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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화 〉095. 인형사의 후계자(2) (95/730)



〈 95화 〉095. 인형사의 후계자(2)


“…젠장.”

[아이야….]

소매로 얼굴을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낸 은현을 베르단디가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내심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랜 시간 속에서 망가져버린 은현의 마음이 점차 조금씩 수복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년 전 죽기 직전에도 흘려본 적이 없던 눈물이 갑자기 자신의 뺨에서 흘러내리자, 당황스러운 것은 은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현은 아르키스를 조심스럽게 안아들고는 곧장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가 입고 있는 고딕 드레스를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야? 여성의 옷을 벗기는 것이  이렇게 익숙한 것이냐?]

처음이거나 경험이 미숙하면 당황할 법도 한데, 은현은 전혀 망설임이나 막힘없이 능숙하게 아르키스의 고딕드레스를 벗겨나가고 있었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자연스러웠던지, 보고 있던 베르단디마저 미심쩍어질 정도.

“인형이라고 평생 관리를 안 해줘도 된다는  아니니까요. 아르키스와 함께 여행을 했을 때는 이 녀석의 손으로는 닿지 않는 부분이나 부품들, 관절 부분의 세척 등의 관리는 제가 해줬어요.”

옷을 모두 벗긴 아르키스의 새하얀 나신은 영락없는 15살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소녀의 몸이었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몸과는 달리, 군데군데가 정교한 부품으로 가득 찬, 마도공학 기술의 정수가 담긴 까다로운 몸이었다.
그만큼 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은현이 신경써야하는 요소도 굉장히 많았다.
인형이기 때문에 인간과는 달리 하반신에 생식기도 존재하지 않고, 가슴의 어린 굴곡 라인은 존재했지만 유두는 존재하지않았다.
이윽고 가슴께의 잠금장치를 풀고, 그녀의 가슴을 열고 아르키스의 몸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아직도 영롱한 푸른빛을 띄우며 존재하고 있는 아르키스의 심장인 마정석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보석들은 비교도 되지 않는 아름다움을뽐내고 있었다.
꺼낸 심장을 품속에 넣은 은현은 그녀의 가슴을 다시 닫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어올렸다.

[그 인형은 어찌 하려는 것이냐?]

“묻어줄 겁니다. 정식으로 매장해서요.”

아르키스는 인간은 아니지만, 은현에게 있어서는 인간보다도 더더욱 가까운 존재다.
최대한의 정성을 담아 그녀의 영면을 기리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은현에게 있어, 아르키스에게 보내는 최대의 경의이며 존중이다.
굳이 인간에게만 인간의 장례를 치러야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지구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도 무덤을 만들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했었는데.
아르키스를 인간으로써 대우하고 존중해주고 싶은 은현의 염원이었다.

[그렇구나. 나 또한 그 인형에게 명복을 빌어주마. 다름 아닌 아이의 친구가 아니더냐.]

아르키스에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짜여진 행동패턴대로 움직이는 인형에게 어떠한 이유로 자아를 확립하게 되어 스스로 생각을 하고 행동할 수 있게  특이케이스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베르단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신계에서 하계의 은현의 여정을 지켜보았던 존재로서, 은현의 마음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은현은 베르단디의 말이 기쁜  미소 지으며 자신의 여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르키스를 안아들고 궁을 나가 파티원들에게 돌아가려 하기 직전, 은현은 고개를 흘끗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던진 마나 펄스 수류탄의 여파로 행동 불능에 빠진 상태의 인형들을 바라보며 은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너희도 고쳐주러 올게. 꼭.”

그 말을 남기고, 은현은 시련의 궁을 빠져나와 파티원들이 있는 곳으로 전이했다.

◆ ◆ 

“…세상에.”

스트리밍으로 송출되고 있는 화면 속의 상황을, 유리아를 포함한 파티원들이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레 궁전 안을 비춰주기 시작하더니, 그곳의 중심에 서있는 은현과 관짝들이 열리고 몸을 일으킨 인형들의 전투가 시작되자, 파티원들은 가슴을 졸이는 심정으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관 속에서 동시에 몸을 일으키고, 인형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은현에게 집중되었을 때의 광경은 가히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압도적인 신체스펙을 가지고 있으며 잘 짜여진 인형들의 전술들은 개인이 감당해낼  있는 것들이 아니었으나, 은현은  인형들의 공격들을 모두 대처해내고 오히려 무력화시키는 광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리아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안색이 창백히 질린 상태였다.

‘원작 소설 속에서는 이런 내용 없었는데….’

바로 자신이 알고 있던 원작의 내용과는 전개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자신이 지구에서 읽었던 ‘운명을 개척하는 메르헨’ 속에서는 아르키스 대미궁의 원정을 나서는 주인공과 알렉스의 파티가 차근차근 던전 공략을 행하고 있을 때.
파티원 중 조연인 골렘술사 하나가 트랩에 걸려 지면에 추락하게 된다.
우연찮게 도달한 미궁의 최심부에 입장을 해서 아르키스의 유산을 획득하게 되고 인형술의 지식을 바탕으로  조연인 골렘술사가 강해지는 에피소드가 바로 이 ‘아르키스 대미궁 원정’ 에피소드이다.
소설 속에서는 골렘술사가 시련의 궁에서 아르키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입장하자마자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골렘술사가 ‘인형술’의 후계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라면?
만약 인형술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아르키스의 가슴 속에 있는 심장을취하기 위해 유리아가 저 시련의 궁에 들어갔다면.
저 방 안에서 자신은 수많은 인형들에 의해 온몸이 갈가리 찢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니, 닭살이 쭉 돋는 소름 돋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정말로…. 이 세상은 현실이구나.’

