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082. 새로운 소공작(1) (82/730)



〈 82화 〉082. 새로운 소공작(1)

연회에서 선보일 에린의 드레스를 장만하기 위해, 은현은 에린을 데리고 엘레노아와 함께 페르닌에서 왕가와 고위귀족들에게 정기적으로 의상을 납품하는 ‘링게르트 의상실’을 방문했다.
엘레노아가 두 사람의 방문에 동행을 했던 이유는, 사교계의 꽃이기도  엘레노아에게 에린의 코디를 맡기기 위함이었으며, 평소 에린에게 만큼은 상냥한 엘레노아도 순순히 은현의 부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가지고 탈의실 안으로 에린이 들어가자 의상실 안에는 은현과 엘레노아만이 남게 되었다.

“또 무슨 생각이에요? 당신, 사람들과 엮이는 거 싫어했잖아요.”

엘레노아는 이렇게 은현이 자신들이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선뜻 밝힌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에, 질문한 것이다.

“이미 재판장에서 얼굴을 드러낸 마당에 이제 이 나라의 귀족에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의 말에 자연스레 재판장에서 보았던 은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번 연쇄 습격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은현의 마음속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모르는 엘레노아의 입장에서는 그가 스스로 감옥에 투옥되고 재판을 받는 모습의 형태로 페르니아스 왕국에 정체를 드러낸 게 당혹스럽기만 했다.

“왜 그렇게 한 건가요? 스스로 감옥에 투옥되고 그렇게 맞아가면서까지….”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왕국의 많은 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공개재판장은 성장한 에린의 모습을 선보이고, 그녀의 입지를 상승시키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그 공개재판이 만들어지도록 은현 스스로가 감옥에 투옥되고 많은 폭행을 당하면서 끝에는 크라시르 단장, 월터를농락하고 도발하여 열린 공개재판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처형을 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했다.
그 재판장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은 은현을 보며, 엘레노아가 얼마나 가슴을 조마조마했는지, 은현은 모른다.

“적어도 언질은 주실 수 있었잖아요.”

“리오드와 아르미타스 공작님과 협의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알렉스도 마찬가지고요.”

에린의 신수의 각성으로 계획이 살짝 틀어져버리긴 했지만, 본래의 계획은 서큐버스를 제압하여 정보를 캐내고, 의도적으로 조금씩 성장한 에린이 서큐버스의 막타를 치게 상황을 조성해주면서 공을 몰아줄 예정이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수작질을 부려 감옥에 투옥되면서 스스로 공개재판의 중심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판을 구성했던 것이 초기의 계획.
처음, 이 계획을 기묘한 구성으로 가지게 된 술자리에서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부자와 리오드에게 이야기 했을 때, 아브로스와 알렉스는 은현을 미친 놈 취급을 하지 않았던가.
스스로 재판장에 올려 질 구실을 만들어 제공하고 그 재판을 이용할 생각까지 하는 방식에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부자는 기가 질린 기색이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저한테도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공녀님에게요?”

“네.”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엘레노아가 은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을 가장 처음만난 건 우리 공작가문 사람 중에서 바로 나에요. 적어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는 미리 귀띔을 해줄 수 있었잖아요.”

“……?”

은현은 엘레노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엘레노아 또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정말 공생관계 같은 그런 관계였다면…. 적어도 당신을 도울  있도록 미리 상의라도 해줬다면. 당신이 그렇게 감옥에 투옥되고 많은 폭행을 견뎌내야 하는, 그런 방식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었어요.”

“…….”

이상하다.
논리가 맞지 않다.
지금의 엘레노아의 모습은 평소의 이지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냉정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은현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 속에서는 진심으로 은현에게 서운하다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에게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은현에게는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걱정해주시는 겁니까?”

은현 스스로도 드물게 확신이 서지 않는 미심쩍은 어조로 묻자, 굳어있던 엘레노아가 화들짝 놀랐다.

