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112. 신종 마수 토벌(5) (112/730)



〈 112화 〉112. 신종 마수 토벌(5)

사령술(死靈術), 또는 강령술(降靈術)은 말 그대로 ‘죽은 자의 영혼’을 소환하여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사술, 흑마법 중의 하나다.
죽은 자의 혼은 육체와 연결이 끊어진 정신체를 의미하며, 사령술로 이승에 소환된 사령(死靈)은 주체인 사령술사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죽어서까지 평생을 거역하지 못하고 흑마법사의 종으로 혹사당하는 사령의 운명이란,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없는 가혹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사령술사가 더더욱 질이 나쁜 것은.

“시체를 가지고 장난질을 쳤다는 거지.”

죽어버린 자신의 몸에 마수의 신체 일부를 덕지덕지 붙이고 합성을 시키는 광경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사령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고인의 시체능욕도 몸 주인 앞에서 행해졌고, 이제는 평생 인간도 아닌 괴물의 신체에 강제로 영혼을 정착당해, 사령술사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죽여야만 했다.

“끔찍해요….”

은현의 설명을 들은 세실리아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마찬가지로 리오드 또한 세실리아와 비슷한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은현의 설명에 납득이 간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르미타스 공녀의 ‘정화’에 마수들이 모두 행동을 멈췄던 건가.”

“정화로 키메라의 몸에 정착되어 있던 사령들을 모조리 성불시켰으니까.”

은현이 마수들을 베면서 얻은 단서들로 추측하며 던진 도박수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조종한다라….”

은현이 언급한 ‘사령술’의 위험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리오드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처음에는 너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어, 나도 눈치 채지 못했어. 키메라들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면 공녀님에게 ‘축복의 기도’를 부탁하진 않았을 거야. 곧바로 ‘정화의 기도’로 마수들을 정화시키면 전투도 없이 키메라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으니까. 이건…순전히 내 실수야.”

“실수?”

“머릿속으로 이 세상에서  이상 사령술이라는 흑마법은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째서지?”

“내가 죽였으니까. 이 세상에서 유일했던 사령술사를.”

“…….”

“그 여자가 남겼던 모든 유산을 불태워 없앴어. 그래서 다시는…이 세상에서 사령술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연스레 은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그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듯 거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흐읍…!”

막사 안을 짓누르는 거친 기운에 숨이 턱 막힌 세실리아가 깜짝 놀라며 은현을 바라보았고, 리오드 또한 놀라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은현의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표정에서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야. 진정하거라.]

‘…여신님.’

[아이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는 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냐. 감정을 분출할  있게 된 것은 아이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감정에 휘둘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 않느냐.]

자신의 목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베르단디의 다독임에 작게 한숨을 쉰 은현이 차오르는 혐오감을 억누르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

‘후우, 그렇죠. 죄송해요.’

[후후, 괜찮다. 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자.]

‘네.’

몸속에서 흘러나오던마력을 거두어들이고, 은현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리오드와 세실리아에게 사과를 건냈다.

“미안, 좀 감정적으로 변했네요.”

“아니, 이건 네 개인적인 사연과도 얽힌 문제인 것 같군.”

“괘, 괜찮아요….”

아직까지 몸이 떨림이 가시지 않았는지, 세실리아는 자신의 억지로 떨림을 멈추게 하려고 양손을 맞잡고 있었다.
은현의 표정을 보고 ‘사령술’과 은현 사이에 있는 악연을 감지한 리오드는 괜찮다는 듯 자연스레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그래서, 네 생각을 정리하자면, ‘산적’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시체를 조달하고, 거기에 ‘연금술사’가 마수의 신체 일부를 합성시켜 인간형 키메라를 제작한 뒤, 그 인간형 키메라를 ‘사령술사’가 영혼을 정착시켜 조종한다. 라는 건가?”

“맞아. 공녀님의 정화로 그나마 훼손되지 않은 시체들을 조사해봤고, 모두 마을사람들의 시체였어. 남자, 노인, 어린 아이들, 여자들의 시체에서는 성폭행의 흔적도 발견했고. 키메라들 중에 산적들만 보이지 않았어. 사령술사, 연금술사와 산적들이 한 패거리라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야.”

