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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125. 망자의 여왕(2) (125/730)



〈 125화 〉125. 망자의 여왕(2)

‘여신님!’

[알았다!]

다급하게 여신을 부르자, 여신이 호응하여 사도인 은현에게 부여된 여신의 가호의 힘을 보충시킨다.
정신체인 현재의 메디아의 접근을 차단시켰던 가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베르단디의 호의를 이용하는 형태였지만, 일리아나에게 접근한 메디아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왜 낯선 여자에게서 내 남자의 냄새가 나는 거니?”

일리아나의 몸을 더듬으며 냄새를 맡는 메디아를 따라 붙어 그녀의 얼굴에 있는 힘껏 주먹을 때려 넣었다.

빠악

사정없이 때려 넣은 은현의 주먹이 메디아의 뺨을 강타했고, 그녀의 몸이 튕겨져 나가듯이 허공을 날았다.

“아프네.”

“실체화도 가능한 건가.”

정신체 상태로만 있을 수도 있는 줄 알았는데, 일리아나의 몸을 더듬는 행위나 자신의 주먹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을 떠올리면, 방금 전의 메디아는 명백히 실체가 존재했었다.

“으음, 그런데 이 마력의 냄새, 어디선가 많이 맡아봤다 했는데, 너 엘리시아의 딸이구나? 아니, 딸이라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나. 자손?”

“뭐…?”

“뭐야.  태생도 몰랐니? 마녀의 피를 이어 받았으면서?”

“일리아나, 귀 담아 듣지 마.”

“현아?”

“후후, 현이는 정말이지. 마녀들한테 사랑받는 존재라니까.”

재미있는 것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는 메디아의 표정에 은현의 얼굴이 심하게 뒤틀린다.

“그래. 그 얼굴이 너무 그리웠어. 기껏부활했는데, 네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아서, 기껏 되살아나서 힘을 모으고 널 위해서 기다렸는데 의욕을 잃어버렸거든. 다시 한  죽여주기를 원했는데. 그 경멸이 담겨 있는 너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메디아는 국가 규모의 몇 만이나 되는 인간들을 학살하고, 사망자들을 사령술로 부활시켜 자신의 종복으로 만들어 홀로 군단 규모의 병력을 구성시켜 대륙을 혼란에 빠뜨린 최대최악의 인간  하나였다.
수 만 명의 인간들을 학살하고 그들에게서 뽑아낸 영혼과 사기(死氣)를 먹어치움으로써 메디아는 어느 시기부터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초월의 존재가  이후부터는, 자신의 사령술을 개량하여 지성이 한없이 낮은 마수들도 사령술로 부활시키고, 사령마수들의 본능마저 굴복시켜 자신의 종복으로 삼는 기함을 보여주기까지.
그야말로 일인군단이라는 최악의 대재앙  자체.
때문에 그녀에게 붙여진 당시의 이명이 ‘망자(亡子)의 여왕’.
그런 망자의 여왕이 어느 날, 메디아는 자신의 사령군단들을 학살하고 다니면서 전장을 누비는 남자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망자의 여왕의 목에 검을 꽂아 넣을  있는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남자의 위용에 시선이 끌렸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수만 명의 인간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 남자만이 쓰러지지 않고 자신의 군단에 맞서며 더러운 피로 전신이 더러워진 그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그 이후로,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
자신을봐주지 않을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신에 대한 생각만을 해주길 바라며,
인간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을 벗어난 괴물은 어딘가 뒤틀려 있다.
사랑을 모르는 괴물은 애정결핍으로 인해 생긴 잘못된 감정을 사랑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더욱 갈구하기 위해 더더욱 광기에 빠져간다.
잔뜩 일그러져 있는 황홀한 표정으로 광기에 젖어있는 두 눈동자가 은현을 응시한다.

“사령이 되면서, 힘을 회복시키는 동안 혼자서 많은 상상을 했어.”

죽고 영혼만이 남은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힘을 회복시키면서 언젠가 다시 은현을 만나게  날을 손에 꼽아 기다렸다.

“날 얼마나 생각했을까? 내가 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죽인 이후,  생각을 하긴 했을까? 날 너무 곱게 죽인 게 아닐까, 하고 고민이라도 했을까? 팔다리를 찢어놓고 내장을 짓이기며 다져버릴 때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줘야했다고 후회하진 않았을까? 응? 어땠어?”

마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줬냐고 물어보는 애인의 물음과도 같은 해맑은 미소가 이 상황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애정을 갈구하고 그동안 확인받지 못했던 사랑을 확인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격렬한 감정들.
은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혐오, 경멸, 분노의 다양한 감정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쾌락에 젖어 온몸을 비틀거리고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

“하아아…그래….  아직 사랑하고 있구나아….”