“제, 제가요…? 무슨 말도  되는 소리를! 제가  당신의 걱정을 해요! 던전 속에 던져놔도 자력으로 기어 나와 살아 돌아올 사람인데!”

황급히 부정하며 애둘러 대는 엘레노아의 행동에 은현은 피식 웃었다.

“아, 역시 그렇죠?”

“…….”

[에휴….]

은현의 단정 짓는 말투에 엘레노아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다.

“그렇게 딱 잘라 말할 건 또 없지 않나요?”

“…뭐요?”

“제가 당신을 걱정하는  그렇게 이상해요?”

“아니, 그렇지는….”

“적어도 저는 당신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어요.”

첫 만남이 그렇게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은현이 거짓 정보를 흘렸고, 그 정보에 속아 어두운 한 밤중에 폐창고를 찾아가게 되면서 엘레노아와 은현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살해 위협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자신을 지켜주었던 것이 은현이었다.
그의 무력도 무력이었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도록 상황을 조장하고 사람들을 홀리는 듯한 그의 머리 속 사고방식에 엘레노아는 적잖이 흥미를 품었다.
게다가 지금은 숨 막히는 것만 같은 귀족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자신을 귀족처럼 대우하지 않는 은현의 태도가 아니꼬우면서도, 숨통을 트이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엘레노아는 은현에게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알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스스로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엘레노아였기에, 그녀의 말은 논리가 맞지 않고, 지리멸렬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냉정하지 못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당신을 걱정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그것은 은현에게 하는 말인 걸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변명에 가까운 혼잣말인 걸까.
그녀 스스로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재판장에서 일리아나의 돌발 행동을 통해서 기습적인 키스를 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떠올린 엘레노아의 가슴이 술렁였다.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은현은 고개를 주억이며 엘레노아의 호의에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은현과 엘레노아의 대화가 마무리가 되자, 타이밍 좋게 커튼 너머에서 단장을 마친 에린이 등장했다.

“어…. 나 안 이상해?”

마침내 탈의실에서 드레스를 갈아입은 에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쭈뼛쭈뼛 망설이며 모습을 드러낸 에린은 잔뜩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은현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 그녀의 연회 때 선보일 예정인 모습을 은현이 응시했다.
야회복으로 선정된 에린의 이브닝 드레스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머리색과 매칭이 되는 남청색의 색조와 부드러운 옷감, 몸에  달라붙는 타이트한 맵시는 에린의 흉부와 잘록한 허리의 곡선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급격하게 성장한 에린의 몸은 이제는 소녀라고 부르기도 뭐했다.
처음 입어보는 드레스를 선보이며, 어색한 자신의 모습에 수줍어하면서도 기대감이 서린 눈초리로 은현을 바라보고 있자, 은현은 미소 지으며 단장을 마친 에린을 칭찬했다.

“예쁘네.”

“저, 정말?”

“응. 연회가 시작되면, 다른 남자들 시선을 확 사로잡겠네.”

“으, 그건 싫어….”

칭찬을 듣자마자 얼굴이 밝아졌지만, 이후 덧붙인 말에 에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낯선 남자들의 주목을  몸에 받는 다는 것이 꺼림직 했기 때문이다.

“허튼 짓거리 하지 못하도록 내가 막아줄 테니까. 너무 움츠러들지 마. 기껏 초대받은 연회인데, 초대해준 공작가를 생각해서라도 즐겨야지. 그렇지?”

“응!”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말에 에린이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의 반색을 옆에서 지켜본 엘레노아는  단순한 소녀의 생각에 쓰게 웃을 뿐이었다.

“일리아나님의 드레스는 마련해드리지 않아도 괜찮나요?”

“걔는  있어요. 그리고 성격이 그래서인지 오늘 따라 나오지도 않았고, 일리아나의 준비는 제가 해놓도록 할게요.”

귀찮다며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선호하는 일리아나는 은현과 엘레노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다.
엘레노아의 입장에서는 고위 마법사에 대한 일리아나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린 지 오래되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긴장돼?”

“다, 당연하지….”

