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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062. 사도와 신수의 격돌(2) (62/730)



〈 62화 〉062. 사도와 신수의 격돌(2)

백귀들은 평소보다 가속의 배율을 올린 은현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  여덟이라는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으며, 전위에 나와 있는  마리의 백귀들의 맹공을 막아내고, 흘려내고, 피해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 같은 싸움이 이어졌다.

스르르

빈틈을 보인 창사 백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친다.
간신히 움직임을 포착한 창사 백귀가 창대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머리를 보호했지만.
순간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강화시킨 은현의 검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 절삭력으로 창사 백귀의 창대와 함께 백귀의 몸을  동강으로 갈라내버렸다.
아까 전,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주었지만, 반대로 눈에 띄게 둔한 움직임에 허를 찔려 허리채로 두 절단되어버린 전투도끼 백귀를 합하면 도합 셋의 백귀를 처리한 셈이었다.

“후우….”

아직 상대해야할 백귀가 여섯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현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평소보다 높은 가속의 배율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인간들과 다른 시간의 축으로 움직이는 은현의 운동량이 평범한 인간의 운동량과 같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체력의 방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고 있었다.
치킨 게임의 과정은 점점 은현에게 불리한 형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럴수록 은현은 더욱 냉정히, 침착하게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가 생각보다 몸의 부담을 지우면서까지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백귀들 또한 알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끈다면, 백귀들이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터였다.

‘조금이라도 조급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이 노리고 은현이  무리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호흡도 하지 못하고 과한 운동량에 과부하가 온 몸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세차게 뛰는 심장이 온 몸에 피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아이야….]

은현의 방전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고 위태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은 싸움에 문외한인 베르단디의 눈에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상황을 바라만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던 베르단디는 걱정스럽게 은현을 부르며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베르단디의 걱정이 여신답지 않다고 생각한 은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마세요. 저는 여신님의 사도이니까.’

당신의 사도는 겨우 이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은현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베르단디는 자신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며 자신을 지지해주었다.
때문에 자신 또한 그에 걸 맞는 사도로서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특하구나.]

그런 은현의 생각이 짐짓 기뻤는지,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었다.
당장이라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끌어안고 싶었지만, 한창 살벌한 전투를 하는 중에 은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런 베르단디의 기쁜 마음까지는 모르고 있던 은현은 남아있는 여섯 마리의 백귀들을 응시했다.
암살자를 처리했던 것은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급습에 가까운 행위였기에 요행에 가까웠고, 전투 도끼 전사와 창사 백귀는 다른 백귀들에 비해 은현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는 둔한 존재에 가까웠기 때문에 빈틈을 노려 처리할  있었다.
아홉 마리 중 가장 높은 민첩성을 보유한 암살자가 급습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이제 그나마 은현의 움직임의 잔상이라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세검사, 검사, 궁사.
이렇게  마리의 백귀들만이 유일했고, 은현과 백귀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현은 백귀들이 진형을 짜는 것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알  있었다.
그들 중에서 다른 백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상위의 백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은현이 유리아 왕녀와 알렉스가 이끌었던, 아르키스 미궁의 원정에서 오더 역할을 맡고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것처럼.
전술을 짜고, 진형의 변경, 공격타이밍 등의 지시를 내리는 존재가 있다.
그 오더의 역할을 맡은 백귀만 처리한다면.

‘그 후부터는 내가 이긴다.’

지휘계통의 부재로 찾아오는 혼란을 비집고 남은 백귀들을 처리한다.
은현이 그린 계획은 그러했다.
그 오더를 맡은 백귀가 누구인지는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정석에 가까운 파티의대열과 전술을 구사하는 성격으로 봐서, 굉장히 단순하게도 대열의 중심에서 전위든 후위든 어느 쪽에든 가세할  있고 은현에게 한 번도 공격을 가하지 않고 그의 행동을 관찰하였던 백귀가 있었으니까.
중위직에 위치해 있던, 장검을 손에 쥐고 있는 검사 백귀를 응시했다.
검사 백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은현을응시했으나, 그의 눈빛을 읽어 들이며 은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보았다.
검사 백귀가 손을 들어 올리더니 전방의 은현을 응시하며 공격 신호의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전투의 재개를 알리는 신호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투창이 은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엄청난 질량과 속도가 붙은 투창의 위력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포탄과도 같았다.
날아오는 창을 정확히 베어내어 양단한 틈을 타, 검사 백귀의 검이 은현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속도는 처음 은현에게 달려들었던 세검사 백귀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공격의 질이나 수준 하나하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했다.
은현은  검사 백귀가 ‘백귀야행’의 백귀들을 통솔했던 지휘관 백귀라는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확신했다.

