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074. 공개 재판(1) (74/730)



〈 74화 〉074. 공개 재판(1)

“먼저 심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히 확인해야할 사실들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죄인은 이번 귀족 연쇄 습격 사건의 범인에 대한 정체가 악마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네.”

은현이 사회자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자 장내의 수많은 귀족들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렇다면 새로운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을 막도록 사전에 조치하지 않고 범인인 악마를 방치한 사실을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어찌 저리 뻔뻔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은현의 태도가 너무나도 평온하고 담담했기 때문인지, 귀족하나가 벌떡 일어서서 은현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저 자를 처형해야합니다!”

“맞습니다! 왕국의 귀족에게 상해를 입히는 귀족들을 방치하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처음 일어선 귀족을 따라 다른 귀족들 또한 그에 동조하여 은현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질렀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장내의 수많은 귀족들이 은현을 벌레 보듯 쳐다보며 비난의 목소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떡하죠? 일리아나님! 이러다간 현이가….”

“흐응….”

장내 귀족들의 비난의 중심에 서있는 은현을 보던 에린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다급하게 일리아나를 불렀지만, 정작 일리아나는 뭔가 미묘한 표정으로 단상에 서있는 은현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네?”

“지금까지 하던 방식과는 너무 달라서.”

“다르다고요?”

“원래라면 저렇게 자기 모습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않거든.”

은현은 항상 그래왔다.
언제나 사람들의 뒤에 숨어서 일을 꾸미는 방식을 사용하는 평소의 은현의 방식과 너무 다르다.
정체를 들키지 않게 숨기고 거미줄을 치는 것 마냥 많은 인물들과 상황을 엮어서 많은 인물들이 스스로  상황을 해결해나가도록 상황을 조장한다.
일리아나와 리오드 또한 그렇게 은현을 만나 도움을 받고 성장한 이들이었으니, 은현에 대한 능력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평소라면 자신이 이런 재판장에서 청문을 받아야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꼬리도 잡히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악마도 처리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라 일리아나는 생각했다.
즉 은현이 이렇게 공개재판에 자신의 몸을 세운  자체가 그가 생각했던 그림이기도 하다는 뜻.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결심을 한 건, 좋은데.”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몰랐기에, 아무도 그가 해낸 일과 업적을 몰랐기에, 감사의 인사도, 보답도, 아무런 대가도 은현에게 돌아오는것이 없었다.
은현이 자신의능력을 선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에게 감사를 전하거나 존경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일리아나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자신이 마음을 품고 있는 남자가 드디어 세상 속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니까.
그만큼 그녀의 마음속에서 은현의 존재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으니까.
평소에는 외출이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녀가 이렇게 굳이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은현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왜 이런 식으로?”

어째서 이렇게 왕국 귀족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을 만든 것일까.
은현의 목적은 알고 있었기에 흘끗 에린을 바라보았다.

“얘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네?”

느닷없는 지목에 에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지만, 에린의 반문에 대답해주지 않고 일리아나는 다시 은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생각이니? 도대체?’

“조용히!”

귀족들의 ‘은현의 처형’을 바라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가득 찬 장내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디아네 여왕의 일갈  번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혼란스러워진 내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정리되자, 사회자가 다시 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죄인은 앞서 말한 행동으로 왕국의 귀족의 신변은 물론 왕국의 명예를 훼손시킨 죄에 대해서 인정하는가?”

사회자의  질문에 은현은 피식 웃었다.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뭐라?”

“저 건방진!”

“지금 당장 저자의 목을 베라!”

은현의 폭탄선언을 기점으로 또다시 재판장의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조용! 조용!”

보다 못한 사회자가 은현을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침을 튀겨가며 은현의 처형을 외치던 귀족들을 중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했다.

“죄인! 그게 무슨 말인가! 모든 죄를 인정했다고 말했으면서 말을 바꾸다니!”

은현은 흘끔 주위를 바라보며 재판장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양사이드에 배치되어있는 계단식 의자들과 정중앙에 위치한 교수대, 그리고 교수대 너머 맞은편에 위치한 사회자의 단상과 그 위의 높은 곳에 홀로 배치되어있는 왕의 옥좌.

