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9화 〉139. 여신들의 회의(2) (139/730)



〈 139화 〉139. 여신들의 회의(2)

“아, 네…에?”

자연스레 손을 뻗어 은현의 뺨을 만지려는 순간, 황급히 베르단디가 은현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기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친다.

[내, 내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아이 참, 뺨 한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니?]

“예. 뭐….”

자기 새끼에게 나쁜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하며자식을 뒤로 숨기는 부모처럼 자신을 뒤로 숨기는 베르단디의 모습에, 은현은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베르단디의 뒤에 서서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난 베스타라고 해.]

“…베스타 님?”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는 여신의 이름을 들은 순간, 은현이 놀란 표정으로 베스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응. 얘기  나눠볼 수 있을까?]

“얘기…입니까?”

[응. 아이랑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거든.]

“…….”

은현은 미심쩍은 얼굴로 베스타를 바라보았다.
베르단디 이외에 자신을 ‘아이’로 칭하는 여신의 말투가 굉장히 신경 쓰였다.
자신에게 권능을 내린 여신은 베르단디 이외에도 우르드와 스쿨드가 존재했지만, 그 둘은 자신을 ‘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굳이 설명하자면 은현에 대해서 베르단디가 크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일 뿐, 일반적인 신들의 기준에서는 우르드와 스쿨드의 대응이 당연한 반응이다.
 과격한 경우에는 다이아나처럼 인간을 완전히 소모품으로 보는 신들도 있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베스타의 시선이 은현에게는 조금 거북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내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냐?]

[별 얘기는 아니야. 그런데….]

잔뜩 경계하는 베르단디를 보고 피식 웃어 보이며 베스타가 발걸음을 옮겨 은현과 베르단디에게로 다가왔다.

[네가 그렇게 싸고도니까, 더 흥미가 가잖아?]

[가, 가까이 오지 마라!]

은현을 뒤로 물리며 베르단디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자, 도리어 은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겁하는 자신의 여신의 반응이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잔뜩 털을 바짝 세운 강아지와 같은 반응이다.

‘여신들 사이에서도, 서열 같은 것이 존재하나…?’

[후후후.]

[가, 가까이 오지 말래도!]

[우후후후.]

‘아니, 이건 서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놀리고 있다.
베스타의 얼굴이 마치 귀여운 소동물을 보는 표정인데, 그 표정이 매우 음흉하다.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치면서 손을 이리저리 휘젓는 베르단디의모습을 보면서, 베스타는 명백히 허둥대는 베르단디의 반응을 즐기고 있다.

[아, 아이야? 꺄악!]

보다 못한 은현이베르단디의 팔을 붙잡아, 거칠게 잡아끌어 뒤로 숨기자,둘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형태로 은현에 다시 앞에 섰다.

“이야기 뿐 만이라면 괜찮습니다. 어서 끝내도록 하죠. 너무 저희 여신님을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후후, 멋진 아이네.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선 거니?]

[아, 아이야….]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은현을 보며 베스타가 킥킥대기 시작한다.

[뭐, 좋단다. 원래부터 아이랑 이야기 해보고 싶었고, 아, 이야기보다는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부탁인가요?”

[응. 이번에 아이의 경우를 본받아서, 나도 내 아이 하나를 만들어보려고.]

“…….”

순간 은현은 ‘아이 만들기’라는 단어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여신들이 말하는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 인간들 사이의 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도를…만드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그건….”

부활한 뒤로 신계에 처음 불려왔을 때, 베르단디를 통해서 ‘신들이 가능성이 있는 인간들을 사도로 맞이할 계획’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것을 떠올린다.

[표정을 보니, 뭔가 오해하고 있나보네? 아이가 불멸자가 된 건 베르단디의 권능으로 아이의 육체가 ‘현재’에서 멈춰서 고정이 되어 있던  크지. 모든 신들지 자신들의 사도를 ‘불멸자’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야.]

