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118. 사령술사 추적(1)
사람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또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그 상황을 자신의 머리로 받아들이기까지에는 세 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는 ‘부정’
“개, 개소리 하지 마! 그런 게 가능할리가 없어!”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죠?”
“그 놈은 진짜로 죽은 자의 영혼을 자신의 종으로 부린다고…. 그런 걸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방법을 알았다면,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다면, 산적들도 사령술사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령술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도, 수단도, 지혜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불가능하니까, 다른 이들 심지어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왕국의 사람들까지 불가능하다고 멋대로 결정내리는 아둔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은현은 더더욱 쉽게 그들의 심리를 파고들 수 있었다.
“저희 쪽에는 실력 좋은 사제님이 있거든요. 들어는 보셨나? ‘페르닌의 꽃’이라고.”
“페르닌의 꽃?”
“네. 이 나라의 공작가문이신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공녀님이시며, 이번 당신의 산적소탕 이전에, 숲에 있던 사령술사의 인간형 키메라들을 모두 정화시킨 장본인이시기도 합니다.”
“그것들을…모두 처리했다고…?”
은현의 말을 들은 산적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네. 만약 저희에게 정보를 제공해주시고 놈들을 잡는데 협력해주신다면, 당신의 처형 이후, 사령술사가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사제님에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
산적은 은현의 제안을 듣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골똘히 생각하며 그의 제안이사실인지, 아닌지를 머릿속으로 따져보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인 ‘의심’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실낱같은 가능성이 제시되는 가운데,그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될지, 썩은 동아줄이 될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네가 말한 그 사제라는 자도, 무엇 하나 제대로 증명된 것이 없는데, 무턱대고 널 믿을 수는 없어! 그냥 나를 죽여!”
아쉽게도 세 번째 단계인 ‘순응’은 먹히지 않았다.
인간의 시체에 마수를 합성시킨 몰골을 가지고 있던 인간형 키메라들이 얼마나 끔찍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는지, 산적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되지 않도록 사령술사의 밑에서 개처럼 빌붙어 시키는 짓을 모두 했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지금의 산적의 머릿속에는 정보를 누설했으나, 사령술사를 처치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이 처형당했을 때 자신의영혼은 사령술사에게 귀속되어 평생을 인간 같지도 않은 모습으로 살아야할 때의 공포가 가득했다.
이렇게 잡힌 이상, 산적은 이렇게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보다, 그냥 편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산적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을 때, 심문실의 문이 열리고 아르티아의 단원들의 통솔에 따라 다른 산적들이 하나하나씩 심문실에 입장했다.
“…뭐야?”
은현과 대화를 하고 있던 산적이 심문실 안으로 차례차례 들어오는 동료 산적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우리를 왜 부른 거지?”
“너…설마 말했냐?”
“그랬을 리가 없잖아!”
열댓 명의 산적들이 한 장소에 모이자, 심문실 안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졌다.
짝!
은현이 손바닥을 한 번 크게 치며 소란스러운 산적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자, 재차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죠. 저는 이번에 여러분들의 심문을 맡게 된 남자입니다.
“어이, 뭐야. 저 놈은?”
은현의 소개를 들은 산적들이 웅성거리며 소리를 냈고, 이 심문실 안에서 은현과 대화를 하고 있었던 산적에게 다른 산적이 물었지만, 그는 뚱한 표정을 짓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우리는 정보를 불지 않을 거니까. 그냥 당장 우리를 처형 협상의 내용을 바꾸도록 할까요? 조금 더 구미가 당길만한 현실적인 제안으로 말이죠.”
“……! 혹시 우리들을 석방시켜준다거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 힘 밖의 일이기도 하고, 여러분들은 왕국의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을 한 죄인입니다. 처형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도대체….”
“처형시기를 늦춰드리도록 하죠. 사령술사를 죽이고 난 이후로 말이죠.”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어차피 뒈지는 건 똑같은데!”
“사령술사만 처리한다면, 당신들은 사람답게 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시체가 돼서도 그 끔찍한 몰골로 죽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통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 그, 그건….”
