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6. 원정 복귀(2)
“왜 그러시죠?”
어째서 은현이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던 테레지아가 담담하게 은현에게 물었다.
“그, 그럼…일리아나에게 이상한 걸 가르친 것도…후작부인이셨던 게 맞습니까…?”
“친구의 부인에게 그걸 직접 물어보시는 것은 좀….”
“아, 죄송합니다. 배려가 부족했네요.”
아직도 이쪽 화제에 대해서는 눈치가 전혀 없던 은현은 황급히 테레지아에게 사죄했다.
“단지, 걔가 갑자기 도망치더니, 아무래도 후작부인께 이상한 걸 배워 와가지고 저를…그…후우, 아니, 아닙니다.”
도저히 자신의 입으로 꺼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기에, 은현은 차마 일리아나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입에 담지 못했다.
“후후, 은현님께서 뭘 고민하고 계시는지는 알고 있답니다. 제가 드린 도움이 효과가 있었나보네요.”
“…앞으로는 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알려주지 마세요. 제가 더 이상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져요.”
성욕에 눈이 떠버린 일리아나가 더 이상 성장해버린다면 은현은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서지 않았다.
“후후, 그분이 저에게 이런 상담을 해왔을 때는 정말 신선했답니다.”
“마님, 후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알았어.”
노크를 하고집무실로 들어오는 시종의 말에 테레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현과 함께 집무실을 나왔다.
중앙의 홀로 내려오자마자, 문을 열고 저택으로 들어오는 리오드를 테레지아가 맞이한다.
“어서오세요.”
“음.”
웃으며 자신을맞이해주는 아내의 인사에, 리오드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옮겨 은현을 발견했다.
“왔군. 오늘 올 거라는 소식은 들었다.”
주기적으로 일리아나와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던 테레지아를 흘끔 바라본 리오드가 말을이었다.
“성장은 있었나?”
“그걸 판단하는 건 네가 해야지.”
무엇에 관해 묻는 것인지, 굳이 서로 묻지 않아도, 은현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상냥하게 굴리진 않았어.”
“…그 말이 그다지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는군.”
딸이 어딘가에서 몸을 혹사시키며, 잔뜩 고생하고 돌아왔다는 것에 좋아할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을 원했던 것이 에이라의 선택이었기에, 걱정을 하면서도 리오드는 딸을 원정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적어도 대련 정도는 한 번 해줘. 그 아이는 너를 목표로 노력해왔으니까.”
“그 말은 적어도 너는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걸로 들리는 군.”
“일단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으니까. 네가 실망할 수준이었다면 네 평가에 자신이 있지도 않았어.”
“그 말이 기쁘면서도 복잡한 심경이다. 그냥 다른 귀족 영애들처럼 자기 어미를 따랐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 그 말을 에이라가 들었다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알고 있어. 단지…이제는 포기해야할 때가 왔다는 거겠지.”
자신의 딸을 자신의 기사단에 받아들일 결심을 해야 하는 리오드의 심경은 복잡한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더 강해질 거다. 적어도 네 딸이라서 아르티아에 내정 받았다는 소리는 안 들리게 하고 싶었으니까. 에이라도 그 소리는 죽기보다 싫었던 모양이고. 제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자존심이나 승부욕 하나는 장난 아니었어.”
“후후, 에이라가 그랬었나요?”
자신이 모르는 딸의 일면을 상상한 테레지아가 흥미롭다는 듯 은현에게 되묻는다.
쓰게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에이라의 아버지인 리오드를 바라보았다.
못 견디겠다는 듯 아내의 시선을 피한 리오드가 은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은현, 마침 너에게 한 가지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다.”
“상담? 흐음, 표정을 보아하니, 또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 같네. 알았어.”
간단히 은현이 승낙하자, 고개를 끄덕인 리오드의 반응을 본 테레지아가 시종들을 시켜 집무실로 차를 가져오라며 전달을 했고, 세 사람은 다시 집무실을 향했다.
이윽고 저택에 와서 두 번째 차를 마시며, 은현이 리오드가 천천히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너는 연금술 쪽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졌었지?”
“뭐, 그럭저럭?”
