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145. 성검 복원(1) (145/730)



〈 145화 〉145. 성검 복원(1)


“던전 안에 이런 주택과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니…. 게다가…이 ‘게이트’라는 이동마법은…너무 위험하군요.”

“던전 내부에 자체적으로 간섭하여 이동할 수 있는 마법이라니, 메이거스에서 알게 된다면 술식을 공개해달라고 난리를 치겠군.”

아르키스의 대미궁 안, 은현의 새로운 살림을  사람들의 감상은 대체로 경악을 넘어선 허탈이었다.
리오드를 따라 게이트를 통해서 던전 안으로 들어온 그의 아내, 테레지아는 은현과 일리아나가 개발해낸 게이트라는 이동 마법에 대한 유용성과 위험성을  번에 알아보았다.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 이동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키는 이 마법을 이용하여 대량의 물자를 먼 장소까지  번에 옮길 수 있는 방식으로 상인들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 기술은…세상에 공개하지 않을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아브로스의 질문에 은현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마법은 오로지 자신의 편의성을 위해서 만들어낸 마법이며, 이 기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허락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여신들이 간섭하여 그것을 막을 것이다.
게이트 마법은 은현이 일리아나와 함께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마법 지식과 기술의 정수를 담아 만들어낸 마법이었지만, 은현과 일리아나는  마법을 공개하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흐름을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발견하고 따라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 아니기도 합니다. 현재 이 게이트라는 마법을 재현해내려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이 걸리겠죠. 공작님은 이 기술을 알고 계시더라도, 재현을 하시려는 욕심을 가지시진 않으실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런가…. 하긴, 공개할 생각이 없다면 아예 공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이건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며, 유용하다 못해 위험한 방식으로까지 사용될 여지가 충분하다.
터무니없는 유용성과 범용성의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다.
사용하는 자신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남이 사용하게 된다면 자신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기술.
아브로스의 말을 듣고 테레지아는 던전과 수도 페르닌 내부에 게이트를 연결해, 마수들을 수도 내부에 대거 풀어놓는 광경을 상상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떨었다.

“미친놈인가, 진짜? 되살아나더니 빠꾸가 없어졌네. 아주?”

“에이라에게 들었지만, 예전부터 너는 이런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을 많이 벌였지. 하지만 어쩐지 점점 더 심해진 것 같군.”

“뭐, 개인적으로 이번에 좀 힘을 쓰긴 했지.”

은현은 질린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니에스와 리오드에게 대답하며 선두에서 앞장을 서며 일행들을 이끌었다.

“아니에스, 알렉스, 공녀님은 저를. 남은 분들은 일리아나를 따라가세요. 일리아나 건물 안의 안내를 부탁해.”

“뭘 안내까지? 그냥 적당히 휴양 차 쉬게 해주려고  거잖아. 그냥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내버려둬.”

“너 솔직히 그냥 안내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지?”

“어. 뭐, 문제 있어?”

은현의 지적에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그녀를 보면서, 은현은 할 말이 없어져 그냥 인상을 찡그렸다.

“집 안에 뭐 값나가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둘러봐주세요. 저는 곧바로 대장간으로 향해서 성검의 복원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기왕이면 나도  쪽을 따라가도록 하지. 가문의 가보가 부활하는 광경이다. 그것을 가문의 당주인 나는 그것을 지켜봐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작가문의 성검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고 있다. 나도  쪽으로 붙지.”

아브로스와 리오드는 은현의 성검 복원 작업을 지켜보는 것을 선택했다.
가문의 보물을 은현에게 맡기면서 막중한 책임과부담을 느끼고 있던 아브로스와 기사이자 검사로서 성검이라는 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리오드는 건물 내부의 관광보다 은현의 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테레지아는 나랑 가자. 내가 집안을 안내해줄게.”

“네. 그래요. 언니.”

테레지아의 손을 붙잡아 이끌고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리아나를 보며 은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안내 안 해준 다며?”

“둘이서 또 뭔가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려는 모양이군.”

예비 유부남과 현 유부남이 그렇게 계단을 올라간 두 여자를 보고 미묘하게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 새롭게 완공된 대장간을 향했다.

“부럽다…. 나도 저기에 끼고 싶었는데….”

“넌 안 돼.”

“쳇. 알았어.”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일리아나와 테레지아를 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던 아니에스는 은현의 말을 듣고 혀를 차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끼이익

잠금장치를 풀고, 철로 된 문을 밀어젖히자, 쇠 냄새가 가득한 바람이 일행의 코끝을 스쳐지나갔다.

“생각보다…깨끗하네요?”

엘레노아가 가만히 내부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대장간이라고 해서 칙칙하고, 먼지와 흙이 자욱한 지저분한 시설을 생각했지만, 은현의 대장간 내부는 굉장히 깔끔했다.

“그야 완공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은현은 엘레노아의 의문에 답해주고 화로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알렉스, 성검과 오리하르콘을 이리로.”

“알았다.”

알렉스는 은현의 말에 따라 순순히 등에 짊어지고 있던 관을 풀었고, 관 속에 들어있는 부서진 성검과 함께 오리하르콘이 들어있던 상자를 은현에게 넘겼다.
관의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낡은 검 손잡이를 붙잡아 관속에서 부러진 성검을 꺼냈다.
부러진 검신과 빛을 잃은 외관에서는 성검이라는 위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고 초라했지만, 검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신성력만큼은 아직도 자신의 존재가 성검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아니에스. 성역화 결계를 쳐.”

“…뭔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하라는 대로 할게. 니도  생각이 있겠지.”

이해할 수 없는 은현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니에스는  눈을 감고 자신이 모시는 베스타 여신에게 기도를 했다.

[신이시어. 자비 좀.]