“자, 잘 생각해보세요. 이미 확정되어버린 여러분들이 처형 판결은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처형시기를 바꿔드릴 순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보를 알려준다면 사령술사는 자신의 정보를 팔았다는 것에 분노해서 여러분들의 영혼을 모두 시체에 정착시켜 괴물로 만들어버리겠죠.”
“…….”
“하지만 여러분들을 처형시키지만 않는다면, 사령술사 쪽에서 현재로서 여러분들을 어찌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령술사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순간은 여러분들이 죽은 이후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제공한 정보를 이용하여 사령술사를 처리한 이후에, 여러분들이처형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겁니다.”
‘사람답게 죽을 수 있다.’라는 은현의 말에 산적들이 동요를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까 전에 인간형 키메라들을 모두 정화시켰다는 사제를 통한 방법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믿음이 가는 제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에 모든 산적들이 납득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는 거냐?! 이 나라가 그 괴물새끼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괜히 나서서 정보 제공만하고 죽게 되서 그 꼴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사령술사가 존재한다면 당신들은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해요.”
“뭐?”
“정말로 사령술사가 당신들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당신들을 버리고 도주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들의 몸에는 사령술사가 새긴 저주가 깃들어 있습니다. ‘영혼의 귀속’이라는, 사망하게 된다면 곧바로 당신들의 영혼이 사령술사에게로 종속되는 질 나쁜 저주죠.”
“거, 거짓말! 개소리로 우리를 현혹시키지 마!”
“맞아! 네놈의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
“그런 저주가 있다면 당장 증명해봐!”
은현의 말을 들은 산적들이 동요하기 시작하며 심문실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아쉽게도 그건 곤란하네요. 증명할 방법이 없거든요. 단지 제 눈에만 보이는 저주의 기운이니까요. 그리고 설마…정말로 당신들을 개처럼 부려먹은 사령술사가 당신들을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
“당신들은 어차피 그 괴물과 조우한 시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매한가지였다고요. 살아서는 평생을 공포에 떨고,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을 그 괴물에게 농락당하는 신세니까요.”
은현의 지적에 산적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사령술사에게 산적들, 자신들을 그저 시체를 모아오는 도구, 또는 쓰다버리는 소모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서까지 그런 몰골로 그에게 종속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로 개처럼 습격한 마을사람들의 시체를 갖다 바쳤다.
“적어도 저희 쪽에서 제시하는 제안은 희망이라도 보이지 않습니까?”
“…….”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은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잘 생각해보시고 좋은 대답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은현은 미소 지으며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서 심문실을 나갔다.
많은 수의 산적들이 입장하면서, 심문실의 문이 닫히지 않았던 바깥쪽에는 리오드와 산적들의 심문을 진행했던 단원 둘, 엘레노아 총 네 사람이 은현을 각각의 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공녀님은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당신이 심문을 할 예정이라고 했었잖아요. 그 사령술사를 잡는 데 저도 참여할 예정이니까요.”
“뭐 그렇긴 하군요.”
“그런데…당신, 정말로 나한테 저 산적들의 영혼을 성불시키는 제사를 지내게 할 생각이었나요?”
“아니요.”
문이 닫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문실의 내용이 밖으로 새나간 모양이었다.
흘끗 방음이 엉망이 아니냐고 리오드를향해 눈짓으로 물어보자, 리오드는 범죄자들의 심문에서 방음이 뭐 대수냐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있을 때, 엘레노아가 재차 은현에게 물었다.
“그럼 왜 가장 처음에 그런 제안을 했던 거죠?”
여자들을 겁탈하고 많은 사람들을죽인 산적들을 평안히 성불시키는 제사를 지내라니, 엘레노아는 끔찍이도 싫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제안이었을 뿐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기 위한.”
“그러다가 그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으면요?”
“정보만 먹고 뒤통수를 쳤겠죠. 어차피 저 시점에서 내뱉은 정보의 질도 그닥 좋지 않았을 겁니다. 미끼는 던졌으니, 이제는 낚이길 기다리면 되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엘레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리오드 심문실에 있는 산적들을 모두 감옥으로 다시 투옥시켜줘. 서로 상의할 수 없도록 독방으로. 조금의 의사소통이나 대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줘서는 안 돼.”
