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048. 흑마법사의 흔적(2)
세실리아 클라리스는 엘빈이 아이테르에 재적했을 당시, 그가 속해있던 반을 맡았던 담임 교사였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담당 과목은 연금학.
이제 막 서른의 나이를 먹은 세실리아는 한쪽으로 흘러내리도록 가지런히 정리한 땋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청초한 인상의 여자다.
동그란 안경을 쓴 지적이고 청초한 얼굴을 가진 세실리아는 인적사항이 기록된 당시 학생들의 정보를 눈에 담고 있는 은현을 흘끔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는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이 사람이 정말로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학교 안의 결계를 깨부수고 에린을 찾아낸 사람?’
의심이나 믿을 수 없다는 반응보다는 은현의 정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둔 의문이었다.
서류를 읽던 은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세실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학교생활에서 엘빈은 어땠나요?”
“빈말로도 좋은 학교생활을 보냈다고는 할 순 없었죠.”
세실리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은현의 질문에 답했다.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제대로 된 예법과 교육도 받지 못하고 몸만 학교에 입학한 상태였던 엘빈은 많은 학생들의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었어요. 저는 그걸 알면서도 점점 심해지는 그 아이들의 막무가내 행동들을 막지 못했죠.”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세실리아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맡았던 제자 하나가 훌륭하게 성장해서 졸업 이후, 메이거스에 입단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제자의 출세 소식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슬픈 표정을 지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흑마법사로 변질되어버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되어버린 것에는 제 탓이 컸던 걸까요.”
“선생님이 아니라 이 나라가 문제인거죠.”
은현은 담담히 세실리아를 위로했다.
“귀족에 대한 특권 의식이, 남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오만함이, 좋은 것과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서슴지 않고 행동하는 이기심이 문제인겁니다.”
“…….”
이 나라의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있던 세실리아도, 담담하게 자신의 나라를 두고 말하는 신랄한 비난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녀 스스로도 자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지금도 에린의 담임을 맡아주고 계시죠.”
“네, 기구한 운명인 것 같네요.”
세실리아는 자조하며 답했다.
이번 에린이 실종되었던 사건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하며 에린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니스 말레누가 밤중에 ‘에린의 투신’을 목격했던 것이 착각이라며 미친 사람을 취급받았던 것처럼.
학교의 학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정작 학교의 중요 관계자들은 세실리아의 수색 요청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평민이나 다름없는 준귀족 신분인 공무원의 딸이었기 때문에, 에린 하나가 사라진다고 나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세실리아는 그때 당시, 특별한 지위도 없는 지방 영지 자작 귀족의 딸이 무엇을 알겠냐는 집안의 모욕까지 들었어야만 했다.
실종된 제자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무력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기 때문에, 이렇게 에린을 구해주고 그녀의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은현이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에린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네?”
“적어도 에린에게는 아직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제가 나설 겁니다.”
세실리아는 이상한 사람을 다 본다는 듯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란 건 말이죠.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장소죠.”
“네.”
“누군가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선생님. 가르치는 것에는 마법과 지식, 훈련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전 말이죠. 교사란 건 제자들이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마법, 검술 훈련, 예법, 교양, 역사 등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학생의 인성….”
“학생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사물을 올바르게 보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행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교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 학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부모들이 가진 계급이,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위가, 그것을 등에 업은 아이들이 입학한 순간부터 머릿속에 박혀있는 특권 의식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그런 이들만이 이 학교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 세실리아처럼 귀족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교사나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이 학교에는 희망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은현이 계속해서 학교를 다녀보겠다고 말한 에린의 선택을 막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래에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고 에린이 그것을 선택했다면 가능하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아직 노력하고 있는 에린에게는 선생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세요.”
“아…고마워요.”
세실리아는 은현의 격려를 받게 되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자신을 격려해주는 말 자체는 굉장히 기뻤다.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린 세실리아는 마음을 다잡은 표정을 짓고 본래의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하지만 정말로 리라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정황상 가장 의심이 많이 드는 사람이니까요. 이 리라라는 여학생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요?”
“으음, 성적은 그냥 그렇게 눈에 띄었던 성적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요. 외모가 굉장히 뛰어나서 남학생들한테나 여학생들한테나 항상 많은 시선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옆의 다른 반에서도 그 아이를 보려고 일부러 교실을 찾아오거나 주변을 기웃거리는 남학생들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였는데,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으음,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그 아이와 대화라도 한 번 해보거나 접근하려는 아이들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싸움도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어요. 여학생들 사이에서는…잘 모르겠네요. 여자들은 원래 이런 문제에 대해서 대외적으로 눈에 띌만한 행동을 하지 않거든요. 주로 사람들이 없는 골목이나 창고에 따로 데려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하죠.”
‘경험담이구나.’
[경험담인 것 같구나.]
은현과 베르단디가 씁쓸한 얼굴로 설명하는 세실리아의 말을 들으며 같은 생각을 품는다.
