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070. 고위 자릿수 마법사(1) (70/730)



〈 70화 〉070. 고위 자릿수 마법사(1)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리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이곳은 우리 서큐버스들만이 문을   있는 ‘꿈의 세계’야!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장소라고!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이곳에 침입을  수 있는 거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곳은 사람을 현혹시키고 영원에 가까운 꿈을 꾸게 만들어 정신체를 가둘 수 있는 이차원( 異次元)의 세계다.
이전 은현이 엘레노아에게 아르키스 대미궁에 대해 설명하면서 던전과  세계가 서로 독립된 차원이기 때문에 서로의 간섭이 불가능하다는 법칙은, 몽마들만의 세계인 ‘몽환의 숲’과 현실의 ‘아르케나 대륙’의 사이에도 적용이 되는 법칙이었다.
정신체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니 현실의 좌표 따위가 존재하지도 않고, 통로를 열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서큐버스들에게만 있다.
그런데 일리아나는 그 법칙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방법을 구사하여 간섭할 수 없는 독립된 세계인 ‘몽환의 숲’에 난입해왔다.

“통로야 이미 한 번 열렸잖아.”

“뭐?”

일리아나는 알렉스와 에린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은  말을 이었다.

“쟤네들의 정신이 이미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통로가 열렸는데, 나라고 그 통로를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문을 여닫는 건 너희 악마들의 고유 권한일지도 몰라도 이미 열린 문이 있는데 거기를 통해서 들어오는 건 인간이라도 가능하지.”

즉 일리아나는알렉스와 에린의 영혼이 이곳으로 넘어온 경로를 추적하여 현실과 몽환의 숲을 연결하는 통로를 찾아내고 그 통로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정신체를 밀어 넣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로는 별 것 아니란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그게…가능한 겁니까?”

“가능하니까 왔지.”

심드렁하게 알렉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리아나는 알렉스와 같이 똑같이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라를 보며 말했다.

“내가 너희 악마들을 한두 번 상대해보는  알아? 20년 전에도 이 ‘몽환의 숲’이라는 건 진즉에 경험해봤어. 내가 대항책도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설명을 마친 일리아나가 다시 마법을 발동시킨다.

[여섯 자릿수 상위마법]
[프로미넌스]

또 다시 술식을 통해서 발현된 거대한 크기의 홍염(紅焰)의 구체가 일리아나의 머리 위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를 뜨겁게 만들고 숲의 나무들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홍염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다.
점차 점점 크기가 작아지는 홍염은 그저 크기만 작아지고 있을 뿐이었지만,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을 한곳으로 끌어 모아 압축하고 또 압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리라는 알고 있었다.

“흐, 흥! 소용없어! 그 마법은 벌써  그림자에 가로막혔다고! 이미   막힌 마법이 위력을 높인다고 통할  같아?!”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벌벌 떨고 있네.”

일리아나는 리라의 상태를 보고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간단하게 간파했다.

“화염계 마법은 말이야. 꼭 모든지 불태워서 없애버리는 공격 밖에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피식 웃더니 스태프를 리라에게 향하며 목표물을 조준하기 시작하자.

“그 장막 속에서 한 번 버텨봐. 그럼. 찜질  해줄게.”

손바닥 크기만 하게 작게 압축된 홍염의 구체가 리라에게 날아들었다.

쿠아아앙!

위기를 감지하여 본능적으로 펼쳐진 리라의 그림자 장막과 일리아나의 홍염의 구체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구체는 처음 일리아나가 균열의 통로 안에서 쏘아낸 것보다 더욱 작았지만, 압축하여 모아두었던 위력들이 터지면서 더 많은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리아나는 곧장 알렉스와 에린 쪽으로 다가와 배리어를 치는 것으로 주위로 확산되는 폭염들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폭발의 중심에 있던 리라는 전혀 달랐다.

“꺄아악!”

폭발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위력의 폭염들은 그림자가 간신히 막아주고 있었지만, 주위에 급격히 상승한 고온의 열기들이 리라의 몸을 위협하고 각종 상태이상들을 유발한다.

‘뜨거워. 더워. 목말라. 살이 익을 것 같아. 아파. 눈이 터질 것 같아.’

