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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041. 아르키스 대미궁(9) (41/730)



〈 41화 〉041. 아르키스 대미궁(9)

- 메르딘님의 역할은 전방에서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을 견제해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탱커로서의 역할이며, 공격을 받아내기 위한 패링(Parrying)이죠.

상대의 공격을 자신의 몸이나 무기 등으로 옆으로 쳐 내는 동작. 막기나 회피와는 달리, 패링은 공격을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동작으로, 상대의 연속적인 동작을 일시적으로 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다고 모든 패링이 성공한다는 뜻도 아니었다.
특히나 커다란 힘을 기반으로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는 마수를 상대로는 그 공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

- 아니, 그게 말이 쉽지….

- 힘의 차이가 역력한데, 상대방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패링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노려야할 타이밍은 상대가 준비동작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단계입니다.상대의 움직임을 잘 보세요.

휘두르는 무기에 완전한 힘이 실리기 이전,  동작 자체를 노리고 파고들어 공격 자체를 완전한 공격이 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
메르딘은 은현의 조언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대검으로 공중에서 내려찍으려는 미노타우로스의 배틀엑스의 날을 쳐냈다.

우오?!

배틀엑스에 있는 힘을 모두 실어 내려찍으려는 순간 튕겨나가 공격의 궤도가 바뀌어버리자 미노타우로스가 당황한다.
파티원 중에서 가장 큰 체격과 기다란 검신을 가진 대검을 사용하는 메르딘이었기에 높은 타점에서 오는 내려찍기를 미리 견제할 수 있었다.
궤도가 바뀐 미노타우로스의 내려찍기가 엄한 바닥을 내려찍으며 바닥을 파손시켰고 얼떨결에 자신의 견제가 통했음을 깨달은 메르딘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이미 검을 뽑고타이밍을 보고 있던 알렉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빈틈을 노리고 빠르게 달려갔다.
빠르게 미노타우로스의 뒤를 점거한 알렉스가 마수의 양 종아리를 베어 넘겼다.

“얕군.”

공격자체는 먹혀들어가 양쪽 종아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공격 자체는 높은 데미지를 주지 못한 것에 혀를 찼다.

우오오오오!

순식간에 알렉스의 접근으로 공격을 허용당한 미노타우로스가 배틀엑스를 다시 들어 올리며 알렉스를 향해 휘둘렀지만, 엘레노아의 축복으로 강화된 알렉스의 신체는 곧바로 회피하며 거리를 두었다.
자신의 몸을 상처 입혔다는 것에 분노한 미노타우로스가 득달같이 쫓아가며 알렉스를 향해 마구잡이 공격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미노타우로스의 사정거리 바깥의 간격을 유지하는 알렉스의 얼굴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으랏차!”

알렉스의 유인으로 마수의 경계를 벗어난 메르딘이 마수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며 미노타우로스의 허리에 있는 힘껏대검을 찔러 넣었다.

우, 우오오오오오오!

거대한 칼날이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들어오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미노타우로스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예 대검에서 손을 떼고 고통을 호소하며 발광을 해대는 마수에게서 멀리 떨어진 메르딘이 식은땀을 흘리며 미노타우로스를 보고 중얼거렸다.

“미친…. 저 상태에서도 계속 움직인다고?”

옆구리에 대검을 관통당한 상태이면서도 고통과 분노로 이성을 잃은 미노타우로스가 가장 눈앞에 보이는 알렉스를 보며 배틀엑스를 휘두르고 있었다.
계속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공격을 피하던 알렉스는 크게 돌고 돌아 처음의 파티원들을 등진 위치로 돌아왔고 그대로 파티의 대열에 합류했다.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는 듯 타오르는 눈과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미노타우로스가 미궁을 흔들 정도의 육중한 거체로 달려온다.

치이익!

갑작스레 일정구역에 발을 들이민 미노타우로스의 주위를 새하얀 연기가 가득 채우기 시작하며, 주위의 기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아까 전 은현과 아이샤가 해체했던 냉각 마법이 인챈트 되었던 함정 아티팩트를 다시 설치하여 발동시킨 것이었다.

우, 우오오…

온 몸에 서리가 끼어 꽁꽁 얼어버린 육체는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을 제한 시켰다.
빙결 상태이상에 걸린 미노타우로스가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이미 얼어버려 동사직전의 육체는 제 주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입니다. 아이샤님, 왕녀님은 곧 바로 수식 준비를.”