쩌저적!

마침내  마리 분의 백귀의 맹공을 힘겹게 버텨내던 은현의 왼손에 쥐어져 있던 장검 하나라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수명이 다해 바스러졌다.
그 틈을 백귀들이 놓칠 리도 없었다.
은현의 왼쪽 품을 파고든 세검사 백귀가 은현과 검사 백귀의 사이에 난입했으며, 은현의 목을 꿰뚫기 위해 품을 파고들었지만, 은현 또한 자신의 무구가 수명이 다한 순간을 노리고 들어올 것이라는 정석적인 판단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부러진 장검을 한 바퀴 회전시켜 역수로 쥐고는, 자신의 목을 꿰뚫기 위해 들어오는 세검을 쳐내어 공격의 궤도를 비틀었다.
정확히 목을 겨냥했던 세검이 은현에 의해서 목이 아닌 은현의 오른쪽 뺨을 그으며 허공을 꿰뚫었다.
그대로 은현의 몸에 밀착한 형태가 된 세검사 백귀의 복부에 은현의 오른쪽 손에 쥐어져 있던 장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고, 그대로 오른쪽으로 갈라냄으로써 네 번째 백귀를 처리했다.

‘드디어 절반 정도.’

수를 가늠하며 속으로 생각했으나, 그럴 생각을 이을 여유도 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남아있는 백귀들이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없어?”

사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은현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리얼한 연기를 해줘야, 상대가 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현은 정말로 당혹스러운 표정을 연기했다.

[아이야! 그건…!]

그의 생각을 읽은 베르단디가 표정을 굳히며 은현을 나무라려 했지만.

푸욱!

베르단디의 훈계보다 상대방의 행동 쪽이 더 빨랐다.

“쿨럭!”

[아이야!]

베르단디의 경악 섞인 목소리와 함께, 은현의  뒤에서 그의 복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손과 함께, 은현이 피를 토했다.
그의 뒤에 있는 것은 굉장히 익숙하고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한 소녀의 얼굴.
소녀의 얼굴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대단하구나.”

구미호는 중얼거렸다.

“아무리 사도라지만, 그 움직임과 힘, 판단들. 인간의 경계를 넘어섰구나.”

구미호는순순히 감탄하고 있었다.
약체화되어 본래의 십분의 일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아홉 마리의 자신의 백귀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은현의 무용은 극찬 받아 마땅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때는 인간을 위했고, 미쳐버린 이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함께 싸웠던 종족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이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너를 죽인 업보는 나중에 달게 받도록 하겠다. 이 나라를 건국한 그 새끼의 핏줄들을 모조리 찢어죽이고 나면. 나도 너를 따라 위로 올라가도록 하마. 그러니 지금은……네 힘을 나에게 다오.”

 말을 끝으로 구미호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구미호 고유능력]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

능력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은현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엄청난 마나와 생기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건….’

구미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사도라지만, 도저히 한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마나를 모두 빨아들인다면 절반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의 반까지는 회복시킬  있었다.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데는 그것도 충분한 양이었다.

‘이 자는 도대체…?’

은현의 정체가 궁금해진 구미호가 은현의 옆얼굴을 훔쳐보고는 표정이 굳었다.

“웃어?”

은현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부를 관통당하고, 자신의 생기와 마나들이 빨려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은현은 뭐가 좋은지 입에서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네놈…이게 목적이었나?”

