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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092. 정식 원정 출정(2) (92/730)



〈 92화 〉092. 정식 원정 출정(2)


“그러니까…그 재판이 사실은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다는 건가요?”

“네.”

“스스로 감옥에 투옥된 것도?”

“네.”

“저 아이는 석방이 되도록 조치를 했으면서 자신은 감옥에 남아있던것도 자신을 가지고 재판이 열리도록 하려고?”

“…그쪽, 그 재판에서 처형될 수도 있었다는 거 알기나 해요?”

“안 죽었지 않습니까.”

“…미친 놈이네. 진짜로.”

“왕녀님, 말씀 삼가셔야합니다.”

알렉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유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현을 노려보았다.

“알렉스! 그럼 저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인가요? 미치지 않고서야 까딱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움직여요? 그거  아이가 악마를 처치하지 못했으면 그대로 처형이었어요. 알아요?”

“마, 맞아…. 내가 정말로 악마를 잡지 못했으면, 현이는 지금쯤….”

공개처형장에서 그대로 교수형에 처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상상한 에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제와생각해보니, 은현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수라도 저질러 악마를 놓치기라도 했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은현의 사형이나, 일리아나, 리오드 등에게까지 피해가 갔을지도 모른다.
은현은 에린에게 할 수 있는  만을 시키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지라며 에린을 선택했고, 에린 또한 은현을 믿었기에 행동했던 결과였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슬라임이나 상대하던 초보 모험가에게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라고 시키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에린이 악마를 잡는데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세운 계획이었습니다.”

애초에 중간부터 급격히 바뀐 계획이었다.
에린이 신수의 힘을 각성시켜 구미호로서의 힘을 이끌어내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원래의 계획을 없애고, 그런 무리한 계획을 새로 짜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에린이 무력의 면에서 서큐버스에서 밀리더라도, 비슷한 계열의 에너지 드레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존재 사이에서는 구미호가 서큐버스보다 구미호의 에너지 드레인 능력이 상위계열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현은 절대로 에린이 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오히려 에린은 서큐버스를 무력으로 압도하는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꿈의 세계에서 에린이 서큐버스를 검술로 이기는 모습을 목격했던 일리아나와 알렉스의 말로는 마치 검을 잡아본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실력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으응, 잘 모르겠어. 그냥 머릿속으로 어떤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려와서…자기 이름을 갤러해드라고 소개하시긴 했는데….

백귀 하나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확신한 은현이 이번 원정을 계획했던 이유도 에린의 근본적인 ‘구미호’로서의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일환에 지나지 않았다.

“왕녀님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어째서 에린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

‘운명을 개척하는 메르헨’이라는 웹소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유리아는 에린이 구미호라는 신수의 힘을 품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은현의 말에 대해서 부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디아네 왕비가 공개재판을 철회하고, 당신과 저 아이의 목숨을 살려준 건, 수도 안에 있는 악마를 찾아내어 없애기 위함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실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지면….”

자칫 잘못하면 왕족 모욕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번에는 재판 따위의 과정도 없이, 즉결처형이 가능한 사안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악마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번 사건에서 대처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는데, 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채겠습니까. 있다고 한다면 아마 리오드나 아브로스님처럼 20년 전에 아르케나 대전쟁에 참전했던 귀족들은 눈치 챘겠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거겠죠. 그게 이득이니까.”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이 나라는 악마에 대한 경계가 너무 모호했어요. 악마라는 존재에 대한 제대로  정보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처럼 습격 사건이 벌어져도 문제를 방치하고 숨기기에 급급하기만 했습니다. 리오드와 아브로스님의 말에 따르면 습격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궁정회의에서는 리오드가 보고를 통해 악마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절대로 외부에 알려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더군요. 국가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

“그래서 거짓말을 한 겁니다. 악마에 대한 경계가 모호했던 젊은 귀족층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조금씩 생각을 다르게 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 피해자가 다섯이나 나왔으니까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눈치 챈 귀족들이라면, 제가 재판장에서 그런 거짓말을  의도도 알아챘겠죠. 그러니 아마도 저를 추궁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건으로 악마에 대한 경계와 대항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그건 결국 나라의 안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은현이 리오드, 아브로스, 알렉스와 넷이서 술을 마셨을 당시, 아르미타스 부자가 은현을 기가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악마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대비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애매모호한 위협에 대비해서, 눈에 보이는 확실한 손해를 입는  끔찍이 싫어하니까, 국가의이미지를 망치지 않기 위해, 악마의 존재를 귀족 측에서 숨기려고 했을 정도잖아요.”

