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063. 사도와 신수의 격돌(3) (63/730)



〈 63화 〉063. 사도와 신수의 격돌(3)

“처음부터 나한테 마력을 보내줄 생각이었구나.”

은현이 붙잡고 있는 구미호의 팔에서 손을 떼자, 구미호는 황급히 그의 복부를 관통시켰던 자신의 팔을 빼냈다.
새빨간 피가 은현의 복부에서 쏟아지고 있었지만, 은현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자신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은현 고유능력]
[시간역행]

커다란 구멍을 만들며 복부에 뚫려있던 관통상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일인 양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과정이 매우 당연한 일인 듯 행동하는 은현의 태도가 너무나도 담담한 것이 비인간적이기까지 해서, 구미호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패닉 상태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을 텐데, 죽을 위기에 놓여있었던 눈앞의 남자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판돈에 걸고 도박을 하는 그 방식은 어딘가 뒤틀려있는 은현의 성격을 아주  대변해주고 있었다.

“미친놈.”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세상이 애초에 미쳐있기 때문에 저 같은 존재도 생겨나는 법이죠.”

구미호는 아까 전, 자신이 귀족가의 자제였던 두 남학생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나라를 멸하는 것만큼은 참아주시지 않겠습니까?”

“…….”

구미호는 싸우기 전과 똑같은 말을 해오는 은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는 포현이옳았다.
은현의 기억들을 읽고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에린이 애슈턴에게 납치가 되었고, 악마에 대한 대처와 에린의 구출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할지 딜레마에 빠졌던 기억과, 베르단디의 말을 듣고 결심이 선 은현에 대한 기억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굳이 모든 것을 죽이고 빼앗는 것만이 복수의 전부는 아니죠.”

“하지만.”

“신수님.”

“…….”

“증오에 사로잡혀 후손들에게 그 죄를 묻는 건 너무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입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을 착각하지마세요.”

“방법이…있는 것이냐? 정말로…?”

“네.”

구미호는 인간에게 배신당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는 인간을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이미 은현의 기억의 일부를 보았기에 그가 자신을 배신할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은현은 자신에게 신용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복부를 찔리고 에너지 드레인의 능력을 피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의 기억의 정보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은현을 죽이는 것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다니,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아니, 신들의 사고방식에 너무 물이 든 것일까.’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규칙과 원리원칙을 준수하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생명체들의 죽음을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한다.
신들의 입장에서는 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어 순환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몇 명이 죽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인간들이 지나가는 개미같은 벌레 한 마리를 죽였다고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인간들이 가축을 키우고 잡아먹어 식량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신들도 인간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보고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계의 유지였다.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떠나서, 하계에 존재하는 지성체로서 은현이라는 남자는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민이 된다.
페르니아스 왕족의 전원 사망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입장과 왕국의 혼란을 막아야 하는 입장, 구미호과 은현의 목적은 서로가 상반되는 것이었기 때문.

“궁금한 것이 있다.”

“말씀하세요.”

“네 기억 속의 일부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가지 의문을 느꼈다. 인간의 수명을 벗어난 영생에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네가 관여해왔던 모든 일들에서 네 스스로의 의지로 개입을 했던 사건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신에 의한 사명을 동반해, 강제적으로 엮이게 되어 휘말린 형태로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던 것들이었지.”

은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인간의 세상에 과하게 개입하지 않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에도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행동하는 것을 일삼았던 네가,  몸의 주인인 이 아이만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서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여신에게서 부여받았던 ‘엑스트라’로서의 역할을 벗어던지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근본적인 원인을 물어본다.

“그때는 그게 옳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정해진 운명을 비틀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신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구해야하는 것은 영웅의 재능을 가진 씨앗들.
그들을 구하고 성장시키며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영웅으로 키우는 것이 ‘엑스트라’였던 은현의 역할이었다.
이외의 인간들의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행동을 절대로 해서는  된다고, 처음 사도로 임명 받았을 당시에 엄중히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은현은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억지로 외면했고, 눈을 돌렸다.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고 싶었음에도, 은현은 그들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원망과 증오도 받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달라졌다고?”

