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120. 사령술사 추적(3)
보고의 시작은 키메라 마수를 발견하게 된 계기부터였다.
산적들이 작은 마을 하나를 습격했고, 거기서 우연찮게 목숨을 부지한 어린 아이가 지나가던 상인의 마차를 타고 페르닌으로 흘러들어와 위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후 위병의 보고로 아르티아에 산적 소탕의 요청이 들어왔고, 전후 관계를 파악한 리오드가 아르티아의 기사 세 명과 왕국군 병사들을 이끌고 산적의 소탕을 보냈다.
하지만 거기에서 도중에 그들이 조우한 것은 산적들이 아닌, 사람과 마수가 합쳐진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형태의 키메라였고, 전력의 차이를 느낀 아르티아의 기사들은 부상자들을 이끌고 퇴각을 결심하여 페르닌으로 복귀했다.
산적 소탕의 실패를 리오드에게 보고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리오드가 직접 모험가 길드와 베스타 신전에 협조 공문을 요청하여 마수의 토벌 원정을 이끌었고, 인간형 키메라 마수들의 토벌을 완료시킴으로써, 키메라와 산적들의 뒤에 존재했던 ‘사령술사’와 ‘연금술사’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보고를 마무리 지었다.
“사령술사….”
리오드의 보고를 들은 한 귀족이 침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사령술사가 맞습니까? 책에서만 존재하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 정말로 죽은 자들을 되살린다는….”
“되살린다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그건…살아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끄응…더 위험한 건, 그것들의 전력입니다. 아르티아의 기사와 왕국군 병사들을 한 차례 패퇴시킨 전력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겠죠. 이번엔 올리비온 후작이 이끄는 원정대였기에 소탕이 가능했지만, 매번 올리비온 후작이 나서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것 뿐 만이 아니죠. 더 성가신 건 놈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뭔가요? 공간이동 계열의 마법이라니, 상대는 상위나 고위 자릿수의 마법사이기도 한다는 뜻입니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법일 가능성도 염두 해두고 있습니다. 숨겨진 재야의 실력자라는 것이 그렇게 흔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대표적인 예로는 일리아나와 같은 고위 자릿수 마법사들의 텔레포트 같은 정석 같은 공간이동마법 이외에도, 엘빈의 흑마법인 ‘그림자 이동’같은 능력도 존재한다.
마법의 원리, 구성 방식, 존재 의의들은 모두 다르지만, 사용되는 목적에 따라서 비슷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마치 시작도 과정도 모두 다른데 한 가지의 목표로 귀결된다는 점과 비슷하다.
리오드는 순간 은현을 흘끗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말을 이었다.
“놈들의 공간이동 능력의 제한 범위나 조건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이상, 그 어떤 곳의 지방 영지도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당장 영지 내부와 그 이외 외곽의 마을까지 피해를 입은 곳이 있는지, 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차례차례로 마을들을 습격하여 인간들의 시체를 이용해 자신의 병력으로 만들고 있는 이상, 이번 일은 얼마나 많은 피해가 나올지 가늠할 수가 없는 위험한 건이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자들을…찾아낼 수단이 없지 않은가.”
공간이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특정되지 않도록 하는 사기적인 수법에 도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궁정 회의 내부에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가운데,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의 아름다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며, 넓은 챙이 인상적인 마녀 모자를 비스듬히 쓴 여자, 그녀의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검은색 스타킹과 착 달라붙는 타이트한 마녀의 옷은 굉장히 고혹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에 모든 귀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 어어…?”
“왔군.”
매서운 눈매로 살짝 인상을 찡그린 마녀가 깜짝 놀란 얼굴로 어버버 거리고 있는 은현을 잠시 노려보고는, 리오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갈게.”
“일리아나?”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었다.
정신을 차린 은현이 넋을 놓고 일리아나의 트인 가슴과 스타킹으로 감싸인 허벅지를 보고 있는 주위의 귀족들을 한 번 노려보고 급하게 일리아나에게 달려갔다.
손에서 그녀가 애용하는 디자인의 로브를 소환시키고는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뭣…?”
허공에서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환하는 신기를 보여주는 모습에 몇몇 귀족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은현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옷을 왜 그렇게 입고 왔어?”
“흥, 그래도 이제는 신경이 쓰이나봐?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보더니.”
“아니, 뭐….”
그녀의 외모와 몸을 다른 남자들이 훑어보는 것이 굉장히 거슬렸던 은현의 태도를 봤기 때문인지, 일리아나가 피식 웃으며 기분이 좋다는 티를 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테레지아가 알려줬어. 오늘 이곳에 회의가 있을 거라고 알려주더라.”
“아니, 그렇다고 네가 혼자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곳이….”
