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5화 〉135. 인파이터 사제(3) (135/730)



〈 135화 〉135. 인파이터 사제(3)

“에린,  있었구나.”

리오드의 저택 복도에서 에린을 발견한 은현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응. 요즘엔 에이라 언니랑 자주 대련해보고는 하니까.”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허공을 쳐다보았다.

‘이쪽도 ’언니‘인가….’

테레지아가 일리아나를 언니라고 부르던 그 호칭이 지금은 굉장히 꺼림직 했다.
 그래도 최근 일리아나의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이상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만든 도구를 선물한 영향으로 리오드에게 어떤 결과가 생길지도 걱정이 되는 판국이었기 때문.

“왜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아니, 아무것도. 그래서 요즘엔 어때?”

“으음,  모르겠어. 그래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나랑 언니 둘 다 에밀리아님한테 교육도 받고 있거든.”

“리아한테?”

“에밀리아님 엄청 강하시니까. 나랑 에이라 언니가 둘이 덤벼도 전혀 꿈쩍도 안하더라, 움직임에 대한 조언도 해주시고, 엄청 대단하셔.”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인형한테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이 은현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아는 에린의 호위를 위해서 24시간 경호를 맡긴 상태이며, 일리아나의 ‘골렘’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 바가 있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파는 것으로 학교에서도 무사히 반입될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이렇게 전투에대한 교육까지 해주는 것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은 현상이다.
많은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서 다양한 행동 패턴들을 가지고 있는 에밀리아는 에린과 에이라에게 좋은 정석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대처할 수 있는 요령들을 배우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헤헤.”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에린이 은현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두르며 꽉 끌어안았다.

“리아. 나중에 에린의 교육 내용을 따로 보고해줘.”

“명령을 수락합니다. 예정 시간은 언제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오늘 밤 9시로 하자. 그때까지 정리해놔.”

“알겠습니다.”

“그럼  먹으러 가자.”

“응!”

◆ ◆ 

- 아가리 닥치고 쳐 맞기나 해!

딱!

손가락을 튕기며 은현이 만든 ‘환상세계’속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브로스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신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재현해낸 광경 속에서 하르칸 주교가 아니에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고 속이 시원했는지, 통쾌한 웃음이 리오드의 집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에린과 에이라는 다른 방으로 보내고 어른들만이 있는 자리에서 재현된 과거의 세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유쾌한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것 같은 즐거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큭큭….”

“오라버니….”

심지어 옆에 있던 알렉스마저도 참지 못하고 숨을 죽여 웃고 있는 모습에 엘레노아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평소 신전이 해오던 행태를 생각한다면, 이번 일은 정말 너무 웃겨서 참기기힘들 정도야.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주교님.”

“…….”

알렉스의 감사의 인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에스는 멍하니 일리아나와 테레지아를 응시하고있을 뿐이었다.

“아니에스.”

일리아나와 테레지아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짐작이  은현이 억지로 그녀의 어깨를 치며 정신을 일깨웠다.

“어, 응?”

깜짝 놀란 아니에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곤 헛기침을 하며 알렉스의 감사 인사에 답했다.

“흥, 저건 임시방편일 뿐이야. 나는 정치에는 나설 생각은 없지만, 부정부패는 참지 않는 주의거든. 새로 임명된 주교가  쓰레기랑 똑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을 거라고는 장담 못해.”

“그래도 이번 일로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게 알려지면 저쪽에서도 네 눈치를 보느라 쉽사리 건드리지는 못하겠지.”

“그런데 어떻게 신성국에 계셔야할 대주교님을 이곳으로 모신 거지?”

