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072. 소녀의 성장(1)
“서큐버스들도 검술을 사용할 줄 아는군요. 은현에게 들었을 때는 정신조작과 정기를 빨아들이는 흡정이라는 능력 이외에는 듣지 못했었습니다만.”
“그거야 그것밖에 없는 별 볼일 없는 종족이 맞으니까.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익힌 거겠지. 저것들은 인간과는 아예 다른 존재지만, 이성을 가진 종족으로써는 저들도 인간과 닮았지.”
생존이나 목숨을 건 투쟁에 있어서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한다.
그것은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
“물론 안일하게 그대로 정체되어있는 악마들도 있어. 저 악마가 좀 특별한 거지. 검술을 배운 것도 그렇지만, 정체를 숨기고 왕국의 수도에 잠입한 것도 모자라, 많은 인간들의 정기를 갈취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계략을 짜는 것도, 저 악마가 인간을 먹이로 밖에 보지 않았던 것도, 안정적으로 자신의 힘을 키우고 싶은 욕심 때문에 갈구한 수단이지. 그저 강해지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야.”
악마종 중에서 가장 약한 신체능력을 보유한 서큐버스같은 소수의 종족들도 존재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긴 매한가지다.
때문에 약한 육체와 마력을 가진 인간들을 미물로 여기고 자신의 식량 또는 힘을 보충해주기 위한 영양제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도대체 저 악마는 검을 어디서? 설마 독자적으로 깨우친 건….”
“악마들 중에서도 무(武)를 중시하고 숭상하는 종족은 있어. 아마 그놈들한테 배운 게 아닐까 싶은데. 타 종족에게 자신의 기술을 알려주는 건 악마들 사이에서는 매우 드문 일인데, 여러모로 보나 신기한 악마인 건 틀림이 없네.”
“그나저나…정말 놀라운 성장 속도군요.”
서로의 목숨을 걸고 깎아내는 서큐버스와의 싸움에서 조금씩 성장을 해가고 있는 에린의 모습에는 알렉스조차도 감탄할 정도였다.
검을 잡은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자의 성취라기엔 믿기지도 않는 속도였다.
심지어 성장하는 속도가 더더욱 빨라지는 에린의 경지는 다른 이가 보기엔 믿을 수가 없을 정도.
아무리 일리아나의 조언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육체적인 전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검술이란 본인, 스스로가 쌓은 수련과 경험을 통해서만 성장시킬 수 있는 개인의 노력이 좌우되는 결과물이다.
아무리 은현과 일리아나가 집중적으로 그녀를 봐주고 케어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녀의 수준은 훌륭한 스승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속도였다.
무시무시한 전사의 영혼인 백귀의 영혼 중 하나가 에린의 몸 안에 깃들어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알렉스에게 현재의 에린의 성장속도는 경이롭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제는 내가 상대해도 적당히 봐주기는 힘들겠군.’
알렉스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에린을 보며 속으로 씁쓸한 감정을 품었다.
자신이 저 정도의 경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 바친 시간과 그녀의 시간을 비교해보았을 때 나타나는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부럽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에린 스스로가 엘빈에게 당당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도 그녀의 성장력의 원동력이겠지만, 가장 큰 에린의 원동력이 그녀를 뒤에서 떠받쳐주고 있는 한 남자의 존재라는 것이라는 걸 알렉스 또한 알았다.
만약 자신도 은현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면, 은현은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줄까?
떠오른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다.
겉으로는 더럽게 귀찮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부탁한다면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주는 게 지금까지 보아온 은현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알렉스는 혹시 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이 싸움이 끝나야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며, 알렉스는 두 존재의 치열한 싸움을 지켜보았다.
에린의 몸이 마치 상냥한 누군가의 손길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움직여졌다.
레이피어가 빠른 속도로 움직여 리라의 왼쪽 어깨를 향해 찔러 들어온다.
“읏…!”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에린의 움직임에 경악한 것은 그녀를 상대하고 있는 리라였다.
순간,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로 매서운 찌르기가 리라의 얼굴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가까스로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 가까스로 피하자, 에린의 레이피어가 허공을 꿰뚫으며 리라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이게!”
