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7화 〉137. 성녀 후보(2) (137/730)



〈 137화 〉137. 성녀 후보(2)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싸움보단, 사제로서의 역할과 기도의 방법과 종류 정도야. 애초에 신성력이라는 게 신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발현되는 기적이니까, 누군가가 조언을 해준다고 해도 마땅한 그런 게 없어.”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가다듬는 정양과 수양이라는 것은 엘레노아도 안다.
하지만 성녀로서 무언가 특별한 정신의 수양 방법이 존재할 줄 알았던 엘레노아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제의 기본적인 소양을 설명하는 것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스도 그런 엘레노아의 표정을 보고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은현이 두 여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에스, 기회가 와서 하는 말인데, 이쪽에서도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흠? 니가 나한테?”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에 ‘부러진 성검’이 있어.”

“……!”

“은현!”

20년전, 대전쟁에서 부러졌던 공작가문의 가보, 성검의 존재는 공작가문 안에서도 철저히 비밀리에 숨겨왔던 사실이었다.
아브로스의 표정이 굳어짐과 동시에, 알렉스가 너무나도 가볍게 비밀을 누설하는 은현을 보며 소리쳤다.

“성검? 그런데?”

“복원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은현의 제안은 성검의 부활이 가문의 비원이었던 아브로스를 동요시키기에는 충격적이었다.
그의 제안을 들은 아니에스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아브로스와 알렉스의 굳은 표정을 응시했다.

“흐음?”

“이건 엘레노아 공녀님의 가문의 비원이기도 한 일이야. 공작님께 네가 점수를 딸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

“아하. 뭐야. 그런 좋은 협상 카드가 있었으면 진즉에 제시하지 좀 그랬어.”

“미리 상의라도 했다면, 내가 귀띔이라도 해줬겠지. 곧바로 들이박은 건 네 잘못이야.”

“뭐, 그건 그렇긴 하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하는 아니에스를 뒤로 하고, 은현은 아브로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습니까. 공작? 저희에게 ‘부러진 성검’ 맡겨보시겠습니까?”

“…정말로, 복구 시킬 수 있는 건가?”

“성검의 부활에 필요한 재료는 딱  가지였죠. 신철(神鐵)이라 불리 우는 오리하르콘 광석과 사제 한 사람 분으로는 턱도 없는 양질과 대량의 신성력들.”

“…….”

“제가 드린 백금화들로 오리하르콘은 구하신  같지만, 성검이 부러졌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고 있는 이상, 많은 사제들을 성검의 복원 계획에 끌어들이는 것에 망설이고 계셨던  아닙니까?”

“…그 말이 맞다.”

보고 듣는 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소문의 통제는 어려워진다.
공작 가문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가보가 부러진 상태라는 것을 밝힐 수 없었던 아브로스에게는 성검의 복원에 필요한 신성력을 조달하는 것이 신철을 구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였다.

“엘레노아, 한 명의 신성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 문제는 아니에스가 오는 것으로 해결될  있습니다.”

아니에스가 가지고 있는 신성력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인간의 체질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을 품고 있는 그녀는 일반적인 중위사제 100명의 신성력과 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을 수준이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문제는 있다. 너라면 알고 있을 텐데?”

아브로스는 은현과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본 적도 없지만, 이정도로 공작가문의 가보인 성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은현이 이 문제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철을 야금(冶金)하여 성검을 복원시켜줄 대장장이가 필요하신 거라면, 그것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싱긋 웃으며 은현이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할 거거든요.”

“…뭐라고?”

“저 야금술도 할 줄 알거든요.”

“…네놈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너는 처음부터 우리 가문의 성검을 직접 복원시켜줄 생각이었나?”

“아니요. 적어도 그때는 공작님께서 시간이 걸려도 알아서 해결하시게 내버려 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사정이 좀 바뀌었거든요.”

“사정이 좀 바뀌었다고?”

은현은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미친년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바람에.”

“아….”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하는 은현의 표정을 본 엘레노아가 작게 탄식한다.
메디아의 존재를 떠올렸다고 확신한 그녀가 은현에게 물었다.

“당신은…그 여자에게 대항할 수단으로 성검을 부활시킬 생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그 여자 뿐 만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상황에 대비해서 성검은 이제는 꼭 필요한 무기가 됐습니다.  여자가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뜻은 악마들의 봉인까지 풀리고 이쪽으로 넘어온다는  뜻해요.”