“그건 이제 그쪽에서 알아서 해야죠. 저는 경계심만을 가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 나라의 국왕도 아닌 내가 이 나라의 귀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무런 대비책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손해만을 걱정하는 작자라면 언젠가는 망해버릴  뻔합니다.”

유리아는 은현의 말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유리아 뿐만이 아닌, 이 자리의 모두가 은현이 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 식사시간은 여기까지로 하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정리하고 다시 행군을 재개할 예정입니다. 인원도 마침 딱 여덟 명이니 2인 1조로 4개의 조를 편성해서 불침번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원정의 첫날밤은 그렇게 이른 저녁을 끝으로 사람들은 각자의 텐트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파티원들을 깨운 은현은 미리 준비해둔 보존식들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야영지를 신속히 정리한 이후 행군을 재개했다.
해가 뜸과 동시에 재개된 신속한 행군 덕분인지,오전 중으로 원정의 목적지인 아르키스 대미궁의 입구까지 도착할있었다.
이 던전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던 이들은 다들 하나 같이 인상을 찡그리며 던전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를 다시 찾아오게 될 줄이야.”

“그러게요…. 평소였다면 자살지원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래도 이번에는 좀 다르니까요.”

아이샤는 흘끗 시선을 옮겨 은현을 바라보았다.
던전 속에서 죽을 뻔 했던 경험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의 던전에 공포나 두려움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가만히 던전 입구를 응시하고 있는 은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던전 안의 마수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너무나도 쉽게 자신들을 던전 밖으로 데려오는데 일조를 했던 인물이 은현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다시 이곳을 찾은 것일까?

“진형을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전위, 다른 분들은 모두 후위로 빠져주세요.”

“네?”

“알렉스와 메르딘님은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후위의 경계를 부탁드립니다.”

자신감이 가득 차다 못해,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은현을 가장 믿는 에린을 포함한 파티원들이 모두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유일하게 알렉스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알렉스?”

어째서 이 남자는 은현의 말을 아무런 불만도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걸까.
유리아는 이해할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은현과 직접적인 대련을 해본 경험이 있는 알렉스는 은현이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런 자신감을 내비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아까우니까 그냥 제가 다 정리하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원정의 최종 목적은  던전의 답파가 아니에요. 할 일이 많으니까 빠르게 가죠.”

“…일단은 알았어요.”

“현아, 배낭 내가 들어줄까?”

“그래주면 고맙지만, 괜찮겠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정도 밖에 없는 걸, 게다가 나는 네 덕분에 체력도 좋잖아. 헤헤.”

“고마워. 부탁할게. 그럼.”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한다면 연약한 소녀의 몸으로도 무거운 짐을 지는 것쯤은 무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매일 밤, 훈련을 통해 마력의 운용을 습관처럼 하고 있던 에린에게는 더더욱 제약이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은현이 다치지 않고 싸울  있도록 무언가라도 해보고 싶은 에린의마음이 은현에게는 기특할 뿐이었다.

“아이샤님.”

“네?”

“함정의 해체는 부탁드릴게요. 감지까지는 하겠지만, 마수를 상대하면서 함정들까지 신경을 쓰기엔 번거로워서요.”

“아…네.”

망설임 없이 술술 나오는 지시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오른손에 검을 소환하여   은현이 그렇게 선언하며 던전공략이 시작되었다.

“응…?”