“뭐, 이런 미친년이…”

“답이 없군….”

기가 차다 못해 질린 시선으로 메디아를 바라보는 일리아나와 리오드가 중얼거린다.
은현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메디아를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쏘아보며 보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그의 반응을 보고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새가 심각하게 뒤틀려있다.
사랑하는 남자가 보내오는 경멸과 혐오의 시선이 메디아의 가슴을 쿡쿡 찌르고, 간지럽히며, 쾌락을 느끼게 만들어 아랫도리를 축축하게 젖게 만드는 이 기분이 ‘사랑’이라고 그녀 스스로가 멋대로 정의한 것이 심각한 원인이다.
은현의 입장에서는 싫다고 말해도 자신의 경멸과 혐오스러운 시선과 반응들을 보여 봤자, 그것을 자신의사랑의 표시라고 착각하고, 반대로 입이 찢어져도 저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할  없는 것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여신이시어!]

[베스타의 축복]
[퓨리피케이션]

사룡의 브레스를 막는 것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신성력을 끌어다 썼던 엘레노아가 마른 우물에서 물을 쥐어짜내듯 겨우 회복시킨 신성력을 이용해 정화의 기도를외친다.

파지직

“이건…신성마법?”

신성력에서 발현된 청렴한 기운이 메디아를감싸고 그녀의 정신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메디아의 정신체를 이루고 있는 에너지는 엘레노아의 신성력과는 반대되는 상극의 기운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못해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는 것이 지금의 신성마법을 통해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니가 뭔데,내 남자한테 이래라저래라 하고 지랄이야. 당장 안 꺼져?”

“흐응…?”

사납게 자기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처럼 은현을 뒤로 숨기며, 앞으로 나서는 일리아나를 보며 메디아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였다.

“일리아나, 나 괜찮아. 내가 얘기할….”

“아니, 넌 가만히 있어. 지금 여기서 니가 나서봐야 역효과라는  모르겠어? 저거 정신상태가 진짜 이상한 미친년이라고. 그냥 너가 없는 게 나아.”

이내 피식 미소를 짓는 메디아의 얼굴에서는 여유로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재밌네. 그런데 별로 상관없어. 현이가 지금  같은 것 하고이어져 있어도.”

“개소리를….”

“괜찮아. 결국엔 현이는 나에게로 오게 되어있으니까.”

“…….”

“그때도 그랬어. 많은 동료들과 함께 했지만, 결국 나에게 도달했던 건, 현이 하나  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운명인거야.최종적으로 날 이해할 수 있는  현이 밖에 없고, 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나 밖에 없어.”

“이 미친년이 진짜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진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을 내뱉는 메디아의 행동에 결국 일리아나의 이성이 끊어지며, 메디아를 향해 상위 자릿수의 마법들을 마구 난사한다.
제대로 된 공략법도 아닌, 그저화를 풀기 위해서 마력을 퍼부은 마법들이 정신체인 메디아의 영체를 투과하고 애먼 숲과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후후, 나와 현이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웠던 시간이 얼마였다고 생각하니?”

“……?”

“30년이야. 30년 동안 나와 현이는 전쟁을 벌여왔어. 그 동안 현이의 옆에  같은 여자, 동료들이 하나도 없었을까? 언제나 혼자였을까?”

“그건….”

“결국엔 다 죽었어. 현이를 남겨두고. 영생을 살아가는 불멸자라는 존재는 언제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입장의 존재지. 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현이를 찾지 못하면서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운 감정을 느꼈는지 몰라. 아마 현이도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평생을 그런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겠지? 그러니까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우리 밖에 없어.”

가벼운 걸음걸이의 맨발을 천천히 앞으로 내딛으며 우아한 발걸음으로 메디아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다가오지…!”

일리아나의 몸을 투과하고, 순식간에 은현의 앞에 당도한 메디아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은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는 또, 너의 소중한사람들 모두가 죽고,  혼자만이 나에게 도달하는 거야. 그때의 그 표정을 볼 수 있었으면좋겠네.”

은현이 다른 여자와 이어져 있어도 상관없었다.
그가 매력적인 남성이라는 것은 메디아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독점욕이나 질투 같은 추한 감정은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은현을 다른 이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생겨나는 감정이었으니까.
세상의 끝에서 마지막에 남아 있는 이들은 불멸의 존재에 가까운 은현과 메디아다.
결국 마지막에 은현을 가지게 되는 것은 메디아, 자신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오는 승자의 여유와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메디아는 지금의 은현의 유희와 방황을 기꺼이 받아들여주고 기다려줄 용의가 있었다.