“리오드가 궁정에 미리 전달을 해뒀지. 내가 혼자 출입할 수 있도록.”
“…….”
은현이 순간 고개를 돌려 리오드를 째려보았다.
“흥.”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그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은현이 할 말을 잃자, 일리아나가 은현의 턱을 붙잡아 자신에게 향하도록 돌렸다.
“우리 예비 남편님께서 도대체 집에 들어오지 않고, 어디서 뭘 하고 계셨을까 했더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셨네?”
“아, 저, 그게….”
사실 그녀에게 쥐어 짜일게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던 은현이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남편?”
“검은 마녀가 결혼이라고?”
“상대가 저 죄인이었던 자?”
두 사람이 애인이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궁정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그녀의 결혼 예정 소식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다.
일리아나의 폭탄선언과 동시에, 회의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용!”
소란스러워진 회의실 안을 가득 울리는 디아네 왕비의 노성이 귀족들의 소란을 순식간에 잠재웠다.
“검은 마녀. 이곳은 왕국의 중진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 장소입니다. 사적인 용무로 회의장의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어머, 미안해. 이쪽은 남편님이 돌아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지를 않아서 결국 내가 찾아와버렸지 뭐야. 그래도 나도 이 용무만으로 온 게 아니거든?”
일리아나의 말에는 존중과 경의 따위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직설적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어조였음에도 불구하고, 궁정회의에 참석한 그 어떤 귀족도 일리아나의 무례함을 지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무례함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디아네 왕비마저도 인상을 찡그릴 뿐, 일리아나의 말투를 지적하지 않는다.
“듣자하니, 꽤 골치 아픈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전적으로 리오드에게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왕국에게 밝히기 위해서야.”
“뭣…?!”
“…이유가 뭐죠?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응? 별 이유 없는데?”
사실 일리아나의 본 속셈은 한시라도 빨리 이번 일을 마무리 짓고 은현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가득 쌓인 상태였지만, 그것을 당당하게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
한 없이 가벼운 태도를 보이는 일리아나의 대답을 들은 디아네 왕비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일리아나를 노려보았지만, 일리아나는 그런 왕비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은현에게 시선이 쏠려있었다.
“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고 있는 거야? 애가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야…. 누가 니 애야.”
자신과 일리아나를 잔뜩 노려보고 있는 왕비의 시선이 불편해진 은현이 일리아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지만, 그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눈치는 밥 말아 쳐 먹은 마이페이스 여자가….’
아마 그의 속내를 일리아나가 들었다면, 누가 누구한테 눈치가 없다고 하는 거냐고 도리어 역정을 낼 것만 같다.
결국 은현은 포기하고 그녀의 손을 붙잡아 강제로 이끌어 자신과 함께 리오드의 뒤에 섰다.
원래의 자리였던 리오드의 뒤로 복귀하자, 그와 마찬가지로 아브로스의 뒤에 위치해 서있었던 엘레노아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은현을 힐끔거렸다.
“당신…결혼하나요?”
“예. 곧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식의 날짜는 아직 미정이지만요.”
“그렇군요….”
엘레노아는 은현의 확답을 듣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흐음?”
손을 잡고 은현의 옆에 서있던 일리아나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엘레노아의 표정을 읽은 뒤, 기묘한 표정을 짓자, 은현이 물었다.
“왜?”
“아니, 그냥 어째 기묘한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싶어서.”
◆ ◆ ◆
궁정회의의 내용은 일리아나의 조력 의사를 밝히자마자 빠르게 가열되어 마무리 되었다.
결과는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모두 자신의 영에 사람을 보내어 피해가 있었는지 조사를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군무장관인 아르미타스는 인간형 키메라와의 전쟁에 대한 병력의 운용 준비를.
재무장관인 버나드는 피해 지역에 보내야할 구호물자의 예산을 짜는 등.
각각의 방식으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
리오드와 일리아나, 은현은 엘레노아를 포함해 네 명이 한 파티를 꾸려 일리아나의 텔레포트를 통해서 사건이 발행했던 브람 마을의 주변 마을들을 샅샅이 뒤지는 무식한 방법으로 사령술사를 찾아내어 처리하기로 결론을 지었다.
일리아나의 마법이라는 사기적인 조력이 추가된 순간, 대응책이 너무나도 손쉽게 나온 것에 허탈할 지경이었다.
“지난 번 악마사태에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게 조금은 도움이 되긴 한 것 같군.”
“이번엔 악마가 아니라 흑마법사의 문제지만요.”
“사태가 그때보다 심각하다는 것 아무리 멍청해도 알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이건 나쁘지 않은 과정이다.”