마치 산채로 거대한 찜통 속, 또는 태양 속에 던져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위험을 감지하고 폭염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전 방위로 그림자 방벽을  것이 화근이 되었다.
공기의 수분마저 증발하고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주위를 달구는 열기 뿐.

“끄으으윽!”

성대마저 불타버리는 것만 같은 통증을 느끼며 리라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림자와 충돌한 일리아나의 구체에서는 아직도 계속 폭염을 내뿜으며, 주위의 ‘몽환의 숲’ 전체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기온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리라의 그림자 장막을 달구는 폭염들은 사그라질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장막을 덮쳐온다.
도대체 언제 쯤 이 공격이 사라지는 것일까.
길다.
1초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10초가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점차 홍염의 구체가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일리아나의 마법이 사용된 숲은 재앙이 내려앉은 모습 그 자체.

“세상에….”

에린이 잿더미만 남고 새카맣게 타버린 숲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린다.
마치 처음부터 울창한 수풀 따위는 없었던 것인 양, 새카만 나무 몇 개만이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었다.

‘이게 대륙에서 열 명 밖에 없다는 고위 자릿수 마법사의 힘….’

어째서 페르니아스의 왕국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든 왕국 쪽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기를 쓰던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단 한 명이 마법을 한  사용함으로써 거대한 숲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모습.
이것이 바로 ‘일인군단(一人軍團)’이 아닌가.
정작 이 숲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일리아나의 표정은 지친기색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람을 가르쳤다면…현이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걸까.
에린은 순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사람의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던 것인가를 재차 실감했다.

“끄으으윽….”

거센 폭염의 중심이었던 곳에서, 그림자의 장막이 거둬지고 리라가 괴상한 신음을 내뱉으며 등장했다.
요염하고 고혹적이었던 새하얀 피부는 어느 샌가 새빨갛게 익어있었고, 거칠게 일그러진 표정과 성대에도 이상이 생겼는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는 명백히 그녀가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흥미롭네. 그림자. 흑마법이라고 했지?”

완벽하게 마법을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마법의 여파로 생긴 후폭풍으로 저런 빈사상태에 가까운 모습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지만, 일리아나는 자신의 마법을 완벽히 막아낸 그림자 마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흑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그림자의 공격성에 동화되서 그림자가 주인인 흑마법사의 몸을 잠식해나가면서 이성도 흉포하게 변하게 된다던데, 생각보다 이성은 멀쩡해 보이고.”

“감히…감히, 나를…!”

리라는 이를 갈며 갈라진 성대로 천천히 분석하고 있던 일리아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너, 자신의 그림자에 ‘공격성’이 아닌 다른 걸 부여했구나?”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예를 들면 ‘방어성’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하, 그래서 내 마법도 자동으로 막은 거였어.”

그녀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로, 오로지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일리아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처음 균열의 통로에서 억지로 홍염의 구체를 만들어 던진 공격을 리라는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리라의 그림자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리아나의 마법에서 그녀를 보호했던 것이다.
일리아나는 그 특성을 알아차렸다.
은현에게서 들었던 흑마법, ‘조영술’의 특성은 자신의 그림자에 자신의 사념을 집어넣어 그림자가 의지를 가지도록 만드는 마법.
엘빈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그림자에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도록, ‘죽인다, 찌른다, 벤다, 으깬다’와도 같은 공격성이 짙은 사념을 부여하는 것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모두 공격 쪽에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리라의 경우는 다르다.
자신의 그림자에 ‘지킨다, 구한다.’라는 특성을 부여된 그림자는 오로지 자신의 주인인 리라를 보호하는 방어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적인 특성을 가지지 않은 그림자는 주인인 리라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잠식하거나 이성을 좀먹지도 않는다.
오로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맹목적인 모습을 보일 뿐.

“엘빈의 마법을 개량했구나. 패널티를 받지 않고서 활용할  있도록.”

“오빠의 마법을….”

“절대로 편하게 죽이지 않을 거야. 세뇌를 걸어서 남자들의 노리개로 만들고 정기를 착취하는 내 노예로 만들어주마!”

“뭐래,  미친년이. 나 이미 임자 있는 몸이야.”

검붉은 마력들이 리라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새빨갛게 익은 그녀의 피부와 화상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기 시작한다.
서서히 일리아나에게 입었던 데미지들이 복구되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광경을 본 알렉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상처들이 다시….”

