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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화 〉131. 원치 않는 혼담(2) (131/730)



〈 131화 〉131. 원치 않는 혼담(2)

“있었어요.”

“저, 정말인가요?!”

“네.”

“그러면 어째서…!”

미리 언질을 주고 사건을 대비하도록 준비를 하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개인에게는 너무 큰 짐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됐는데….”

“미안해요….”

“공녀님. 진정하세요. 왕녀님이라고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왕녀님…. 너무 감정이 북받쳐서….”

“아뇨. 이해해요. 엘레노아는 이번 원정에 직접 참가하면서 많은 참상들을 목격했을 테니까요.”

인간형 키메라 마수에게 공격당해 상처 입었던 원정대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사령술사의 부하였던 산적들에게 겁탈 당했던 여자들, 그리고 사령술사와 연금술사의습격을 받았던 마을들의 참상을 떠올린 엘레노아는 안타까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번 일은 산적에게 습격당한 마을의 생존자 소녀가 우연찮게 페르닌으로 흘러 들어온 것을 계기로 신고가 들어온 아르티아 쪽에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날 걸 알고 있어도,사건이 발생하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는 건 지금의 왕녀님에게는 불가능했어요.”

“…맞는 얘기지만, 팩트로 때리지마세요. 더 짜증나니까.”

유리아가 이번 사령술사 사건의 소식을 들었던 것도, 아르티아가 원정에서 복귀하고 사령술사와 연금술사에 대한 이야기가 궁정회의를 통해서 오가는 것을 다른 시종들과 하녀들을 통해서 뒤늦게 접한 소식이었다.
이번에도 아무런 대처도 못하고 상황이 한참이나 벌어진 뒤, 뒤늦게 소식을 접했던 것에 유리아가 얼마나 분한 기분을 느꼈는지,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전생의 기억’ 속에서  세상의 줄거리를 알고 있고, 미래의 일들이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상황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잔혹한 사실이었다.
은현의 말대로 아무리 미래의 단편의 사건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유리아에겐 그 사건들에 미리 대비할  있을 만한 능력이 없다.
개인의 능력도 부족할뿐더러, 자신의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들어줄 믿을 수 있을 만한 자신의 사람조차도 한 명도 없는 상태.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의 앞에서 왕녀님이 비밀을 밝히도록 서두를 띄운 겁니다. 알렉스, 어떻게 생각하지?”

“…쓸데없는 참견이군. 이런 걸로 너의 도움을 받다니.”

유리아가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의 비밀을 밝혀주기를 원했던 알렉스에게는 지금의 은현의 배려가 쓸데없는 간섭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은현이 놓아준 다리를 놓치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왕녀님. 앞으로는 제가 왕녀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고민이나 상담해주실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사양하지 말고 저에게 의지해주십시오.”

“괜찮…나요? 내 얘기를 믿어주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알렉스의 반응을 들은 유리아가 맥이  풀리며 의자에 몸일 기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은현의 이외에도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녀의숨통을 조금씩 트이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전 이번 사령술사 사건에 대해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건 괜찮습니다. 왕녀님. 지금부터 제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왕녀님의 ‘예지’속에 나오는 사령술사의 이름은 ‘마리우스 홀튼’이 맞습니까?”

“맞아요.”

“그 자에게 ‘사령술’을 가르친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

“응?”

딱딱하게 굳어지는 은현의표정을 보고 유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사정을 알고 있는 엘레노아만이 은현의 눈치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이었다.

“후우…. 처음부터 이러기냐. 진짜….”

“뭐예요? 지금 나한테 한 말이에요?”

“아뇨. 그럴 리가요.”

유리아가 지구에 있을  읽었다던 이 세계의 운명의 흐름이 적힌 ‘운명의 메르헨’이라는 소설 속에는, 메디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누구에게 투덜거리는 것인지 모를 중얼거림이었다.
그녀가 있었던 웹소설 속의 이야기는 엄연히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시간선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웹소설 속의 이야기와 현재 세계의 이야기의 흐름이 명백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던 원인이 너무나도 간단히 나왔다.
혹시나 싶어 은현은 유리아에게 다시 질문했다.

