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111. 신종 마수 토벌(4) (111/730)



〈 111화 〉111. 신종 마수 토벌(4)

“이…건…?”

가슴에 박힌 단검을 보며, 엘레노아는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것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갑작스레 그녀의 가슴에 박힌 단검의 형체가 희미해지더니, 손잡이만 남긴 채로 칼날이 사라지면서, 엘레노아의 격통은 시작되었다.

“아흐윽!”

 몸을 덮치는 격통을 느낀 엘레노아가 양팔을 감싸 안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어느새 인가 은현이 자신의 가슴에 박아 넣은 단검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린 상태.
자신의 가슴에 검이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에 기묘한 감각을 품었지만, 이내 전신이 불태워질 것만 같은 격통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된 원인인 은현을 노려보았다.

“당신…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거예요!”

“지금 공녀님의 몸 안에는 공녀님이 감당할  없는 수준의 많은 양의 신성력이 들어찬 상태입니다.”

은현이 엘레노아의 가슴 속에 박아넣은 단검은 엘레노아의 사제로서의 능력을 한 단계 위로끌어올리기 위해서 은현이 새로운 주거지인 던전 주택에서 직접 제작한 ‘성물(聖物)’이었다.
여신의 사도로서 가호를 받아 항상 함께 있는 여신에게서 신력을 제공 받을 수 있는 은현은 베르단디에게서 제공받은 신력을 이용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을 내포한 성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
아르케나 대륙에 존재하는 베스타 여신의 신성력이나 베르단디가 은현에게 부여한 신력의 성질은 다르지만, 신의 힘에서 비롯된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힘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베르단디가 오직 사도인 은현에게만 권능의 형태로 신력을 부여한 경우와 대륙에 존재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할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신성력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신성력이란, 신에서 비롯된 힘인 신력의 일부를 인간이 사용할  있는 수준의 낮은 농도로 희석시킨 물과도 같다.

“지금부터 공녀님의 신성력의 수용 한계를 강제로 확장시킬 겁니다.”

“하아, 하아. 그런 게…가능할리가…으윽!”

은현은 바로 단검을 엘레노아의 가슴 속에 꽂아 넣고, 칼날 안에 담겨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을 그녀의 체내에 직접 주입시킨 것이었다.
그동안 회복셔틀이나 여러모로 부려먹었던 것이 내심 고맙기도 했었기에, 그녀의 사제로서의 힘을 높이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을 강구했고, 베르단디의 허락을 받아 제작까지는 성공했지만, 이것을 언제  내줘야할지에 대해서 내심 고심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 이렇게 시도한 상황이다.

“마력을 운용하듯이 신성력을 체내에 순환시켜 조금씩 적응시키세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크…윽….”

신음을 내뱉은 엘레노아가 은현의 말에 따라 신성력을 조금씩 움직였다.
지금의 엘레노아의 상태는 정해진 그릇에 전부 담지 못하고 넘쳐흐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과도 같다.
억지로 한계 이상의 신성력을 주입시켜 강제적으로 신성력을 담을 그릇을 확장시키는 과정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자칫 잘못한다면 신성력을 담고 있는 그녀의 그릇이 깨져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

엘레노아는 온 몸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은 격통에 시달리면서도, 은현의 말을 들으며 신성력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에 집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세요.”

“후우우….”

숨을 크게 내쉴 때마다 불덩이 같았던 엘레노아의 몸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좋아요. 이젠 좀 진정이 됐나보군요.”

이마에서 흐르던 식은땀이 멈추고 안정을 되찾은 엘레노아의 상태를 점검한 은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리오드에게 5분이라는 시간제한을 두기는 했지만, 엘레노아가 실패할 경우에는 그녀의 신체에직접 간섭하여 직접 그릇의 확장을 도우려 했지만, 엘레노아는 은현의 조언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무리 없이 그릇의 확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중위사제에서 그녀를 견줄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신전에서 나선다면, 상위사제의 직함도 노려볼 수준이 아닐까하고 은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확장이 끝나자, 엘레노아가 두 눈을 부릅뜨며 은현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런  할 거면 미리 얘기를 하고 했어야죠! 진짜로 죽는 줄 알았잖아요!”

“말했잖아요. 시간이 없었다고.”

“날 여기로 굳이 데려와서 신성력을 주입시킨 건 왜죠? 거기서 성공적으로 주입시키고 이곳으로 오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아, 그건 공녀님의 호위기사 분들이 방해하실 것 같아서요.”

“잘 알고 계시네요. 아마 제 가슴에 검이 박히는 걸 목격했다면, 당장 당신 목에 칼을 들이밀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모셔서 했지 않습니까.”

“모셔서? 사람을 짐짝처럼 옮겨다놓고…!”

