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133. 인파이터 사제(1)
“아! 오랜만에 주먹 좀 쓰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리네!”
하르칸 주교를 깔고 앉았던 마운트 자세를 풀고, 아니에스가 어깨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목을이리저리 움직이자, 그녀의 몸에서 ‘우드득’소리가 났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본 엘레노아가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저, 정말…아니에스 대주교님…이신가요?”
“응? 맞다, 그런데 얘는 뭐야?”
믿을 수 없다는 말투와 표정으로 묻는 엘레노아를 보며 아니에스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흘끗 리오드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엘레노아가 정중하게 자신의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자기를 소개했다.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여식이자, 베스타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중위 사제, 엘레노아 아르미타스입니다. 이번에 대주교님을 만나 뵙게 되어, 그…정말로 영광입니다.”
아니에스의 뜻밖의 모습을 봤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않았기 때문인지, 그녀의 표정은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엘레노아 아르미타스…아! 네가 이번에 우리 여신님께서 계시를 내리신 그 애구나?”
“…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는 아니에스를 보며 엘레노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계시…?”
“뭐,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엘레노아와의 대화는 뒤로 미룬 아니에스는 자신이 걷어차 버린 문 쪽으로 걸어갔다.
주교실을 나와 복도에 선 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후우웁!”
아니에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리오드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덩달아 은현도 양손을 들어 올렸지만, 자신의 귀를 막는 것이 아니라, 엘레노아의 귀를 막아주었다.
“지금 뭐하시는….”
“아무나 한 며어어어엉! 주교실 앞으로 당장 튀어와아아아아!”
신전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아니에스의 목소리에 신전 안에 있던 사제들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들썩이며 복도로 나왔고, 주교실 앞 복도에 서있는 고급스러운 사제복을 입고 있는 금발의 어린 소녀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복도 위에서서 가만히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멀뚱멀뚱 서있는 신전의 사람들을 보고 아니에스가 다시 한 번 인상을 썼다.
콰앙
다리에 힘을 주어 바닥을한 번 차자, 돌로 만들어진 바닥이 아니에스의 발에 박혀움푹 파였고, 그 광경을 목격한 신전의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대주교의 말이 말 같지가 안나보네. 다들? 5초 준다.”
‘대주교’라는 말에 반응하여 또 한 번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5, 4, 3….”
“왔습니다! 왔어요! 부, 부디 노여움을…!”
“니가 여기 왕고야?”
“예?”
신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아니에스의 카운트다운을 들은, 그녀에게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사제 하나가 황급히 그녀의 앞으로 달려왔고, 아니에스의 뜬금없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가 이 신전 안에서 가장 대빵이냐고.”
“아, 아닙니다….”
“그럼 지금 이 복도에 있는 새끼들 중에 대빵이 있어?”
“그게….”
이 신전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라면, 당연 떠오르는 것은 하르칸 주교였기에, 사제는 주교실 안으로 시선을 돌렸고,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워 붉은 떡 덩어리가 되어 있는 하르칸 주교를 확인하자마자 사색에 잠겼다.
“주, 주교님!”
“야. 어딜 봐. 지금 내가 묻고 있잖아.”
쿵
아니에스가 다시 한 번 바닥을 가볍게 걷어차자, 신전의 바닥이 울리는 소리에 몸을 움찔 떨며 사제가 공포에 찬 표정으로 아니에스를 내려다보았다.
“한 번 만 더 내 질문에 대답 안하고 딴 데에 정신 팔리면, 저 떡 덩어리 새끼마냥, 니 이빨들도 옥수수를 뽑듯이 다 뽑아버릴 테니까. 알아서 처신 잘해.”
“아, 아아아알겠습니다….”
자신의 모든 이빨들이 뽑히는 섬뜩한 상상을 한 사제가 이를 달그락 거리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신전 안에서 네 지위는 어느 정도 위치지?”
“주, 중위 사제입니다. 신전 안에서의 서열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네 뒤에 멀뚱멀뚱 서서 여길 훔쳐보고 있는 저것들 중에 이 신전의 고위직을 담당하는 새끼들이 있어?”
“어, 없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없습니다!”
“흐음, 이렇게 소란을 피웠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거지?”
