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060. 귀족 연쇄 습격 사건(6) (60/730)



〈 60화 〉060. 귀족 연쇄 습격 사건(6)

에린과 은현의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

“…….”

그런  사람의 사이에 끼어있는 위치에 서있던 빌라드와 그라스, 두 남학생 또한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가운데.
먼저 침묵을  건 은현 쪽이었다.

“이봐, 거기 두 사람.”

“예, 예에!”

그라스는 화들짝 놀라며 은현의 부름에 급히 대답했다.
단단하기 짝이 없었던 거대한 철제문을 날려버린 것이 은현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닫고는 은현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존대가 튀어나왔다.

“어서 도망쳐야지?”

여유롭기 짝이 없는 저 말투와 태도.
도대체 남자는 누구인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미친 것 같은 여우 수인의 손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그라스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아직도 딱딱하게 굳어있는 빌라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창고에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갑자기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는 은현의 목소리에 그라스가 우뚝 멈춰서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 뭡니까?”

“너희끼리만 나가면 어떻게 해.”

은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라스는 멍하니 그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쓰러져 있는 애슈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작게 탄식했다.

“저거 데려가야지. 자기만 살겠다고 냅다 도망가는 수준이 가관이네.”

“크윽….”

“으….”

은현의 면박에 빌라드와 그라스는 작게 신음했지만, 아르미타스 소공작을 이곳에 방치하고 자신들끼리도망쳤다는 게 알려지면 나중에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학생은 급히 뛰어가 각자가 애슈턴의 양 어깨를 부축하였고, 그의 몸을 질질 바닥을 끌며 느리게 이동했다.

“내가 그냥 보낼 줄 알고?”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 에린이 곧장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주현성 극원류]
[소룡진각(小龍震脚)]

쿠우!

다리에 마력을 모아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자, 다리에서 방출된 기가 지면을 부수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나아가면서 형성된 작은 용의 형상을 한 마력이 정면의 에린의 몸을 차지한 무언가을 향해 덮쳤다.

“읏?!”

은현이 방출한 마력의 소룡(小龍)과 정면으로 충돌한 에린의 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가 공중을 부유했다.
무사히 세 사람이 창고를 나간 것을 확인한 은현은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에린을향해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다시 부활하시어 세상에 나오신 것에 대해서는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두시지요. 그것이 그 아이를 위한 길입니다.”

은현의 말을 들은 에린이 몸을 멈칫하며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을 노려보았다.

“나를 알고 있나?”

“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신수님.”

가슴에 손을 얹고 몸을 다소곳이 숙이며, 격식을 차린 인사를 냄으로써.
은현은 에린의 몸속에 빙의되어 있는 신수, 구미호(九尾狐)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신수(神獸).
고대 시절, 또는 ‘공허의 시대’,  다른 말로는 지구의 문명이 존재했던 시대, 신의 힘을 품고 있다고 전해지는 영험한 짐승.
또한 인류의 편에 서서 마족과의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던 존재들이기도 했다.
에린의 몸속에 빙의된 존재는 바로 ‘소망의 나무’라고 불리는 페르니아스의 신목(神木)의 아래에 묻혀있는 신수의 영혼의 일부였다.
은현이 그녀의 정체를 밝혀내자, 더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에린의 얼굴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에린의 몸에 빙의하여 나타난 ‘구미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에게 물었다.

“너는…그때 내가 만든 결계를 부수고,  아이를 구했던 그자로구나.”

구미호는 에린의 몸속에 잠들어있으면서, 에린의 기억을 모두 보고 있었고, 에린의 마음속에서 은현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너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 놀라지 않는구나. 처음부터  아이의 몸 안에 내가 깃들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당신께서 펼치신 결계를 깨부수고  아이를 구했을 때부터, 에린의 몸 안에 당신의 힘의 일부가 깃드는 것은 보았습니다.”

