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051. 마음의 변화 (51/730)



〈 51화 〉051. 마음의 변화

“요즘 좋아보이네?”

“아…….”

에린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학생의 얼굴을 보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해서 시비를 걸었던 여학생, 마르바 베르만은 에린에게 있어서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한사람이었다.
항상 에린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못마땅해 하며 에린을 폄하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무언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한다면, 지난번처럼 외부로 끌고나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거나 얼굴에 물세례를 뿌리는 등의 모욕을 주는 행동이란 행동은 모두 당해왔다.
하지만 단지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에린의 태도였다.
이전에는 마르바가 다가와 말을 걸기만 해도 두려워하며 잔뜩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의 에린은 이전과는 달리 마르바와 다른 여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은현의 정성과 노력으로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아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에린의 잔뜩 두려움에 떨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던 마르바에게는 이런에린의 성장과 변화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가학적인 성향에 딱 들어맞는 과거의 에린은 마르바의 장난감과도 같은 존재였었기 때문이다.

“뭐야 그 눈은? 어딜 건방지게 그딴 표정을 지어?”

명백하게 귀찮다는 생각을 얼굴 밖으로 드러낸 에린을 본 마르바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발끈했다.
자신의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던 것을 들켰기 때문일까.
에린은 더욱 움찔 몸을 떨며 다급하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다고…….”

궁색한 말을 늘어놓으며 시선을 피하는 자신의 태도가 너무도 우스웠다.
아무리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은현에게서 받는 고된 훈련을 통해서 성장을 하고 있더라도, 1년을 가까이 마르바와 다른 여학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던 에린의 마음속에는 아직까지도 그녀들에 대한 두려움이 의식 깊숙이 박혀있었다.

“반반한 외모 덕에 득 좀 보고 있나봐? 갑자기 주위에서 떠받들어 준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니?”

“주제도 모르고.”

“천한 게.”

마르바의 뒤에 있던 여학생들이 마르바의 말에 동조하며 킥킥하고는 에린을 비웃고 있었다.

“그래봤자, 그 흑마법사의 동생이잖아.”

“조심해. 저 애도 흑마법을 익히고 있을지도 몰라.”

“그 흑마법사가 아버지가 빼돌렸던 왕국의 예산을 훔쳐 도주하다가 아르티아 기사단장님의 손에 의해 처형되었다지?”

“완전 그 아버지에  아들이잖아.”

“미천한 본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지.”

“쟤는  아직도 아이테르에 다니고 있는 거지? 사실상 범죄자의 가족이잖아.”

“그러게. 이제는 귀족도 뭣도 아닐 텐데. 학교장님은 왜 쟤를 퇴학시키지 않는 거야?”

“아버지한테 여쭤본 적이 있는데. 아르미타스 공작님이  아이를 변호해줬데.”

“어머, 공작가문에서?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지 얼굴은 반반하니까. 찾아가서 다리라도 벌려준 거 아니야?”

“어머나, 천박하긴.”

“킥킥.”

마르바가 엘빈의 이야기를 언급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교실 내의 주위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중에는 도저히 귀족 영애가 내뱉는 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박한 표현까지 섞여있었다.
자연스레  위에 얹혀있던 에린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주먹을 꽉 쥐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 손 사이로 함께 말려들어간 교과서의 페이지가 부우욱 찢기며 구겨졌다.
자신을 모욕하고, 자신의 오빠를 모욕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는 언사에 에린의 마음이 난도질당하는 것 마냥 갈가리 찢기는  같았다.
어째서 자신과 오빠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엘빈이 세상에서 배척받는 ‘흑마법’을 익히고 있었던 악인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엘빈이 저지른 범죄라는 것은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의 딸을 욕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버지를 처단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왕국의 귀족들과, 그들의 자식들인 아이테르의 학생들은 엘빈의 그런 사실을 모른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오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은현에게서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들었기 때문에 에린은 그럴 수 없었다.
오빠는 헤르샤 준남작 사건에서 벌어진 사건의 주모자로서, 악인으로서 모든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자살을 하는 길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버려두고 혼자 죽었는지,  지옥 같은 세상에 자신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버린 오빠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은현에게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에린은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은현은 엘빈이 에린을 자신에게 맡기고 에린을 다시 만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은현과 엘빈 사이에 어떤 대화와 거래가 오갔는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엘빈을 죽이고, 엘빈에게 모든 오명을 뒤집어씌운 은현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빠가 유언이 담긴 편지를 남기며 힘들 때면, 은현을 의지하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에린은 은현을 믿기로 결심했다.

- 내가 엘빈에게 씌운 누명이 화가 나고 억울하다면, 네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벗겨내. 그게 바로 네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엘빈 앞에서 ‘이제는 괜찮아.’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 위한 ‘첫걸음’이야. 길은 내가 만들어줄게.

훈련은 냉혹하고 가차 없으면서, 이외의 모든 면에서 상냥하다.
에린에게 은현이란 존재는 엘빈보다 더욱 오빠 같은, 조금씩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중요한 존재로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안 돼. 참아야 해.’

그렇기 때문에 에린은  참는 것을 택했다.
주위의 학생들이 뭐라고 하건, 여기서 자신이 무언가 반응을 보이고 화를 낸다면, 더욱 곤란해지는 건 자신이고 덩달아 엘빈에 대한 평가가 더욱 깎일 뿐이었다.
수군거리며 자신을 헐뜯고 조롱하는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격해지고 분노하는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는 것을 에린은 잘 알고 있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이성을 잃지 않도록 터져나올 것 같은 분노를 꾹 참는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에린은 원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마르바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주제를 알라는 충고.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쯧….”

