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6화 〉146. 성검 복원(2) (146/730)



〈 146화 〉146. 성검 복원(2)

카아앙!

불카노스의 망치를 내려칠 때 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이 주위에 흩뿌려지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대장간 내부를 가득 채운다.
성화(聖火)에 의해 녹여진 오리하르콘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만이 이어질 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일행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이 성스러운 광경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직도 하고 있어?”

상태를 보러온 일리아나가 테레지아를 데리고 대장간으로 와서 은현의 망치질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음,  6시간 정도?”

“그렇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은현의 작업 과정을 다시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리오드를 바라본 일리아나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쟤 지금 6시간 째, 저렇게 망치질만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긍정하는 리오드의 반응에 일리아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미쳤어…. 당장 중단시키고 쉬게….”

“안 된다.”

은현에게 다가가려는 일리아나의 팔목을 리오드가 붙잡아 그녀의 행동을제지시켰다.

“야, 이거 안 놔? 방해하지 마.”

“너야말로 방해하지 마라.”

“뭐? 내가 방해하려 한다고? 쟤 지금 꼴 안보여? 온 몸이 땀으로 젖었잖아! 저러다가 탈수라도 걸리면….”

“야, 포기해. 나라고 안 말린  아냐? 저거 완전 돌았다고. 무슨 6시간 동안 계속 화로 앞에서 망치질만 반복하고 있는데, 진짜 미친놈 같다니까.”

일리아나의 성을 내는 목소리에 이제는 달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포기를 권고하는 아니에스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

일리아나는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물끄러미 은현을 응시했다.
하얀 티만을 입고 망치를 두들기고 있는 은현의 몸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인해 옷이 흠뻑 젖어 상태에 착 달라붙어 있는 상태.
온몸에서 땀이솟아나고, 턱에서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망치의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온도로 인해 순식간에 증발하고 있다.
화로 속의 불꽃으로 인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는 대장간에서 가장 찌는 더위를 맞보고 있는 것은 화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모루 위의 금속을 단련시키고 있는 은현이었다.

카앙!

갑작스레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던 금속을 두들기던 소리가 멎었다.

“후우우….”

부집게를 이용해 새빨갛게 이글이글 열기를 띄고 있는 검날을 집어올린 뒤, 미련 없이 화로 속에 다시 집어던졌다.

“물 좀!”

크게 외치는 은현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아니에스가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수통을 쥐고는 은현을 향해 집어 던졌다.
능숙하게 수통을 받아낸 은현이 뚜껑의 마개를 열고 수통 속에 들어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수분을 보충한다.

“후우우. 어, 일리아나, 왔어?”

“너…이거 언제까지 할 거야?”

“으음, 글쎄, 성검의 칼날이  만들어질 때까지?”

“그러니까, 그게 언젠데?”

“나야 모르지.”

“…그게 말이 되?”

“성검이 워낙에 까다로운 거야. 검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 해야 하거든.”

“검이 만족을 한다고?”

그의 말에 리오드가 의문을 표했다.

“성검은 일반적인 무기와는 조금 달라. 무기가 자신의 의사를 가지고 있고, 무기가 자신의 주인을 고르거든.”

“…아버지?”

“…그런 말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은현의 이야기에 가만히 그의 작업을 지켜만 보고 있던 아르미타스의 부자가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겠죠.  검을 사용해왔던 사람은 역대 아르미타스의 공작가문의 당주들과  후계들이지 않습니까. 공작가문의 피는 처음부터 성검의 인정을 받은 피였으니까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점에 대한 내용이 와전이 되어 잊혀진 것 같네요?”

“…내가 2왕자에게 성검을 넘겨 왕세자로서의 입자를 굳히고 당위성을 증명시키려는 나의 계획을 알고 있었을 텐데?”

눈을 가늘게 뜨며 아브로스가 은현을 노려보며 질문하자, 은현은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런데요?”

“나의 계획을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이 사실을 사전에 말해주지 않았지?”

만약 성검을 부활시켰음에도, 성검이 2왕자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란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공작님. 한 가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고?”

“제 목적은 성검을 부활시켜 왕국 사람들 중 하나가 성검의 선택을받아, 왕국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성검의 주인이 2왕자가 되든, 누가 되든 저에게 큰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아요.”

2왕자가 공작가문에 이어서, 성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애초부터 성검 듀란달은 왕가의 검이었으며, 그것을 왕가가 과거에 공작가문에 하사했을 뿐, 페르니아스 왕가의 피도 인정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성검이 악인에게 넘어간다면?”