‘이게 어딜 봐서 재판장이라는 걸까.’

재판이란 일을 자세히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 장소는 마치 죄인으로 확정된 자를 교수형으로 즉결심판 하는 자리나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자신을 변호해줄 변호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의 죄를 기소해줄 검사는 물론 죄를 선고해줄 판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피고인의 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구에서만 존재했던 사법기관의 시스템이었으니까.
죄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죄를 선고하는 과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이곳에서 은현은 ‘죄인’으로 확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현재 은현은 ‘재판’이라는 이름을 빌렸을 뿐, 사실상 ‘처형대’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곳에서 은현을 변호할 수 있는 변호할 수 있는 존재는 은현 자신  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감히 묻겠습니다. 저는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이 악마라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어째서 죄가 된다는 겁니까?”

“죄인은 사전에 악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왕국에 알리지 않았다! 이건 사실상 악마가계속해서 수도를 활보할 수 있도록 방조한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애초에 왕국 귀족들 또한 습격 사건의 범인이 악마라는 단서는 어느 정도 잡고 계셨던 걸로 아는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왕국 측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몇 일전 있었던 궁정회의에서.”

은현이 사회자의 말을 끊으며말을 이어나간다.

“올리비온 후작께서 연쇄 습격 사건의 범인으로 악마의 존재를 언급한것은 기억하지 못하시나봅니다?”

“……!”

사회자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으며, 은현의 발언으로 장내의 귀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뭐야? 이미 왕국 측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웅성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은 대부분 남작이나 자작 급의 하위귀족들 뿐, 사회자와 마찬가지로 그때 당시 궁정회의에 참석해서 리오드의 수사 보고를 들었던 상위계급의 고위귀족들은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은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딱딱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어떻게 궁정회의에 참석도 하지 않은, 귀족도 아닌 남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사회자는 당황하는 표정을 어떻게든 숨기고 모르는  시치미를 떼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허, 헛소리 마시오! 궁정 회의에서는 그런….”

“확실히 보고한 바가 있습니다.”

“오, 올리비온 후작!”

“나도 들었네만.”

“저도 기억합니다.”

“아르미타스 공작과 보리스 후작까지!”

직접 보고를 시행했던 리오드를 따라 아브로스와 버나드가 은현의 이야기를 지지하기시작했다.
다수의 귀족들이 은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장내의 혼란스러움이 더더욱 가중되기 시작했다.


“어, 어찌 이자의 편을 드는것입니까!”

다른 귀족도 아니고 공작 하나와 후작 둘, 총 셋의 귀족이 은현의 주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만만히  일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군무장관으로써, 모든 군사의 총책임권한을 가지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
왕국 내에서 왕가를 수호하는 크라시르 기사단만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아르티아 기사단의 단장 올리비온 후작.
나라의 재무장관으로 국내의 모든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보리스 후작.
하나하나가 국가 안에서 중요한 위치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귀족 계급 또한 국가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중진들이다.
그런 귀족 셋이 은현을 지지한다는 것은 커다란 파란을 불러일으킬 전조와도 같았다.

“이상하네요. 사회자님도  나라의 궁정회의에 참석하시는 만큼 중요한 위치에 계신 걸로 아는데.”

“…….”

“그때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신 걸까요? 아니면 기억력이 안 좋으신 걸까요?”

“크윽!”

‘저 X끼가 감히…!’

자신의 나이의 절반도 먹지 않은 것 같은 외모를 가진, 새파랗게 나이가 어려보이는 청년이 노골적으로 자신에 대해 비꼬는 것에, 사회자의 자리를 맡은 오르바 백작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며 핏발 선 눈으로 은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과 정면이 마주친 은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시선을 맞받아치며 코웃음을 쳐주자, 오르바 백작의 분노가 더더욱 커져만 간다.

‘감히 모든 귀족과 왕비전하가 보고 계신 앞에서 나에게 면박을 줘?!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를 갈며 분을 삭이던 오르바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죄인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그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방치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하! 웃기지도 않네!”

“뭐, 뭐라고?!”

비웃음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에 노발대발하던 오르바 백작이 시선을 옮겼다.

“다, 당신은!”

