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047. 흑마법사의 흔적(1) (47/730)



〈 47화 〉047. 흑마법사의 흔적(1)

은현이 도착한 행선지는 몇 번인가 와본 적이 있었던 아이테르의 학교장실, 망설임 없이 노크를 함으로써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똑똑

“들어오시오.”

두 번의 노크를 하자 안에서 입실을 허락하는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학교장실로 들어간 은현이 고개를 숙이며 간략한 인사를  내자 올리버는 은현의 인사를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온다는 연락은 받았소.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소만.”

“그 건은 괜찮습니다.”

“…그 여학생의 건으로 온 것이 아니란 말이오?”

올리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인간이 무슨 수작을 걸려고 이곳까지  것일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잔뜩 경계하고 있는 모습.
틀림없이 ‘에린 헤르샤’의 보호자 신분으로서 이전 그녀를 괴롭혔던 여학생들을 빌미로 또 무언가를 협박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에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엘빈 헤르샤’의 아이테르 재적 당시의 성적표와 담임을 맡았던 교수,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은현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은 올리버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외부인에게 함부로 유출해서는 안 되는 정보요. 심지어 왕국민도 아닌 자네에게 왕국 귀족 자제들의 개인 정보를 넘기라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은현은 당연히 그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인정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은현이 또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모르기에 경계를 풀지않고 말을 이었다.

“만약 에린이라는 여학생을 폭행한 여학생들의 사실을 덮는조건으로 이 정보를 요구하려는 것이라면, 포기하시오.”

“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학교장님.”

조용히 입을 다물며 올리버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있던 은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만약 엘빈이 ‘흑마법’의 기초를 아이테르라는 학교의 내부에서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면.”

“무, 무슨 소리를?!”

“가장 먼저 조사를 해봐야하는 것은 엘빈의 주변인물 들이 아닐까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가능성’이라는 폭탄을 던지며, 은현은 올리버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학교장님?”

“으, 으음….”

올리버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침음했다.
또 다시, 거부할  없는 제안을 해오는 뱀의 혀를 맞닥뜨린 올리버는 한숨을 내쉬며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남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무슨 이야기인지…자세히 이야기해보시오.”

흑마법이란 아르케나 대륙에서는 이제 거의 사장된 마법이나 마찬가지다.
죽은 인간이나 가축, 생명체의 사체(死體)에서 흘러나오는 장기(瘴氣)나 사용자의 생명을 기반으로 발현되는 사술(邪術)의 일종을 세간에서는 흑마법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흑마법의 종류는 이 뿐만이 아니다.
나쁜 결과와 흐름을 유도하는 저주나 주술(呪術), 이미 죽은 자의 영혼을 이승으로 소환하는 강령술(降靈術)이나 최면술  다양한 종류가존재한다.
대체로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공격마법들과는 다르게 영적, 정신적인 현상과 결과를 조작하는 분야가 흑마법의 특기 분야이다.
체내나 자연의마나를 활용하여 발동시키는 일반 마법이나, 신을 공경하는 신실한 마음을 기반으로 발현되는 신성력으로 발동시키는 신성마법과는 달리, 흑마법의 사용조건은 꺼림직 하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 생명을 품은 육신을 매개로 사용하여 발현시키는 것.
엘빈이 사용했던 조영술(調影術)의 경우에는 자신의 사념을 자신의 그림자 속에 의태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생각’을 가진그림자가 엘빈의 육체를 좀먹는 부작용을 나았다.
다른 흑마법들 또한 부작용이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아직 도덕적인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의 이성을 유지했던 엘빈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부작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흑마법사들이 가장 많이 취하는 방법이 바로 다른 인간의 육체를 매개체로 삼아 흑마법을 발현시키는 것.
흑마법사의 악질적인 부분은 자신이 짊어져야하는 리스크를 자신이 아닌 매개체가  인간이 짊어지게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에 있다.
아르케나 대륙에서 흑마법이 사장되고 흑마법사를 배척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을 얻는 대신 짊어져야하는 리스크가 확정적이고 너무도 무겁다.
더욱 위험한건  흑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들의 뒤틀리고 미쳐버린 사고방식들.
그들은 자신의 목적와 안전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마음대로 짓밟는 방식을 서슴지 않고 취한다.
엘빈은 그런 뒤틀려버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은현에게 자신이 아직 인간으로서 존재할 때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여기서 은현이  가지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었다.

“엘빈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흑마법의 지식을 접하고 조영술을 익힐 수가 있었을까요?”

“…….”

