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121. 사령술사 추적(4)
“다음.”
우우웅
“다음.”
우우웅
“다음.”
“우읍….”
“은현, 조금 쉬도록 하지. 공녀가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도를 기반으로 좌표들을제시하고, 일리아나가 텔레포트를 이용해, 근처의 마을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은현이 감지 기술을 펼치며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했다.
없다면 마을에 결계를 설치하고 또 다시 좌표를 제시하여 다른 장소로 텔레포트를 하면서 이 과정을 반복하기를 여섯 번째가 되자, 잦은 텔레포트와 환경의 변화로 엘레노아가 멀미가 왔는지, 속이 뒤집어져 헛구역질을 했다.
“미, 미안해요….”
자신만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엘레노아가 민망한 듯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10분만 쉬도록 하죠. 일리아나 설치한 결계들의 상태는?”
“아직은 별 다른 이상이 없어.”
“네 상태는 어때?”
“으음, 4분의 3정도? 아직은 여유가 있네.마정석도 챙겨왔으니까 절반 정도 남은 상태에서는 이걸 쓰려고.”
“이렇게 네 명을 동시에 텔레포트를 시키면서, 그것도 연속으로…? 고위 자릿수의 마법사분들은 모두 이렇게 상식 밖의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일반 자릿수 마법사와 고위 자릿수 마법사의 극명한 차이를 눈앞에서 지켜본 엘레노아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텔레포트는 공간계 마법 중에서 상위에 속하는 마법 중에 하나다.
공간에 간섭하여 물건을 조종하는 ‘사이코키네시스’와 하늘 저편의 너머에 존재하는 물질 중 하나인 운석을 소환시켜 떨어뜨리는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공간계 마법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운석을 자신이 있는 장소로 소환시키는 것 ‘메테오 스트라이크’와 자신을 특정 장소로 역소환시키는 ‘텔레포트’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마법에 대해서는 아이테르에서 배운 교양 지식 밖에 없는 엘레노아에게는 그것에 관한 자세한 이론은 모르지만, 텔레포트 마법이 전송 대상의 인원수와, 이동 거리에 따라 마력의 소비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일리아나가 특별한 경우입니다. 다른 고위 자릿수 마법사들은 일리아나처럼 이렇게 텔레포트를 펑펑 쓰지 못해요.”
“특별…한 경우인가요?”
“공녀님은 왜 일리아나의 이명이 ‘검은 마녀’인지 아시나요?”
“어…. 아니요? 왜죠?”
엘레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되물었다.
생각해보니 어째서 그녀의 이명이 ‘검은 마녀’로 불리게 되었는지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자신과 인연이 없을 것이라 여겼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공작가문의 여식으로써 리오드 올리비온의 친구이기도 한 검은 마녀는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가장 붙잡아야하는 존재라는 인상만이 강했기 때문에, 그녀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몰랐다.
새삼 궁금해진 엘레노아가 호기심을 띄우며 귀를 기울였다.
“일리아나는 말 그대로, 마녀의 태생이거든요.”
“마녀…?”
의미를 알 수 없는생소한 이야기에 엘레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녀는 그게…말 그대로 그런 건가요? 그…사람들을 홀리고,해악을 끼친다는 그런…아, 죄송해요! 일리아나님을 모욕하려던 게 아니라 그…책이나 전설 속에 나오는 마녀들의 이야기를 떠올려서….”
“아니, 괜찮아.”
일리아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엘레노아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모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는 얼굴을 하는 일리아나는 오히려 그런 취급에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세상을 구한 대영웅에게 ‘검은 마녀’라는 이명이 불려 지면서, ‘마녀’에 대한 나쁜 인상이나 이야기가 모조리 사라졌다는 관점도 볼 수 있지 않은가.
“‘마녀’란 인간이면서 인간들 중에서 선천적으로뛰어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특성을 가졌죠. 이건 페르니아스 왕국의 귀족들이 자신들이 귀족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뛰어난 마력을 보유한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기도 합니다.”