하르칸 주교가 아르케나 대륙의 대영웅인 리오드를 상대로 그렇게 배짱을 부리고 협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르케나 대륙이 가지고 있는 ‘베스타 신전’의 입지와 특성 때문이다.
마수 토벌, 원정, 전쟁   어떤 경우에서도 ‘사제’라는 직업은 항상 우대를 받는직업이고, 이 사제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케어하며 관리하는 신전은 어느 지부에서나 불가침영역 수준으로 막강한 권위를 자랑한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바로 귀한 직업인 사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매리트로 작용한다.
때문에 왕국에 입장에서는 안정적, 정기적으로 사제들의 지원을 마음 편히 받기 위해서 베스타 신전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것은 타국 또한 마찬가지이며 설령 대륙을 구한 대영웅이 있는 왕국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리오드가 강수를두어 아니에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고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리오드가 있는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아니에스가 있는 에레니아 신성국까지의 거리는 마차를 타고 최대한 빠르게 간다고 하더라도 1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초 장거리나 다름없으며, 왕복의 거리를 감안한다면 최소 2개월에서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사실상 물리적인 거리의 제한 때문에 리오드가 아니에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르칸 주교도 리오드를 상대로 강수를 두고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리오드 개인은 몰라도, 이 나라는 지속적인 사제들의 지원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했다.
하지만 은현과 리오드 쪽에는 초장거리의 제약 따위는 제약이 되지 못했다.

“아, 그건 간단합니다. 일리아나를 시켜서데려오게 했거든요.”

“하르칸 주교는 어째서 검은 마녀의 존재를 염두 해두지 않았지? 후작의 부탁을 받은 마녀라면, 신전의 대주교를 곧바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즈음은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하르칸 주교는 영악한 인물이다.
멍청하지 않은 이상 리오드의 동료인 일리아나가 페르닌에 상주하고 있다는 것즈음은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리아나가  나라의 정치에 관여하기를 극도로 꺼려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리오드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일리아나가 아니에스를 찾아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아니에스가 리오드와 일리아나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지만, 역시 어째서 하르칸 주교가 이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군요.”

뭔가 감춰둔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은현은 생각했었지만, 결국엔 하르칸 주교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제압을 당해 신성력을 잃어버려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그 얘기는 조금 공감해. 난 얘가 텔레포트로  찾아왔을 때, 그냥 귀찮아서 돌려보내려고 했거든.”

“그런데…마음이 바뀌신 건가요?”

“응.”

도대체 무엇으로 대주교의 마음을 바꿀  있었을까?
엘레노아는 새삼 궁금해져 그녀에게 물었다.

“갑자기 얘가 결혼한다고 나보고 주례를 서라잖아. 하, 참내 얼탱이가 없어서.”

“네…?”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오자, 엘레노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심지어 결혼 상대가 뭐? 죽어서 우리가 친히 땅바닥에 묻어줬던 이 새끼라는 거야.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이년이 드디어 첫사랑을  잊고, 외로움에  이겨 나이만 먹어가지고, 미쳐 돌아서 시체랑 결혼하려는 건가? 했다니까?”

“…야.”

“왜, 뭐.”

눈을 가늘게 뜨며 일리아나가 아니에스를 노려보자, 아니에스도 코웃음 치며 그녀의 시선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외모가 변하지 않고, 나이가 많으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공통점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나이’나 ‘결혼’에 대한 화제에서만큼은 일리아나만이 데미지를 입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튼 궁금하면 와보라는 거야. 그래서 따라서 이 나라로 와봤지. 그런데 다짜고짜 신전 안으로 들어가라더라? 들어가서 주교실을 찾아서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하라나, 뭐라나.”

감지를 통해 오랜만에 만난 친우가 주교실의  바로 앞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을 눈치  은현이 그때 행동을 개시하고 하르칸 주교의 기억을 읽어 들인 뒤, 그것을 부추겼다.
이성을 잃게 만들고 스스로가 죄를 시인하도록 유도한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아니에스가 그 사실을 직접 들은 순간, 하르칸 주교는 신성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저어…대주교님. 하르칸 주교는 어째서 신성력을 잃어버린 건가요?”

“내가 베스타 여신께 간청했거든. 저 새끼는 사제의 자격이 없다고. 그래서 베스타 여신은 그 새끼한테서 신성력을 빼앗은 거야.”

