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061. 사도와 신수의 격돌(1)
카아앙!
두 사람의 검이 교차할 때마다, 살벌한 소음을 발생시키며 창고 내부의 공기를 뒤흔든다.
얼마나 강한 후폭풍이 몰아치는지 창고가 진동을 하며 천장을 지탱하고 있던 벽면과 기둥들에서도 금이 간다.
은현과 애슈턴이 서로 검을 부딪쳤을 때 생겼던 충격의 여파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다.
건물이 버티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해내고 있었던 창고는 두 사람의 싸움이 지속될수록 위태위태한 상황에까지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건물의 한계보다도,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의 한계가 더욱 빨리 찾아왔다.
쩌저적!
구미호가 가지고 있던 레이피어는 그저 장식용으로 외관의 화려함을 강조하고 실속이 없었던 애슈턴의 애검이었다.
신수의 마력이 담긴 검격을 결국 버텨내지 못한 은현의 장검이 부러짐과 동시에. 결국 무리한 사용에 내구를 버텨내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다.
검신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허무하게 부러져 버리자 은현과 구미호 사이에, 또다시 교착 상태가 이어졌다.
“쯧!”
끈질기게 자신을 방해하는 은현을 구미호가 짜증이 난다는 듯 노려본다.
아홉 개의 꼬리들의 부드러운 하얀색 털들이 가시가 돋친 것마냥, 바짝 서있는 것이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구미호의 기분을 대변해주고 있다.
“놀랐습니다. 인간의 검술에 익숙하신 것 같군요.”
“그 증오스러웠던 오르타스에게서 배운 검술이지. 지금에 와서 그 자식의 흔적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검술을 사용하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재 구미호의 상태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본래의 신수로써의 힘의 십분의 일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며, 애슈턴에게서 흡수한 마력이 있다고 쳐도, 체내에 남아있는 마나로는 눈앞의 사도를 상대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본래의 힘을 발휘한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수도 전체를 불바다에 휩싸이게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신의 영역에 다다라있는 ‘반신(半神)’의 존재나 다름없는 구미호를 상대로 은현이 이렇게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던 이유는 구미호의 현재 상황이 매우 약체화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 큰 원인.
반신체(半神體)인 자신의 육신도 잃었고, 그녀의 힘의 근원이었던 ‘여우구슬’도 깨져버린 지금, 무기까지 깨져버린 상황에서 구미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 뿐 이었다.
‘얼마 없는 마력은 온존시켜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결심이 선 구미호의 행동은 매우 신속했다.
순식간에 마력을 전개하고 구미호의 풍성한 아홉 꼬리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곤두서기 시작한다.
전개한 마력들이 아홉 꼬리들에 모여들기 시작하며 푸른색 빛을 냈다.
꼬리의 위에 형성되기 시작한 푸른색의 불꽃.
불꽃들은 점차 자신의 몸집을 불리더니, 사람 크기만큼 커진 불꽃들이 점차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푸른색의 불꽃들이 일렁이면서도, 검, 방패, 창, 도끼, 둔기, 활 등 다양한 무기와 갑옷을 입고 있는 구미호의 병사들.
[호족 요술(狐族 姚術)]
[백귀야행(百鬼夜行)]
일당백만의 전력을 가졌다고 자랑하며, 하나하나가 과거 중하급 악마들의 무력과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무력을 가진 구미호의 소환수들.
쇠약해진 현재 상태의 구미호가 불러들였기에 과거의 위용을 재현할 수 없는 소환수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전력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녹아들어있는 마력을 활용하여 부리는 구미호의 요술(姚術)은 마법사의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능력을 지녔다.
‘이것이 반신(半神)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신수의 힘….’
비록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무력이라고는 하지만, 그 위용만큼은 너무나도 대단했기에 은현은 내심 감탄 했다.
[아이야. 넋 놓고 볼 때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한 기색의 베르단디가 급하게 외치자, 은현도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구미호의 짧은 한마디를 시작으로.
무장을 갖춘 푸른 불꽃의 백귀(百鬼)들이 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것만큼은 은현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며 양 손에 새로운 검을 소환했다.