“그거야 말로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이 검은 자기 자신을 사용할 주인을 스스로 고르는 무기이니까요.”

성검은 사용자의 마음가짐을 시험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존재가 자신을 쥐었을 때, 그 존재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주인에게 막대한 신성력을 포함한 ‘가호’를 부여하는 무기이며, 그 가호와신성력의 근원은 성검이 만들어지면서 주입된 신의 힘이다.
결국 주인을 고르는 무기의 의지는 무기에 깃든 힘의 근원인 신의 의지와도 같다.

‘그리고  신의 무기 속에 내포된 신력은 아마도….’

 성검 속에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는 신성의 근원이 어떤 신에게서 비롯된 힘인지만 알아낸다면, 그 신의 성격과 특성으로 미루어보아, 자연스레 이 무기의 주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추측하고 알아맞히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세상을 창조한 일곱 여신 중  여신일 것이라, 은현은 생각했다.

‘미네르바님의 신력은 아니야. 그렇다면 후보는 여섯이네.’

미네르바의 무구인 아이기스를 받아 그녀의 신력의 일부를 느껴본 은현은 성검 속에 내포된 신력이 미네르바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있었다.
이내 생각을 마친 은현은 다시 아브로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공작님. 저는 공작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나타난 심부름꾼이나 해결사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희는 ‘공생관계’라고.”

“…그랬지.”

결국 은현과 아브로스의 관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를 돕는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은현은 자신에게 막대한 양의 자금을 제공했고, 이렇게 복원을 위해서 힘을 써주고 있으며 자신의 숙원사업이나 다름없는 성검을 복원시켜주고 있는 막대한 은혜를 베풀어주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은현에게도 필요한 행동이었기에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고 있을 뿐, 그의 입장에서는 성검이 주인으로 누구를 선택하던 크게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 그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양심적인 일이며, 자신도 모르게 은현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해버린 아브로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순순히 은현의 지적을 인정했다.

“자, 그럼….”

이야기를 마치고 잠시간의 휴식을 끝마친 은현은 다시 새하얗게 불타는 화로 속에 부집게를 집어넣었다.
달궈진 성검의 칼날을 꺼내들고는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망치질을 시작한다.

카아앙!

“하아…진짜 저걸 누가 말려….”

“어디 가는거지?”

한숨을 쉰 일리아나가 몸을 돌려 대장간을 나가려 하자, 리오드가 흘끗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쟤 6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 아냐. 뭐라도 좀 만들어서 먹여야지.”

“뭐?”

“응?”

일리아나의 말에 리오드와 아니에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뭐,  그렇게 쳐다봐.”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이 매우 꺼림직 했는지, 일리아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니가 요리를?”

“살다 살다 쟤가 요리를 한다는 소리를  들어보네.”

“왜! 나는 뭐, 요리하면 안 돼?!”

“아니…. 너 20년 전에도 우리끼리 있을 때 요리할 때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잖아.”

“요리를 하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20년 동안 에너지바만을 먹으면서 살았던 네가  소리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드는 의문이지.”

은현이 부활해서 자신들을 찾아오기 전, 혼자 사는 일리아나의 집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던 리오드는  안에 가득 쌓여있는 에너지바의 포장지와 상자들을 보고 기가 질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뭐? 그 과자 같은 쪼그만 한 덩어리?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살아?”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일리아나의 몸을 훑어본 아니에스의 표정이 굳는다.

“뭘 쳐 먹었길래, 젖이 저렇게 큰 건가 싶었는데, 비결이 그 비스킷 덩어리였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저 녀석은 옛날부터 저랬으니까.”

그녀의 몸매를 유심히 관찰하던 아니에스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리오드가 코웃음 치며 그녀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런 세 사람의 대화를 아브로스와 알렉스가 애써 무시하며 은현의 작업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알렉스는 세상을 구한 대 영웅들의 대화라는 것이 저런 저급한 대화라는 것에 충격을 받아,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민망함에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럴 필요 없소. 마녀. 이미 내 딸이 올라갔으니.”

“…뭐라고? 요?”

순간 인상을 찡그리던 일리아나가 황급히 존댓말을 붙이며 되물었다.

“엘레노아가  남자에게 간단히 먹일 수 있는 요깃거리를 만들어오겠다고 하고 올라갔소. 곧 성역 결계의 유지를 위한 교대시간이니, 내려오겠군.”

“…….”

◆ ◆ ◆

카아앙!

