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03. 합숙훈련(2)
“““하나!”””
삑! 삐이~삑!
“““두울!”””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양 다리를 수직으로 세워 몸을 L자로 만든 사람들의 양 다리가 은현의 호루라기 소리의 박자에 맞춰,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를 반복한다.
“““세엣!”””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많은 동작으로 몸속의 체력이 바닥나기 직전인 유리아의몸은 허리가 끊어질 것 만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삑! 삐이~삑!
“““네에엣!”””
아무리 지속적인 단련과 기사수업을 받고 있었다지만, 아직 10대 소녀들에 불과한 에린과 에이라에게도 지금의 훈련이 버거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지속적으로 쉬어가는 목소리로 애를 쓰며 훈련을 버티고 있었던 이유는 한 명이라도 정해진 횟수를 채우기 전에 낙오자가 발생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연대책임으로 엘레노아를 제외한 여섯 명의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정해진 조건을 채우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까지 싸잡아서 동시에 패널티를 먹이는 악마적인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악질적이었던 것은.
“다섯! 아! 진짜 죄송해요!”
“자, 마지막 구호가 나왔군요.”
“아….”
입꼬리가 올라가며, 씨익 미소 짓는 은현의 얼굴을 두 소녀는 절망어린 시선으로, 한 여자는 정말로 죽이고 싶다는 시선으로 쏘아본다.
마지막 구호가 나올 때마다 횟수가 초기화되는 것은 물론, 이전의 두 배에 달하는 횟수를 채워야 통과가 된다는 점?
아니다.
바로 자신들 사이에 스파이를 심어두었다는 점이었다.
유리아가 마지막 구호를 입에 담았던 아이샤를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몸을 움찔 떤 아이샤가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이샤를 포함해, 알렉스와 메르딘이 번갈아가며 마지막 구호를 일부러 입에 담으며 억지로 패널티를 부과시키고 있었던 점이 유리아를 더욱 열 받게 만든다.
사실상 모두가 합심하여마지막 구호가 나오지않도록 하는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오죽 유리아와 에린, 에이라의 시선이 절망적이기까지 했으면, 알렉스 일행이 죄책감에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그녀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기까지.
그렇게 굽혀닿기, 쪼그려 뻗히기, 굽히기, 뛰기 등 다양한 체조를 하고이들 중 가장 운동과 담을 쌓았으며 체력이 낮은 유리아가 가장 먼저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무슨 훈련이야…. 이 개X식아….”
유리아의 입장에서는 그냥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악질적인 방법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결국 한계를 맞이하고, 바닥에 털썩 쓰러지며 욕을 내뱉은 그녀의 현재 상태는 도저히 일국의 왕녀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추태를 보이고 있었으나, 누구도 그녀를 탓하지 못했다.
알렉스를 비롯한 메르딘과 아이샤는 유리아의 체력을 방전시키는 것에 일조한 공범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에린과 에이라 또한 잔뜩 지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큰 원인이었다.
“한 분이 한계가 오셨군요. 이외에도 많이 지친 사람이 있어 보이니, 휴식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공녀님.”
“…네.”
이 중에서 유일한 회복담당인 그녀는 훈련에서 열외 된 상태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하나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만신창이로 만든 은현을 기가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체력이 다해 쓰러진 유리아를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은현은 양 팔에 소녀를 한 명씩 들쳐 업고는, 그대로 유리아를 부축하며 입구 쪽으로 이동하는 엘레노아의 뒤를 따라 걸었다.
“좀살살 다뤄주면 안 돼요? 오라버니나 크라시르의 단원 분들은 괜찮겠지만, 왕녀님이나 이 아이들은 아직 연약해요. 진짜로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게다가 지금 여기에는 공녀님이 계시니까,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겁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요.”
“날 걸어 다니는 포션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원래 사제의 숙명이란 그런 법이죠.”
“…흥!”