“…비아냥거리지 마세요. 일단은 저도 페르니아스 왕국 귀족의 딸이에요.”
“비아냥이 아닙니다. 제가 이전 ‘페르니아스의 신목’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듯이, 그들이 뛰어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신목에 의해서 후천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죠. 하지만 마녀는 다릅니다. 후천적인 요인이 아닌, 선천적으로 태생부터 뛰어난 마력을 물려받습니다.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는 말인가요?”
“뭐, 그렇죠. 게다가 마녀의 특성은 마력만이 아닙니다. 공녀님은 일리아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
엘레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은현을 바라보고는 다시 일리아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젊고 탄력 있는 피부와 주름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과 몸은 엘레노아마저도 부러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도저히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죠?”
“그, 그게….”
“…야.”
구체적인 나이를 은현이 언급하자 으르렁 거리는 일리아나의 눈초리를 보고 엘레노아가 더 화들짝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봐야했다.
“마녀의 피를 이어받은 여자는 일정 구간까지 신체가 성장하면 거기에서 노화가 멈춥니다. 신체의 세포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노화로 인해 서서히 손상되기 마련인데, 마녀의 마력은 세포의 손상을 막아줌으로써 육체의 노화를 멈추게 만드는 겁니다.”
“그건….”
“‘마녀’의 남자들을 홀리고 다니고, 해악을 끼친다는 등의 인식이 자리잡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죠. 나이를 먹지 않고, 오랜 시간 젊음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마녀들의 외모는 같은 동성이 봐도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마녀들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멋대로 마녀를 보고 사랑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에, 당시엔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게다가 소문들은 지극히 외적인 이유로 마녀들의 특성을 이용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마녀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구실로, 많은 국가들에서 억지로 퍼뜨려 만들어낸 소문이기도 했다.
엘레노아는 순간적으로 은현을 바라보았다.
육체의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존재는 일리아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지 않는가.
바로 은현이라는 인물이.
그들과 동시간대에전설로 남은 인물인 리오드 또한 꾸준한 단련을 통해 신체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명백히 세월의 흔적은 육체에 새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은현과 일리아나는 다르다.
마치 그 상태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당신도…마녀의 피를 이어 받은 건가요?”
“아뇨. 저는남자이기 때문에 마녀의 특성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엄연히 다른 케이스에요.”
여신의 사도로서 신력을 몸 안에 품게 된 은현의육체는 사도로 임명 됐을 당시의 20대 초반의 신체 나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리아나의 기본적인 신체의 특성과 은현의 신의 권능은 엄연히 케이스 자체가 다르다.
“아무튼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일리아나의 태생과 마법을 사용하는센스가 다른 마법사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특별한 거지, 다른 고위 자릿수들은 일리아나처럼 고위나 상위 자릿수의 마법을 펑펑 남발하지는 못합니다.”
“대단하네요….”
‘그러고 보니 그때 던전 안에서 인형의 분석결과도 그랬지.’
엘레노아는 던전 안에서 일리아나의 전투력을 7만 7천이라고 분석했 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당시, 일리아나가 다른 이들과 비교를 했을 때, 얼마나 규격 외의 존재였는지를 떠올리고, 이번에 은현의 설명을 들음으로써 새삼 실감했다.
“…현아. 온 것 같아.”
굳은 표정으로 일리아나에게 말하자, 은현도 표정을 굳히고,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리오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치는?”
“세 번째 들렀던 마을.”
“가자.”
“응.”
우우웅
텔레포트를 이용해, 마을로 전이됨과 동시에, 사건은 발생했다.
쿠웅!
갑자기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몸집을 가진 다수의 마수들이 바닥에 착지하면서, 둔탁한 소음이 발생함과 동시에 대지가 흔들렀다.