“악마의 봉인이 풀린다고?”

“야, 그건  무슨 소리야. 처음 듣는 얘기인데. 제대로 설명해.”

20년 전, 대전쟁에서 이 세상 너머에 봉인되어 있는 악마들의 소환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던 아브로스와 아니에스에게는 또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혐오하는 기분이 몰려오는은현과 분노에 치를 떨고 있는 일리아나를 대신해, 그때의 상황을 함께 겪었던 리오드가 나서서 ‘망자의 여왕, 메디아’의 존재를 설명했다.

“스스로 자신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제거하고 불멸의 존재가 된 여자라….”

“그리고 그 미친년이 은현한테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어서, 일리아나의 표정이 저렇게 안 좋고?”

“현아, 그 년은 내가 죽일 거라고 했잖아.”

“알아. 너랑 한 약속이니까. 하지만 메디아는 혼자서 나라 하나를 멸망시킨 전적도 있는 여자야. 인간의 탈을 벗어던지고 상위의 존재가 된 지금, 그 여자가 이 세상으로 나온다면, 세상에 미치는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질 거야. 메디아는 일리아나, 네가 맡는다고 하더라도, 그 여자의 사령술로 만들어진 언데드 군단은 인간들이 상대해야해. 그러니까 인간들 스스로가 사령술에 대항할 수 있는 대비책이 필요해.”

“그 대비책이 바로 우리 가문의 성검이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아브로스는 생각에 잠겼지만, 그의 고민은 그렇게 길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가 제시한 백금화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공작가문은 은현과 한배를 타고 있었다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좋다. 너를 믿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브로스가 보내온 신용에 답해, 은현이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복원은 언제 시작하지?”

“아직 대장간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만들어지는 대로 곧바로 복원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에요. 아마 이번  내로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철 이외에 필요한 것은 따로 있나?”

“공녀님을 보내주십시오. 혹시 모르니, 공녀님의 신성력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기회니, 성녀 수업에 대한 교육도 함께 받을 있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레노아의 신성력이 아니에스의 신성력보다 양이 적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중위사제들과 비교해보면,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알겠어요.”

“가문의 보물인 성검을 부러뜨린 수치를내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면서도 나의 힘으로 이루어낸 업적이 아니라서 복잡한 기분이군….”

“아버지….”

비록 복원시켜 2왕자인 에반 왕자에게 헌상하여 자신의 손을 떠날 예정이라고는 하더라도, 오랜 시간 가문의 상징이었던 성검을 제대로 진상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브로스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가문의 보물을 왕가에게 헌상하시겠다니, 정말로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원래부터 듀란달은 선조 때 왕가에서 우리 가문에 하사한 보물이었다. 이제 와서 성검을 다시 헌상한다고  아쉬움이 들지는 않아. 이걸로 2왕자인 에반 왕자의 입지가  좋아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과지.”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브로스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이걸로 모든 이야기는 마친 것 같군요.”

“그렇군. 밤길도 슬슬 어두워질 시기니, 우리도 이만 가도록하지. 당분간…또 바빠지겠군.”

“복잡한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게 되어 억지로 짐을 지우게 만들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됐다. 어차피 알아둔다고 대처할 수준이 아닌 문제도 몇 개 끼어있었지만…알아둬서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성검의 문제는 정말 감사히 생각하도록 하지.”

 말을 끝으로, 긴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자, 그럼. 일리아나, 우리도 에린 데리고 이만 가자.”

“그래.”

“조심히 가세요.”

아니에스는 후작 저택의 손님방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결정이 됐고, 은현과 일리아나, 에린은 후작 부인인 테레지아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우리 결혼식은 언제 올려?”

“겨, 결혼식….”

돌직구로 물어보는 일리아나의 말에 은현의 옆에서 따라 에린이 말을 더듬으며 새빨개진 얼굴로 은현과 반대편의 일리아나,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으음, 성검의 복원만 완료되고 바로 날짜를 잡아보자. 우리  다, 상견례 같은 걸 할 정도로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대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저어, 현아, 일리아나님….”

“음?”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에린이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자, 이내 입을 열었다.

“저…집을 나가야 할까요…?”

“뭐?”

“응? 어째서?”

“아니, 그게…두 분의 신혼 생활을 방해하는  좀….”