사령술사와 연금술사가 산적들의 목숨을 보존해주는 대신, 그들을 시체 조달용으로 부려먹고 있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식량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겁탈할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었을 테니, 두려워서 하면서도 산적들이 그들을 따르는 데에는 명확한 당근과 채찍이 존재할 것이라 추측했다.

“내일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들로 수색대를 편성해서 산적의 흔적을 찾아봐야겠군.”

“내가 나설게.”

“괜찮겠나?”

“이렇게 된 이상 속전속결로 끝내야해. 저 마수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방치할 수 없고, 생산 방식은 더더욱 위험해. 아마 계속해서 다른 마을들을 습격하여 인간들을 학살하기 시작할 거야.”

“필요한 건?”

“움직임이 빠른 기사 둘을 붙여줘. 무슨 일이 생겼을  곧바로 너에게 전언을 보낼 수 있도록. 만약 해가 떨어질 때까지 나와 수색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네가 알아서 판단해.”

“저도 가겠어요.”

막사 안으로 들어오며 참가의사를 밝히는  여성의 목소리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은현과 리오드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색대에 굳이 공녀님이 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논리면 굳이 당신이 제일 먼저 나설 이유도 없지 않나요?”

“저는 수색과 정찰에서 적절한 행동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나선 겁니다. 공녀님은 아니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금 공녀님의 역할은 캠프에 남아 부상자들을 돌보는 역할입니다. 어째서 수색대에 참여를 하시려는 겁니까.”

“부상자들의 응급처치는 지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요. 단장님께 보고를 드리러 오던 차에 우연히 세 분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령술’이라고 했죠? 죽은 망자의 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모자라, 신체에 마수를 합성시켜 고인의 시체를 능욕하는 짓까지.”

주먹을 꽉  것도 모자라, 이를 갈며 분노의 감정을 표출해내는 엘레노아가 말을 이었다.

“얼굴이 뒤틀려 표정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던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요. ‘우리를 구원해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너무 혐오스러운 모습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나에게 상처받은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했던 그 아이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자신이 너무 미워졌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해방되고 싶었을까.
키메라가 되어 사령술사의 술수에 농락당해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망자들의 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속에 답답한 감정이 쌓여만 갔다.

“저들을 저렇게 만든 그 개자식들의 얼굴을 내가 직접 봐야겠어요.”

“붙잡으면 제일 먼저 이곳으로 끌고 와 공녀님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안 돼요. 못 기다려요.”

“공녀님의 호위 기사들이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요.”

“떼어놓고 나만 데려가면 되잖아요. 당신 그거 특기잖아.”

엘레노아의 신성력 위계를 억지로 확장시키기 위해,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그녀를 짐짝 나르듯이 어깨에 들쳐 업고, 납치 비슷한 짓거리를 했던 은현이 할 소리가 아니었다.

“요즘 은근 슬쩍 반말 섞으시는데. 자꾸 그러시면 저도 말 놓습니다?”

“아! 그러든가! 오라버니한테는 놓았으면서!”

“아무튼 안 됩니다.”

“아, 진짜!”

“저어…. 아저씨….”

“공적인 자리에서는 단장님, 또는 후작님이라 부르라고 했을 텐데.”

“다, 단장님.”

“뭐지?”

“저 두 분은 도대체 왜 싸우고 계신 건가요?”

세실리아는 ‘절대로 안 된다.’와 ‘무조건 따라 갈 거예요.’의 사이에서 절대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세실리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리오드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질문을 들은 리오드는 한참 대답을 하지 않더니, 팔짱을 끼고 두 눈을 지긋이 감았다.

“내가 너를 원정에 들이지 않았던 것이랑 비슷한 이유지.”

“으, 으음….”

리오드의 비유에 할 말이 없어진 세실리아가 머쓱한지, 자신의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회피했다.

다음날, 은현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마치고 함께 수색을 나갈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봐요. 아직도 꽁해 있을 거예요?”

