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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화 〉119. 사령술사 추적(2) (119/730)



〈 119화 〉119. 사령술사 추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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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 중 9명이 정보를 제공했다.”

“음, 그래?”

비슷한 방법으로 모래에 5명의 산적들을 남겨두고 다른 산적들을 모두 처형시킬 거라는 거짓 정보를 뿌려 산적들의 불안감을 부추긴 끝에, 산적들은 사령술사와 연금술사에 대한 정보를 밝혔다.
단원들이 산적들의 자백 내용을 옮겨 적은 진술서를 모아온 리오드가 은현에게 내밀었다.
진술서가 모두 모일 동안, 기사단의 식당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로 빵을 뜯어먹고 있던 은현이 리오드가 내민 진술서를 받았다.

“…진짜 악질적인 수법이네요.”

상대방의 약점을 정확히 꿰고, 그것을 비틀어 틈을 만든 뒤에 사정없이 흔드는 은현의 술수는 정말 애써 좋은 면을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는 수준이다.

“덕분에 이렇게 정보를 얻지 않았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산적들의 진술서를 읽고 있던 은현이 담담하게 대꾸하자, 엘레노아는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표정을 지었다.

“산적들의 몸에 새겨져있다는 ‘영혼의 귀속’이라는 저주…진짜인가요?”

“모르죠.”

“그것도 거짓말이었군요. 하아….”

[아이는 나의 사도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살았을지, 걱정이 심히 드는 구나….]

‘여신님까지  그러세요. 진짜, 상처받아요, 그런 말씀하시면.’

베르단디의 걱정을 뒤로하고, 은현은 천천히 산적들의 정보를 적은 진술서를 읽어나갔다.
‘마리우스’나 ‘레나트’라는 이름, 인상착의에 대한 정보는 브람 마을의 생존자인 소녀의 기억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외에특별한 점은.

“리오드. 이거 읽어봤어?”

“물론.”

“뭐가 적혀있는데요?”

“마리우스 홀튼. 전직 베스타 신전 중급 사제.”

“뭐, 뭐라고요?”

“5년 전, 에레니아 신성국에서 행방불명되었고, 산적들과 조우하여 그들을 개처럼 부려먹기 시작한  최근 3개월부터군.”

“사령술사가…신전의 사제…?”

“꽤나 자세한 개인사가 적혀있는데, 이거 확실한 겁니까?”

이 진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단원에게 묻자, 기사단원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령술사의 비위를 맞추면서 술을 대접하기도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이전의 자신의 사연을 늘어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개인사를 떠올리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하, 뜻밖의 약점을 하나 쥐었네.”

피식 미소 짓던 은현이 마지막으로 남은 빵조각을  안에 털어 넣고는 계속해서 진술서를 읽어나갔다.

“개인적인 은신처의 위치를 알려줘?”

“자신의 접대가 기분이 좋았는지, 사령술사가 자신에게만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알려준 은신처로 향하라고 선의를 베풀었다고 하더군요.  사실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의미 없이이것을 알려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뭐, 그렇겠죠.”

“최소한이 위치를 한 번 탐색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리오드. 궁정귀족 회의는 어떻게 됐어?”

“궁정에 보고는 해뒀다. 오늘 오후에  문제에 대한 처리로 회의가 열릴 예정이지.”

“아르미타스 공작님은 공녀님을 통해서 이 소식을 들었으니, 적어도 군사를 움직이는 데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겠네.”

“문제는 다른 지방영지의 귀족들의 협조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 건 자기들 영지일 텐데, 아무리 멍청해도 그 정도의 득실은 따지겠지.”

“일단은회의를통해서  나라에 속해있는 영지들과 마을을 조사해봐야  필요성이있어. 그리고 너도 와라.”

“엉? 나도?”

“이번 원정에서 마수들의 특징을 알아채고 공녀에게 정화의 기도를 제안한 건 다름 아닌 너다. 그 공로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싸움에서 너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아니, 그래도 나 공개재판에서 그 인간들한테 대놓고 그렇게 비아냥댔는데?”

그런 귀족들을 앞에 두고 은현보고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일까.