“그럴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죽여줄게.”

“하아…. 나도 당장 너와 사랑을 나누고 싶지만, 너는 지금의 나를 죽이지 못해. 지금 내 정신체는 극히 일부의 힘이거든. 본체는 지금 마계에 있어서 지금의 나를 죽여 봐야 소용이 없어.”

“마계…라고?”

안타까운 듯, 중얼거리는메디아의 말 속에서 ‘마계’라는단어에 은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것은 리오드와 일리아나 또한 마찬가지.
20년 전, 미르바빌라 제국의 황제가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사용하려 했던 방법이 바로 마계로 통하는 통로를 열어젖히는 방법이었다.

“넌…마계를 다시….”

“응? 아니? 나는 마계를 직접적으로 열 생각이 없어. 방법도 없고. 하지만…우리는 운명의 실로 이어져있으니까, 언젠가 만날  있지 않을까? 후후.”

“닥쳐.”

그때 저지했던 계획이 다른 곳에서 다시 실행되려는 것일까.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저 아이를 거둬들인 게 완전히 쓸모가 없지는 않았네. 이렇게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소환까지 해주고 말이야. 후후, 정말 기특한 아이야. 저 아이들은 내가 데려가도록 할게?”

매우 정중하고 부탁을 하는듯한 태도였지만, 이미메디아의 말을 끝으로, 마리우스와 레나트의 시체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리고 현이한테 선물로 사실 하나 알려줄게.”

또 무슨 개수작인지 이해를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현이 메디아를 노려본다.

“이 땅에 사령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 이건 내가 저 아이에게만 전수한 거거든. 그러니까  아이의 시체를 내가 데려가는 이상, 이 땅에 사령술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 내가다시 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말이지.”

“…무슨 속셈이야.”

“이 땅에서 내가 허락한 놈도 아닌 다른 새끼가 내 사령술을 쓰고 있는  참을 수 없으니까. 마치너를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거든.”

“…….”

도저히 이 여자의 감성을 이해할  없다.
은현은 메디아를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끔찍한 기억과 경험을 안겨준 혐오스럽고 경멸스러운 존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메디아는 은현을 자신의 연인이라도 되는 것인  확정을 짓고 있는것이 자연스레 일리아나의 표정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무슨 개소…!”

“사랑해.”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여왕의 달콤한 속삭임을 끝으로, 그녀의 정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사기가 흐트러지며 형체도 없이 사라져갔다.

“…….”

자기 할 말만을 하고 사라져버리자, 일리아나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저, 저어….”

잔뜩 눈치를 보고 있던 엘레노아가 급하게일리아나를 위로하려 들었지만, 리오드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제지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엘레노아가 리오드의 손에 이끌려 일리아나에게서 거리를 급하게 벌리자, 타이밍 좋게 그녀의 머릿속에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

조용히 은현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피하려던 순간.

“어디가?”

“예? 아니요? 어디 가려고 안했는데요?”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내가 그랬나? 기억이 잘  나는 걸?”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을 노려보기를 몇  후, 일리아나가 은현의 멱살을 잡아끌어, 은현이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리곤 멀리 떨어져있는 리오드와 엘레노아의 위치를 한 번 확인한 뒤, 은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일단 집에 가자마자, 한 번 하자.”

“뭐?”

“그 미친년이 아까 내 몸을 더듬으면서  목덜미에 냄새를 맡았어. 기분이 아주 더러워. 이번 기회에 너로 씻어낼 거야.  이번에 진짜 오래 참았어.”

“…….”

“그리고 마치, 니가 마치 자기 것인 양 당당하게 말하는 꼬라지가 아주 화가나.  받아 죽겠어.”

“아니. 그건 내 탓이 아닌데…. 그 미친년이 스토커마냥 나를….”

“알아.  탓이 아니지.  미친년 탓이기도 하고. 하, 흑마법? 사령술사? 두고 봐. 그년은 꼭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뭐? 불멸? 영생? 그래도 네가 한 번 죽였잖아. 그렇지?”

“어? 그, 그렇지.”

“한 번을 네가 죽였는데, 두 번을 내가 못하리라는 법도 없지.  미친년이 감히 나를 도발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눈을 불태우며 이글이글거리고 있는 일리아나의 모습이 은현은 왠지 모르게 두렵게 느껴졌다.

“리오드!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거야! 빨리 와! 당장 페르닌으로 갈 거니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언성을 높이는 일리아나의 모습을 보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는 리오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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