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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화 〉116. 책임 (116/730)



〈 116화 〉116. 책임

원정의 복귀는 아무런 트러블이 없이 진행되었다.
느닷없이  밤중에 리오드의 원정복귀 선언을 들은 원정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집에 가겠다는데 그것을 마다하고 야외에서 잘 생각은 없었기에크게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차라리 늦게 출발하더라도 페르닌에 복귀해서  따습게 하고 자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페르닌으로 복귀하는 마차 안에서, 엘레노아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고 있는 브람 마을의 생존자 소녀를 무릎에 베고 있었다.

“이 아이는 어쩌실 예정이신가요?”

“보육원에 맡기려 합니다.”

“보육원이요?”

“네. 개인적으로 제가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이 있어요. 거기에 부탁해보려 합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저희 가문에 후원을 명목으로 백…돈을 줬던 적이 있었죠.”

순간, 엘레노아가 ‘백금화’라는 단어를 꺼내려다 주위의 시선을의식하고는 단어를 바꿔서 말했다.

“당신, 돈이 그렇게 많아요?”

“하, 왜요? 필요합니까?”

직설적인 질문에 은현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장난하는  아니라, 백금…그 돈을 일시불로 떡하니 내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손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끔 보여주던데, 설마 그걸로 위조를….”

“위조 금화를 건 냈다면, 공작께서 눈치를 채셨거나 지금 즈음, 큰 난리가 났을 겁니다. 정당하게 소지하고 있던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실제로 ‘운명의  여신’  우르드의 권능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복제의 권능은 사기적인 스펙을 가진 권능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베르단디나 스쿨드의 권능보다도 압도적으로 사기적인 능력이다.
한 번 보고, 소유하게  물건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수 있다는 얘기는 이전, 은현이 아브로스에게 건 냈던 백금화 600닢 또한 그가 권능을 통해서 만들어낸 ‘위조 금화’일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엘레노아가 우려했던 부분은 실로 정당했다.
이 나라에서 왕가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는 공작가가 위조 금화를 사용하다가 적발되었다는  밝혀지면, 그것만큼 가문의 망신은 물론, 나라 전체에 망신을 주는 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보다 언니가 내려준 권능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게 복잡한 기분이구나….]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거 아시면서.’

은현의 생각을 읽고 서운한 표정을 짓는 베르단디을 올려다보며, 은현이 웃었다.
그만큼 사기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우르드는 은현의 능력에 제약을 걸었다.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만큼 큰 규모의 권능의 사용의 남발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제약을.
사적인 용도로도 권능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상의 최상위 단위의 화폐인 백금화를 대량으로 양산하여 대륙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등의 행동은 불가능한 것이다.
권능의 제약에 대한 내용이 지극히 애매한 경우지만, 이 제약이 은현이 나쁜 마음을 품고 세상에 악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권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인 만큼,은현도 이 제약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품지 않고 납득하고 있었다.
때문에 은현은 ‘복제’의 권능을 전투에서 무기를 소환할 때를 제외하고는 크게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아르키스 대미궁 최심부 안에, 자신이 생활하는 5층 주택을 지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 전부였다.

“당신이라면 사기치고 아버지에게 위조 화폐를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뭣 하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합니까. 공작님을 적으로 돌려서  나라에 혼란을 조장해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그럼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얻은 건데요?”

“던전을 털었습니다.”

“던전을…?”

“네.”

“던전 몇 개를 공략했다고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재화가 아닌데요?”

또 다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엘레노아가 은현의 귀를 잡아당기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당연하죠.”

“네?”

은현은 엘레노아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따라하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엘레노아의 귓가에 자신이 지금까지 공략한 던전의 개수를 알려주었고, 도저히 상상도  수 없는 숫자를 들은 엘레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토끼눈으로 은현을 바라본다.

“당신! 지금 모험가 랭크가…으읍?!”

“쉿.”

“으응….”

“애가 깨요.”

엘레노아의 톤이 높은 목소리에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생존자 소녀가 작게 뒤척였다.