화를 내는 것이 아닌, 담담한 표정 속에서 새어나오는 에린의 싸늘한 분노를 느낀 마르바가 에린의 기세에 눌려 몸을 움찔 떨어 혀를 찬다.
에린은 그련 마르바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는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현이가 보고 싶어.’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정리한 에린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기도 전에, 재빨리 학교를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교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은색머리카락의 남자를 보고 밝게 웃으며 그를 향해 뛰어갔다.

“현아!”

“뭘 그렇게 뛰어와.”

“헤헤, 그냥.”

“가자.”

얼굴을 보자마자 배시시 웃어 보인 에린을 보고, 은현도 피식 웃어보이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에린이 은현의 등에 돌진을 하더니 그의 등을 꽉 끌어안으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음?”

에린의 돌발 행동에 은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아아…….”

깊게 내쉬었던 숨을 내쉬는 에린은 아까 전, 학생들의 수근거림으로 쌓여있었던 스트레스를 풀고는 편안하고 포근한 표정으로 은현의 등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좋다아…….”

“뭐야? 갑자기  이래?”

에린의 반응이 너무 생뚱맞았기에 은현이 드물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현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에린의 팔을 억지로 풀려고 했지만.

“으으응!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

“…….”

거세게 저항하고는 더욱 세게 끌어안았기에 억지로 떼어놓지도 못했다.
결국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며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은현의 몫이었다.
평소에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신경을 쓰는 에린이었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돌발 행동을 하는 부분은 은현에게 있어서 곤란한 부분이었다.
최근 이런 식으로 은현에게 엉겨 붙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너 요즘 자주 이러네.”

“으응…….”

“무슨 일 있어?”

“응…….”

“무슨 일인데?”

“그냥 흔한 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은현은 에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허리에 감긴 에린의 팔을푼 뒤 몸을 돌려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은현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지 에린은 실실 웃으며 그의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로 치유라도 받는 기분이 들어 아까까지만 해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나쁜 감정들이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봐! 기다려라. 평민!”

“으…….”

머리를 쓰다듬었던 손을 떼고,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한 남학생의 다급한 목소리가 은현과 에린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측했는지, 에린이 묘하게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찡그렸다.

“흠?”

은현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불러세우는 남학생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얼마나 다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에린을 노려보던 남학생이 에린에게 소리쳤다.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설마 오르바님의 말을 무시하겠다는 거냐?”

“저기, 저는 분명 중요한 일이 있다고 거절을 했는데…….”

“닥쳐라!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고 이야기했었다! 잔말 말고 어서 따라와!”

성큼성큼 걸어와 에린의 손목을 붙잡으려던 남학생의 팔을 은현이 중간에 난입하여 그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무슨 일이죠?”

“넌  뭐야?”

“이 아이의 ‘오빠’입니다. 무슨 용무가 있으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 손 놔!”

남학생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은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금새 거만한 태도를 취하며 은현의 물음에 답했다.

“오르바 백작님의 장남이신 빌라드오르바 님께서  동생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신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영광을 네 동생에게 줄  있는 기회이니 저리 비켜라.”

“그런 거라면 거절하지요.”

“뭐라고?”

“제 동생이 그 권유를 거절한 걸로 보입니다만. 틀립니까?”

흘끗, 에린의 표정을 살피자, 에린이 곧장 은현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난 거절했어!”

“그렇다는데요.”

“이것들이 건방지게 쌍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방해하는 은현을 노려본 순간.

“가관이네.”

“뭐? 감히 누가……헉!”

자신을 비난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남학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고, 목소리의 주인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숨을 삼켰다.

“사람에게 권유를 하는 태도에서 배려나 존중 따위는 보이지가 않네. 빌라드가 그렇게 강제적으로라도  아이를 데려오라고 시켰니?”

“그, 그것이…….”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말에 남학생의 어깨가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조금씩 걸음걸이를 옮겨 은현과 남학생 쪽으로 걸어오자, 대문 앞에서 하교 중이던 학생들이 모두 은현 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뭐, 뭣?!”

화사한 금발을 가진 소녀, 에이라 올리비온이 은현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내자, 남학생이 놀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후, 후작가의 귀족 영애가 평민 남자한테 저렇게 깍듯이 인사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남학생이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니?”

“예?”

“이름.”

“그, 그라스 브로드입니다.”

“브로드 자작가의 사람이구나. 알았어. 가봐.”

“하, 하지만…….”

“오르바한테  이름을 전해. 그러면 적어도 핑계는 되지 않겠니?”

“아, 알겠습니다….”

고레느는어쩔 수 없이 끄덕이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귀찮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신 것 같아 멋대로 끼어들게 되었네요. 괜히 나섰나요?”

“아니, 덕분에 귀찮은 걸 떼어냈어.”

‘와, 쩐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카로운 눈매로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에이라가 은현을 보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순식간에 돌변한 태도를 보이자, 에린이 경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가면을 바꿔 쓴 것처럼, 여자들만이 알아볼  있는 내숭을 눈치  에린은 벙 찐 표정으로 에이라를 바라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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