“여신님께서 저에게 ‘자유’를 주셨거든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구하고 싶은 사람을 구해도 되고, 제가 생각했던, 제가 원했던 방식으로 ‘여신의 사도’임을 증명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와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해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째서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는지 사도가 된 이후, 처음으로 원망어린 생각도 품어보았다.
이것에 대한 신들의 의도는 은현도 잘 모른다.

[이제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무너뜨리는 후회가 남을 선택만큼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자신의 여신의 그 말만큼은 따스했고 애정이 넘친 말이었기에, 은현은 베르단디의 말을 믿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에린을 구하기로 결정한 제 선택은 저의  걸음입니다. 그저 신들이 정한 방식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는 사도로서가 가니라,  방식으로도 ‘하계의 멸망’을 막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첫 걸음.”

“그건….”

구미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은현이 내뱉은 발언이 신을 모시는 사도의 발언으로써는 도저히 용납할  없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

위태위태하던 폐창고의 건물이 결국에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커다란 석재로 쌓여있었던 천장들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바닥에 추락하는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은현과 구미호는 가만히 서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는 말이죠. 증명하고 싶은 겁니다.”

은현은 고개를 올려다보며 무너지고 있는 천장 사이로 밝게 빛나는 달빛을 응시했다.

“당신들이 틀렸다고.”

대놓고 선언하는 은현의 말이 누구를 향하고 하고 있는 말인지, 구미호는 알 수 있었다.
신을 모시는 사도가 신들의 방식을 부정하는 언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은현의 선택을 지지하는 듯 그의 주위를 상냥하게 감싸는 하나의 신력을 보고 구미호는 기가 찬 시선을 보냈다.

“하하….”

작게 숨을 내뱉은 구미호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하하하하하!”

은현의 말을 들은 구미호는 폭소하기 시작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신의 방식을 부정하는 신의 사도라니. 그리고 그걸 지지하는 신이 있다는  가관이야.”

어느새 인가 몸속에 가득히 끓어오르던 페르니아스 초대 국왕에 대한 강한 증오심은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흥미로움에 밀려나 차게 식어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같구나.”

“그 말씀은?”

“너의 이야기를 듣고, 당장 복수를 할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는…아직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겨났구나. 너와  아이가 걸어갈 앞날을 지켜보고 싶어졌다.”

은현은 구미호의 말을 듣고는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 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해줬으면 좋겠는데.”

“뭔가요?”

“굳이 모든 것을 죽이고 빼앗는 것만이 복수의 전부는 아니라 했지?”

“네.”

“그렇다면 나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그 다른 방식의 복수. 너에게는 가능한 것이냐?”

“최선을 다해 오르타스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 상황을 준비해드리도록 하죠.”

“후후, 대답하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기대가 돼.”

은현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구미호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구미호는 은현이 자신에게 했던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의 기억의 단편들은 조작할 수도 없는 그가 경험했던 기억들이 맞았지만, 일부러 그 광경을 보여주도록 연출한 은현의 행동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거짓말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있었지만, 구미호는 은현의 거짓말이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르타스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로 인간들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려버렸는데, 한 번만 더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현이라는 남자는 신비한 존재였다.

“좋다. 지금은 너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주도록 하지. 그것이 오르타스  자식에게도 더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같으니.”

“감사합니다.”

“이제는…어찌할 것이냐?”

구미호는 은현의 수척해진 몸을 흘끗 바라보았다.
자신의 공격으로 복부에 구멍이 뚫렸던 관통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복구가 되었지만, 그녀의 ‘에너지 드레인’으로 흡수되었던 은현의 체력과 마나는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드레인으로 극한에 가까운 체력과 마나를 흡수당하면 기절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일어나지 못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은현은 쇠약해진 상태로도 꿋꿋이 서서 버티며 구미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우리만치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은현의 상태를 보고 새삼 대단하다고 구미호는 생각했다.