“시간이 없습니다. 공녀님. 결계 풀 테니까, 곧바로 정화의 기도  부탁드릴게요.”

“진짜로…원정이 끝나면, 이번만큼은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를 갈며 원망스러운눈초리로 은현을 노려본 엘레노아의 표정을 보고, 은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아무렇게나 막 대하는 저 태도와 말투가 너무나도 열 받았지만, 지금  순간 몸속에 맴돌고 있는 신성력들을 확인한 순간, 엘레노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닥을 드러냈던  신성력이 단숨에 채워졌어…. 심지어 평소보다 더 많은 양과 질이…. 정말로 내 위계가 향상됐잖아…?“

오랜 시간 수행을 거쳐야 중위 사제에서 고위 사제로 승급할  있는 기회를 잡을  있는 길이 열리며, 평생을 수행해도 중위 사제에서 사제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위 사제도 모험가 길드나 원정에서 존중을 받고 여기저기서 모셔가기 위해서 안달이 나있는 상황인데, 현재 엘레노아의 몸속에 있는 신성력의 양과 질은 명백히 중위 사제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도대체뭐야? 이 사람?’

여신에게서 직접 공수해 받은 신력을 이용해 양질의 신성력을 대량으로 생산시킨 것을 모르는 엘레노아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준비 됐죠?”

“네.”

“결계 풉니다.”

은현이 바닥에 꽂은 검을 뽑고, 그대로결계를 해제하자, 전장의 참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콧속을 자극하는 자욱한 먼지와 피비린내, 무기와 마수가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굉음,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마수들에 대적하는 원정대원들의 모습들이 엘레노아의 전신을 찌릿 곤두서게 만들며 자극시킨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에 깜짝 놀란 엘레노아가 몸을 들썩였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화의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신을 모시는 어린양이 간청합니다. 부디 이곳의 모든 타락한 기운을 몰아내고, 불쌍한 영령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하시옵소서.]

[베스타의 축복]
[퓨리피케이션(Purification)]

엘레노아의 기도에 맞춰 은현이  다시 품에서 꺼낸 보석을 허공에 던져 보석에 담은 마력을 해방시켰다.

[엘리시아 보석 증폭술]
[12월의 탄생석, 터쿼이즈(Turquoise)]

또 다시 허공에 떠오른 청록색의 영롱한 빛이 엘레노아의 ‘정화’와 어우러져 일대를 감싸기 시작했다.
청록색의 빛을 통해서 정화의 영향을 받은 키메라 마수들이 갑작스럽게 원정대원들과 전투를 벌이던 도중, 행동을 멈추고 우뚝 서있기만 했다.
이내 마치 실이 끊긴 목각인형마냥, 스르륵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자 키메라 마수들을 상대하던 이들의 입장에서는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가운데, 한 키메라 마수가 느리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엘레노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딜…!”

“괜찮아요.”

한 모험가가 키메라 마수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은현이 모험가의 행동을 말렸다.
어째서 마수의 접근을 막지 않고 허용하려는지 은현의 의도를 몰라 모험가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으나, 그가 이 전투에서 싸우는 모습을 목격한 모험가는 묘하게 확신에 찬 태도로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은현의 태도에 반항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쿠웅! 쿠웅! 쿠웅!

마수는 굉장히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팔에 붙어있는  쪽 씩 붙어있는 거대한 두께의 트롤의 팔은 명백히 엘레노아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소년의 키보다 거대하고 두꺼운 팔을 가진 키메라마수는 짧은 소년의 다리 대신, 한 쌍의 팔을 다리로 이용하며 이동해오고 있었다.
 팔을 다리처럼 이용하며 걸어오고 팔의 중심에 있는 소년의 육체가 허공에 붕 떠있는 형태는 기형적이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수에게서 공격의 의사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천천히, 엘레노아를 향해 걸어올 뿐이었다.
은현과 엘레노아를 포함한 주변에 있는 모든 이가 어린 소년형의 키메라 마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엘레노아의 앞에 도달한 마수가 다리역할을 하던 팔을 구부려 몸을 낮추고 엘레노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읏….”

얼굴이 뒤틀리고 입이 기형학적으로 비틀린 소년의 얼굴을 보고 엘레노아가 무심고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고마…워…요….”

“뭐…?”

힘겹게 짜내는 듯 말하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에 엘레노아가 깜짝 놀라며 뒤틀린 얼굴을 가진 소년을 직시했다.

“우리…를…구원해…줘서…정말…로…고맙…습….”

감사의 인사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정화의 빛’에도 성불하지 않고 이곳까지 걸어온 소년이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 성불하자, 엘레노아는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여 말을 잇지 못했다.