신전의 책임자들이라는 양반들이 신전 안에서 이 난리가 낫는데도 불구하고 코빼기하나 비치지 않고 있는 것에 아니에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개판이네, 진짜.”
“무슨 소란이냐!”
“오? 왔나?”
그리고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자신 쪽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를 들은 아니에스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소리친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은색 빛의 휘황찬란한 갑옷들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아니에스 쪽으로 걸어왔다.
“저건 누구야? 지위가 높은 새끼야?”
“저, 저희 신전의 실력 있는 에이스 중 한 분이신 성기사님이십니다. 아이테르를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특출 난 검술 실력을 선보이고 신성력을 품게 되어 베스타 신전의 성기사로 임명된 분이십니다. 아버지가 페르니아스 왕국의 백작 귀족이시니 건드리시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 부디 자비를….”
“그건 저쪽에서 보여줄 태도로 정할 일이고.”
“네 년이냐? 신전 안에서 이런 소란을 피운 것이?”
마침내 아니에스 앞에 당도한 성기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아니에스를 노려보며 추궁했다.
“그런데?”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여긴 이 신전의 관리자님이신 주교님이 계시는 방 앞…주, 주교님!”
손가락으로 주교실 안을 가리키며 소리치던 성기사가 주교실 안에서 피떡이 되어 있는 하르칸 주교를 발견하고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내 그의 경악이란 감정이 점차 분노로 바뀌어 분노의 표출을 해야 할 대상으로 아니에스를 노려보며, 성기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검, 뽑았네?”
“주교님을 저렇게 만든 게 네놈이냐!”
“아, 그래서 뭐 어쩔 거냐고.”
“신전 안에서 이런 신성모독을 네 년의 죄를 내 검으로 심판하도…크허어억!”
성기사의 말을 더 들을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엘레노아는 검을 뽑아 자신에게 겨눈 성기사의 복부에 왼쪽 주먹을 꽂아 넣었고, 기습을 당해 성기사의 허리가 주춤해진 틈을 타, 아니에스가 곧바로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오른쪽 주먹으로 그의 왼쪽 옆구리에 강력한 바디 블로우를 때려 넣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몸이 밀려난 성기사가 그대로 벽에 부딪친 것도 모자라, 그가 부딪친 벽마저도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부서져버리며 성기사의 몸 위에 벽의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읍…우웨액!”
“수, 순은과 미스릴로 제작됐다던 성기사님의 가, 갑옷이….”
복부와 옆구리의 강렬한 통증으로 헛구역질도 모자라서, 위액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성기사를 멍하니 보았던 중위사제가 아니에스의 권격을 맞고 찌그러진 성기사의 갑옷을 보고 사색에 잠겼다.
“음? 저게 미스릴과 순은이라고? 손맛이 전혀 아닌데? 구라가 아니면, 사기 당했겠지.”
“끄으으…절대,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는 아니에스를 보며 성기사가 죽일 듯 시선으로 노려보자, 아니에스가 피식 웃으며 발을 들어 올렸고, 성기사의 어깨를 그대로 짓밟았다.
“야.”
“끄아악!”
아니에스가 신고 있던 힐이 무시무시한 각력을 통해, 성기사의 어깨 갑옷의 이음쇠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고 살을 파고들었다.
아니에스가 다리를 천천히 비틀자, 어깨를 관통한 힐이 움직이면서 성기사에게 더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너, 이거 안 보여?”
“그건….”
아니에스가 그의 어깨를 짓밟으면서, 자신의 왼쪽 가슴 위, 사제복에 걸려있는 뱃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성기사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은백색의 한 쌍의 날개로 장식되어 있고, 그 중심에 양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는 형태는 바로 베스타 여신에게 바치는 신성함을 의미한다.
그 휘장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르케나 대륙에서 단 세 명 뿐.
베스타 신전의 최고위 자리를 가지고 있는 세 사람, 교황과 두 명의 대주교 뿐 이다.
즉 자신의 앞에 서서 힐로 자신을 거칠게 짓밟고 있는 금발의 어린 소녀는.
“대, 대주교님….”
“응. 정답이야. 넌 지금 그 대주교한테 검을 들이밀었던 거고.”
“…….”