올리버는 은현이 던진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올리버가 알고 있는 흑마법은 바로 죽은 망자(亡者)의 시체를 좀비로 만들어 자신의 하수인으로 삼는 사령술(死靈術)뿐, 다른 흑마법에 종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젊었을 적부터 마법의 연구에 몰두하고 대륙의 마법에 대해 정통한 인물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자신조차도 흑마법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상황인데.
‘엘빈 헤르샤’라는 청년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조영술이라는 흑마법의 지식의 일부를 접할 수 있었을까?
근본적으로 ‘엘빈은 어떻게 흑마법사가 될 수 있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시작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대는 엘빈에게 흑마법을 가르친 인물이 아이테르 내부에 있다고 의심하는 거요?”

“아뇨.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엘빈은 조영술의 지식이 담겨있던 ‘흑마법서’를 북쪽의 어떤 한 동굴에서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직접 흑마법을 전수받은 게 아니라는 확인은 할  있었죠. 단지….”

“단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학교장님을 찾아뵈어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방문한 겁니다.”

“신경 쓰이는 부분…. 말해보시오.”

“첫 번째는 엘빈이 아이테르의 학생이었을 당시 보여준 마법사로서의 급격한 성장입니다.”

“그건…. 이미 그대가  차례 설명한 바가 있지 않소? 신목에 대한 비밀을 언급한 것으로.”

‘페르니아스의 신목(神木)’, 일명 ‘소망의 나무’라고 불리는 아이테르의 창립 당시부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오는 거목의 존재.
은현은 이미 헤르샤 준남작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히는 과정에서 신목의 역사와 아이테르가 창립된 목적을 까발린 전적이 있다.
올리버는 그때의 기억에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죠. 학생들의 성장력을 촉진시키고 훌륭한 기사와 마법사들을 육성시켜 나라의 국력을 증진시키기 위함과 동시에 귀족들만의 특권을 강화하고 평민과 자신들의 차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

“크흠.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적나라한 은현의 표현이 심기가 불편해진 올리버가 대꾸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성장이 너무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미 우수한 가정교사에게 예비 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마법사로써 소양을 쌓았다고 자부했던 엘리트들이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평민 입학생한테 밀려서 메이거스 마법사단의 자리까지 빼앗긴 셈인데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50부터 시작한 엘리트들이 0부터 시작한 재능 없는 둔재한테 정상의 자리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귀족 자제들의 입장에서는 상위의 몇 명만이 입단할 수 있는 궁정마법사단의 자리에 평민 마법사가 입단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수치스럽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있었다는 얘기요?”

아무것도 모르는 엘빈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만한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은불가능하다.
그의 주위에 누군가가 엘빈이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다.

“엘빈은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에게 함께 공부를 하자고 하던 한 여학생이 있다고 했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준귀족 신분의 부모를  학생이었기 때문에 공통점이 있었던 둘은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아이에게서 마법 수련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했어요.”

엘빈은  여학생의 조언을 참고하고 마법에 대해 서로 많은 의견을 나누면서 놀라울 만큼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엘빈에게  여학생은 지독한 배척이 계속되는 아이테르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버팀목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녀와의 대화가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새겨진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엘빈은 씁쓸한 추억을 회상하며 은현에게 당시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이후, 아이테르를 졸업하고 메이거스에 입단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엘빈은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가졌었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저녁 식사에서 여자가 엘빈에게 한 가지 화제를 제공했다.
북쪽의 어느 동굴에 ‘죽은 상위마법사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마법사로서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산에 대해 흥미를 보인 엘빈은 이야기를 들은  일 후, 휴가를 내고 혼자서 유산이 숨겨진 동굴을 찾기 위해 홀로 북쪽을 향했다.
그리고 도달한 그 동굴에서 엘빈은 어떤 마법사의 마법서적을 발견했다.
‘조영술’이라는 흑마법의 지식이 담긴 흑마법서를.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소. 엘빈은 어째서 그 여자의 말을 믿고 홀로 유산을 찾기 위해 북쪽을 향한 것이오?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의심스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엘빈도 그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둘이 아니었다는 것도요. 하지만 엘빈은 그 여자가 자신에게 해가 될 거라는 정보를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죠. 엘빈의 입장에서는 그 여자는 은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 했던 자신을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고 메이거스에 입단할  있도록 공헌한 인물이 바로  여자였다고 엘빈은 말했다.
의심 가는 점이 있었음에도,  여자에 대한 신뢰가 굳건했던 엘빈은 그녀가 주었던 정보를 믿고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은현은 자신을 흑마법사가 되도록 유도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냐고 엘빈에게 물었었다.

- 원망 하냐고? 아니,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고 날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금기나 다름없는 흑마법서에 손을 대고 조영술을 익혔던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것만큼은 그녀의 탓이 아니야.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지. 지금도 나를 마법사로서 이끌어주었던 그녀에게는  은혜를 느끼고 있다.