곧바로 빈틈이 생겨난 것을 노려 에린의 복부를 반으로 갈라버릴 생각으로 검을 내질렀으나, 그대로 허공을 꿰뚫은 레이피어를 아래로 내려치는 것으로 자신의 배를 가르기 위해 날아오는 리라의 검을 튕겨냈다.
“너…뭐야.”
예상했다는 듯 깔끔하게 쳐내는 에린의 행동에 잔뜩 경계의 기색을 내비치며 묻는다.
하지만 에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로지 타오르는에린의 두 눈동자가 리라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을 뿐.
“…리, 더….”
“뭐?”
너무 작게 들려서 제대로 듣지 못한 리라가 반문했지만, 그녀의 반문에 에린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한다.
[세검술의 시작과 끝은 바로 ‘찌르기’입니다. 힘을 한 점에 모아 극한의 관통력을 보여주는. 그걸 위해서 필요한 건 빠른 민첩성과 사용자의 경험이죠.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급소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내고, 그걸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리라를 향해서 맹공을 퍼부으면서도, 세검사 백귀, 갤러해드의 속성 강의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기서는 공격보다는 방어 후 반격의 기회를 노리세요.]
[너무 안일했어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몸의 긴장을 유지하세요. 언제든 상대방의 급소를 꿰뚫을 수 있도록.]
[상대의 움직임을 잘 봐요.]
그녀의 훈수와 강의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에린이 가지고 있던 목표는 딱 하나였다.
‘빨리, 더 빨리.’
리라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일격을 만드는 것.
하지만 그런 에린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인 리라의 쪽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검술의 실력으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던 에린이 이 싸움 속에서 영문을 모를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자, 점점 이상함을 느낀 리라도 전력을 쏟기 시작했다.
“크윽!”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담은 리라의 검이 에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지자, 에린이 황급히 레이피어를 들어 올려 그녀의 검을 쳐내려 했지만 도리어 힘의 차이에서 밀린 에린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손목에 무리가 오면서 레이피어를 놓친 에린이 몸을 옆으로 던져 가까스로 리라의 검을 피해내는데 성공했지만, 무기인 레이피어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황급히 자신의 무기의 위치를 확인한 에린은 현재의 위치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튕겨나갔던 무기를 보고 순간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자신의 무기를 줍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쉽게 생각대로 하게 둘 줄 알아?!”
“읏!”
콰앙!
리라의 검이 또 다시 에린의 머리를 향해 날아 들어오자, 에린은 작게 신음하며 몸을 가까스로 옆으로 틀어 피하는 것으로 자신의 머리가 두 동강이 나는 것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어…?’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에린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익숙함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디선가 보았던 상황을 떠올리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옆으로 몸을 틀어 가까스로 피하고는 순식간에 상대방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자연스레 몸 한 쪽을 틀어 꽉 쥔 주먹을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저건….”
알렉스 또한 에린의 그 동작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그녀가 누구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 건지 단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자세나 팔의 동작 자체는 은현이 동작과는 달리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행동자체에는 망설임이 없다.
리라가 제대로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마력이 응집된 에린의 권격이 리라의 왼쪽 옆구리에 정확히 들어갔다.
“꺄악!”
에린의 권격을 맞은 리라의 몸이 그대로 쏠리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복부의 통증으로 바닥에 위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 우읍!”
어마어마한 폭발음이나 위력을 자랑했던 은현의 공격과는 달리 굉장히 평범한 공격과 같았지만 그런 공격이라도 깨끗하게 들어간 에린의 공격은 리라에게 적지 않는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잘했어요!]
갑작스럽게 에린의 머릿속으로 갤러해드의 환호성이 어린 칭찬이 들려왔다.
그녀가 왜 이렇게 들떠있는지 모른 에린은 깜짝 놀라 그저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지만.
[세검술 뿐 만 아니라, 격투술에도 재능이 있었군요! 베인이 아주 좋아하겠어요!]
‘아니, 이건 그냥 현이를 따라 해본 건데….’
[그것보다 지금이 기회에요. 어서 놓친 무기를 다시 잡으세요.]