이전에 일리아나와 은현이 침대 위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던 장면을 목격한 뒤로, 에린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되었던 것이 원인.
킥하고 웃음을 터뜨린 일리아나가 에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있어도. 이제 거기는 아가의 집이기도 하니까.”

“이, 일리아나니임!”

감격에 젖은 눈동자로 일리아나의 거대한 가슴 속에 에린이 얼굴을 묻으며 비볐다.
일리아나는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러지 못하지.’

일리아나는 에린이 아직도 은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에게 과하게 의존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과 은현이 결혼의 날짜를 의논하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가야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보는 것이 그런 그녀의 심리의 방증이다.
에린을 자신의 집에서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에린을 받아줄 곳은 리오드의 저택이든, 아브로스의 저택이든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에린이 마음 편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리라.
그만큼 은현의 존재는 아직까지 에린에게 있어선 마음의 안식처였다.

“아.”

일리아나는 한 가지 생각이 났다는 듯 은현을 불렀다.

“현아.”

“응?”

“네 ‘그분’있잖아.”

“……?”

일리아나의 입에서 베르단디의 존재가 언급이 될 줄은 몰랐는지, 은현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벙어리처럼 일리아나를 쳐다보았다.
은현의 반응을 보며 미소 지은 일리아나는 말을 이었다.

“난 지금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일리아나는 다시 품에 안고 있는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그녀의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없었던 은현은 그저 조용히 앞장 서 걷고 있는 일리아나와 에린의 뒤를 따라가며 집으로 향했다.

◆ ◆ ◆

“이곳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은현은 정신을 자각하자마자 자신을 둘러싼 새하얀 공간을 둘러보며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번 겪어보았던 익숙한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은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이야. 왔구나.]

“여신님.”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서 나타난 베르단디가 천천히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언제나의 습관처럼 은현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자신의 가슴에 닿는 뭉클한 감각에, 깜짝 놀란 은현이 머릿속으로 떠오른 불경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황급히 베르단디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 왜 그러느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섭섭하구나. 굉장히 오랜만에 실체를 만질  있게 되었는데, 아이는 나를 만지는 것이 싫은 것이냐…?]

하계에서도 베르단디의 스킨십은 여전히 많은 편이었지만, 신력으로만 구성된 영체 상태에 가까운 베르단디가 일방적으로 은현을 만질 수 있을 뿐, 그것뿐이었다.
자신을 끌어안고 키스까지 해왔지만, 베르단디의 그 감촉은 느낄 수 있어도, 은현 쪽에서 그녀를 어떻게 만질 수는 없는 이상한 세계의 법칙이 은현을 구속하고 있었기 때문.

‘위, 위험했다….’

자연스레 은현도 베르단디의 포옹에 호응하여, 베르단디의 몸을 끌어 앉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하반신의 힘이 불끈 들어갔기에 깜짝 놀란 순간이었다.
일리아나와의 관계를 가지면서,욕구를 주체할 수 없게 된 은현이 베르단디에게 불경한 생각을 품고 있던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죄, 죄송해요. 그런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일단은 시간이 아까우니 넘어가도록 하겠다. 어서 이동하자.]

“네? 저희 어디로 가는 건가요?”

[그건 가보면 안다.]

베르단디가 은현의 손을 잡자마자, 두 존재를 둘러싼 새하얀 공간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여기는….”

베스타 신전을 연상시키는 성스럽다는 느낌이 묻어나오는 공간이었지만, 베스타 신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고 웅장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여있는 거대한 원탁과 원탁을 둘러싸고 있는 수십 개의 의자들.

[어머나, 왔네?]

[저 아이가 바로?]

[흐으응?]

[후후.]

베르단디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나타난 은현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는 존재들을 보고, 은현은 본능적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수십 개의 의자들 중, 곳곳의 의자들에 앉아있는 존재들 중에는 은현이 알고 있는 얼굴인, 우르드와 스쿨드의 모습도 보였다.

“여신님. 혹시 저분들은….”

[아이의 짐작이 맞다.]

[기다리던 인간도 왔으니. 이제 회의를 시작하지.]

한 여신이 은현을 흘끗 바라보더니, 이내 회의의 시작을 선언했다.

베르단디를 포함한 운명의 세 여신
아르케나 대륙을 재창조한 일곱 여신들
그리고 운명의 세 여신의 사도인 은현
10여신과 한 인간의 ‘신들의 회의’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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