얄미운 말을 골라서 하는 은현을 노려본 엘레노아가 고개를 돌리며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양팔에 끼운 두 소녀들을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은현은 둘을 벽에 기대게 만들고는 얼굴의 안색을 살피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냥 탈진인 것 같고. 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 여기 물마시면서 좀 쉬고 있어.”
“응….”
“감…사합…니다….”
은현이 건 내준 생수통을 받아든 두 소녀는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 모습을 본 은현은 그대로 뒤를 돌아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후하아! 드디어 살 것 같아!”
“하아아….”
몸속에 수분이 들어가자, 에이라의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며 축 늘어졌다.
“에린….”
“네?”
“은현님은…원래 훈련을 시키실 땐 사람이 돌변하니…?”
“아, 아하하, 현이가 좀 훈련하는 것만 유독 저렇게 집착이 심해서요….”
에린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은현을 변호했다.
“그래도…그때부터 이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계속 받아온 거지?”
“어, 음, 네.”
자신이 받았던 교육은 솔직히 이것보다는 훨씬 약과나 다름없었지만 그때 당시의 에린은 아무것도 모르고 검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던 평범한 소녀나 마찬가지였다.
은현이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이유도 지금의 에린이라면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에린은 믿고 있었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어….”
“어…후작님이요?”
“은현님의 훈련은 정말로 힘들고 지옥 같은 시간의 연속이지만, 그 훈련을 견뎌만 낸다면 정말로 한 사람의 기사로서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하셨거든. 그런데…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어…혹시 그만두고 싶으세요?”
“아니, 더 의욕이 생겼어. 이번 훈련을 마치고, 반드시 아버지한테 검술로 도전해서 인정받고 말거야.”
축 늘어진 채로 벽에 기댄 에이라의 모습은 굉장히 볼품없었지만 주먹을 꽉 쥔 채로 결연한 눈빛을 잃지 않은 것만큼은 굉장히 눈이 부시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같이 힘내요! 에이라님!”
“응.”
그녀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에린이 에이라의 손을 꼭 잡으며 결의를 다졌다.
한편, 소녀들을 데려다 주고 다시 돌아온 은현은 알렉스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아직 할만하지?”
“물론.”
알렉스가 대답함과 동시에, 메르딘과 아이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왕국 최고의 기사들만이 입단할 수 있다는 왕국근위기사단에 입단한 실력이 폼은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체력의 단련도 꾸준히 해온 그들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잔뜩 달아오른 몸이나, 땀으로 옷을 흥건히 적신 모습들을 보면, 그들의 체력이 어느 정도 소모가 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실,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따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미 상위 중 최정상의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인 크라시르의 단원들이지 않습니까. 제가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우습지요. 그러니까 말이죠.”
은현이 몸 안의 마력을 활성화 시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번 죽기 살기로 싸워보는 게 어떨까요?”
은현의 몸에서 방출된 고밀도의 마력이 순식간에 훈련장 내부를 덮쳤고, 은현의 마력을 느낀 모두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곧바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세 사람이 머릿속의 위험신호에 급히 각자의 무기를 들었고 경계의 태세를 취하기가 무섭게, 가장 가까웠던 메르딘의 품 안에 은현이 파고들었다.
“이런…!”
미처 경계를 빠르게 하지 못하고 허점을 보인 순간은 매우 짧았으나, 은현에게는 너무나도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몸을 뒤로 빼며, 메르딘이 은현과의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그가 뒤로 빠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은현이 몸을 숙이며 더욱 안쪽으로 파고 들어온다.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은현의 오른 주먹이 메르딘의 왼쪽 옆구리를 강하게 때렸다.
“크으윽!”
은현의 강력한 바디 블로우를 정통으로 맞은 메르딘의 몸이 휘청거리며 ‘<’자로 꺾이기까지 했지만, 하체에 힘을 실어 몸이 쓰러지는 것을 막고 휘청거리는 신체의 균형을 바로잡았다.
“오.”