아브로스의 말에 은현과 리오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대적할 수 없는, 또는 대처하기가 까다로운 적을 앞에 두고서, 권력다툼과 이익을 쟁탈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멍청이들이 없었다는 것이 다행인 상황이기도 했다.
“그것보다 뜻밖의 소식을 들었지만. 네놈이 결혼을 한다고?”
“…예.”
“흠,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군.”
“아직 식이나 일정도 잡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서요.”
“정해지면 청첩장을 보내라. 그래도 공생관계인데. 그 자리를 축하해줄 의리정도는 지켜주지.”
“말씀 감사합니다. 그것보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번에 사령술사를 처리하는 일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론 공작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 사령술사가 한 짓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본인이 이야기했다. 자기 어미를 닮았는지, 한번 의지를 굳히면 절대로 굽히지 않은 아이니까. 게다가 능력적인 면에서는 네 덕에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지 않나?”
“예, 뭐…그렇긴 합니다만.”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면 끝까지 져라.”
“아니, 그렇다고 굳이 사지로 데려가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은현은 엘레노아에게 중위 사제의 능력에 걸 맞는 공적을 차근차근 쌓게 하여 조금씩 신전에서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을 키워나가게 할 생각이었다.
능력적인 면은 은현이 직접 확인해보았기에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이렇게 위험한 건에 귀한 집 아가씨를 데려간다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다.
내심 아브로스가 엘레노아의 파티의 참가 의사를 반대해주기를 바랬지만, 아브로스는 딸이 위험한 곳으로 간다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라. 생채기 하나 내지 말고 집으로 돌려보내라.”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안 보내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걸 들을 아이였으면 굳이 너에게 당부하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네놈이 함께 간다는 것에도 조금은 안심하게 되는군.”
“알렉스도 그렇고, 공작께서도 그렇고, 뭘 보고 저를 그렇게 믿으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로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군.”
“하아, 점점 어깨가 무거워지는 군요.”
“딸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해놓고 내 쪽에서도 몰염치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은 없다. 너에게 받은 백금화 300닢도 그렇고. 이쪽에서도 너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니, 엘레노아를 잘 부탁한다.”
“돈이나 지위 같은 거면 사양하겠습니다만.”
“흥, 네가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즈음은 알고 있다.”
코웃음 치는 아브로스를 본 은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보상이 무엇인지 말을 해줄 생각은 없어 보이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알았다.”
은현과 아브로스의 대화가 마무리 되자, 타이밍 좋게 무장을 마친 엘레노아가 저택을 나와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저는 준비를 마쳤어요. 다른 두 분은요?”
“아마 곧 올 겁니다. 저와 일리아나가 같이 집을 비우게 되서 에린을 올리비온 후작부인께 맡기고 온다고 그랬거든요.”
“그렇군요.”
우우웅
작은 마나의 공명음과 함께, 지면에 새겨진 마법진의 위에 일리아나와 리오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왔어?”
“응. 흔쾌히 에린을 맡아주더라.”
“나중에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러 가야겠네.”
“그럴 필요 없다. 도움을 주는데 당연히 우리 쪽에서도 맡아줘야 하는 일이지.”
“와아….”
새삼 엘레노아는 이곳에 모인 멤버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한 명은 왕국 최고의 기사.
한 명은 대륙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
마지막 한 명은 그런 대영웅들과 견줄 수 있거나, 그 위의 힘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는 신비로운 남자.
이 세 명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엘레노아의 신세는 메인 요리들에 밀려 구석에 배치된 겉절이 메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영웅들의 파티에 가입을 하여 활동을 해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처음이 아닐까?
“…일리아나. 최근 테레지아와 너무 잦은 시간을 가지고 있던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눈 거지?”
“너, 너는 알 거 없잖아. 신경 꺼. 현아, 잠깐 이리로 와봐.”
“응?”
미심쩍은 태도로 리오드가 묻자, 일리아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얼버무리곤, 은현의 손을 붙잡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더니 조금 민망한 얼굴로 은현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 있잖아…전에 나한테 만들어줬던 거, 한 세트만 더 만들어줄 수 있어?”
“전에 만들어 줬던 거?”
“아니, 그…왜 있잖아. ‘바이브?’, ‘로터?’라는 거랑 ‘딜도?”라는 거. 한 세트만 더 만들어주라.“
“……? 왜?”
“그…테, 테레지아가….”
그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은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리오드를 바라보았다.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난감해진 은현이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일리아나에게 물었다.
“…후작부인이 왜?”
“자, 자기도 써보고 싶다고 해서, 에린을 맡아주는 대신, 한 세트 만들어서 주기로 약속을….”
“야! 그걸 왜 말해!”
‘이게 미쳤나, 진짜?’
이 여자들은 도대체 평소에 모여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것일까.
은현은 열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를 본의 아니게 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리오드에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