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059. 귀족 연쇄 습격 사건(5)
“결심이 선 얼굴이군.”
“예. 덕분에 생각을 좀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네. 뭐….”
베르단디의 말 덕분에 결심에 설 수 있었지만, 사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방을 빌려준 것도 아브로스의 배려였으니 아브로스의 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덕이 더 크단다.]
‘…네. 알고 있어요.’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공을 주장하는 베르단디의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평소의 베르단디와는 다르다는 것에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상하게 적극적이게 변했다고 해야 할지, 은현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은현과 베르단디의 관계의 사이에도 ‘사도와 여신’의 관계가 아닌, 좀 더 다른 무언가가 추가된 느낌이었다.
그 변화가 어색하기 짝이 없고, 부끄러우면서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여신의 마음에 고마움과 기쁨을 느낀다.
재차 심호흡을 통해 간질간질한 마음을 다잡은 은현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아브로스에게 말했다.
“애슈턴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건물이나, 최근에 돈을 사용했던 내역을 볼 수 있을까요?”
“의외로군. 너라면 그 아이보다 악마의 대처를 우선할 줄 알았는데.”
아브로스가 품고 있었던 은현에 대한 인상은 사적인 감정으로 행동을 하지 않고, 철저히 결과와 성과만을 중시하는 계산적인 인물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선은 지키지만, 은현은 이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놓였을 때, 망설이지 않고 더욱 이득을 볼 수 있는 쪽을 고르는 남자였다.
지금 여기서 악마의 의도대로 납치된 에린에게로 시선이 쏠린다면, 악마가 그 틈을 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을 은현도 모를 리가 없었다.
“누가 좀 따끔하게 혼냈거든요.”
“너를?”
“예.”
입술로 말이지.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헛웃음을 지으며, 은현은 말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해보라고 말이죠.”
“흐음.”
“그래서 좀 빙 돌아가는 방식이어도, 일단은 제 사람부터 구하고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범인이 원하는 건 귀족들이 목숨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습격은 당하고 있고,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목숨을 빼앗긴 사망자는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한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라면 피해자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때문에 습격을받는 피해자가 더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목숨에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은현의 머릿속에서는 에린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게다가 저한테 그런 거지같은 선택을 강요한 그 악마한테도 엿을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렇게 해라.”
“저는 공작님이 허락하셨다는 게 의외인데요. 이 나라의 귀족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제 선택은 이 나라의 귀족들의 피해를 방치하고 다른 일을 우선시하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애초에 네가 아니었다면 범인의 단서 찾고, 악마라는 존재가 저지른 짓이라는 걸 특정 하는 것조차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그게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다.”
가능성을 제시하고 위기를 이미 제시를 하였음에도,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현재의 나라의 상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에 취해있는 귀족들은 전쟁 따위는 언제 있었냐는 듯, 마치 지금의 평화와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쇄 습격 사건의 범인이 자신을 노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두려워하며 수사 중인 아르티아를 닦달하면서, 왕국 내에서 가장 안전한 수도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습격을 받을 일이 없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고 위기감조차 가지지 않는다.
과거에나 존재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악마들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안일한 생각과 선택을 하는 지금의 나라의 상황은 지극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한심한 건, 이 시국에, 이런 어리석은 일을 벌인 내 아들놈일지도 모르지.”
“그것에 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른 이들이었다면, 덜컥 놀라며 아브로스의 말을 부정하며 그를 위로했겠지만, 은현은 부정하지 않고 그의 생각에 동조했다.
쓴웃음을 짓는 아브로스는 은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자식교육을 잘못시킨 나의 잘못이다. 한심한부탁인 것은 안다. 하지만, 부디 죽이진 말아주지않겠나.”
‘어떤 상황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있다.
아무리 한심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들을 계속해서 저지르는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이라도 내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마음이다.
“제가 아무나 죽이는 미친놈은 아닙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보겠지만, 장담은 못합니다.”
“그 말만으로도 충분하다.”
◆ ◆ ◆
“으으….”