은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일격으로 그의 갈비뼈 몇 대는 부러뜨렸을 터, 곧바로 엘레노아를 부를 생각이었는데, 은현의 공격을 눈으로 보고 메르딘은 자신의 옆구리에 마력을 집중시켜 방어력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정통으로 맞은 은현의 공격을 버텨냈다.
평소의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닌, 극소량의 마력을 담아 최소한의 위력으로 때린 일격이었지만, 메르딘은 훌륭하게 대처를 해냈다.
항상 전위에서 앞에나서며 동료들을 지키는 포지션인 탱커의 역할이 몸에 밴 것이 이끌어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진짜인지, 메르딘의 인상이 단박에 찌푸려지면서 그 원흉인 은현을 보며 대검을 들어올렸다.
있는 힘껏 은현을 향해 대검을 내려찍으려 했지만, 큰 동작에서 비롯된 느린 공격을 가만히 맞아줄 은현이 아니었다.
대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메르딘의 복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흐읍!”
숨을 들이키며 힘을 모으던 메르딘이 대검을 아래로 내리치려던 순간, 은현은 피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경계가 허술해진 메르딘의 복부에 다시 한 번 주먹을 꽂아 넣는다.
“크아악!”
메르딘의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대검의 내려찍기 공격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무산되었고 이번에는 마력을 집중시켜 제대로 된 방어도 해내지 못해 그대로 뱃속의 위액을 쏟아냈다.
“우웨액!”
“메르딘!”
황급하게 알렉스가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대검의 장점은 바로 당신의 근력에서 비롯된 파괴력과 다른 무기들보다 리치가 길다는 장점입니다.”
“…….”
“가장 처음, 제가 기습으로 메르딘님, 당신의 품을 파고들었을 때, 당신은 놀라서 거리를 벌리고 저와 자신의 간격을 유지하고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했죠. 하지만 제가 그걸 읽었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서 유효타를 먹였습니다. 거기서순식간에 제 공격을 방어하여 데미지를 최소화한 것 까지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왜 거기서 대검을 내려찍는 공격을 선택하신 거죠?”
“…할 말이없군.”
좁은 거리의 초근접전의 싸움에서는 대검의 사용은 오히려 불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반면 은현처럼 맨주먹을 사용하거나 리치가 짧은 무기들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은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메르딘은 은현의 공격을 버틴 것 까지는 본능적인 감으로 벌인 행동의 결과였지만, 이후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곧바로 은현을 공격한다는 선택을 내린 것은 패착이나 다름없었다.
은현이 집요하게 따라 붙는 한이 있더라도 메르딘은 계속 거리를 벌리려는 노력을 하거나, 그 상황에 맞는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대검을 고집하여 공격을 시도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메르딘이 침음을 흘렸다.
“신체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최상의 조건을 갖췄습니다. 부족한 것은 경험, 판단, 기술.”
페르니아스 왕국 출신의 기사들은 기본적인 신체적인 스펙이 굉장히 높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테르에 입학하면서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견습기사의 길을 걷고 왕국 소속의 기사단에 입단하는 엘리트 코스를 받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테르에 있는 ‘페르니아스의 신목’의 영향을 받은 아이테르 졸업생들은 기사가 되기 이전부터 압도적인 마력을 보유하고, 그 마력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신체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있던 것이 도리어 발목을 잡고 마는 것이다.
알렉스와 메르딘의 나이는 올해로 24살.
20살에 아이테르를 졸업하고 크라시르에 입단한 시기를 고려하자면, 대략적으로 21~22살.
그들 보다 나이가 더 어린 아이샤는 마찬가지이며, 모두 기사가 된지 1~2년차밖에 되지 않는 갓 수습을 뗀 기사들이다.
꾸준한 단련으로 기본적인 축복받은 육체가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육체를 사용하는 주인의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하고, ‘판단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또한 그 축복받은 육체가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부터 3주간, 그것을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이 때려 넣어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