“이제는 상황을 이렇게 유도한 진짜 범인을 찾아야겠죠.”

“애슈턴이라는  남자를 세뇌한 악마를 말하는 거냐?”

“알고 계셨습니까?”

“그자의 마력을 빨아들이면서 기억의 일부를 엿봤지. 이 아이는 물론이고. 너에게도 아주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데. 악마가 그걸 부추긴 모양이더군.”

서큐버스와 구미호는 태생과 기원, 그 모든 것이 달랐지만, 인간을 유혹하고, 그들에게서 정기를 갈취한다는 특성만큼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서큐버스 또한 구미호보다는 성능이 좋지 못하지만, ‘에너지 드레인’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능력을 지녔기에, 구미호에게 정기를 빨린 애슈턴과 서큐버스 악마가 습격한 피해자들은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이건 이용할 수 있겠군요.”

“이용?”

“신수님.”

“미호라고 불러라. 지구의 문명 때부터불린 나의 이름이었으니.”

“미호님. 에린은 각성된 미호님의 능력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수행을 쌓는다면 가능하겠지. 이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나의 각성과 동시에 너에게서 막대한 마력을 받은 상태이니…설마 이것도 노린 것이냐?”

은현은미호의 질문에 답해주지는 않고 웃음을 보였다.

“좋습니다.”

“하나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은현은 흘끗 뒤쪽을 바라보고는 미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일단은 들어가 주세요.”

“이 아이에게도 잘 대해주거라. 답답함과 분노에  이겨 내가 나왔지만, 나에게 몸을 빼앗기기 전까지 너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아이다. 이 행동의 결과는 나의 책임이지, 그 아이의 책임이 아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실망하지도 화내지도 않을 겁니다. 저는 아직 에린에게 기대하고 있는 게 많아요.”

미호가 눈을 감자, 그녀를둘러싼 빛나는 푸른색의 마력들이 점차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풍성한 아홉 개의 꼬리들과 머리 위의 나있던 수인족의 귀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사라져갔고, 본래의 육체인 에린의 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교복과 스타킹.
몸의 상처는 구미호로 각성하게 되면서 깨끗이 치유가 되어있었지만 옷만큼은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눈을 감은 채로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인 에린의 몸이 은현 쪽으로 기울어졌다.
은현은 기울어진 에린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들고는 무너져버린 폐허를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지 마라!”

한 기사 하나가 있는 힘껏 외치며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고 은현을 향해 겨눴다.
그를 뒤따라 달려오는 대여섯 명의 기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이었다.
은현은 이들이 곧바로 애슈턴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도망친 빌라드와 그라스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기사들이라는 것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의외였던 것은 그들의 가슴에 달고 있는 휘장이 리오드가 이끄는 ‘아르티아’가 아닌 왕국근위기사단인 ‘크라시르’의 휘장이었던 것이었다.

‘왕가에서 직접 움직였다고?’

은현이 생각에 빠져있을 때, 은현과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던 크라시르의 기사 중 하나가 은현을 향해 외쳤다.

“그 여자 아이는 현재 페르닌의 귀족 연쇄 습격 사건의 중요 용의자다. 얌전히 우리에게 넘….”

“항복하겠습니다.”

“어?”

“엥?”

“뭐?”

느닷없는 은현의 말에 다른 기사들이 예상치 못했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내린 은현의 판단은 신속했다.
당황하여 벙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은현은 그들의 당황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한 빈손이 없어서 항복의 제스쳐는 취하지 못하는데. 항복하겠다고요.”

“요, 용의자는 우리에게….”

애써 당황을 감추고 한 기사가 은현에게 다가와 에린을 빼앗으려 하자, 은현이 허리를 틀어 기사가 에린을 만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우리 애, 만지지마세요.”

“뭐? 뭐래 이 미친놈이….”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투옥도 같이 시켜주세요.”

“하….”

살다 살다 별 어이없는 놈을 다 보겠다는 듯 기사는 ‘이 새X 뭐지?’라는 표정으로 은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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