“게다가 이건 공적인 이유고, 개인적으로는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흠?”

“디아네 왕비를…아니, 이건 내 문제니 넘어가도록 하지.”

“아, 신경 쓰이게  말을 하다 말아.”

인상을 찡그리며 내뱉은 은현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리오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튼, 나를 따라 회의에 참석해라. 공녀는 어떻게 할 거지?”

“당연히 저도 아버지를 따라 참석할 예정이에요. 이번 원정에 저도 참여했으니까요.”

“그렇군. 그럼 이따 보도록 하지.”

“네.”

엘레노아는 그렇게 기사단 사무실을 나갔고, 마차에 올라타 이 장소를 떠났다.

◆  ◆

“지금 제정신이오?! 올리비온 후작!어떻게 신성한 왕성의 궁정회의에 저 범죄자의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한 것이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문제는 터졌다.
궁정회의에 이전 공개재판을 통해서 많은 귀족들에게 폭언을 내뱉었던은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귀족들이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며 리오드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은현에게서 직접적으로 ‘탈모’발언을 들으며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겪었던 오르바 백작이 가장 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나도 자신의 예상을 틀리지 않고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는지, 이 자리에서 불청객에 가까운 은현이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써야하는 지경이었다.

“말조심하지. 오르바 백작. 범죄자로 공개재판에 섰지만, 그것은 디아네 왕비마마의 명으로 철회가 된 사안이다. 오히려 이번 마수 토벌 원정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인데, 어째서 그런 대우를 하는 거지?”

“고, 공작님…. 하지만 이자는 저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적인 발언을….”

“그만. 곧 회의가 시작된다. 그 건은 끝난 일이니, 사적인 감정은 집어넣도록.”

아브로스의 일축에 오르바백작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 나라에서 신분의 계급과 위계가 정해져 있는 서열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힘의 상하 관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후작위인 리오드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두 위계나 높은 아브로스와 오르바 백작의 상하관계는 명확했다.

“이야…. 백작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높은 자리에서 다시 백작님을 만나 뵙게되다니, 정말 사람 일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네, 네놈이…나를 이렇게 우롱하고도…무사할 것 같으냐!”

“예? 아, 그러시면 곤란하실 텐데요….”

“뭐라고…?”

“솔직히 싸움을 걸어오신다면 받아드릴 의향은 있습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건방지게 이게 누구한테!”

이제는 자신의 정체와 능력을 굳이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은현에게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자신의 행보를 감독하는 여신마저도 이 상황에 아무런 불만을 품고 있지 않았기에, 지금의 은현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풀악셀을 밟고 있는 상태와도 같았다.

“백작님. 이래 뵈도 저도 많이 참고 있는 거라고요. 사실 댁의 아드님 가랑이 사이의 그걸 잘라버리고 싶은  말이죠.”

“감히  아들을…!”

“자기 자식이 귀한 줄은 아나봐.”

“……?!”

“그런데 왜 다른 사람한테는 그딴 식으로 행동하는 걸까. 정말 이해가 안가네.”

순식간에 은현의 목소리가 냉담하게 바뀌며 싸늘해진 표정으로 오르바 백작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오르바 백작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은현이 말했다.

“댁의 아들이 우리 애한테 하려 했던 짓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데 말이지.”

“내 아들이…빌라드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 했다고….”

“하하, 그 개망나니 아들자식이 댁한테는 그 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얘기는 쏙 빼놓았나보지?”

“무슨 말이냐! 제대로 알아듣게 설명해라!”

“애초에 어떻게 댁의 아들, 빌라드 오르바가 그 자리에서 ‘그 사건’을 목격하고 신고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 적 없어?”

“그건….”

오르바 백작으로써도  부분은 의문스러운 점이었다.
어째서 자신의 아들인 빌라드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아들에 물어봐도 빌라드는 한사코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었다.

“당연하잖아. 자기가 같은 학교의 여학생을 납치, 감금하고 강간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자기 아버지에게 고백할  있었겠어.”

“뭐, 뭐라고…?”