이것은 은현이 에린에게 검술과 동시에, 마법의 기초훈련을 시킨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검술만큼은 재능이 없더라도 죽을 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서 일정 이상의 성취를 이룰 수는 있다지만, 마법만큼은 선천적인 재능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분야였다.
때문에 은현은 그녀의 몸속에는 400년 가까이 모아두었던 정갈한 구미호의 마나의 일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에린을 교육시킨 것이었다.
검술과 마법에 관해 문외한이었던 에린이 몇 개월 만에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고 상위의 성적을 받을 수 있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녀의 몸속에 깃든 신수의 일부가  공헌을 했기 때문이었다.

“너는…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어떻게 인간이 몸 안에 신력(神力)을 품을  있는 것이지? 설마….”

단번에 은현의 상태를 꿰뚫어본 구미호는 하나의 가능성을떠올리고 굳어진 낯빛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신들이 드디어 미친것이냐? 어떻게 인간을 ‘사도’로 삼고 신력을 부여할 생각을?!”

“뭐, 저희 여신님 세 분이 좀 독특하긴 하시죠. 그중 한분은 특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요염하고 색기가 넘치기까지 한다.

[그건 날 말하는 것이냐?]

자신에 대한 취급이 시원치 않다는 것을 느낀 베르단디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면서 은현의 머리채를 잡아 당겼다.

‘여신님…. 지금 진지한 얘기중인데….’

[흐, 흐흠.]

베르단디는 헛기침을 하며 은현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방금 읽어 들인 은현의 머릿속의 생각의 의미를 내심  생각해보니, 은현은 자신의 유혹을 엄청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어쩌면 칭찬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베르단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은현의 머리끄덩이가 잡혀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신력을 느낀 구미호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은현을 보며 물었다.

“설마 하계에 현현까지…?”

은현은 여신의 투정에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구미호의 질문에 긍정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작게 투덜거린 구미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찡그린 표정을지으며 구미호는 발걸음을 옮겼다.

“신의 사도와 대적할 생각은 없다. 아까 날 방해했던 만행은 하계에 현현해있는 네 여신의 존재를 생각해서  번만 눈감아주지.”

그렇게 짧은 경고를 던진 구미호가 은현을 지나쳐 창고를 나가려 했지만, 은현은 입을 열어 그녀를 붙잡았다.

“그건 곤란합니다.”

“뭐?”

“솔직히, 신수님이  타이밍에 각성하여  아이의 몸을 차지한 건…저로써도 예상 밖의 일이라 서요. 그냥  아이의 몸,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

구미호는 은현을 노려보고 순간적으로 ‘그냥 죽여 버릴까?’라는 생각을 품었지만, 인내에 성공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현재 신수의 힘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예측이 되지 않는 ‘여신의 사도’와 맞부딪치는 사태는 원하지 않았다.
아까 전, 은현이 만든 작은 용의 공격을 맞았던 구미호는 은현의 실력이 결코 범상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은현이라는 이 남자는 구미호가 빙의되어 있는 몸의 주인인 에린이 가장 많이 의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가 아닌가.
지금 자신이 해야  것은 폭력으로 밀어붙이고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닌, 설득이었다.

“네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구나. 내가 하려는 일은 이 아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다. 스스로 많은 인간들의 멸시와 경멸을 받고, 오라비를 욕보이는 모욕적인 행동과 언사들을 하지 못하게막거나 상처를 보듬어주기는커녕 못 본 척, 묵인하고 앞장서 상황을 조장하기까지 했던 이 나라의 중심에 있는 귀족이란 것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지.”

“…….”

“너도 알지 않느냐?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그 치욕스러운 나날들을 어떤 심정으로 버티면서 살고 있었는지.”

“압니다.”

은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구미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면 됐다. 그러니 방해하지….”

“하지만 에린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에린이 직접 해야 할 일입니다. 신수님이 나서서 해결해주실 문제가 아닙니다.”

“…….”

구미호는 자신이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기에, 은현을 노려보았다.