어째서 대주교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왜 누구도 몰랐던 것일까, 직함에 맞지 않는 그녀의 어린 외모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성기사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런 그의 생각들을 지우는 단 하나의 감정이 전신을 오슬오슬 떨리게 만든다.
성기사의 얼굴에 공포의 감정이 서린 것을 확인한 아니에스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관통한 힐을 빼냈다.
“뭘 쫄고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알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대신 두 번은 없다? 알겠니?”
“알…겠습니다….”
상냥하게 눈웃음을 짓는 소녀의 미모에 홀딱 빠져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성기사에겐 더 이상 어깨의 통증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조용히 허리를 굽혀 성기사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댄 아니에스가 기도의 주문도 없이 신성력을 일으켜 기적을 재현시켰다.
[베스타 여신의 축복]
[힐]
“아….”
어깨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멎고, 통증이 사라지며, 관통된 상처가 말끔히 낫는 기적을 경험한 성기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녀흘…허녀흘 후자아라!”
“응?”
바람이 새는 소리로 주교실 안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들은 아니에스가 고개를 돌렸고, 목소리의 주인을 눈치 채자, 입꼬리가 귀에걸리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허녀흘 후자아!”
“뭐라는 거야. 등신이 자꾸.”
하지만 대강 바람 빠진 허무한 소리였음에도, 그의표정과 어조를 본다면, 아니에스를 붙잡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라 알아듣는 건 별 문제도 아니었다.
[여신님. 자비 좀.]
[베스타 여신의 축복]
[하이네스 힐]
“저년을 당장 붙잡…어…? 이, 이빨이! 내 이빨이!”
아니에스가 기도를 통해서 하르칸 주교의 몸을 원상태로 되돌리자, 하르칸 주교가 돌아온 자신의 이빨과 얼굴을 보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기적의 광경을 본 엘레노아가 속으로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축복의 기도가 뭐 저렇게 성의가…그런데도 행사하는 기적의 수준이…나랑은 차원이 틀려….’
뽑혀진 이빨들이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은 팔다리가 절단된 결손부위를 다시 이어붙이는 것처럼 상위, 고위 사제들만이 일으킬 수 있는 고위주문 중 하나다.
명백히 사제로서의 차이가 드러나는 자신과 아니에스의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에 엘레노아가 감탄한 표정과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년을 붙잡아라! 내 신전에서 감히 나를 폭행하고, 내 신전을 이 꼴로 만들었다! 당장 저년을 체포….”
“야.”
“하거…히익!”
싸늘한 살기가 묻어나오는 아니에스의 기세에 짓눌린 하르칸 주교가 아까 전까지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네가 저지른 짓들을 증명해낼증거가 없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역으로 나를 몰아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소용없어.”
“무, 무슨 말이냐!”
“너 이제 신성력 못 쓰잖아.”
“……!”
정곡을 찔린 표정을 짓는 하르칸 주교의 표정을 본, 복도로 나와 소란을 관망하던 신전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로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신성력을 쓸 수 있었으면 니가 직접 니 상처들을 치료했겠지. 그런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신께서 너에게 내린 은총을 거두어들이신 거야.”
“마,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 이랬던 적은 한 번도…!”
“네가 저지른 일들을 심판하는 데는 심문도, 증거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 신께서 너를 직접 심판하는 데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거든.”
여신이 직접 하르칸 주교에게서 신성력을 거둬 들여갔다는 뜻은 그가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 사제와 맞지 않는 일들을 저질렀다는 것을 신이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설마…네 년이…? 네 년이 무슨 수로!”
“다 수가 있지 않겠어? 내가 말했잖아. 넌 오늘부로, 파면이라고. 그것보다 앞으로의 일이나 걱정해야 하지 않겠어?”
“…무슨뜻이냐.”
“내가 왜 너를 굳이 회복시켜줬을 것 같아?”
우드득
목과 손가락을 움직여 관절을 지압하자,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몸을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스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눈치를 챈 하르칸 주교가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아니에스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그만….”
“조용히 쓰러져 있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주제를 모르고 나대니까, 매도 더 많이 맞는 거야.”
“그만! 항복하겠다! 제발…크허억!”
“아가리 닥치고 쳐 맞기나 해!”
신의 힘과 지위를 악용하여 백성들과 신전 사람들을 착취했던 비리덩어리 사제의 최후는 참혹한 결말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