[은현 고유능력]
[사고 가속]
[시간 가속]
곧장 자신을 중심으로 ‘감지’를 펼쳐 백귀들의 모든 위치와 행동을 파악하고 분석해나간다.
아홉 마리의 백귀들의 타입은 크게 세 가지의 타입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은현에게 돌진하여 힘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근접형의 탱커 겸 딜러의 네 마리.
두 번째는 먼 거리에서 은현을 저격하며 원거리 공격들을 날리는 궁사와 투창사의 원거리 딜러의 두 마리.
마지막 세 번째는 두 타입의 사이에서 적절하게 역할을 나눠 다른 조를 보조하여 밸런스를 조절하는 유격형 올라운더 타입.
각기 다른 무기들을 사용하며 개성도 다른 백귀들의 타입 안에 그나마 마법사형의 백귀가 없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인간들이었다면 굉장히 밸런스가 좋은 원정팀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현재 적으로 만난 은현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카아앙!
“쳇….”
아홉 마리의 백귀 중 원거리 형 딜러인 궁사가 가장 성가실 것으로 판단하고 제일 먼저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깔끔하게 막힌 것에 은현은 혀를 찼다.
대열에 파고들어 전위와 중위의 백귀들을 제치고 재빠르게 후위의 궁사 백귀의 목을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궁사 백귀의 옆에 있던 투창사 백귀가 은현의 검을 튕겨낸 것이다.
백귀들이 행동은 신속하고 판단에 망설임이 없었다.
은현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마자, 후위직에 속해 있던 궁사, 투창사 백귀들이 놀라우리만치 빠른 민첩성을 활용하여 뒤로 점프를 하면서, 순식간에 은현과의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해 백귀야행 부대의 중심으로파고든 형태였기에 자연스럽게 백귀들이 은현의 주위를 둘러싼 형태가 되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백귀 중에서 가장 민첩성이 빠른 근거리 타입의 세검사와 암살자 백귀들이었다.
각자가 은현의 왼쪽과 오른쪽에 자리를 잡은 백귀들이 은현을 향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맹공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참격들을 막아내고, 공격들의 숫자가 열이 넘는 순간 조금씩 무기들이 맞부딪치면서 생긴 충격이 은현의 양팔에 부담을 쌓기 시작했다.
공격을 막고 또 막을수록 은현의 양손이 조금씩 저리기 시작하며 끝에는 경직되는 순간이 찾아와 은현의 짧은 틈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경직으로 은현의 몸이 잠깐 멈춘 틈을 타,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검을 든 백귀가 은현의 머리를 쪼개버릴 생각으로 대검을 내려쳤다.
억지로 몸을 비틀며 몸의 경직을 풀어버린 은현이 간발의 차로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백귀가 휘두른 대검을 피했다.
콰앙!
허공을 내리친 백귀의 대검이 바닥을 파괴시키며 거친 분쇄음을 만들어냈다.
만약 저 대검을 양손의 검으로 막아내는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자신의 머리는 막는다는 선택을 했던 양손의 검과 함께 은현의 머리가 분쇄가 되었으리라.
“후우….”
설령 막는 것에 성공을 했더라도, 쌍검으로 내려찍는 대검을 막는 과정에서 백귀와 은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고, 그로 인해 생긴 빈틈은 다른 백귀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통해서 은현이 ‘막는다.’가 아닌 ‘피한다.’라는 선택을 내린 결과는 옳았다.
그렇게 몸을 빼며 대검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펼쳐둔 ‘감지’에 위험신호가 경보를 울리며 시전자인 은현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흐읍!”
은현이 몸을 착지한 위치로 공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몸을 뒤로 젖혔다.
머리를 관통시킬 뻔했던 화살이 한줄기의 빛을 그리며 은현의 눈앞을 지나갔다.
‘환장하겠네. 진짜.’
[아이야. 괜찮느냐?]
‘진짜로 안 괜찮아요. 곤란해요.’
걱정스러운 베르단디의 물음에 은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숨을 고르게 쉴 틈도 주지 않는다.