“제가 에린에게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던 것은 신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와 같습니다. 그 아이에게 선택권을 제시하고, 그 선택을 직접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선택에는 자신의 의지만이 깃들어있어야 하는 법이지,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너는 상냥하면서도 이 아이에게 가혹한 길을 제시하는 구나.  선택권을 가지기 위한 도착점에 도달하기까지, 이 아이가 겪어야하는 고통은 어째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그 고통을 감내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에린, 그 아이 자신입니다. 그 아이의 염원은 그 아이의 힘만으로 이뤄내야 하는 법이죠. 도움은 주실 수 있어도, 대신해주시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에린의 이야기는 신수님에게는 핑계 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역시 너는 알고 있구나. 내가 어째서 그 나무의 아래에 묻혀있어야만 했던 건지.”

“공허의 시대에 전쟁이 끝나고 쇠약해진 신수님을 생포하여 죽이고 유해를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죽어서까지신수님의 유해를 이용하는 이 나라를 증오하시는 마음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 나라를 비롯한 인간들은 아직 망해서는 안 돼요.”

페르니아스 왕가와 역대 왕립학교 아이테르의 학교장들에게만 전해지는 ‘페르니아스 신목’에 대한 비밀.
그것은 전쟁이 끝나고 수명이 다한 신수가 스스로 페르니아스의 초대 국왕을 찾아와 자신의 유해를 매개로 인간들을 풍요롭게 만들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로 인해 페르니아스에는 정갈하고 밀도 높은 마나를 압도적인 양으로 배출하는 장소가 만들어졌으며, 그곳에 학교를 창립시키고 귀족들의 자제들을 학교에 입학시켜 인위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신목에대한 역사는 왕국의 입장에서 지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였다.
실상은 신수와 함께 공허의 시대의 마족을 몰아내었던 페르니아스의 초대 국왕이 전쟁 이후, 쇠약해진 신수를 죽이고 그 유해를 취하여 일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배신을 했던 것이었다.

- 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나의 시체를 왕국의 땅에 묻고 그 위에 많은 아이들이 살 수 있도록, 많은 아이들이 웃으며 살  있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라.

신목과 아이테르를 만들고 초대 국왕이 자신의 후대의 왕족에게 왜곡된 진실을 심어줌으로써 구미호는 아직까지 페르니아스 왕족들 사이에서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오르타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개자식이 만든 나라 따위. 없어져버리는 게 나아. 그 새끼의 후손들을 모조리 찢어 죽여 버리겠어.”

“지금  나라가 망하면 아래에 있는 백성들만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은 죄가 없어요. 우두머리가 죽으면, 아랫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그 혼란의 틈을 타, 우두머리의 자리를 노리기 위한 아랫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겠죠.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위의 구조가 심각할 정도로 혼란에 빠진다면, 그 영향은 자연스레 아래에서 미치기 마련이다.

“닥쳐라!”

배신을 당해 죽었고, 400년을 가까이 시체까지 마음대로 능욕당하는 굴욕을 맞보았다.
죽어서 정신만이 남아 있는 채로 400년 가까이 쌓이고 쌓였던 증오의 감정은 도저히 쉽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은현이라는 존재의 변수로 에린을 구했고, 그녀의 몸에 자신의 일부를 깃들게 함으로써 이렇게 조금이라도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이런 천운의 기회가 찾아올지 장담할 수 없는 지금, 구미호의 입장에서는 초대국왕인 오르타스 페르니아스의 후손인 현 왕족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아무리 ‘여신의 사도’라고 해도,  방해한다면  조차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

“저 역시 여신님의 명을 받는 사도로서, 신수님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없지.”

“에린의 몸에 상처를 낼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은현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일렁이는 마력이 요동치며 중간에서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한숨을 내쉰 은현이 장검을 소환하여 손에 쥐었다.
구미호는 애슈턴에게서 빼앗았던 예검을 뽑아들었다.

카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거친 소리가 사도와 신수, 두 존재간의 격돌을 알리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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