“왕녀님. 예지 속에서는 사령술사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으음, 왕국 측에서 사령술사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되는 시기는 지금보다 한참 뒤에요. 변경 쪽에 존재하는 소규모의 지방 영지가 사령술사의 습격을 받아 대규모의 언데드들이만들어지면서 사령술사를 죽이기 위한 토벌대가 편성이 되거든요. 거기서 선봉에 서는  아르티아 기사단이에요.”

지방 영지를 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영지에 속하지 않은 소규모의 자치 마을을 모두 먹어치운 뒤라는 시점이며, 지금보다 더 큰 희생이 치러진 뒤에야 왕국 측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명백히  세상의 흐름과는  차이가 있었다.

“산적에게 습격당한 마을의 생존자소녀가 우연찮게 페르닌으로 흘러들어온 것을 계기로 아르티아에 도움을 요청했던 일은 없었습니까?”

“글…쎄요…. 거기까진 저도 잘…. 하지만 이 시기의올리비온 후작은  에린이라는 소녀가 수도를 불태운 사건 이후로 기사단을 정말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제대로 쉴 여유도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어쩌면 도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에 병력을 할애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을까요?”

그녀의 추측을 근거로 생각해보자면, 이번에 리오드가 재빨리 원정대를 편성하여 키메라 토벌을 추진했던 것에는 에린의 폭주가 시작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여파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결국 은현이 에린을 거두고 그녀의 멘탈을 케어했던 것이 스노우볼이 굴러가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걸로 은현은 확신했다.
메디아가 소설 속의 전개와는 다르게  세상에 나타났던 이유는 순전히 은현 때문이었다.
마리우스는 은현이 메디아의 총애를 받는 남자라는 것을 눈치 챘고 시련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영혼과 모든 마력을 대가로 바쳐서, 사룡을 1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부활시킴과 동시에, 메디아의 정신체가 넘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메디아는 은현을 만나기 위해 마리우스의 남은 영혼과 마력들을 사기(死氣)로 바꾸어 세계에 현현했다.

“X발, …나 때문이네.”

“이봐요.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은현의 중얼거림을 들은 유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대강의 차이점은 알았습니다. 이제는 앞으로의 일을 알아두고 대비를 해둬야겠죠.”

은현이 이 자리를 만든 진짜 목적은 이것이었다.
앞으로 있을 문제나 사건들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함임을 알아들은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왕녀님의 예지 속에서는 사령술사를 처리한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지나요?”

“으음, 저 그게….”

유리아는 잠시 말을 망설이더니, 엘레노아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참을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녀님?  그러시죠?”

그녀의 눈빛을 읽은 엘레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유리아가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엘레노아가 시집을 가요.”

“예?”

“뭐라고요?!”

“흐음….”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이 터진 것에 알렉스와 엘레노아가 깜짝 놀라며 각각의 반응으로 되물었고, 은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누구한테…?”

순간적으로 엘레노아가 은현의 얼굴을 훔쳐보고, 눈이 마주칠까봐 두려워 황급히 유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베스타 신전 페르닌 지부의 주교인 하르칸 주교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는 걸로….”

“으윽….”

아무리 벌어지지 않은 사실이고,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엘레노아는 유리아의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고 양팔을 감싸며 몸을 떨었다.

“아는 사이냐?”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는 엘레노아에게 알렉스가 혹시나 싶은 시선으로 자신의 동생에게 물었다.

“최근에는 본 적이 없지만…작년에  번 베스타 여신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신전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를 보는시선이 너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온몸을 위아래로 훑는  남자의 시선을 떠올린 엘레노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왕녀님! 제가 왜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가나요? 그 미래를 피할 순 없나요? 제발요!  그런 남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에, 엘레노아…. 일단 진정 좀….”