“아뇨. 그것은 저희 여신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베스타님께서 말씀하신 사도라는 건 혹시…제가 아는 그 사람이 맞습니까?”

[응. 맞아. 아이가 직접 신성력을 주입시켜 강제로 위계를 끌어올린  아이.]

혹시나 싶었던 은현의 추측을 베스타가 긍정한다.

[내가 아이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이를 이끌어줬으면 하는 거야.]

“…꼭 엘레노아 아르미타스였던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거야, 아이가 더 잘 알지 않니? 그 아이의 운명을 바꾼 게 바로 아이잖니.]

유리아가 읽은 ‘미래시’ 속에서 엘레노아는 하르칸 주교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는 형태로 에레니아 신성국으로 팔려가는 미래를 맞이한다.
하지만 은현은 그 미래가 자신에 의해서 바뀐 것이 아니라고생각했다.

“그것은 베스타님을 모시는 신실한 사제인 아니에스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제가 해낸 게 아니에요.”

[아니에스라는 아이를 지금의 자리에 앉히도록 영향을 준 것도 바로 아이지.]

“…….”

[이미 아이는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꿔왔다. 신수의 힘을 품은 어린아이를 구원하고 이끌어주어 폭주를 막았고, 망자들을 조종하고 농락하는 사령술사로 인해   명이 나올  있었던 희생자들을 몇 백 명으로 줄여 많은 생명들을 구했고,  사제의 앞길에 놓인 험난한 여정을 억지로 비틀었다.]

에린을 구원하는 것으로 페르닌의 수도가 불타는 것을 막아냈다.
피해가 확산되기 전에 사령술사를 빠르게처리하여 많은 생명들을 구해냈다.
엘레노아에게 부여된 사제로서 신을 의심하게 되는 수많은 고난의 길을 없애버렸다.

[많은 다수부터, 개인까지 아이의 손을 거쳐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았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업적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구나?]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한다.

“저를 사도로 만들어준 여신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이뤄낼  없었던 일들입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베스타님의 그 말씀은 저에겐 너무 과분합니다.”

[후후, 겸손한 아이라니. 아이에게 스쿨드의 ‘운명개척’의 권능이 들어간 이유를 알겠어. 너 같은 아이니까,  권능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겠지.]

“…어째서 아니에스가 아닌 엘레노아를 사도로 선택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 아이가 품고 있는 마음이 아주 재미있었기 때문이지. 그 아이는 아이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으며,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답해주고 길을 제시해줬을 뿐이란다. 그러면서 아이와 그 아이가 바꿔나갈 운명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엘레노아가 저를 돕고 싶어 한다고요?”

[그렇지. 그러니 아이가 앞으로 내 아이가  그 아이를 잘 이끌어 돌보아 주지 않으련?]

“장담은 못 드리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후후, 그 말만으로도 충분해.]

[저도 이야기에 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머나, 미네르바? 간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저도 이 인간에게 볼 일이 남아있었던 지라.]

은현은 자신에게로 다가온  다른 여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회의 때, 저를 옹호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당신은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업적을 달성한 인간이니까요. 저희 일곱 여신들 이외에도 당신을 주시하고 있는 신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는 당신에게 자신의 무구를 전달하고 싶어 했던 ‘불카누스’도 포함되어 있었죠.]

“아…그분께도 부디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알겠습니다.그리고 이건 제 쪽에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

은현은 쥬노가 자신의 가슴 속에 새하얀 성염(聖炎)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같은 행동을 보이며 ‘신의 무구’를 자신의 영혼에 각인시켜주는 미네르바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의 방패인 ‘아이기스(Aegis)’입니다. 물리적인 공격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영혼에 타격을 주는 공격에서 당신을 지켜줄 겁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사용해도 좋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해도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걸…다른 여신의 사도인 저에게 주셔도 괜찮으신가요?”

