거움은 당연히 느끼지만,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가 노력을 하거나 무언가를 행동하는 것을 더 귀찮게 여기던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너한테는 말해주지 않을 거야.”
“어라아? 일리아나가 꽤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인데?”
“시, 시끄러워! 현아, 빨리 올라가자.”
자꾸만 옆에 들러붙어서 일리아나에게 킥킥대며 추임새를 넣고는 그녀를 놀리는 아니에스의 행동도 매우 신경이 쓰였다.
은현은 아니에스에게 자신이 성검의 복원 작업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아니에스는 은현의 질문에 끝까지 대답해주지 않고 킥킥거리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찾았다는 듯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일리아나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도착한 은현은 자신의 개인 방에 마련해둔 샤워실에 들어가 땀에 절어 있는 전신을 씻어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침하고 점심만 어떻게 알아서 해결해주라. 난 조금만잘게.”
“알았어. 잘 자.”
날 밤을 그대로 지새운 은현에게는 이제야 잘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지금은 잠에서 슬슬 깨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이었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일리아나는 은현의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는 곧장 방을 나왔다.
“그 녀석은 자러 간 건가?”
“응? 응.”
방을 나오고 거실로 나온 일리아나는 리오드와 아브로스, 알렉스의 남자 셋이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광경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님.”
“응?”
“한 가지, 마녀님에게 상담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흐음? 굳이 나한테?”
“예.”
진중한 알렉스의 표정을 보고, 흘끗 리오드와 아브로스에게로 시선을 옮긴 일리아나는 테이블에 형성된 진지한 분위기를 읽어나갔다.
자신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양 팔짱을 끼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리오드나, 직접적으로 용무가 있어 보이는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두 부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자, 일리아나는 대강의 어떤 용무인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대강 어떤 일인지는 짐작이 가네.”
◆ ◆ ◆
아르키스 대미궁의 주택에서 ‘성검의 복원’이 이루어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성검이 복원된 이후, 미궁에서 하룻밤의 휴식을 마치고 일행들은 곧장 페르닌으로 복귀했으며,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수도의일상이 지속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은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브로스와 알렉스는 원래라면 복원된 성검을 곧바로 2왕자인 에반 왕자에게 헌상하여 왕세자의 책봉에서 유리한 입지와 지지기반을 다질 생각이었지만, ‘성검이 자신의 주인으로 에반 왕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이 문제를 고민하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이었다.
엘레노아는 최근, 매일 페르닌의 베스타 신전을 들러, 밤늦게까지 베스타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보내어 마음을 수양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감사했습니다.”
“사제님도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신전 사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의례적인 기도를 한 엘레노아는 그대로 신전을 빠져나와 두 명의 호위와 함께 밤길을 걸었다.
“엘레노아님. 무언가 고민이있으십니까?”
“…그래 보여?”
“아까부터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표정이 잔뜩 굳어계십니다.”
“…….”
호위인 레노의 지적에 엘레노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었다.
이내 생각을 마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사제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더 빨리…성장을 말씀이십니까?”
“응.”
아니에스와 자신의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격차를 본 이후부터, 엘레노아는 마음속에 생기는 답답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베스타 여신이 다른 사제들도 아니고, 다름 아닌 자신을 아니에스의 후계로 지목된 것이 오히려 엘레노아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자신을 흑마법사에게서 구해내고, 자신의 오라비를 구출해주는 원정을 승낙해주고, 자신의 원치 않던 정략혼의 이야기를 무마시켜주었던 남자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제는 그 사람에게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지만, 엘레노아 자신의 성장은 생각만큼 그렇게순조롭게 이루어지지않았다.
“하지만 엘레노아님은…이미 다른 사제들과는 달리 매우 빠른 성장가도의 위에 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론 안 돼.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지금의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을 이으려는 순간.
“……! 엘레노아님!”
카앙!
그녀의 팔을 향해 날아오는 비수를 건틀렛으로 쳐낸 뒤, 레노와 다른 호위기사가 양쪽으로 엘레노아를 감쌌고, 언제 어디서든 날아오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검을 뽑았다.
“이건….”
레노가 쳐내어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멍하니 응시한 엘레노아는 건물 위에서 올라와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그림자들을 올려다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습격이라고…?”
아무리 어둑해진 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지 않는다지만, 수도의 내부의 대로 한복판에서 대놓고 공작가의 여식을 습격하는 대범한 행위를 벌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엘레노아가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출 틈도 주지 않고, 개인적인 감정이라고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 냉혹한 살의를 감지한 엘레노아의 두 호위 기사들이 흠칫 몸을 떨고 검을 꽉 움켜쥐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