“그, 그게 가능한 가요…?”

사제가 기도를 통해서 여신에게 기적을 내려주길 바라는 경우는 있어도, 특정의 누군가를 심판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여신에게 바란다고 그것이 이루어진 적은 단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하르칸 주교의 일만 봐도, 엘레노아는 속으로 분노에 치를 떨면서 어째서 그에게서 신성력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인지, 신의 의도를  수가 없어 의문이 들 정도였다.

“어,  가능해. 그게 나에게만 여신이 내려준 ‘특권’이거든.”

“특권…?”

“여신께 직접 나의 목소리를 올려 간청할 수 있는 특권.”

어찌 보면, 은현이 운명의 세 여신들의 사도로 임명받아 권능을 하사 받은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니에스의 경우에는 16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여신의 간택을 받아 신성력과 강력한 육체, 그리고 특권을 받았고, 은현의 경우에는 양측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은현이 여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또 다른 차이는 사도로 임명되면서 사망 이전까지, 여신은 은현의 부름에 답해주지 않았지만, 아니에스는 베스타 여신에게 간청을 한다면, 그녀의 간청을 베스타 여신은 응해주었다는 점도 있었다.
은현은 그녀의 이 점이 매우부럽게 느껴졌다.
아무런 응답도 해주지 않는 자신의 여신과는 달리, 아니에스의 베스타 여신은 그녀가 간청을 올린다면, 응답을 해준다.
아니에스는 어느 의미로 아르케나 대륙에서 은현과 가장 비슷한 경우로 여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였다.

“아무튼 그래서 난 페르닌으로 왔고 결국엔 언데드가 아닌 은현의 얼굴을  수 있었으니, 나름 재밌었네. 그래서 결혼식은 언젠데?”

“아직 안정했어. 일이 좀 바빴거든. 이번 하르칸 주교의 일을 해결할 겸 우리 결혼 소식도 전하려고  부른 거야.”

“하이고오, 참네, 드디어 소원을 이뤘네. 일리아나?”

“…시끄러워.”

“아무튼, 이걸로 공녀님의 혼담 건도 신전의 수작질도 모두 정리가 되었습니다. 공작님? 이 정도면 책임을 졌다고 해도 무방하겠죠?”

“…그렇군.”

그 책임을 진 결과가 페르닌 지부의 신전의 머리를 갈아치우고, 신전 전체를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결과가 아닐까.

“엿을 먹인다고 한  이렇게 성대하게 먹일 줄이야….”

알렉스도 어이가 없다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가 가진 어마어마한 인맥들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구한 대영웅들을 빽으로 두고 있는 그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아니, 빽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웅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은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있어.”

이야기가 마무리가 될 즈음, 아니에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모두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분위기 상, 이 아가씨의 아버지가 당신 같은데. 맞아?”

“흠, 말해보시게.”

공작가문의 주인에 대한 한없이 무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아니에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녀의 태도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의 지위는 에레니아 신성국의 국교인 베스타 신전에서 교황 다음으로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두 사람 중 한명이며, 사실상 비교는 어렵지만, 왕국의 최고위권력자나 다름없는 아브로스와 비교해서 지위가 더 높을지언정, 결코 낮지는 않다.
오히려 정작 불만을 가지고 있어야할 아브로스가 하르칸 주교를 때려눕혀준 것으로 이미 아니에스에 대한 인상은 극히 좋은 상태였다.
마치 나이 어린 늦둥이 딸을 바라보는 것 같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것에 알렉스도 본인도 모르게 킥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 우리 여신님께서 계시를 하나 내려주셨거든.”

“…계시?”

그러고 보니, 신전의 주교실에서 아니에스가 자신을 보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엘레노아가 떠올렸다.

“흐음…무슨 계시지?”

“당신의 딸, ‘엘레노아 아르미타스’를 ‘베스타의 성녀’로 추대하고 싶어. 허락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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