소설 속의 지식을 통해서 이 세계의 일부를 접했다고, 자신은 이 세계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자신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  같은 작품 속의 주인공과는 달리, 무력하고, 멍청하고, 안일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니,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어.’

원작의 흐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 흐름의 중심에 서있는 남자가 있다.

‘저 남자가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구나.’

이제는 이 세계는 ‘운명의 메르헨’같은 웹소설 속의 세계가 아니다.
세계관의 설정과 등장인물들은 변하지 않았을 지언 정, 소설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엑스트라 같은 인물이 세계 속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 남자의 말이 맞았네요. 저에게는 이곳의 시련을 받을 자격조차 없었던 거군요.”

은현 또한 인형사가 아니었으며,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나, 그는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여 힘으로 이 미궁의 재보를 쟁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리아 자신에게도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도달해서 저 장소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개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어……?”

에린은 마법 속의 은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규모의 폭발로 일대의 인형들을 모두 무력화 시킨 은현이 천천히 옥좌 위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인형에게 다가갔고, 갑작스레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은현의 모습은 보이고 있었지만, 내부의 소리까지 출력이 되고 있었던 것은 모르고 있었기에, 영문을 모르던 파티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순간일 뿐이었다.

“왜 울고 있는 거야…?”

에린은 영상 속의 은현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 ◆ ◆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겠습니다.”

소중한 자식을 다루듯 어린 소녀의 외양을 한 인형을 안아든 은현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본 파티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가장 높은 신분이었던 알렉스와 유리아가 대표로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홀로 걸어가는 은현의 뒤를 에린이 따라갔다.

“저…괜찮아?”

“뭐가?”

“아니, 그게….”

평소와는 다르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린은 은현에게 그것을 물어보지는 못했다.
우물쭈물한 태도로 은현의 뒤를 따르던 에린은 그의 품에 안겨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예쁜 인형이다….”

도저히 인형이라고  수 없는 사람과 똑같은 외양에 홀린  에린이 멍하니 아르키스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생겨 은현에게 물었다.

“그 인형은 어떻게 하려고?”

“매장해줄 거야.”

“인형을?”

“인형이지만, 친구였으니까.”

400년도   존재를 친숙하게 부르는 은현의 말투.
그것을 에린은 의문스럽게 여겼지만, 별로  화제에 대해서는 은현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아보였기에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성격이 이래서 타인의 눈치를 자주 보는 습관을 가진 에린은 보기 드물게, 현재 은현이 저기압 상태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매장하는 거, 도와줄까?”

“그래주면 고맙고.”

미궁최심부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도착한 은현은 에린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아르키스의 몸을 에린에게 맡기고는 삽을 하나 소환해, 그대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인형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있던 에린은 그런 은현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신기하네.’

언제나 은현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갑작스레 자신의 양손에 물건들을 소환하는 정체모를 마법이나, 남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가져보지도 못할 엄청난 인맥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는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과거의 존재와도 인연이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걸까.

‘혹시 현이는…나이가 400살이라도 넘는 걸까?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짧은 인간의 수명으로 어떻게 그런 기나긴 시간을  수가 있을까.
에린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가능성을 곧바로 부정했다.
아르키스의 매장을 마치고, 파티로 복귀한 은현과 에린을 확인하자, 알렉스는 곧장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곧 바로 시작할 건가?”

“그래야겠지.”

“응? 뭐라고요? 돌아가는 거 아니었나요?”

유리아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은현에게 물었다.

“애초에 미궁에 온 목적이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르키스의 심장을 가지는 데는 그 과정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 목적이 뭔데요.”

“이곳에 집을 지을 겁니다.”

“집이라고요?”

“뭐?”

“집?”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유리아 뿐만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을 듣지 못한 크라시르의 호위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으, 은현님.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던전이 아닌가요? 던전 안에 집을 집는 다는 건 조금….”

에이라도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은현에게 물었다.

“맞아. 에이라, 네 말대로 이곳은 던전의 내부지. 그런데  던전의 주인은 누구였지?”

“어…아까 은현님이 데리고 나오신 그 인형이요.”

“맞아. 그리고 방금 전, 나는 그 인형, 아르키스에게서 후계자의 자리를 이어받았어. 이게 무슨 뜻일 거 같아?”

“이던전의 소유권 또한…설마?”

자신이 중얼거리고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화들짝 놀라자, 그녀의 가설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유권의 이전을 확인. 마스터의 유언에 따라 지금부터 블랙리스트 ‘은현’을 이 던전의 새로운 마스터로 인정합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몇몇의 파티원들이 모두 벙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하….”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게 정말로 되는 군….”

‘던전을 탈취한 인간’이 존재했던 사례는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전에 은현이 이 던전 자체를 자신이 차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을 때도, 동행을 하면서도, 그것을 내심 미심쩍은 기분으로 생각하며 믿지 못했던 부분이 존재했었지만, 은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계획을 아무런 무리도 없이 달성시켰다.

“자, 여러분?”

은현의 목소리에 파티원들 전원이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전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한 은현이 미소 지었고, 파티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비밀로 해야 하는 거. 아시죠?”

“…….”

마치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것 마냥, 말을 잇지 못하고 사람들은 고개만을 끄덕이며 은현의 말을 받아들였다.

“자, 그럼 두 번째 계획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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