남자들에게는 좋은 의미로, 여자들에게는 나쁜 의미로 주위의 관심을 독점한 리라는 자연스럽게 세실리아 반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모았고 어쩌면, 그것은 항상 붙어 다니는 엘빈에게도 영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평민의 소녀라….”
‘너무 흔한 소설 속 전개인데….’
“졸업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묘연하네요.”
“아이테르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 아이는 마법 성적이나 교양, 예법 등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거든요.”
리라의 집안인 바라노프 준남작가가 작년에 모두 몰살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한 모양이다.
은현은 구태여 세실리아에게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리라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그건 저도 잘….”
아이테르에 평민 집안의 자제가 입학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은 바로 부모가 준귀족의 신분을 가진 공무원이어야 한다.
현재 왕국에서 고용하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국가직은 주로 레니온 헤르샤처럼 말단 회계업무처리를 하는 등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이들을 왕성과 행정부에서 고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에는 준남작이라는 직함을 가진 공무원이 존재할 수 가 없다.
말이 되지 않는다.
은현은 단서를 하나 찾기 시작하자 미심쩍은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엘빈에게 많은 조언을 통해 마법적 지식들을 전수해주었던 그녀가 그렇게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것도 이상하다.
‘애초에 정체를 숨기고 엘빈에게 접근했던 걸까.’
하지만 꼭 엘빈이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무작위로 엘빈이 선택된 걸까?
다양한 생각들을 품으며 은현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엘빈의 교우관계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후 조사에 협조를 해준 세실리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에린을 잘 부탁드립니다.”
“제 쪽이야말로 부탁드려야할 일인걸요.”
은현의 당부에 대해 세실리아가 쓴웃음으로 대답해주며 방에서 나가는 은현을 배웅해주었다.
◆ ◆ ◆
엘빈이 흑마법서를 발견했다는 동굴을 발견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도달하는데 걸렸던 시간, 가는 길에 발견했던 길이나 숲의 특징들, 자세한 설명을 들었던 은현은 엘빈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종합하여 죽은 상위 마법사의 유산이 숨겨져 있다는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은현이 발견한 이 동굴이 엘빈이 말했던 장소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동굴의 입구에 쳐져 있는 결계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쳐진 결계를 보면 누가 봐도 수상하지.”
은현은 주위에 있는 돌덩이를 주워들고는 앞의 결계를 향해 내던졌다.
물결이 치는 것 마냥 미세하게 흔들리는 결계의 장막 속으로 돌이 빨려 들어갔다.
빨려 들어간 돌이 그대로 옆의 장막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본 은현이 손을 뻗어 직접 결계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 아이야!]
깜짝 놀란 베르단디가 은현의 팔을 붙잡아 행동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마치 절단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팔이 옆의 다른 공간에서 튀어나오자 은현은 자신의 팔을 유심히 관찰했다.
“흐음.”
손가락과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자기 상태의 관찰을 끝내고 나서야 은현은 팔을 뺐다.
[아이야! 경솔하구나! 만약 위험한 결계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돌 먼저 던져보고 아무런 이상도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그런 거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있느냐…. 후우….]
걱정이 되는지 한숨을 쉬는 베르단디를 보며 미소를 지은 은현은 그대로 동굴을 빠져나왔다.
[안을 둘러보지 않는 게냐?]
“저 결계를 파괴하거나 강제적으로 진입하는 것도 못할 것도 없지만, 아마 결계를 설치한 사용자가 알아챌 거예요. 적어도 이쪽에서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를 경계할게 뻔하니까요. 얻고 싶은 정보도 얻었고요.”
[정보를 얻었다는 게 무슨 말이냐?]
“엘빈은 흑마법서를 발견했을 당시에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어요. 엘빈이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은 적어도 그때 당시에는 저 결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만약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더라면 엘빈이 은현에게 그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결계를 설치한 시점은 엘빈이 흑마법서를 동굴에서 가지고 난 이후의 시점. 적어도 최소한 2년 이내의 최근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저 결계의 특징은 결계를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치자가 지속적으로 일정거리 이상을 결계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에요.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단절시키는 훌륭한 성능을 가졌지만 결계를 설치하고 일정 거리를 벗어날수 없다는 명백한 단점이 존재하죠.”
[그 결계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은…그렇구나.]
“네. 여신님의 생각대로가 맞을 거예요.”
숨겨진 저 동굴에서 수도 페르닌까지는 마차를 이용하여 근처의 숲까지 온다면 하룻밤 만에 올 수 있는 거리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 저 동굴을 선택한 이유는 엘빈이 혼자서 이동하여 올 수 있는 거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즉 저 동굴이 ‘죽은 상위 마법사의 유산이 숨겨져 있는 장소’라는 정보 또한 엘빈을 이곳으로 유도하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게다가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리라 바라노프가 동굴의 존재를 다른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설치한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동굴의 근처에 잠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라 바라노프는 아직 수도 페르닌에 숨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