반격할 수 있는 틈도 주지 않는다.
신체와 사고를 가속시켜 통상의 몇 배나 빠른 움직임을 내고 있는 현재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백귀들은 은현이 생각하고 반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치 몇 십 년을 함께 해온 듯 딱딱 맞아떨어지는 연계와 전술적인 움직임은 도저히 마력으로 만들어진 병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었던 사실 하나는 백귀들이 모두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시키고, 유도하고, 궁지로 몰아넣는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파티의 정석적인 방식을 활용하는 것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마수 몇 만 마리를 혼자서 상대할 때는 힘들었어도 정신적으로는 편했는데.’
과거 미르바빌라 제국의 황궁에서 몇 만 마리의 마수를 홀로 대적하여 학살했던 때가 떠올랐다.
마수들은 제대로 된 지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
오로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달려들고, 할퀴고, 물어뜯는 짐승과도 같은 사고방식.
압도적인 물량에 절망을 할 수 있어도, 일방적인 공격패턴을 가진 마수들을 상대로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방식으로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반면 구미호가 소환한 백귀야행 쪽은 어떠한가.
진형을 정하여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고수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체계적인 공격을 통해서 상대방을 물리적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몰아넣는 전술을 구사하기까지 한다.
물량은 몇 만이 아니라 아홉이라는 적은 숫자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이쪽이 더더욱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반격할 틈도 보이지 않는 착실한 연계를 막아내면서도, 은현은 가속된 사고 속으로 냉정히 생각했다.
이 거지같은 파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일까.
일 대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편한 방법은 바로 상대의 후위의 보조나 강한 화력을 가진 마법사를 먼저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백귀야행에는 사제나 마법사 같은 후위직이 없다.
있는 것은 한발 한발이 강력한 투사체들을 쏘아 보내오는 궁사와 투창사들.
그들은 제거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안 그래도 이미 한 번 실패했던 것과, 투창사의 근접 전투력도 만만치 않고 두 후위직들을 호위하며 전위로 나와 있는 중위직의 백귀들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파티로서 정석에 가까운 밸런스를 유지한 부대였다.
‘역시 그냥 앞에서 차근차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나….’
목표를 전위의 백귀들로 잡는다.
노려야할 것은 스피드로 가장 먼저 자신을 견제해오는 세검사와 암살자 백귀들을 시작으로 창사, 그 다음엔 중견직의 백귀들이다.
은현이 눈앞의 아홉의 백귀들을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는 요소는 속도뿐이었다.
‘좋아.’
은현 역시 결심이 섰기에, 행동하는 것 자체는 굉장히 빨랐다.
단숨에 권능을 이용한 ‘시간가속’의 배율을 두 배로 올린다.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겠지만, 일단은 이 자리를 막는 것이 급선무.
처음 보여주었던 정석대로의 행동처럼, 세검사와 암살자 백귀들이 은현의 양옆을 점거하여 은현을 향해 무기를 내질렀다.
백귀들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암살자 백귀가 몸을 멈칫거리더니 푸른 불꽃으로 일렁이던 백귀의 몸이 바스러진다.
“……!”
세검사 백귀는 공격을 멈추고 깜짝 놀란 듯 자신의 몸을 경직시켰다.
이미 목이 베어져버린 암살자 백귀의 목을 시작으로 형태를 고정시키고 있던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어 형체조차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백귀들이 은현의 행동을 인식할 틈도 주지 않고 은현이 순식간에 백귀의 목을 그어버린 것이었다.
그 행동이 너무나도 깔끔했고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아까까지와는 명백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은현을 보며 백귀들이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은현은 평소에 쓰는 ‘시간가속’보다 배율을 더 높은 현재의 상태로 지속시간이 어느 정도 유지될지 속으로 가늠한다.
계산을 마친 은현이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백귀들을 향해 겨눴다.
“들어와.”
지금부터는 한계를 맞이하고 자신이 쓰러지기 전에, 백귀들을 모조리 쓰러뜨려야하는 ‘치킨 게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