아예 저항할 기력도 없어져버린 애슈턴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한 소녀의 팔에 의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신세였다.
[구미호 고유능력]
[에너지 드레인]
그것은 마법이 아닌, 은현이 사용하는 일종의 ‘권능’또는 ‘스킬’의 한 종류였다.
대상에게 접촉을하는 것으로써 대상의 마력과 생기를 갈취하고 자신의 몸으로 흡수한다.
또한 소녀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은 대상의 마력과 생기 뿐 만이 아닌, 마력 안에 내재되어 있던 대상의 감정과 단편적인 기억 정보들까지 읽어들 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두 남학생은 갑자기 온몸이 원상태로 회복이 됐고, 은백색의 아홉 꼬리를 가진 여우 수인으로 변모해 알 수 없는 마법으로 애슈턴의 몸을 망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저게…?”
“인간이 아니었어?”
빌라드와 그라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소녀는 애슈턴의 몸에서 생기를 빨아들여 아직 회복시키지 못한 몸 안의 내상들을 회복시키는 것과 동시에, 마력을 빨아들이고, 동시에 그의 기억의 단편들을 엿보았다.
“불쌍하네.”
애슈턴을 응시하며 소녀는 싸늘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남동생은 검에 재능을 타고나 왕실근위기사단에 소속 돼서 기사로서 이름을 알리며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고, 여동생은 ‘성국(聖國)’의 백성도 아니면서 신의 은총을 받는 자리인 ‘사제’의 직업을 가진 동시에 총명한 머리를 가진 나라의 훌륭한 꽃으로 성장했으니.”
담담히 중얼거리는 에린의 말을 애슈턴은 듣지못하고 있었다.
침을 흘리며 이미 양쪽의 눈에서는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는 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무엇 하나에도 특출 난 재능을 가지지 못하였음에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여기고, 자신보다 뛰어난 동생들에게 열등감을 가지며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고, 자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억지로 짓밟고 배척하기만을 했으니.”
알렉스와 엘레노아 남매가 애슈턴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 만도 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거지같은 인성을 가지고 있나 했더니, 역시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구나. 호부 아래에 견자 없다던데, 이쪽은어미가 문제였군.”
아버지인 아브로스는 세 자식들을 공평하게 대하려했지만, 정실이었던 애슈턴의 어머니는 첩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들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 적잖이 불만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서 첩의 자식이었던 알렉스와 엘레노아가 애슈턴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애슈턴에게 많은 사상과 교육들을 주입시켰고, 애슈턴의 어머니의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서 애슈턴은 자신은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선민사상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죽일 가치도 없는 열등감 덩어리 쓰레기.”
소녀는 애슈턴의 허리춤에 차여져있던 예검인 레이피어를 검 집과 벨트 째로 거칠게 뜯어내며 빼앗았다.
이후 동공이 풀리며 축 처진 팔과 다리가 미약하게 흔들거리던 애슈턴의 몸을 거칠게 바닥에 내팽겨 친 소녀는 야생의 짐승과도 같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멍하니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던 두 남학생을 응시했다.
아홉 꼬리가 달린 수인 여성으로 변한 에린의 시선을 받은 빌라드와 그라스는 순간 몸을 떨었고, 두 사람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감정은 점차 공포로 변해갔다.
영양분이 빨려 말라비틀어져버린 것 마냥 수척해져 앙상한 뼈만 남아있는 애슈턴의 몸 상태의 변화를 목격한 결과, 자신들도 애슈턴과 똑같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피어오르는 공포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에린은 두 남학생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오, 오지 마.”
에린이 자신을 향해 걸어올 때마다 빌라드가 그녀의 걸음걸이에 맞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라스도 빌라드와 마찬가지로 같은 행동을 취하면서 다가오고 있는 에린을 경계했다.
“우, 우리는 잘못 없어.”
“맞아! 다 소공작께서 시켜서 널 데려온 것뿐이야! 우린너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잖아!”
에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피식 웃음을 지었을 뿐.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변호하고 서로를 옹호하는 두 남학생의 모습이 어이가 없고, 한심하고, 불쾌하고, 화가 났다.