충격적인 아들이 한사코 말하길 거부하며 감춰왔던 치부를 알게 되자, 오르바 백작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에린과 함께 투옥된 내가 댁의 아들을  장소에서 무사히 이탈시킨 장본인이지. 이렇게 말하면 대강 알아듣겠지?”

“…….”

“내가 댁의 아들을 살린 거라고. 에린을 강간하려 했던, 귀족이라는 신분의 우월감만을 내세우던 쓰레기 새끼를 말이야.”

“크…윽!”

아들의 치부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르바 백작이 얼굴을 붉히며 이빨을 갈았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은현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할 수 있겠어? 해 봐, 한 번. 댁이 가진 권력, 재력, 무력을  동원해서.”

서서히 마력을 방출시켜 오르바 백작을 급습하고 그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끄으윽!”

백작 또한 후계를 물려받기 전엔 교양의 일환으로 뛰어난 검술과 마력 운용을 익혔을 터인데, 백작위를 물려받고 시간이 지나 단련을 게을리 하여 나이가 든 몸은 은현의 마력에 저항   해보지 못하고 있다.
힘겹게 고개를 돌려 주위에 도움을 청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해줄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는 세 사람의 모습에 오르바 백작의 안색이 창백해져간다.
아직 회의의 시작이한참이나 남은 현재 시점에서회의실에 들어와 있는 이는 리오드와 아브로스, 엘레노아가 전부였다.
꼼짝없이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식이 점차 희미해져가고 양쪽  눈에 흰자위가 드러나려 했던 순간.
리오드의 목소리가 은현을 불렀다.

“은현. 적당히 해라. 곧 회의에 참석할 귀족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올 시간이다.”

“어. 그렇네.”

“흐어억! 후우, 후우, 후우!”

양쪽으로  잡아 당겨 팽팽한 고무줄에서 손을 떼듯이, 은현이 마력을 풀자 오르바 백작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백작님, 이건 경고에요. 싸움을 거실 거면, 걸어오세요. 받아드릴 테니까. 그리고, 댁의 아드님이 에린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려 했던 걸 사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적어도 우리 애 앞길은 막지 마세요. 적어도 에린의 근처에 얼씬도 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습니까?”

“…….”

오르바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분하고, 두렵고, 압도적인 패배감을 안겨준 굴욕감의 표정들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자, 이거 다 장난인 거 아시죠? 우리 과거는 잊고 앞으로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보도록 하죠. 아, 물론 에린과 댁의 아드님의 문제는 예외입니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저는 백작님과 양호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그리고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미는 은현의 태도에 오르바 백작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치워라!”

거칠게 은현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서 바닥에서 일어선 오르바 백작은 씩씩거리는 걸음으로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은현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에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엘레노아가 착석한 리오드의 뒤로 온 은현에게 말했다.

“너무 심했던 거 아닌가요? 저렇게 자극을 해대면 오르바 백작 쪽에서 더 과격하게 나올 수도….”

“네. 그걸 노린 겁니다. 그래야 제가 저자와 저자의 아들을 처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죠.”

“…제발 원만하게 끝내요.”

“그건 저쪽한테나 부탁하시죠.”

절대로 물러설 생각을 보이지 않는 은현의 태도를 보며, 엘레노아는 한숨을 쉬었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에 참석할 귀족들이 하나둘  회의장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귀족들이 은현의 얼굴을 보고 하나같이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착석했다.
도대체 은현이 어째서 이 장소에, 그것도 리오드의 뒤에 있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던 귀족들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귀족들과 수군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디아네 왕비마마가 입실하십니다!”

시종의 외침에 이어 많은 이들을 거느린 디아네 왕비가 선두에 서서 회의실로 입장했다.
의자에 앉은 디아네 왕비는 참석한 귀족들의 얼굴을 훑어보고, 이내 리오드의 뒤에 서 있는 은현의 얼굴을 보고  차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부터 궁정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오늘의 안건은 아르티아 기사단 원정대의 복귀에서 가져온 ‘사령술사’와 ‘인간형 키메라 마수’에 대한 대처 방안입니다. 올리비온 후작.”

“예. 왕비마마.”

“보고를 부탁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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