생각해보니 이상했던 점들이 하나 둘씩 구미호의 머릿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능력을 감안해본다면 구미호의 신체능력은 자신의 소환수들인 ‘백귀야행’의 신체능력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진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백귀야행’들과 일 대 다수라는 싸움 속에서 대등하게 겨루며 밀리지 않았던 은현이 자신의 뒤를 노리는 공격을 정말로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럴 리가 없잖아.’

무언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낀 구미호는 황급히 은현의 복부를 관통시킨 자신의 손을 빼내려 했지만.

“어딜 가시려고.”

자신의 복부를 관통시킨 구미호의 팔을 은현이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던 거, 마저 하시죠?”

“읏…!”

이미 발동시킨 ‘에너지 드레인’은 접촉을 떼지 않은 이상, 구미호 스스로가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너지 드레인’이 멈춘다면 그것은 대상이 이미 죽었음을 암시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윽?!”

은현의 방대한 양의 마나가 구미호가 빙의되어 있는 에린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면서 은현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단편들이 함께 들어온다.

[아이야. 한 번 더 이야기하지만 싫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 노른의세 여신  현재, 베르단디의 이름으로 사도가  은현에게 ‘현재’를 편집할  있는 ‘시간 조작’의 권능을 부여한다.]

[미안하다. 미안해. 언젠가…나를 원망해도 좋단다.]

[현아. 괜찮아. 비록 이렇게 죽어도 난 절대로 너를 원망하지 않아.]

[결국 이렇게 죽을 때까지 너하고 술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네. 우리 홍이…잘 부탁한다.]

[상관없어! 절대로 무너지지 마! 저 새끼 죽이는 것만 생각해! 절대로 무너지면 안 된다?!]

[잊지 마. 네가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찾아낸 내 유일한 희망이니까.]

[도망쳐! 절대로 잡히면 안 돼! 끝까지 살아남아!  아기! 꼭 지켜줘!]

[이제 다시는 어디 가지마! 이 새X야!]

“으…윽!”

구미호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무수한 기억의 정보들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능력은 계속해서 은현의 마력을 빨아들임과 동시에 은현의 기억의 단편들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온다.

[뭐야…. 도대체 너는 뭐냐고!]

[괴물 같은 새끼!]

[도대체…도대체 왜 언니를 구해주지 않았던 거야!]

[이럴 거면…차라리 구해주지 말았어야지!]

[너 같은 거,  같은  정말 증오스러워.]

[죽어. 괴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한 인간의 몸과 영혼 속에 담겨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수한 업(業)들.
한 인간에게 보내오는 무수한 기대와 열망, 존경, 동경, 동정심등의 무수한 선의(善意)들.
그리고 그와는 상반되는 증오, 절망, 공포, 광기의 감정들을 쏟아내는 무수한 악의(惡意)들.

“이게…무슨….”

서서히 고개를 들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인생의 일부분들을 들여다본 구미호는 눈앞의 은색머리카락이라는 남자가 도저히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는…대체 무엇이냐?”

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구미호 쪽이었다.

“어찌 이리도 가혹한 여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냐! 도대체 어떻게 한낱 인간이 이렇게 방대한 업을 짊어지고도 미치지 않고…. 아.”

마지막 기억을 읽어 들인 구미호는 작게 탄식했다.

[나는 오직 아이만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고, 아이만의 미래를 생각할 것이며, 다른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피해가 간다 하더라도 결코 신경 쓰지 않을 것이야.]

[이제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무너뜨리는 후회가 남을 선택만큼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언제까지고…‘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구미호는 신력이 느껴지는 허공을 응시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신’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을 테지만, ‘반신’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구미호이기에 그녀의 존재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업을 짊어지고도 미치지 않도록, 위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주는 ‘신’의 존재를 눈치 챈다.
남자의 곁에는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위하는 ‘신’이 아닌, 오직 한 인간만을 위하고 지켜주고 있는 ‘신’의 존재가, 망가져버린 한 인간의 영혼을 필사적으로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존재를.
‘한 인간만을 위한 여신의 가호’가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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