게다가 아까의 ‘불카노스의 망치’도 회의를 통해서, 찬반 투표로 수여권이 결정이 되었는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내줘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리가 없다.

[순수한저의 호의입니다. 나중에야 들킨다면 문책은 당하겠지만, 이미 한  영혼에 각인 된 무구를 회수시키는 것은  주인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안심하세요.]

“…….”

큰일이다.
은현은 너무 상식을 뛰어넘는 과분한 물건들을 갑작스레 받게 되어, 위가 아파오는 기분을 느꼈다.

[저 역시 당신이 만들어낼 하계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무너지지 마시고, 앞을 걸어가세요. 그럼 전 이만.]

[후후, 힘내렴?]

“아니, 저기 이보세요들.”

자기 할 말만을 하고 멋대로 자리를 떠나며 여신들이 사라지자, 거대한 원탁의 회의실의 내부에는 은현과 베르단디 만이 남았다.

[후우우우.]

“여신님?”

크게 한숨을 내쉬는 베르단디의 반응에 은현이 놀라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왜 이렇게 남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 아하하, 응원해주고 계시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죠.”

[미안하구나. 다른 신들과는 달리, 나는 무구가 없어서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줄 수가 없다….]

“여신님은 언제나 하계에서도 제 곁에 있어주시잖아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것보다 여신님.  가지 신경이 쓰였는데, 묻지 못했던 게 있었는데요.”

[무엇이냐?]

“레나트라는 여자가 그때 고룡의 시체를 소환할 때 허공에 만들었던 문이요. 신의 권능이었잖아요.  부분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던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 아시나요?”

[그것은…지금 신계 쪽에서도 찾고 있는 중이다. 어떤 신이 무슨 목적으로  인간에게 신의 권능을 하사했는지도 지금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 지금일곱 여신들도 접촉할  있는 관계가 있는 신들에게 수소문을 해가며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만, 현재로선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아뇨. 미안하긴요. 살아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그래도 죽이지 못한 건, 저도 아쉽네요.”

은현을 질책했던 다이아나의 말에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은현은 재앙이 씨앗이 될  있는 마리우스와 레나트를 놓친 것이 되었으니,본인도 분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신들께서 내려주신 이 두 개의 무구들은…대강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또 신경 써야할 일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을  같아요. 회의에 저를 초대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여신님.”

[나에게 감사를 할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신의 무구’를 하사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으니, 너무 그럴 필요 없다.]

“하하. 그래도요.”

[음….]

“…….”

일순 베르단디와 은현 사이에 침묵이 일기 시작하고 몇 초 뒤, 의아함을 느낀 은현이 결국 입을 열었다.

“저어, 여신님?”

[왜…그러느냐?]

“저, 혹시 하실 말씀, 있으세요?”

회의가 끝나고 은현에게 주기로 했던 보상들도 모두 받은이상, 신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용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베르단디가 곧장 은현을 하계로 내려 보내줄 줄 알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베르단디는 은현을 하계로 내려 보내지 않고 있었다.

[…….]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은현은 조용히 베르단디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게…그러니까….]

잠시 고민을 하며 입을 열기를 망설이더니, 이내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그녀가 은현에게 외쳤다.

[라, 라면이라도 먹고 가거라!]

“…뭐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반문했지만, 은현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심호흡을 하며, 베르단디에게 재차 물었다.

“여신님…. 그 대사, 제 기억 속에 있는 지구의 지식을 이용한 거죠?”

[그, 그렇다….]

“그 대사…무슨 의미인지 알고 쓰시는 거예요?”

은현은 베르단디가 오랜만에 신계로 온 자신과 조금 더 시간을 나누고 싶어서,황급히 외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피식 웃음을 지으려 했는데.
라면 드립을 친 베르단디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그, 그그그러니까, 그게….]

은현과는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횡설수설 뭐라 설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민망해하는 베르단디의 표정을  은현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갔다.
이즈음 되면 아무리 은현이라도 베르단디가 한 말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진심…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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