연금술은 은현이 가지고 있는 많은 기술 중에 하나다.
그가 이번에 아르키스 대미궁 안에 집을 건축하면서 만들었던 자재들에도 연금술을 이용한 가공처리가 들어간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으며, 앞으로 정체를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은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 발휘하기 위해서 미궁 안에 건축된 빌라 안에, 대장간과 연금술 공방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을 만들 예정이었다.
“연금술의 일부 중에, 생물과 생물을 하나로 합치는 기술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나?”
“‘생체 연금술’을 말하는 거야?”
“대충 그런 이름인가 보군….”
작게 중얼거린 리오드가 은현의 언급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너는 혹시 마수와 마수가 합쳐진 경우를 본 적이 있나?”
“마수와 마수가? 흐음. 있기야 하지.”
‘생체 연금술’의 기원은 생명체와 생명체를 합성시키면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일종의 지구의 ‘생명과학’과 비슷한 분야다.
이 연구의 목적은 가축을 인공적으로 쉽고 빠르게 성장시켜 식량의 공급을 안정화시키거나, 전투나 훈련에 필요한 생물체들을 위험하지 않는 선에서 인공적으로 가공하여 만드는 방식, 인간의 생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의학’의 영역에도 어느 정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심지어 인간들의 사회를 습격하고 위협하는 존재들인 야생의 ‘마수’의 존재들은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응책을 생각하고, 소탕해 내야하는 존재들이다.
주로 이것에 대한 문제의 처리는 현재, 모험가 길드와 연금술사들의 협업을 통해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은현은 알고 있었다.
리오드의 질문을 들은 은현은 그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쳐두고, 가능성의 여부에 대해서 답변을 해주었다.
“키메라라고도 불리지.”
“그럼, 인간과 마수가 합쳐진 경우는?”
그가 입에 담은말을 듣자마자,은현 뿐 만이 아닌, 테레지아마저도 놀란 눈으로 리오드를 바라보았다.
“흐음….”
은현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고 생각에 잠겼다.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괜히 혼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조금 고심하면서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리오드와 시선이 마주치자, 은현은 결국 입을 열었다.
“이론상, 불가능한 건 아니지. 하지만 너라면 나에게 묻기 전에, 이미 여러 곳을 둘러보며 조사를 할 줄 알았는데?”
“오늘 아이테르에서 연금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아, 그 세실리아라는 여자?”
“알고 있나?”
“어쩌다보니, 이전 엘빈 헤르샤의 담임이었고, 지금 에린의 담임교수니까. 보호자차원과 엘빈의 일을 조사할 때 몇 번 마주쳤어.”
“…기구한 인연이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여자의 답변은 ‘인간과 마수는 합칠 수 없다.’였어. 하지만 너는 다르게 대답했지.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근거를 듣고 싶다.”
“마수와 마수의 합성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는 그 종족의 근원이 같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서, 네가 심하게 다쳤고, 네 몸 속에 피가 심각하게 모자란 상황이야. 너에게 부족한 피를 수혈 해줄 수 있는 건 같은 피붙이인 자식들, 에이라와 엘리온 밖에 없겠지. 하지만 네 몸에 모르는 낯선 사람의 피가 수혈된다면, 너는 어떻게 될까?”
“죽겠지.”
담담하게 대꾸하는 리오드의 말에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예시로 들었지만, 이런 것처럼 마수와 마수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공통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융합해서 합성한다면 성공시킬 수 있어. 이 공통된 부분이 바로 마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오염된 마나’야. 바로 인간과 마수가 합성 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이미 오염되어 변질되어버린 마나는 인간의 몸속에 들어온 순간, 그 육체를 오염시킨 끝에, 육체를 끔찍한 몰골로 만들어 ‘마수화’를 시켜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를 유지시키면서 마수의 일부를 합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이테르의 연금학 교수인 세실리아의 의견이었다.
“그 여자가 말했던 불가능하다는 근거도 이 부분을 예시로 든 거겠지?”
“예시는 달랐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했던것 같군. 하지만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뭐, 이론상으로만.”
“어째서?”