에린은 황급히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며 날렸고, 바닥에 떨어뜨렸던 자신의 무기를 손에 쥐었다.
[자세를 잡으시고.]
[몸 안의 모든 힘을 다리에 집중하세요. 언제라도 달려가 적의 목을 꿰뚫을 수 있도록.]
[검을 쥔 손을 뒤로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론 수평으로 든 칼날의 끝을 엄지와 검지손가락의 사이에 걸치세요.]
마치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겨 목표물을 조준하는 활처럼.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갤러해드가 설명하고 이끄는 대로 에린이 자세를 취한다.
체내를 순환하던 마력들의 이동이 점점 빨라지고 한계의 한계까지 힘을 모으고 버티던 순간.
[가세요!]
갤러해드의 호령과 함께 에린의몸이 궁사가 쏜 속사(速射)의 화살마냥 오직 목표로 낙인찍힌 악마를 향해 돌진한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疾風射)]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사격’이 악마를 향해 날아간다.
황무지가 된 바닥의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마력의 순환을 통해 한계의 한계까지 끌어 모았던 각력의 힘이 폭주하는 경주마와 같은 속도를 만들어낸다.
“우웨액!”
악마인 리라가 에린의 권격을 맞고 휘청이며 뱃속의 위액을 쏟아내기까지 몇 초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에린이 떨어뜨린 검을 다시 잡고 자세를 잡아 공격을 해오기까지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
바닥에 주저앉아 위액을 한 번 쏟아내고, 반사적으로 에린의 위치를 찾은 리라는 경악했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자신을 향해 레이피어를 내뻗어 목을 꿰뚫기 위해 돌진해오고 있는 에린의 모습은 연약한 소녀가 아닌, 날카로운 발톱을가진 매와도 같았다.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검을 쥐고 에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푸욱
이미 에린의 레이피어가 리라의 목을 꿰뚫었다.
“쿨럭!”
입에서 검붉은 피를 내뿜은 리라가 목에 검을 꿰뚫린 채로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에린을 노려보았다.
“내…가! 인간…따위한테!”
[검을 뽑고 저 악마의 몸을 붙잡으세요!]
왜 그런 건지는 몰랐지만, 에린은 갤러해드의 명령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스스로도 어째서 그랬던 건지 의문이 들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외친대로 그녀의 말에 이끌리듯이, 목을 꿰뚫은 검을 뽑아내고, 손을 내뻗을 뿐이었다.
그리고 에린이 리라의 목을 한손으로 꽉 움켜쥔 순간.
에린의 몸 안에 있던 미호가 구미호의 능력이 발동시켰다.
[구미호 고유능력]
[에너지 드레인]
리라의 팔을 에린이 붙잡자마자 리라가 자신의 몸에 생기는 이상변화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뭐…야. 네가 어떻게…이 능력을…!”
“어…?”
에린은 리라의 몸을 붙잡자마자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당황했다.
[당황하지 말아요. 지금 당장 저 악마를 처리하는 게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니까.]
에린의 몸 안에 있던 미호가 에너지 드레인 능력을 발동시켜 서큐버스 안에 있는 모든 마력들을 에린의 몸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안 돼…안 돼! 내가…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여기서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리라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자신의 몸속의 힘이 빼앗기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절망하기시작한다.
“살려줘…제발 살려줘! 난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에린에게 애원하기까지.
하지만 에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우리 오빠를 그렇게 만든 널 용서하지 못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애애애!”
이곳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현실의 육체가 없다.
오직 정신만이 이끌려 온 ‘꿈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정신체 뿐이다.
즉 눈앞에 있는 악마 또한 오로지 마력과 영혼이라는 에너지들로만 구성된 정신체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구미호의 고유 능력인 에너지 드레인이 흡수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나의잔재도 남김없이 비명을 지르던 서큐버스의 영혼은 그렇게 허무하게 마력으로 분해되어 에린의 몸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
에린은고개를 올려다 멍하니 꿈의 세계 속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전혀 뜻밖의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이었지만.
가슴 속 깊숙이 차오르는 충족감은 에린의 기분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첫걸음을 뗐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