배신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음에도 엘빈은 담담하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엘빈에게 자신을 리라 바라노프라고 소개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엘빈이 알고 있었던 건 그 여자의 이름 뿐.”

정황상 엘빈을 마법사로서 키우고 흑마법사로 만들어지도록 유도한 것은 이 ‘리라 바라노프’라는 여자가 확실하다.

“만약 이 여자가 엘빈이 마법사로서의 재능을 싹틔우도록 유도한 존재가 맞다면, 그 집념은 정말로 무섭기 짝이 없네요.”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할 정도로 집요하기 짝이 없기까지 하다.

“그래서 저는 제 기분 나쁜 상상이 들어맞지 않기를 바라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때문에 은현은 리라 바라노프라는 여자의 행적을 찾아보기 위해선 엘빈만을 조사해보는 것보다는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들을 조사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엘빈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그의 성장을 그나마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엘빈이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어떤 교우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빠짐없이 전부다.”

“으으음….”

은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올리버의 인상이 심각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학교장님. 만약에 정말로 엘빈을 흑마법사가 되도록 뒤에서 상황을 조장한 인물이 아이테르 내부에 존재했었다는 일이 밝혀진다면. 이건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학교장님께서 더 잘 아실 테죠. 이에 대한 의혹이라도 퍼지기 시작한다면 피해가 가는 것은 아이테르 측과 학교장님 쪽입니다.”

올리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무언으로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제가조사하도록 하죠. 궁정귀족들과 왕실에 이 문제를 상담할 수는 없는 사안이니까요.”

밝혀진다면 학교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왕국 내부에‘흑마법사의 흔적’이 숨어있다는 사실은 중대한 문제다.
자신의 자리와 명예를 온존하기 위해서, 페르니아스의 신목의 비밀을 들키고 에린 헤르샤의 수색에 실패했던 사실을 숨겼던 전적이 있던 올리버는 고심 끝에 은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전 유리아와 알렉스의 구조를 요청했던 헬레나 후비와 엘레노아의 경우와 같은 경우였다.
자국의 사람들에게 절대로 상담할 수 없는 문제.
또는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지고 트집을 잡힐  있는 요소가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물은 한정적이다.
비밀을 지켜줄 수 있고, 왕국과 전혀 연관이 없으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은현’이라는 남자는 여러 면에서 이 문제를 비밀리에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은현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헬레나와 엘레노아가 자신을 찾아왔던 것처럼, 올리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협상의 카드를 제시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은현은 복도를 걸으며 요청했던 자료를 가져다주기로 했던 장소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만약 저 자가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생각이었다면 어떻게  생각이었느냐?]

“사실 학교장이 제안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던 상관이 없었어요.”

[상관이 없었다고?]

“왕국의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에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의문을 느꼈겠죠.”

‘도대체 엘빈 헤르샤는 어떻게 흑마법을 익힐 수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이제는 거의 사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흑마법은 독학으로 익힐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건 마법사였던 엘빈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곳, 마법학교인 아이테르와 그가 소속되었던 궁정마법사단인 메이거스입니다.”

자국에서 새로운 흑마법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어떤 흑마법사가 위장하여 국내에 잠입했다는 가능성도 문제지만,  학교를 졸업한 신출내기 마법사가 흑마법사였다는 것은 문제의 크기가 전혀 다르다.
어쩌면 국내에서 비밀리에 흑마법사를 육성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이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은 또 다른 의심과 의혹을 낳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써먹으려는 타국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어찌되었건 왕가에서는 그간의 엘빈의 행적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다.

“만약 엘빈의 행적을 조사하는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 수사는 당연히 흑마법사를 추적했고, 전투를 벌여보았던 전적이 있는 아르티아가 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리오드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로 수사에 참여할 수도 있어요.”

올리버가 은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은현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게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번거롭게 이렇게 제안을 하면서까지, 먼저 움직인 건 이 상황을 조장한 그 정체모를 여자가 겨우 이정도로 끝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모순점과 문제점을 직시했으면 먼저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두는 것이 가장 좋은 대비다.
학교 도서실의 문 앞에 도착한 은현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고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을 향해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은현입니다. 학교장님께서 이곳으로 가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실리아 클라리스라고 합니다. 방안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은현은 세실리아의 안내를 따라 도서실 안에 마련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중앙에 놓인 낮은 테이블에 쌓여있는 산더미의 서류들을 보고 은현은 세실리아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이고는 바로 소파에 앉아 서류들에 적힌 학생들의 인적사항들을 빠르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인지 낯짝 좀 보고 싶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 여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