“그리고 이건 모험가 길드에 보고한 기록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

조용히 입 다물고 비밀로 하라는 의미를 알아들은 엘레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은현의 손이 겨우 떼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공략 숫자였지만, 은현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리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다.

“왜…나한테 그런 걸 알려주는 거죠? 비밀로 하는 거면 말 안하면 되잖아요.”

“‘위조 화폐’라는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하고 계시니까 말씀을 드린 거죠. 솔직히 그것보다 던전을 공략해서 벌은 돈이라는 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까?”

‘솔직히 양쪽 다 믿어지지 않는데?’

아직도 의심의 시선을 풀지 않은 엘레노아가 게슴츠레 은현을 노려보았지만, 그래도 은현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호위 기사 두 분은  어디로 간 겁니까?”

“잠깐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다른 마차에 태웠어요. 이곳은 어차피 환자들만을 태운 마차니까, 따로 별다른 위험도 없고요.”

“제가 있는데요?”

아무리 자신이 공작가문의 사람들과 비밀스러운 커넥션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존재하는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외간 남자와 대화하는 부분은 그리 좋은  아니다.
심지어 그녀는 귀족가의 여식이며, 언젠가는 정략결혼을 통해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할 미래가 정해진 여성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이런 거라고요.”

“흐음, 뭔가요?  대화라는 게.”

“먼저 나한테 사과해야할 게 있지 않나요?”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은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엘레노아가 정말로 화가  듯 꽉 쥔 주먹을 떨었다.
저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최대한 참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가슴에 검을 박아 넣었잖아요.”

“네. 그랬죠.”

“그랬죠?”

“……? 아프셨습니까? 이상하네, 통증을 느낄 리가 없었는데….”

“아픈 게 문제가 아니…! 후우우우우우!”

버럭 화를 내려다가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깊게 내쉬었다.

“좋아요. 이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고,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설명해주시겠죠?”

“말 그대로입니다. 성물이 가지고 있던 신성력을 공녀님의 몸 안에 강제로 주입시켰죠. 몸이 수용할  없는 수준의 신성력을 내포한 그릇이 깨지기 전에, 공녀님의 그릇을 강제로 확장시킨 겁니다. 다만 강제적으로 확장시킨 거기 때문에 아직은 후유증이 남아있을 겁니다. 몸이 저리거나 작은 충격이나 통증도 크게 느껴지실 거예요.”

처음 신성력을 주입당했던 엘레노아의  상태는 바람이 잔뜩 들어간 고무풍선과도 같았다.
엄청난 양의 공기가 주입되어, 그 한계를 넘어서면, 풍선이 터지듯이, 그때의 몸 상태는 과도한 양의 신성력으로 터질 위험이 있었지만, 은현이  최악의 사태를 면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기 전에, 그녀 스스로가 은현의 조언을 능숙하게 받아들이며 신성력을 활성화시켰고, 조절하면서 천천히 그릇의 한계를 확장시켜나가며 터지는 것을 면했던 것이다.

“…사실 아직도 몸이 저리긴 해요.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되는 거죠?”

“공녀님의 그릇이 모든 신성력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장된다면 후유증은 사라지실 겁니다. 시간은 공녀님의 역량에달렸죠.”

현재 그녀의 몸 상태를 가늠해본다면 완벽히 적응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고 은현은 판단했다.

“지금  상태는 어쩌면….”

“맞습니다. 평범한 중위 사제 수준은 아니죠. 아마 신전에서 공증을 받으신다면, 별다른 심사도 없이 상위 사제로 승격되지 않을까요?”

“하아…. 또 엄청난 일을 저지르셨네요. 이번에는 제 몸을…. 페르닌에 도착하면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가요?”

“일단 공작님을 만나 뵈어야겠지요.”

“아버지를…요?”

“공녀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멋대로 공녀님의 위계를 강제로 끌어올린 것에 대한, 보고는 제가 해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신전에게 한판 싸움을 걸러 가는 거지 않습니까. 여기에 공녀님이 엮이게 됐는데, 공작님께 보고도 안 드리고  몰라라  생각은 없습니다.”