우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쇠도끼를 한 손에 쥐고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를 내뱉는 미노타우로스나, 둔기를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이 건물을 때려 부수는 오우거, 이외에도 트롤이나 오크 등 하나같이 인간을 너무나도 간단히 짓이길 수 있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마수들이 대거 등장하여 소규모의 마을을 휩쓸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예상했던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참상을 직접 목격하게 된 엘레노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리오드, 일리아나. 공녀님을 데리고 마수들을 토벌, 마을 주민들의 구호를 부탁할게.”
“너는?”
“나는 이 사태를 발생시킨 연금술사와 사령술사를 쫓을게. 공간이동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놈들은 마수들이 정리되는 걸로 이변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도망칠 거야. 이변을 느끼기 전에처리해야해.”
“네가 당할 리는 없겠지만…조심해. 결혼 전에 몸에 생채기라도 내면, 진짜 가만 안둘 거야.”
“별 걱정을 다.”
일리아나의 걱정을 들은 은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지.”
리오드를 선두로,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그를 뒤따랐고, 은현도 놈들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전체에 마력을 전개하여 감지를 펼치고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기 위해 권능을 발동시킨다.
[은현 고유능력]
[사고가속]
마수들의 난동, 리오드 일행의 움직임, 마을 사람들의 비명소리,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그것들을 가속된 사고를 통해서 빠르게 정리해나간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 앞에서 한 여자가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고, 남자의 일행인 여자가 옆에 가만히 서있는 장면이 감지를 통해 은현의 머릿속으로 정보가 전달됐다.
뭐라 말하는지, 소리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여자가 두 남녀에게 무언가를 애원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짐작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현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은현 고유능력]
[시간가속]
육체의 가속을 통해 빠르게 그곳을 향해 달려가자,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킥킥,내가 왜?”
“마리우스, 시간 아까우니까 빨리 정리해.”
“아~알았어. 재미 좀 보려했더니, 참내, 재촉하지 좀….”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여자를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비웃었다.
이내 자신의 바지를 붙잡은 여자의 얼굴을 걷어참과 동시에, 검은 머리카락 남자의 뒤에서 이형환위를 발동시킨 은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남자의 뒤에서 은현이 나타나자, 그의 옆에 있던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재촉했던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은현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은현의 양손에 들려있는 검을 눈치 챈 갈색머리 여자가 황급히 검은머리 남자의이름을 불렀다.
“마리우스!”
하지만 때는 늦었고, 은현의 검이 남자의 몸에 닿는다.
[시에테 검성술]
[이매난도(魍魎亂刀)]
양손의 검으로 처음에는 남자의 오른쪽 팔을, 다음엔 왼쪽 다리, 그 다음은 왼쪽 팔, 마지막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시키는 과정이 단 2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
순식간에 자신을 지탱했던 다리의 균형이 무너지고, 몸통만 남은 남자의 몸이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마리우스라고 불린 남자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양팔과 다리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허전한 감각에 그제서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시한 남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으, 으아악!”
몸통만 남은 남자가 패닉상태에 빠져 몸통을 들썩이며 허우적대는 꼴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뭐…뭐야. 넌….”
경악과 공포에 찬 시선으로 은현을 노려보던 갈색머리의 여자가 은현이 흘끔 시선을 옮겨 자신을 직시하자,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은현은 여자를 바라보던 무심한 시선을 거뒀고, 흉흉한 눈빛으로 양팔과 다리를 절단시킨 남자의 어깨 죽지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은현이 산적들을 통해서 파악한 정보를떠올렸고 정보들과 두 사람의 외양을 비교했다.
눈앞의 검은머리카락의 남자가 ‘마리우스 홀튼’, 갈색머리카락의 여자가 성은 알 수 없었지만 ‘레나트’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확정짓자마자, 은현은 행동을 개시했다.
“끄아아아아아악!”
검을 박아 넣고 손잡이를 회전시켜 남자의 어깨에 박힌 칼날을 휘젓자, 남자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만났네.”
“끄으으으윽!”
제대로 된 대답을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목을 꿰뚫을 것만 같은 살벌한 눈으로 은현이 물었다.
“너, 누구한테사령술을 배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