다급하다 못해, 간절하기까지 한 애원의 외침을 들은 유리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오빠인 알렉스에게 눈짓으로 구원의 요청을 보냈다.

“엘레노아, 진정해. 일단은 얘기를 들어보자.”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남자가 저를 쳐다보는 시선을 몰라서 그래요! 너무 기분 나쁘고 불쾌한 그 시선을….”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군요. 정략을 통한원조가 조건인가요?”

뜻밖에도 엘레노아의 의문과 동요를 해소시켜준 것은 은현의 목소리였다.
그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유리아가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이후의 상황은 정말 참담해요. 에린이라는 아이의 폭주로 수도는 불타버린 상태고, 심지어 지방 영지들도 사령술사의 피해로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피해를 복구시키는 것만으로도 나라 전체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 와버리고 말아요. 거기에서 하르칸 주교가 아르미타스 공작가를 찾아와 뛰어난 사제이기도 한 엘레노아에게자신의 아들과의 정략혼을 제안해요.  대가로 수도와 지방 영지에 교회의 이름으로 대규모의 구호물품을 원조해주기로 약속을 하는 거죠.”

유리아의 설명을 들은 엘레노아의 양손에 힘이 실려 꽉 쥐어졌다.

“아버지와…오라버니가…그거를 용납 했나요…?”

잔뜩 실망의 기운이 담긴 그녀의 어조가 조심스레 떨리며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유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엘레노아가 직접 하르칸 주교를 찾아가 그 정략혼을 받아들이게 되요.”

“제가…직접 말 인가요…?”

“나라 전체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던 시기였으니까. 적어도 백성들에게 원조되는 구호물품을 무시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

주먹을 꽉 쥔 엘레노아의 양손이 자신의 치마를 붙잡고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알만하군요. 공녀님의 재능이 탐났던차에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비집고 들어오는 건가요.”

“사령술사와의 전쟁에서 엘레노아도 아르미타스라는, 공작가의 이름 아래에 뛰어난 사제로서 참가하면서 그 이름과명성을 알리게 되는 사건이니까요. 많은 사건과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엘레노아는 이후 상위 사제로 승격되는 발판이 마련되는 사건이기도 해요.”

은현에 의해서 강제로 신성력의 위계가 올라간 엘레노아의 수준은 이미 상위사제의 수준에 발을 들이밀고 있는 상태였다.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하르칸 주교 쪽에서 엘레노아를 차지하기 위해 수작질을 걸어오리라고는 은현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략혼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하르칸 주교의 욕심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초강수를 띄워오는 노골적인 그 의도에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당신…지금 웃음이 나와요…? 저는 지금 팔려가게 생겼는데?!”

“아, 죄송합니다. 공녀님께는 심각한 상황이었죠.”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을 짓고 있는 은현의 태도에 발끈 한 엘레노아가 은현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수작질을 예상하고는있었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일을 ‘예지’할 수 있는 존재에게서 직접 들은 자신의 정략결혼 사실에 대해서는 그 파급력이 남달랐다.
엘레노아도 이미 혼기가 어느 정도 들어찬 상태이며, 공작가문의 여식으로써 정략결혼에 대해 각오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몸과 얼굴을 훑어보며 음흉한 시선을 지었던 하르칸 주교의 아들,  남자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갑작스레 엘레노아가 자신의 머릿속에 번뜩 떠올린, 은현의 말을 그녀 스스로가 입에 담았다.

“…책임져요.”

“예?”

“책임지라고요!  책임져준다고 했잖아요! 당장 저 미래 좀 어떻게 해달라고요!”

은현의 멱살을 움켜쥐고 거칠게 흔들기 시작하자, 은혀의 머리가 힘없이 위아래로 흔들렀다.

“아, 뭐…약속했으니까. 그러죠.”

“…뭐요?”

굉장히 가볍게 대답하는 그의 태도에 엘레노아는 멱살을 쥐어흔들던 손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았다.

“애초에 잊으셨던 거 아니죠? 같이 신전에 엿 먹이기로 했던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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