“처음 너희를 봤을 때, 이 애를 어떤 식으로 바라봤는지,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이 남아있는데?”
“무, 무슨 말이야!”
“너희, 저 새끼가 용무 끝나면 그대로 너희도 이 몸뚱이를 희롱하고 가지고 놀 생각이었잖아.”
애슈턴과 함께 창고로 들어오면서 에린을 보며 예사롭지 않은 음흉한 시선을 보냈던 그 표정은 이제는 죽어버린 자신의 아버지, 레니온이 자신을 보며 지었던 표정과 닮아있었다.
그 표정과 시선에 치를 떨었던 에린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도 없었고, 그때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두 남학생을 가만히 둘리도 없었다.
“너, 너 지금 이거 실수하는 거야.”
“실수?”
“지금 나한테 생채기라도 나면 너는 그 순간 끝나는 거야. 평민 따위가 오르바 백작가의 아들인 나를 상해를 입히면 너 하나만 사형시키는 걸로 안 끝난다고! 네 가족 모두를 잡아들여서 전부 처형시킬 거야! 알아들어?”
에린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족 같은 거, 없는데? 다 죽었잖아.”
“그, 그….”
당황과 동요로 머릿속의 말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 빌라드는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그라스는 담담하게 자신의 가족의 죽음을 입에 담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충격으로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아까까지의 가련하기만 했던 소녀와는 너무나도 다른 면모.
“나, 날 죽이면 우리 집안과 왕국이 절대로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에린은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자신이 등에 업은 집안의 세력과 왕국을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 빌라드를 비웃었다.
“같잖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가문의 사람들과 왕국이 나서서 자신을 해코지한 에린을 처리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에린은 아까 전, 애슈턴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그와 똑같이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뭘 믿고 이러는 거지?”
“뭐…?”
“정말로 너희 가문과 왕국이 너를 위해서 그렇게 나서줄 거라 생각해?”
“다, 당연하지! 나는 곧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백작이 될 남자다! 너 따위와는 차원이 달라!”
이 남학생도마찬가지다.
애슈턴처럼 미래의 자신의 자리가 보장이 되어있고,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는 운명을 타고난 특별한 존재라며 선민사상에 깊게 감화되어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
“하하.”
“……?”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에린은 그것이 너무나도 우스워서 폭소를 참지 못했다.
‘미친 건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는 에린이 드디어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
빌라드는 에린이 웃음을 터뜨리는 원인이자신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갑작스레 웃음을 뚝 멈추고 에린이 빌라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시선이 너무나도 섬뜩했기 때문일까.
빌라드는 양팔에 닭살이 돋는 것만 같아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 시험해볼까?”
“뭐…?”
“여기서 너를 한 번 정말로 죽여보자.”
“무, 무슨 소리를!”
“그러니까 너를 죽여서 한 번 시험해보자고. 정말로 너희 가문과 왕국이 너 하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움직여줄지. 한 번 알아보는 거야.”
“미, 미친년이!”
“내가 미친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에린은 당연한 걸 뭘 묻냐는 표정이었다.
“나 같은 걸 만들어내는 이 세상은 더 미쳤지. 안 그래?”
순식간에 에린이 발걸음을 빠르게 놀려빌라드의 목을 낚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다.
“오, 오지…!”
잔상이 남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뛰어드는 에린의 행동에 기겁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목을 향해 손을 내뻗는 에린을 보며 자신의 목을 잔뜩 움츠린 빌라드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앙!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닥친 돌풍을 동반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갔다.
“…….”
빌라드의 목을붙잡기 직전이었던 에린이 입구에서 난 커다란 폭발음에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입구에서 단단하기 짝이 없는 철제 미닫이문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등장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붉은 색의 눈동자,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의 익숙한 외모를 확인한 순간, 에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에린과 시선이 마주친 남자도 에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쫄지도 말고, 참지도 말라고는 했지만…. 좀 과했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은현은 쓰게 웃으며 에린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