◆ ◆ ◆

엘레노아의 활약으로 전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0명을 달성 할 수 있었다.
원정에서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다는 리오드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기형적인 키메라 마수와의 전투를  한명의 사상자도 없이 승리를 이끌어낸 원정대의 사기는 최고로 치솟아 올랐다.
 중심에는 당연 리오드 뿐만이 아니라 ‘페르닌의 꽃’인 엘레노아라는 두 인물이 일등 공신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에 전장의 중심에 서서 정화의 기도로 마수들을 단번에 처리한 그녀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후 리오드는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여 베이스 캠프를 설치했고, 엘레노아는 다른 사제들과의 협력을 통해 중상자와 경상자들을 분류하고 원정대원들의 케어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그 마수들은 ‘생체 연금술’에 의해서 합성된 ‘합성 마수’의 일종이 맞다는 건가?”

“…분하게도, 맞아요…. 제가 틀렸네요. 엄연히 이렇게 성공한 사례가 존재하니.”

베이스 캠프가 설치되고 지휘관 막사에서 세실리아의 보고를 들은 리오드는 침음을 삼켰다.
세실리아는 이전, 리오드에게 인간과 마수의 합성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바가 있었으며, 그녀가 이번 원정에 기필코 따라왔던 목적은 이 마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세실리아의 입장에서는 학자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분한 심경이었다.
나름대로 연금학에 정통하고 아이테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인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이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난 거지?”

“그건…이쪽 분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아, 미안. 조금 늦었네.”

“…그 냄새는 어떻게 할  없나?”

심지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한 비위 때문에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못한 세실리아는 방금까지 키메라 마수들의 시체를 해부하고, 그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곳으로  은현을 보며 기가 질린 시선을 보냈다.
수십 마리의 마수를 해부하고 온 은현의 몸에서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고, 마수의 시체 냄새가 지휘관 막사 안을 가득 채우자, 리오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리오드,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믿을 수 있겠어?”

“언제는 내가 네 말을 믿지 않았던 적이 있던 것처럼 들리는 군. 얘기해라.”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인간과 마수가 합성이  수 없는 이유.”

“오염된 마나 때문이라고 했지. 결국 합성을 시켜봤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마수가 되어버린다고.”

그건 더 이상 인간과 마수의 합성이 아니다.
마수와 마수의 합성이라고 봐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때 내가 얘기했잖아. 만약 인간이 오염된 마나를 체내에 품고도 마수화의 진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기억하고 있다.”

“그게…가능한 건가요?”

“아무래도 이 마수들을 만든 자는 그 방법을 찾은 모양이더군요. 아주 악질적인 방법으로.”

은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기분이 더럽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하는 은현을 그렇게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던 리오드로서는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다.

“무슨 방법이지?”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마수와 합성시키는 거야.”

“네…?”

“사람은 죽으면 체내의 마나는 사라지고 빈껍데기만 남습니다. 마수의 신체 일부를 합성시켜도 체내에 마나가 남아있지 않으니 마나가 오염될 일도 없고, 이미 죽어서 활동을 멈춘 인간의 시체가 마수화로 진행될 일도 없지요.”

“하, 하지만…그러면 어떻게 움직이는 거죠…? 결국에는 베이스가 되는 인간의 몸도 죽은 상태라면, 시체와 마수의 신체 일부를 합성해봤자, 그건 결국 시체일 뿐이잖아요.”

“거기서 고안한 방법이 이거겠죠. 교수님, 이 세상에는 말이죠. 금지된 사술인 ‘흑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건…저도 알아요.”

최근 엘빈 헤르샤의 사건으로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 ‘흑마법’이 아닌가.

“일반적인 마법들에도 종류가 다양하듯, 흑마법에도 종류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 중에는…이미 죽어버린 고인의 시체에 강제로 영혼을 정착시켜 평생을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사령술(死靈術)이 있습니다.”

“인간의 시체를 자신의 종으로…설마…!”

“교수님의 생각이 맞을 겁니다. 리오드. 이 사건에는 최소한 세 종류의 부류가 함께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해.”

“…얘기해라.”

“첫째, 마수와 사람을 합성시킬 수 있는기술을 가진 ‘연금술사’, 둘째, 인간의 시체를 베이스로 만든 합성 마수, 키메라를 조종할  있는 ‘사령술사’, 셋째, 아마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인간의 시체를 조달해오는 ‘산적들’. 무슨 얘기인지 알겠지?”

목적은 아직까지 불분명하며 단정 지을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로 죽은 인간의 몸에 마수의 특성을 그대로 합성시켜 강력한 키메라 마수를 만들고, 죽은 인간의 몸을 ‘언데드’로 만들어 사령술사의 통제를 받는 마수군단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페르니아스 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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