자신을 향해 조소를 던진 여자가 일리아나라는 것을 알아채고 영문을 모르던 오르바 백작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야.”

“뭐, 뭣이…!?”

“너, 쟤가 왜 체포되었는지 모르는 거야?”

“…….”

오르바 백작은 자신을 욕보이는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일리아나의 태도를 트집 잡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법적인 재능과 무력, 명성은 이 나라에 있어주는  만으로도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다.

“아, 아르미타스 소공작인 애슈턴 아르미타스가 악마에게 습격을 받았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 거기서 악마와 조우했고 그 애슈턴이라는 남자를 구하기까지 했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뭐? 악마가 활동하는  방조하기까지 했다고?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런 결론이 나와?”

“저, 저자는 감옥에 투옥되면서 왕국에 거래를 제안해왔다! 건방지게 평민 하나가 어떻게 왕국을 대상으로 거래를 제안할 수가 있는가!”

오르바 백작은 은현이 감옥에 투옥되기까지의 대강의 경위를 그를 체포했던 근위기사단의 단장인 월터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자와 함께 악마에 대한 단서를 특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아르티아의 단장의 무능함도 그렇다! 어찌 평민의 어린 소녀가 해결할  있었던 일을 기사단 전원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였는가!”

“말은 똑바로 하도록 하죠.”

지금껏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은현이 입을 열었다.
수갑에 채워져 있던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한차례 튕기기 시작한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환경이 물속에 물감을 풀어놓은  마냥 일그러지고 있었다.
재판장 전체의 배경이 뒤바뀌기 시작하자, 많은 귀족들이 당황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재판장을 뒤덮은 배경은 하나의 풀숲이 우거진, 전혀 상관이 없던 공간.
우르드가 부여했던 ‘과거의 업을 현재로 가져오는 복제의 권능’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중앙에는  명의 인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린과 알렉스가 대치하며 박쥐날개가 달린 악마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은현의 능력을  차례 경험해본 몇몇은 ‘또 이건가.’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주위의 배경이 뒤바뀌는  상황을 처음겪어보는 귀족들에게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은현이 가져온 ‘과거의 재현’은 그들의 혼란 따위는 배려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라는 참 좋아! 아무리 귀족들이 피해를 입어도 높으신 양반들이  사실을 감추기 급급해서 싸고돌잖아! 왕국의 중심인 수도에 악마가 잠입해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국가적 손실이 어마어마하다는 이유로 말이지! 덕분에 편하게 사람들에게서 마력을착취할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어! 꺄하하하!”

- 우리 오빠한테…무슨 짓을 했던 거야! 당신이…당신이 우리 오빠를 흑마법사로 만들었지?!

- 응? 아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같은데? 마법사가 되도록 내가 키우고 흑마법서를 손에 쥐어준 건 맞지만, 최종적으로 선택을 내린 건 엘빈, 그의 의지였어.

- 뭐…?

- 동생을 지킬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랬거든. 평민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서, 궁정마법사단이…메이거스였나? 거기에 입단하고 나서도 자신을 대하는 신세는 아이테르에 있을 때랑은 변함이 없었다더라.

- 그래서 더 큰 힘을 원했고 그 결과 흑마법에 손을 대버린 거지.

‘과거의 재현’이 끝나고 배경은 재판장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큐버스 리라와 에린의 대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장내의 모든 이들이 충격적인 얼굴을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를 필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어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짧은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건 은현이었다.

“저 악마는 말이죠. 일부러 이 나라를 고른 겁니다. 악마가 도시 안에 잠입해있다는 소문이 퍼져도, 당신들이 그 소문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우린 괜찮아요.’ 같은 같잖은 연기를 해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고있으면서도 평판이나 명예를 잃을까봐 두려워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필사적으로 괜찮다는 연기를 어필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상한 술수를 부려 나라의 귀족들을 현혹시키려 들지 마라! 악마의 간악한 술수에 넘어간 것이 틀림없다!”

“하, 제가 말입니까?”

은현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굳이 내가 이 말을 해줘야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무슨….”

“당신들이 멍청하고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마한테 얕보이고 놀아난 거라고.”

은현이 던진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 끝나자마자, 재판장의 분위기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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