“꽁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뭔데요.  마음에 안 든다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졸지에 수색대의 편성은 은현, 리오드, 엘레노아, 그녀의 호위기사들을 포함해, 상위 전력으로 구성된 20명이었다.
이 사태의 원흉은 다름 아닌 리오드가 자신도 은현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세실리아를 데려왔는데,  될 게  있냐는 지휘관으로써 실격인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자, 은현이 기가 찬 시선을 보냈었다.
애초에 이번 인간형 키메라 마수와의 싸움에 ‘사령술’이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안 이상, 엘레노아의 사제로서의 능력은 히든카드나 다름없었기에 판단 자체는 문제가 없었기에 은현도 크게 거부를 하지 못했다.
이 원정의 지휘관은 리오드이자, 자신은의견을 낼 뿐,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오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내가 억지로 따라오겠다고 해서, 화난 거예요?”

“아뇨, 공녀님 때문이 아닙니다.”

유독 은현의 기분이 저기압이라는 것을 알아본 엘레노아가 그의 눈치를 살폈지만, 은현은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사령술사와 은현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한 엘레노아에게는 은현이 이토록 굳은 표정으로 저조한 기분을 가지고 있던 것이 도리어 걱정이 됐다.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요? 제가 활력의 기도를….”

“아뇨. 그런  아닙니다.”

고개를 가로젓는 은현의 태도에서 가벼운 태도로 자신을 놀리던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자, 엘레노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키메라 마수들의 영혼이 정화로 성불한 순간부터, 아마 사령술사는 이변을 눈치 챘을 거야.”

“어쩌면 도주를 할지도 모르겠군.”

리오드의 검격과 엘레노아의 정화, 원정대원들의 전투로 도합 약 200여 개체의 인간형 키메라 마수들을 없앴다.
당연히 키메라들을 조종하고 있던 사령술사 측에서도 이변을 느끼고 무언가 행동을 취할 것이다.
200마리의 마수들을 토벌한 대규모의 전력들이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면, 흑마법사는 자연스레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규모의 군대가 왔다고 생각하고 도주를 생각할 지도 모른다.
신속히 수색대를 편성하여 흑마법사와 연금술사, 산적들의 흔적들을 찾도록 조치를 취한 리오드의 판단은 옳았다.

“출발하지.”

“그래.”

“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수색대의 선봉을 서게 된 은현이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대열로 향했다.
엘레노아가 무언가를 말하려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이내 사라진 은현을 생각하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라도 되는 건가?”

“제, 제가 저 사람을 왜 걱정하나요?”

불쑥 자신에게 질문을 해오는 리오드의 말에 화들짝 놀란 엘레노아가 리오드에게 대답했다.
평정을 가장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보였지만, 명백히 동요하는 그녀의 시선을 확인하고 리오드는 고개를 돌려 원정대의 대열로 시선을 옮겼다.

“나도 처음 본다. 저 녀석이 저렇게 혐오스러운 감정을 노골적으로 얼굴에 내비치는 것은.”

“후작께서도…처음 보시는 건가요?”

놀란 표정을 짓는 엘레노아의 물음에 리오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었지만,  녀석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적이  번도 없었어. 그건 나나 일리아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사령술사라는 그 흑마법과 은현 사이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는 거겠지. 우리를 만나기 더 이전에 엮인 악연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만큼 은현이 사령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보인 혐오 깊은 감정은 진짜였다.

“저 남자는…도대체  살인가요?”

한 시대의 영웅으로 불렸던 남자와 모든 것이 베일에 쌓인 젊은 남자의 사이에 이어져 있는 인연의 끈은 리오드가 은현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나보다 훨씬 많겠지.”

리오드는 은현의 무력을 가장 가까이서 본 존재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보여준 검술, 체술, 창술, 마법 등의 많은 것들이 그냥 재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피나는 노력과 많은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지고의 경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저히 한 인간의 인생 속에 담길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의 시간이 은현의 몸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오드는 은현을 존경한다.
그야말로 이 세계를 지킨 영웅이라는 것을 자신과 일리아나를 비롯한 몇몇 만이 알고 있다.

“슬슬 우리도 준비하도록 하지. 상황이 이렇게  이상, 그놈들이 도주하기 전에 붙잡아야 하니 서둘러야한다.”

“알겠습니다.”

엘레노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은현의 심기 불편한, 굉장히 기분이 저조한 표정을 보고  뒤라 그런지, 그녀의 가슴 속에도 뒤숭숭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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