“꺄하하! 놀랐니? 말했잖아! 이곳은 우리 몽마들의 공간이라고! 게다가 정신만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물리적인 공격이 통할 리가 없잖아! 통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복구하면 그만이야! 너희는 절대로 날 이길 수 없어!”

“흐응….”

일리아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리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후후! 어때?! 이제 상황이 좀 바뀌었나보지? 네 잘난 그 마법으로도 이 세계 자체에 간섭하는 건 불가능해!”

현실에서는 정신조작과 세뇌에 특화된 서큐버스들의 전투력은 별 볼일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서큐버스들이 주인이 되는  장소, ‘몽환의 숲’에서는 정신조작능력을 가진 서큐버스들이 행할 수 있는 힘은 마치 현실조작과도 같은 이치로 통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겠지.”

아무리 빈사상태에 가까웠던  상태를 원래대로의 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이 무한정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그것은 모든 법칙의 근간에 존재하는 상식이니까.
어디에서든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네 그 능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게 빠를지, 내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빠를지. 한  내기 해볼까?”

“크….”

빙긋 웃어 보이며 자신감 가득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라는 자신의 허세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에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 리라는 꿈 조작을통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되돌릴  있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것도 대량의 마력을 소모하여 발현되는 능력이기 때문에, 횟수의 제한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신을 빈사상태로 몰고 간 거대한 폭염마법을 사용하고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마녀를 상대하는 것은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위험해. 이건 진짜 위험해!’

눈앞의 마녀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로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자신을 불태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이미 한 번 고위 자릿수 마법사의 화염계 고위 마법을  번 맛본 리라의 눈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인간에게 패배한다는 굴욕감보다 먼저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찼던 생각은 ‘살아야 한다.’라는 생존 본능이 울리는 경종이었다.
그렇게 본능이 시키는 대로, 리라는 곧장 살기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에 옮겨야만 했다.

“어딜 도망가.”

거대한 마력의 장벽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고, 정육면체의 형태를 취한 결계가 만들어져 안과 바깥의 공간을 차단시켰다.
 범위는 리라가 만든 꿈의 세계 전체를 뒤덮는 수준.
그들을 이곳에 가둬두고 꿈의세계를 탈출하려는 그녀의 최후의 수도 막혀버린 것이다.

“이, 이럴 수가….”

결국 도주라는 선택지도 막혀버린 상황에 리라가 경악한다.
몽환의 숲의 출입구를 강제로 막아버린 것이 서큐버스도 아닌, 인간 마법사라는 사실이 리라를 잔뜩 동요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쟤들을 초대해놓고 너는 냅다 튀려고? 초대자로서 예의가 없네.”

‘몽환의 숲’에 갇힌 인간들은 스스로 이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때문에 알렉스와 에린을 이곳으로 끌고 온 리라가 그들을 원래 세계로 보내주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꿈속에 갇히게 되며 현실의 그들의 육체는 깨어나지 않는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
리라는 이것을 노리고 그들을 꿈의 세계로 끌고 온 것이었지만, 일리아나에 의해 그 계획도 실행 불가능하게 된 상황.

“어디, 그 흑마법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궁금하네?”

탁!

바닥을 향해 스태프를  번 가볍게 내리치자, 일리아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던 마법진 하나가 점차 확대대기 시작하며,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우, 운석이…….”

정육면체로 형성된 결계의 천장을 뒤덮는 마법진 속에서, 수십 개의 소운석(小隕石)이 모습을 드러내자 에린이 하늘에 등장한 별똥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것도 막아낼 수 있다면, 네 오빠는 흑마법사라는  떠나서, 정말 대단한 마법을 만들어낸 거야. 그것만큼은 같은 마법사로서 경의를 표할게.”

“아….”

흑마법사라는 점에 차별을 두지 않고, 순수하게 엘빈이라는 남자가 이뤄낸 마법의 성취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고위 마법사의 말에, 에린은 왠지 모를 따스한 감정이 몸 안에 가득 차올랐다.
흘끗 에린을 바라본 일리아나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스태프의 끝자락을 바닥에 쳤다.

[여섯 자릿수 상위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

“안 돼, 안 돼,  돼!”

자신을 향해 낙하하고 있는 수십 개의 운석들을 보며, 리라의 절규가 일리아나의 소환마법으로 이제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몽환의 숲 전체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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