“알았다.”
“그리고….”
흘끗
은현의 시선이 두 단원들에게로 향하자, 아르티아의 단원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씨익 미소 지으며 단원들을 바라보는 은현의 표정이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는 뱀 같았다.
“두 분은 혹시 연기 좀 하십니까?”
세 번째 단계인 ‘순응’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뱀은 밑밥들을 뿌릴 준비를 했다.
◆ ◆ ◆
“젠장…도대체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독방에 갇힌 산적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은현이 언급한 ‘영혼의 귀속’이라는 저주가 진짜라면, 어차피 죽자마자 정보의 누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영혼은 사령술사에게로 귀속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모두 밝히고 은현과 왕국 사람들이 사령술사를 처리할 수 있도록 왕국 쪽에 붙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은현이 제시한 제안도, 그가 이야기한 ‘영혼의 귀속’이라는 저주도 모두 은현의 주장일 뿐 그의 말이 입증된 것이 아니다.
사령술사에 대한 공포에 지배된 산적은 무턱대고 왕국 쪽에 붙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봐, 정말로 처형일 미뤄지는 거야?”
“응?”
독방의 바깥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산적이 쇠창살 쪽으로몸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단장님의 승인도 떨어졌으니까,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왜 우리가 저 놈들을 배려해 줘야하는 건데? 저것들은 마을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겁탈한 쓰레기들이잖아. 저런 것들한테도 끼니를 지급해야한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가네.”
“아, 그 건으로 단장님도 위에서 한 소리 들으신 모양이야. 죄인들의 처형 시기를 미루다니, 제정신이냐면서, 그런데 단장님도 의견을 굽히지 않으셨다네? 결국 궁정귀족들하고 단장님 사이에서 타협안이 나왔다고 하더라.”
“타협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많은 규모의 죄인들을 그냥 살려두고 있는 것은 수지에 맞지도 않고, 왕국의 법도에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고, 모래에 다섯 명의 죄인들을 남겨두고 모조리 처형시키라고 했다는데?”
“뭐…?”
그 말을 듣고 반문한 것은 산적이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에 휩싸이던 산적이 다급하게 대화를 나누던 단원들을 불렀다.
“이, 이봐!”
“응?”
산적의외침에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이 고개를 돌려 독방에 갇혀 있는 산적을 바라본다.
“모, 모래에 다섯 명을 남겨두고 처형이 집행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뭐야. 우리 얘기 들었나본데?”
“그런 것 같네. 뭐 말 그대로다. 너를 포함한 스무 명의 산적들 중, 다섯을 제외하고 모래 모두 처형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그런 말은 심문실에서 없었잖아!”
“우리도 방금 들은 얘기인데, 별 수 있나?”
“글쎄? 우리야 까라면 그냥 까야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단원들의 태도를 본 산적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젠장, 젠장, 젠장! 이러면…정말로 이렇게 죽어버리면…그 사령술사에게…그건 절대로 싫어…!’
은현이 이야기한 ‘영혼의 귀속’의 저주가 정말로 자신의 몸에 새겨져 있는지, 산적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의혹은 조금씩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 산적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만다.
“이봐!”
“엉?”
“정보! 제공하겠어! 지금 당장!”
다급한 산적의 목소리를 들은 단원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설마 정말로 산적이 증언을 하겠다고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이내 단원 하나가 종이와 펜을 가져왔고 함께 가져온 의자에 앉아, 산적이 입 밖으로 내뱉는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정보의 내용은 그다지 별 것 없었다.
자신을 포함한 산적들이 사령술사와 연금술사, 두 사람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고 인상착의는 어떠한지,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모조리 뽑아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주저리 말을 늘어놓았다.
‘평범한 정보로는 안 돼…. 특별한 정보,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 그것을 말해야 내가 저 다섯 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정보를 누설한다 하더라도, 정보의 질 떨어지거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 또한 모래에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산적을 더더욱 다급하게 부채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