아르미타스 공작가에서 호의로 보내준 마차 안에서, 연회용 드레스를 입은 에린이 안절부절 못하고 자신의 손을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기분으로 아무 생각 없이 은현의 의사에 따라 참석의 의사를 밝힌 자신의 결정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롱장갑을 낀 에린의 양손이 깍지를 끼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며, 얼굴 표정이 잔뜩 굳어있자, 은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진정을 시켰다.
보통은 이렇게 해주면 에린의 기분이 풀리며 헤실헤실 웃기 마련인데, 지금의 에린에게는 은현의 손길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차는 그런 에린의 상태는 헤아려줄 생각도 없다는  공작가의 정문에 도착하고 말았고, 마차에서 가장 먼저 내린 은현이 손을 뻗으며 일리아나가 마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살다 살다 너랑 파티 같은 데를 와보네.”

“그러고 보니 처음인가?”

“처음이지.”

은현과 일리아나는 타인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존재했다.

“나쁘지 않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선호하는 일리아나가 이렇게 바깥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뿐더러, 그 옆에 은현이 붙어서 자신을 에스코트해준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은 일리아나는 은현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에린 또한 손을 잡아주며 에스코트를 해주고, 문 앞을 지키는 사병들에게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보여주자,  사람은 별 문제 없이 정문을 지나칠 수 있었다.

“쫄지 마. 우리는 당당하게 초대를 받아서 온 거야.”

“으, 응.”

“아가.”

“네?”

에린은 일리아나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대해서는 언제부터인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처음 일리아나에게 그렇게 불렸을 때는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지 질문을 했던 적이 있지만, ‘그럼 지금 네 행동이 딱 아가 같은 모양새인데. 뭐라고 부르니?’라는 대답에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 3자의 시점인 일리아나의 시점에서 보자면, 에린은 아이테르에 있을 때면, 언제나 은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서,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 같은 모습이었다.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서 일리아나 또한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농담 삼아 했던 말이었는데.
주위의 시선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모르는 에린에게는 자신을 어린애라고 놀리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일리아나만이 불러주는 애칭이었기에, 제법 싫어하지 않게 된 복잡한 심경도 있었다.

“긴장을 푸는 방법 알려줄까?”

“긴장을 푸는 방법이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거 아니?”

“뭔데요?”

“첫 번째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거고, 두 번째는….”

거기까지만 말을 하던 일리아나가 갑자기 말을 끊고 은현을 바라보았다.

“뭔데요?”

“실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자.”

“아, 일리아나님! 가르쳐주세요!”

“언젠간 알려줄게.”

킥킥 웃으며 약 올리는 일리아나의 행동에 에린이 볼을 부풀리고 원망스런 눈빛을 보냈다.

“가자.”

“그래.”

“가, 같이 가!”

에린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 일리아나가 은현의 팔짱을 끼며 두 사람이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하자, 에린도 다급히 비어있는 은현의 반대쪽 자리를 차지하며 따라 걸었다.
연회장 안에서 사교모임을 가지고 있던 많은 귀족들이 은현 일행이 등장하자, 그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호오, 저분이 바로 검은 마녀?”

“올리비온 후작과 동년배의 나이라고 들었는데.”

“대단한 미색이군.”

에린과는 다른, 도무지 40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성숙하고 요염하기 짝이 없는 몸매를 과시하는  달라붙는 맵시와 허리와 등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파격적인 검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일리아나는 그녀의 이명 그대로, 사람들을 홀리는 ‘마녀’의 모습이다.
그리고 최근 화제로 떠오르는 귀족의 신분을 복귀한 에린 헤르샤라는 소녀에게도 자연스레 시선이 몰리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했다.

“근데 중앙에 저건 대체 누구야?”

검은색과 남청색 머리카락의 두 여자를 양손에 꽃처럼 대동하고 걸어오는 것만 같은 중앙의 은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인상을 쓴 한 귀족이 중얼거렸다.
그 귀족은 이전 페르니아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공개재판에 참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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