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097. 새로운 집은 던전(2) (97/730)



〈 97화 〉097. 새로운 집은 던전(2)

“측정 불가능…?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마스터의 전투력은 측정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째서요?”

“본 개체가 산출한 수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밀리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에린이 뭐라 대꾸하지 못하고 있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있던 알렉스가 물었다.

“어째서 확신할 수 없다는 거지?”

“본 개체가 마스터의 전투력을 산출한 결과, 마스터의 측정치는 약 3만2천 정도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참고로 나는 얼마지?”

지금까지 에밀리아를 통해 전투력을 측정해본 이는 일리아나와 아이샤가 전부이다.
 수치는 7만대와 1만대로 두 사람 사이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은현의 수치가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를 비교하기엔 데이터가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새로운 인물의 정보를 분석합니다. 대상의 예상 전투력 측정치는 약 2만2천 정도로 추정됩니다.”

“…차이가 많이 벌어지는 군. 그래서 측정치를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가 맞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어째서지?”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은 에밀리아가 아닌 전혀 다른 쪽에서 이루어졌다.

“간단하죠. 수치로 고려할 수 없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에요.”

“왕녀님?”

파티원들이 유리아의 말에 반응하여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고려할 수 없는 수치라는 건 무엇인가요?”

“숫자라는 건 말이죠.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정직한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가장 잘못된 정보를 전할 가능성이 높은 수단이기도 해요. 에밀리아, ‘시련의 궁’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졌던  남자와 인형들의 전투, 스트리밍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당신인가요?”

“그렇습니다.”

“그 남자가 상대했던 인형들의 전투력은 몇인지  수 있나요?”

“약 3만에서 4만 사이의 전투력으로 설정되어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리아는 ‘역시나’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인형의 계산상으로는 그 남자와 인형 부대의 싸움에서 패했어야하는 쪽은  남자 쪽이었어야 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달랐죠. 그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인형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여줬으니까요. 사실상 숫자로 보면, 그 전투력이라는 수치로 3만과 3만5천 정도의 일대일 대결이라면 몰라도,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인형들에게는 패배할수 없는 조건이었으니까요.”

힘은 대등하다고 할  있으나, 숫자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남자가 인형 부대를 이길  있었던 이유는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경험, 기술 등을 종합한 판단 능력이 우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으음.”

알렉스는 신음했다.
이전, 일리아나의 주택 지하 훈련장에서 은현과 대련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검을 버리고 자신의  안쪽으로 파고들어와 자세를 잡은 은현의 권격을 떠올리면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알렉스의 몸에 닿기 직전에서 멈췄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맞는 순간죽을 것이라는 암시를 심어준 은현의 공격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력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지만 알렉스는 은현의 그 기술에 담겨 있는 노력과 시간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기술….”

멍하니 알렉스는 그 단어를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즉 에밀리아의 전투력 측정에는 순수히 마력의 보유량과 신체의 스펙만을측정할 수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기술, 전투감각 같은 불확정 요소는 측정할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도미너스 인형부대의 전투력을 모두 합산한다면, 수치는 89만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마스터의 전투력은  3만에 불과한 수치, 본 개체의 계산으로는 마스터의 승산은 약 7%에 가까운 수치였습니다. 이 확률을 뚫고 돌파한 마스터의 전투력 수치는 본 개체의 분석 기법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은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변수가 너무나도 많아서 정확한 전투력의 측정이 어렵다는 뜻이었다.

“말만 들어도 진짜 대단한 인간이라는  느껴지네….”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까지 느껴지는 아이샤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으음….”

에린 또한, 뭔가 걸린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장 에밀리아에게 질문했다.

“저기, 에밀리아님, 현이의 전투력이 아까, 약 3만 정도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일리아나님은 7만이 넘는다고 하셨고?”

“그렇습니다.”

“그…지금까지 분석해보신 사람들 중에 7만이 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나요?”

“8,678명입니다.”

“…3만이 넘는 사람은요?”

“171,487명입니다.”

약 17만이라는 숫자는 그렇게 크게  닿지 않았다.
현재 페르니아스 왕국의 수도에 약 160만 명 정도의 백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7만이라는 숫자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에린은 미심쩍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지금까지 총 몇 명을 분석해보셨는데요?”

“52,878,923명입니다.”

“…….”

그 말에 모든 파티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약 5,300만 명 중 17만 명…?”

그렇다면 머릿속으로 계산해 봐도 0.3%의 상위 존재 중 하나가 바로 은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잠깐만 그러면 검은 마녀님은….”

안색이 창백해진 아이샤가 일리아나의 존재를 입에담았고, 그녀가 5,300만 명  8천 명에 들 정도로 상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파티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투력이 2만을 넘는 인간은 지금까지 총 몇 명이었지?”

“6,845,709명입니다.”

“젠장, 갑자기  올라가는 군.”

하지만 알렉스의 수준도 에밀리아의데이터에 근거하면 상위 12% 내에 드는 존재로 결코 약한 축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사실은 은현과 일리아나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벽의 차이였다.
그 차이를 실감한 알렉스와 유리아 등의 일행에게는어마어마한 상실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아직 멀었구나. 위는 정말로 끝도 없이 넓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자신이 이곳에서 정체되지 않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집안과 신분은 왕국 안에서는 왕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넓고 자신의 위에 존재하는 이들은 매우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와아…역시 현이와 일리아나님은 대단해….”