“…….”

“사고 쳐놓고 책임도 안 질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저는.”

“그 말, 꼭 기억해두도록 하죠.”

성공적으로 페르닌에 복귀한 아르티아 기사단 원정대는 모험가들에게 길드에 대금을 지불할테니 추후에 찾아가서 대금을 수령하라고 전달 사항을 전파한 후 빠르게 기사단으로 복귀했다.

“저 진짜로  되나요?”

“안 됩니다.”

“제, 제발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한 번만 보게 해주시면…도,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릴게요!”

“본 개체는 모든 임무를 달성하였음을 보고하는 바입니다. 어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것을 권고합니다.”

에밀리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게 해달라는 세실리아의 애원을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
에밀리아 또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정말로 싫은지, 어서 재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레노아가 숨을 죽이며 웃었다.

“이 아이는 제가 맡아도 될까요? 이 아이가 하기 나름에 달렸지만, 공작 저택에서 하녀로 교육을 시키고 싶어요. 적어도 고아원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레노가 등에 업고 있는 브람 마을의 생존자 소녀를 바라보며 엘레노아가 부탁을 해오자,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도 감사하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직전인 늦은 새벽, 은현과 엘레노아 일행은 도중에 이탈하여 공작 저택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갑작스레 복귀한 엘레노아의 등장으로 공작 저택은 소란스러운 이른 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호위 기사들에게 고생했다며 수고의 한마디를 해주고, 엘레노아는 은현을 데리고 아브로스의 집무실로 향했고, 알렉스까지 집무실에 들어왔다.
저택의 집무실에서 원정대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상세히 들은 아브로스는 굳은 얼굴로 침음을 삼켰다.

“으음, 시체와 마수를 합성시키는 생체 연금술, 시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는 사령술, 그리고 계속되는 마을을 습격하여 시체를 조달하는 것까지.”

“저는 당장 공작령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아브로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장 집무실을 나와 이른 아침부터 공작령을 향하기 위한 채비를 시작했다.
적어도 자신의 영지 주변에서 브람 마을과 같은학살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알아보는 것이 명확한 정보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령술사에 대처하는 최선의방안이었다.

“포로로 생포한 산적들을 심문할 예정인가?”

“네. 현재 아르티아 기사단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흐음….  건은 올리비온 후작에게 맡기는 수밖에, 그리고 중요한 건…엘레노아의 사제 위계로군. 엘레노아.”

“…네, 아버지.”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만약 너의 위계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신전 측에서는 너를 주목할 지도 모른다.”

“저는 이번 신전의 행태를 두고  수가 없어요. 이 남자의 제안에 응할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너의 위계가 밝혀지면 신전 측에서 너를 포섭하기 위해 갖은 수작을 걸어올지도 모르지.”

“아버지. 저…지켜주실 거죠?”

묘하게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공작가문에 누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담겨있어 조금 떨리기까지 했다.

“하, 누군가가 뭐라고 해도 내 딸을 건드린다면 그게 신전이라고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다. 게다가 네놈도 생각 없이 내 딸에게 그런 수작을 부리진 않았겠지?”

날카로운 눈매로 아브로스가 은현을 노려보자,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은현이 피식 웃음을 보이며 여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물론입니다. 신전에 엿을 먹이자고 제안한 것도 저고, 공녀님의 위계를 강제로 끌어올려 신전의 주목을 사게 만든 것도 저니까요. 나 몰라라  생각은 없습니다. 제대로 책임을 지도록 하죠.”

“책임이라…꽤나 무거운 단어를 쓰는군. 그 말, 정말로 책임질 수 있나?”

“네? 그야 물론입니다.”

딸과 아버지가 똑 같은 말을 하는 것에 신기해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지만 이내 은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부전자전이라는 의미가 떠오른 달까, 아니 이 경우에는 부전여전이라는말이 어울리는 의미가 아닐까하고, 은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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