[베스타의 축복]
[홀리 생츄어리(Holy Sanctuary)]

“…저런 성의 없는 기도로 신성마법이 발현이  수도 있는 건가?”

“아니에스의 경우가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아브로스는 신성력도 신성력이지만, 사제들의 기도가 굉장히신실하고 간절해야 그들의 염원을 신이 들어준다고 알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사제이기 때문에, 사제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조사했기 때문에, 아니에스의 성의 없는 기도를 통해서 축복이 발현되는 광경은 놀랍다기보다 허탈하고 어이가 없는 광경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동료의 행태에 대해 리오드가 담담히 해답하자, 할 말이 없어진 아브로스는 흘끗 시선을 옮겨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엘레노아 역시 매우 고민이 많은 표정이었다.
대장간 내부를 가득 채우는 신성한 빛과 함께, 전신을 포근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감싸는 기운들이 사람들의 몸속에 스며들어 그들의 육체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건…그때….”

사룡의 브레스를 막으면서, 은현이 넘겨준 방패 속의 신성력을 끌어다쓰면서 무의식적으로 발현시킨 신의 기적임을 깨달았다.
마(魔)와 같은 악한 기운을 쫓아내고, 부정한 기운을 정화시키는 성스러운 결계가 쳐지는 기적을 확인하며,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에스와 자신 간의 사제로서의 격차를 자꾸만 실감하고 있었다.
기도에 성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근본적인 문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장간 안에 만들어진 성역의 결계 속에서 은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성역화 결계를 유지해.”

“뭐? 언제까지?”

“성검이 복원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데?

“나야 모르지. 하지만 하루 안에 끝나진 않을 거야.”

“야. 너 이거 쉬운거 아니라는 거 알잖아. 결계를 치는 것하고, 상위계의 축복의 결계를 하루 이상 장시간 유지하는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야.”

게다가 하루 이상을 유지해야한다는 뜻은 이 결계를 유지시켜야하는 아니에스 또한 잠을 자지 않고 정기적으로 신성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공녀님도 데려왔잖아.”

“…….”

은현은  마땅해 하는 표정을 짓는 아니에스에게서 시선을 옮겨, 멀찍이서 아브로스와 함께 입구 쪽에 서있는 엘레노아를 흘끗 바라보고는 다시 아니에스를 바라보았다.

“공녀님과 함께 교대로 돌아가면서  결계를 유지해.  생각에 공녀님이라면 이 결계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흐음…. 적어도 4시간? 5시간까지는 가능할지도?”

“3시간씩 교대해. 그리고 요령을 가르치면서, 나중에 갈수록 유지시간을 늘려보도록 네가 조절해봐.”

“뭐야, 너? 처음에는 그냥 살짝 못마땅해 하는 표정을 지었으면서, 은근히  챙기는 거야?”

“뭐 그래야하는 사정이 생겨버렸거든.”

베스타에게서 직접 부탁을 받은 이상, 엘레노아의 사제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들이 그렇게나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은현에게 있어서는 지금도 베스타가 신계에서 자신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엘레노아의 ‘은현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의 의미에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녀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는 뒤로 미뤄두며, 고민하지 않기로 은현은 결정했다.

“흐응? 뭐, 나도 우리 신님이 쟤 팍팍 밀어주라고 하셨으니 나쁘지 않은 기회이긴 하지.”

“그럼 부탁할게.”

“그래. 알았어.”

은현은 화로 속에 점화를 시켜 불을 지폈고,화로의 내부가 활활 타올라 온도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오리하르콘의 가공은 일반적인 강철이나 금속처럼 평범한 제련은 통하지 않는다.
강철보다 뛰어난 경도로 단단함과 내구성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금속으로 대륙에 존재하는 3대 귀금속, 레어메탈중 하나인 오리하르콘은 그 단단함과 내구성 이외에도, 마법의 저항력이 굉장히 높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이것이 성검의금속으로 선택된 이유  하나이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성검은 마력을 일체 차단시키고, 신성력을 품는 것으로  그대로 ‘마(魔)’를 물리치는 것에 특화된 검.
그렇기 때문에 오리하르콘을 가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 또한, 불이나 마력이 아닌신성력이다.
은현은 조용히  눈을 감사 자신의 영혼에 각인  ‘불카노스의 망치’를 떠올렸고 그것을 소환하기 위한 염원을 담아 마음속으로 빌었다.

우우웅

 염원을 이뤄주기라도 하듯, 은현의 손 위로 불카노스의 망치가 나타나 그의 손 위에 안착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은현이 평소에 무기를 소환했던 것처럼 평범한 광경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망치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신성 또는 신력의 존재를 확인한  사제는 얼굴이 굳어졌다.

“야, 너 뭐야, 그 망치…?”

“열심히 하라고 도네(후원) 좀 받았지.”

“도네?”

알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은현이 망치를 쥐고는 활활 타오르는 화로 속을 가리키자, 망치 속에 내재되어 있던 신력의 일부가 화로 속으로 들어가자, 화로 안의 주홍빛 불꽃의 색이 점점 바뀌기 시작한다.

“불꽃의 색이 하얀색으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레노아는 화로 속에서 불타오로는 새하얀 성화(聖火)를 보며 중얼거렸다.

“시작하자.”

대량의 오리하르콘 금속 일부를 화로 속에 던져 넣어 녹이고는 아래의 구멍으로 주르륵 흘러내려오는 쇳물을 거푸집에 옮겨 담았다.

“한 바탕 두들겨 볼까?”

부러진 성검의 새로운 검신을 대체할 칼날의 형태를 단단히 굳히고, 모루 위에 단단히 고정시킨 성검의 칼날을 향해 신의 망치가 있는 힘껏 내려쳐지며 청량한 금속음이 대장간 깊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카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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