“에린, 그렇게 감탄할 만한 문제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내버려두렴.”

똘망똘망한 눈으로 감탄하고 있는 에린을 에이라와 엘레노아가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어서 마수들을 처리하고 복귀하도록 하죠.”

묘하게 의욕적으로 변한 알렉스를 따라 파티원들은 마수의 사냥을 시작했다.

◆ ◆ 

“새삼스럽지만, 의외야. 집 건축을 네가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선 게.”

은현에게는 원정을 떠나기 전부터 원래 아르키스의 미궁 최심부에 혼자서집을 건축할 생각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고 일리아나가 선뜻 자신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뜻밖이었다.
일리아나는 은현의 중얼거림을 듣고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내 방하고 연구실도 지을 거니까. 그리고 공짜로 도와주는 거 아니야.”

“그렇겠지.”

“무슨 일 있었어?”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까 아가가 나한테 몰래 귀띔해줬어. 너, 울었다며?”

“…….”

은현이 당황한  표정을 굳혔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자신의 눈물을 누군가가 보았다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이내 에린이 은현의 기분이 저조한 원인이 아르키스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함께 매장하는  도와주면서 자신을 신경써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되겠네. 애한테 신경을 쓰이게 만들다니.”

“뭐, 어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냥과거의 내가얼마나 한심한 인간이었는지를 깨달았을 뿐이야.”

“흐응….”

일리아나는 은현의 씁쓸한 얼굴을 흘끗 바라보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지금은 또 괜찮은 것 같고….’

“그럼 시작하자.”

“응.”

은현은 자신의 마력을 대가로 ‘복제’의 권능을 이용하여 다양한 건축용 자재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하는 것이냐?]

‘네. 경계가 애매모호하지만, 부정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우르드님께서 제지해주시겠죠?’

자신이 지금부터 사용하는 권능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문명과는 맞지 않는 수준의 물건을 제작하는데 사용될 재료들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과하게 간섭하는 것을 금지했던 은현에게는 절대로 허락이 되지 않는 행동이었으나, 지금의 은현에게는 상황이 조금 틀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럴 것 없다. 이미 언니도 아마 신계에서 널 주시하고 있을 테니, 이미 아이의 모든 권능에 대한 사용은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내가 허락하니, 마음껏 사용하도록해라.]

사실상 은현이 지금 소환하는 건축용 자재들을 콘크리트들을 비롯한 지구의 문물들이 대다수였다.
지금까지는 이 세계의 문명을 의도적으로 발전시킨다거나, 악용되는 것을 피하여 ‘복제’의 권능에도 제한이 많이 걸려있었지만, 베르단디가 은현을 통해 하계에 현현하게 되면서 그 제약의 일부가 풀린 상태였다.
세상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면 얼마든지 써도 좋다는 여신의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참아왔는지, 은현은 여신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실험적으로 제작해보고 있었다.
이전, 일리아나와 함께 시험용으로 제작했던 마나 펄스탄 또한 그 실험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사실 제약이 풀린 순간부터, 은현은 이것을 활용할 공간을 찾고 있었다.
그것에 타이밍좋게 아르키스의 대미궁이 정해진 것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던전 안에 자신의 주거공간을 마련할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장소는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나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사람들, 유리아 왕녀, 메르딘과 아이샤를 제외하면은 외부 사람들은 존재조차   없는 은현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비밀기지는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나 마찬가지죠.’

[아이는 가끔가다 그렇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구나.]

“그거 무기 말고도 다른 거 만들 수도 있었어?”

검이나 무기 이외에 다른 물건을 창조해내는 장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일리아나는 흥미로운 기색으로 물었다.

“어, 사실 몰랐는데, 최근에 해보니까 되더라고.”

“흐응.”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은현을 비음이 섞인 묘한 시선으로 일리아나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법도 아닌, 이 세상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다른 무언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일리아나는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마력을 통해 생산되는 물건이긴 하지만, 그 어떤 마법도 술식을 통하지 않고 마력만으로 마법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은현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은현은 그것이 마법이라고 잡아떼며 사실을 말해주지 않지만, 일리아나는 그냥넘어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말해줄 것이라고 기다리면서.
그런 일리아나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은현은 보기 드물게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배낭에서 꺼내온 설계도를 일리아나에게 보여주며 작업을 지시했다.

“대략적인 골격과 내부의 기둥들, 외벽들은 부탁할게. 나머지는 내가 안에서 직접 할 테니까.”

“알았어.”

[네자릿수 마법]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

쿠구구

이미 굳어 모양을 갖춘 상태로 생성된 거대한 크기의 콘크리트들이 일리아나의 마법에 의해서 하늘에 떠오르기시작했다.
사이코키네시스를 통해 일정 범위의 공간을 모두 지배하게 된 일리아나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움직이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는 콘크리트들을 은현이 지시한 위치에 세우고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마치 마법을 이용해서 거대한 조립식 장난감을 제작하고 있는 모양새가 심히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
엄청난 진동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렁이는 대규모의 공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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