에린은 은현이 본 실력을 드러내며 싸우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가르친 은현의 힘이 어느 정도가 될지와 같은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은현의 모습을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다른 이질감에 에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언제나 자신의 훈련을 봐주면서 사용했던 목검과 비슷한 형태의 장검이 아닌, ‘레이피어’가 은현의 손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략 자체는 굉장히 순조로웠다.
그 이유는 미궁 안에 등장하는 마수들을 닥치는 대로 은현이 쓸어버리며 쾌속 전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가히 경이롭다는 감상만 내뱉을 수밖에 없을 정도.

“아이샤님.”

“네!”

은현이작살형 함정을 감지하고는 레이피어로 그곳을 가리키자, 아이샤가짧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뛰어나갔다.
어찌나 빠른지,아이샤가 함정의 해체 속도가 은현이 마수를 정리하는 속도보다 느려서 공략의 속도가 정체되고 있을 지경이었다.

쿠으으!

거대한 몸집을 가진 불보어의 위협적인 돌진을 몸을 틀어 피해내면서, 깔끔하게 불보어의 다리를 베어내는 은현의 검술은 유연하고 위력적이기까지 했다.
목표물을 잃은 불보어가 미궁의 벽에 부딪치고는 순식간에 앞다리를 잃어 자신의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다리 하나를 잃고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불보어의 머리에 은현의 레이피어가 박히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마수  마리를 처리한 은현은 곧바로 레이피어를 뽑아들고는, 전방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크르르

은현의 기백에 눌린 마수들이 조금씩 주춤거리기 시작하자, 은현은 그런 마수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현성 극원류]
[이형환위(移形換位)]

은현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하게 잔상을 남기고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마수들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마수들이 본능의 위험신호에 따라 가장 위험한 존재인 은현을 없애기 위해 이빨과 무기를 들이밀었지만, 은현은 차례차례 마수들의 공격을흘려내고, 피하고 빈틈을 찔러가며 하나 둘씩 차근차근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한 명의 개인이 일방적으로 벌이는 학살극과도 같았다.
마수 하나를 처리할 때 마다, 옷에 마수의 피가 튀고, 손에 쥐어진 레이피어가 검붉은 액체로 적셔지는 광경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그 중심에서 펼쳐지는 은현의 검은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대단하군요.]

‘어, 갤러해드님?’

머릿속으로 들리는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에 에린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불러보려고 애를 썼음에도 전혀 반응이 없던 그녀가 이번에는 구미호 상태로 변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어본 일인 만큼, 처음 때만큼 당혹스럽지는않았다.

[그때는  자루의 쌍검을 사용했었는데…. 세검술에도 조예가 깊군요.]

‘어…. 그러고 보니 갤러해드님은 현이랑 한  싸워보셨다고 하셨죠.’

자신의 몸을 미호에게 빼앗겼을 때의 기억이 없는 에린에게는 갤러해드의 말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네. 아아, 어서 저 남자랑 한 번만 더 싸워보고 싶네요.]

‘……?’

머릿속에 말을 걸어오는 여성은 왠지 모르게 매우 들뜬 기색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에린만이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갤러해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저 남자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모두 눈에 담아두세요.왜 저 남자가 레이피어를 들었는지, 당신도 대충 알고 있죠?]

‘네.’

에린은 은현이 다른 무기가 아닌, 굳이 레이피어를 들어 적들을 학살하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은현의 행동들이 모두 자신을위한 배려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은현은 자신의 검술을 보고, 에린이 무언가의 성장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나의 세검술과 저 남자의 세검은 명백히달라요. 당신이 어느 쪽의 검에 감화가 되던 상관은 없지만, 부디 자신의스타일에 맞는검을 찾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네. 충고, 감사합니다.’

마침내 다수의 마수들을 정리한 은현이 또 다시 근처의 함정을 감지했다.

“아이샤님.”

“아! 알았어요! 거의  끝났으니까 기다려요! 뭐 저렇게 빠른 거야. 진짜!”

아직 아까의 함정도 전부 해체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시 자신을 찾는 은현의 목소리에 다급해진 아이샤는 투덜거리며 함정을 해체했다.
은현의 버스는 너무나도 순조롭게 운행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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