“네. 리오드 기억 해? 옛날에 제국의 인간들이 일제히 마수들로 변해버렸던 거.”
“네?”
깜짝 놀란 테레지아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린 리오드의 미간이 단번에 좁혀진다.
“그때의 끔찍한 광경 말이군.”
아르케나 대전쟁을 일으킨 나라, 미르바빌라 제국의 황제가 미쳐서 제국 수도에 마기를 흩뿌렸고, 대기중에 녹아있던 마나를 오염시켜 수도 전체의 백성들을 마수로 변화시켰던 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건…인간이라기보다, 이미 마수로 변질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정확히는 마수로 변이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 만약 인간이 오염된 마나를 체내에 품고도 마수화의 진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
“오염된 마나를 품고 있는 인간의 육체에 마수의 신체를 합성시키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결국엔 은현이나 세실리아나 ‘인간’과 ‘마수’가 합성이 될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비슷한 근거를 채용하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점은 명백히 틀렸다.
세실리아의 경우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은현의 경우에는 모종의 수단만 찾아낸다면 못해낼 것도 없다는 의견이었으니까.
“으음….”
리오드가 작게 신음을 내뱉으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가네.”
“뭐가 말인가요?”
생각에 잠긴 리오드를 대신해, 인상을 살짝 찡그린 은현에게 테레지아가 물었다.
“굳이 이런 복잡한 작업을 거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유…인가요?”
“마수와 마수를 합성시키는 생체 연금술은 연금학파의 사이에서도 굉장히 마이너한 분야에요. 합성시키기 위한 마수의 샘플을 구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무엇보다 마수와 마수를 합성시켜서 얻을 수 있는 매리트가 없다시피 하니까요. 고생스러운 연구 끝에 합성 마수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합성 마수가 쓰이는 데가 파괴를 동반한 군사적 목적 밖에 없으며, 합성 마수를 연금술사가 제어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즉, 들이는 노력과 비용에 대비해 받을 수 있는 보상이나 성과가 극히 적다.
게다가 합성 마수의 제어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연금술사를 포함해, 주변에 미치는 피해도 결코 적지 않으리라.
노력이나 비용 뿐 만이아니라, 적지 않은 리스크도 고려를 해야 한다는 뜻.
“마수와 마수를 합성시키는 것도 다들 꺼리는 분야인데, 이 와중에 인간과 마수를 합성시키는 분야라니,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으니까요.”
은현이 리오드를 흘끔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그 ‘인간형 합성 마수’를 만든 데에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목적…이라….”
은현이 말한 단어를 곱씹으며, 리오드가 침음한다.
“지난 주, 어린 여자아이가 위병들을 통해서 한 마을의 구조 요청 신고가 들어왔다. 자신의 마을이산적들의 습격을 당했고, 남자들과 노인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끌고 가버렸다고. 신고를 해온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겨준 부모의 노력 끝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고, 혼자가 된 아이는 무서워서 마을을 떠나 정처 없이 혼자 걸었다고 한다. 마침 길을 지나가던 상단의 상단주가 여자아이를 발견해, 페르닌까지 데려와 위병들에게 맡겼다고 하더군.”
그리고 그 아이를 달래던 위병은 어린 여자아이의 울먹이는 증언을 토대로 마을의 사정을 알았으며, 이 사실을 상관에 보고하고, 기사단을 파견시킬 수 있도록 요청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공작께 연통을 넣어 병사의 차출을 요청했고, 3명의 기사와 5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산적들의 토벌을 위한 원정을명했지.”
“…결과는?”
“산적들을 찾아볼 수도 없었고, 마을로 원정을 향하던 도중, 아르티아의 기사들과 페르니아스 병사들이 조우한 것은 마수의 신체의 일부가 합쳐져 있는 인간들이었다고 하더군.”
마수의 신체가 합성되어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커다란 몽둥이마냥 굵은 녹색피부의 오크의 팔뚝만이 붙여진 비쩍 마른 남자나, 날랜 몸놀림을 자랑하는 늑대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 거대한 거미의 하체위에 여자의 상체가 붙여져 있는 기괴한 형태 등,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그것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미지의 존재’이자, 공포 그 자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