치고, 치고,  치고, 계속해서 망치를 내려친다.
이미 몇 십번, 몇 백번을 반복하여 내려치는 망치에서 잔상을 그리며 환각이 보일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현은 멈추지 않았다.
망치를 내려치면서 살인적인 화로의 온도로 전신이 그을려지는 것은 고사하고, 익다 못해 새까맣게 불타버린 고깃덩이가 되는 수준의 화상을 아니에스의 성역화의 결계가 감싸순식간에 치유해나가고 있다.
아니에스의 성역화의 결계의 효과는 이것  만이 아니다.
은현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력과 신의 무구인 불카노스의 망치를 일부나마 증폭시키고, 평범한 불이 아닌 ‘성화(聖火)’의 효과를 증폭시켜 오리하르콘 금속을 더 강하게 단련시킨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금방 치유되는 육체적인 화상의 데미지는 기꺼이 참아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화상은 성역화의 결계로 자동적으로 치유가 된다.
필요한 것은 망치를 내려치는 체력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
망치를 내려쳐 단련시킬 때마다 검속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신력과 성역화의 결계의 신성의 양을 재면서, 성검의 완성도를 가늠했다.

‘아직, 아직 멀었어.’

성검의 칼날은 불카노스의 망치로 내려 쳐질 때마다, 은현의 신력으로 생성된 신성력과 성역화의 결계 속의 신성력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면서도, 아직도 불만족스러운지  많은 양의 신성력을 갈구해왔다.

우우웅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성검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자, 성검이 신성력을 일으키며 자신의 검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탐욕스럽게 부르르 떠는 검신이 마치 ‘더, 더!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더 많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신성력을 먹어치울 때마다 더욱 성장하면서, 더 많은 신성력을 갈망하는 악순환의 고리와도 같다.
하지만 은현은  과정이 성검 스스로가 자아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먹고 싶다면 먹게 해줘야지.’

그렇기에 검날이 울부짖을 때마다 더더욱 많은 신성력을 불카노스의 망치에 담아 있는 힘껏 성검을 내리쳤다.

카앙!

우우웅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담긴 일격을 맞은 성검이 파르르 떨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 반응을 본 은현이 망치를 다시 들어올려, 신성력을 담아내고, 떨고 있는 성검의 검날을 내리쳤다.

카아앙!

우우웅!

또 다시 한번 강하게 파르르떠는 성검이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은현에게 보내오기 시작한다.
‘그만, 너무 많다. 적은 양으로 천천히, 상냥하게 넣어 달라.’라고 호소하는 것만 같은 성검의 행동을 은현은 들어주지 않았다.

카아아앙!

우우우웅!

은현의 망치를 맞은 성검이 마치 시계추처럼 검날을 좌우로 흔들더니, 고정된 모루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지만.

‘많이, 빠르게, 강하게 내리쳐야지.’

은현은 지금 이 순간이 성검이 완성되기 위한 라스트 스퍼트 과정의 단계에 올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카노스의 망치에 한계의 한계까지 신성력을 담아 위로 높게 들어 올린 은현의 팔뚝이 잔뜩 부풀어 오르며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위로 우뚝 솟아올라있는 불카노스의 망치에 내포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을 느낀 성검은 고정된 모루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안간힘을 쓰던 자신의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고 공포로 전신이 경직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자, 가라!’

카아아아앙!

마지막 일격을 내리치자 망치 속에 담겨있던 모든 신성력을 빨아들인 성검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아악! 이런 X발! 눈뽕!”

대장간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밝은 빛을 정면으로 맞은 아니에스가 비명을 지르며 양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이내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대장간 안을 가득 채웠던 대장간 안의 빛들이 사라지고, 모루 위에는 은현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밝은 백은색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은현은 새롭게 부활한 성검의 상태가 이상해보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도한 양의 신성력을 주입시킨 탓인지, 몸 전체를 파르르 떨고 있는 것에 혹시라도 부작용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검 손잡이를 손에 쥐려던 찰나.

우우웅!

“엥?”

손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은현의 손을 뿌리쳤다.
은현은 이 광경에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성검을 바라만 봤다.
성검은 자신이 인정한 대상이라면 아낌없이 자신의 가호와 신성력을 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무기지만, 그럴 대상이 아닐 경우에는 평범한 무기처럼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뿐,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이게 지금 뭔 개 같은 경우가….”

자신이 이 성검을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자신을 두고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보이고 있는 성검의 의지에 은현은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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