은현의 신호와 함께 몸속에 있는 모든 마나를 모두 때려 넣은 아이샤의 화살이 드디어 활시위를 놓은 순간 날아가기 시작했고, 한 줄기의 얇은 선을 그리며 미노타우로스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다.
정확하게 미노타우로스의 오른쪽 눈을 명중시킨 아이샤의 화살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마수의 얼굴을 터뜨리며 관통해나갔다.
꽁꽁 얼어버린 얼굴과 이미 머리의 절반이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미노타우로스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세 자릿수 마법]
[파이어 애로우]

유리아의 머리 위, 공중에 그려진 수식에서 구현된 불꽃의 화살, 세 발이 빙결 상태에 걸린 미노타우로스를 직격했다.
비명 하나 지르지도 못해보고 머릿속까지 새카맣게 타버린 마수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전투가 끝나자, 은현을 제외한 파티원들은 모두 크게 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으아, 죽겠다아.”

“그래도 이번엔 생각보다 해볼 만하지 않았냐?”

“뭐,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역시 그렇죠?”

자신들의 힘으로 마수를 제대로 잡았다는 사실이 뿌듯한지 아이샤와 메르딘이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뭐가요?”

“적절한 판단과 오더였다고 생각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저 둘에게도 좋은 경험이  거라는 생각이 맞았어. 그리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리아 왕녀를 흘끗  알렉스는 말을 이었다.

“저분께도 말이지. 현실을  경험하게 된 셈이니까.”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 같은 대우를 받아오며 자라온 왕녀님이 다짜고짜 가출을 시작해서 미궁을 답파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는 알렉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일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수도 있는 것이 원정이었으니까.
알렉스는 엘레노아에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은현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도록 미리 손을 써둔 판단이 자신을 포함한 근위기사들과 유리아 왕녀를 살린 판단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하지.”

“뭐, 피곤하다고 쓰러지지나 마시죠.”

은현과 알렉스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후로도 미궁을 나가기 위한 발걸음은 그럭저럭 순조로웠다.
오히려미노타우로스의 사냥 이후, 마수를 상대하는 요령과 자신감을 갖추게  근위기사들과 은현의 선에서 해결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후위 쪽이 오히려 할 일이 없어져 여유가 넘쳐날 지경이었다.
유리아는 계속해서 은현의 뒷모습을 관찰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왕녀님. 뭔가 걸리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굳은 표정으로 계속 은현을 응시하고 있는 유리아가 신경 쓰였기에 엘레노아가 그녀에게 물었다.

“공녀님, 공녀님이 데려온 저 남자요. 도대체 정체가 뭐죠?”

“으음, 그게….”

엘레노아는 은현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다시 한 번 헬레나 후비와 함께 그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신 때문이 아니었지만, 이미 한 번 잃었던 신용을 회복하기도 전에 약속을 깨는 것은 앞으로 있을 은현과 공작가문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조심해야할 부분이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저 남자가 저희 아버지와도 안면이 있어서 저와 오라버니도 얼굴만 알고 있었거든요.”

엘레노아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대로 둘러댔다.

“이름이…은현이라고 했죠?”

“네.”

“혹시 고대인의 후예인가요?”

“그렇다고 들었어요.”

“은현, 은현….”

유리아는 엘레노아의 대답을 들으며 은색머리카락의 남자의 이름을곱씹으며 중얼거렸다.
계속해서 무언가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며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표정이었지만, 엘레노아는 괜히 은현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보는 것이  곤란했기에 조용히 모른 척을 했다.
유리아 왕녀의 파티는 전위들의 활약으로 무사히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 하하….”

“드디어 살았어….”

차디찬 밤하늘의 새벽공기를 마시며 거지같은 미궁에서 드디어 탈출을 실감한 아이샤와 메르딘이 무릎을 꿇으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에 은현과 알렉스가 재미있다는  웃음을 지었다.
파티는 근처의 수풀에 은현이 챙겨온 야영장비들을 설치했고 알렉스와 메르딘이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은현은 모닥불을 만들고 거대한 냄비를 소환하여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준비해왔던 야채들과 낮에 사냥했었던 코볼트 무리들의 고기들을 넣고 각종 조미료들을 넣어 푹 끓인 스튜는 야전에서 먹을 수 있는 고단백질의 음식이었다.
스튜가 담긴 그릇을 받은 엘레노아는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설마하는 얼굴로 은현을 바라보았다.

“이, 이 고기들은 설마….”

“드세요. 어차피 다른 식량도 없습니다.”

유리아 왕녀의 파티에도 거의 3,4일을 가까이 미궁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남아있던 식량도 아껴먹으며 간신히 유지했던 파티였는데, 식량이 남아있을 리가 없을 터였다.

“마, 마수의 고기라고요…?”

고기의 정체를 들은 유리아가 비위가 상했는지 역한 표정을 지었지만, 근위기사인  사람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스튜를 떠먹고 있었다.

“이것도 오랜만이군.”

“그러게요! 입단하고 첫 원정 훈련에서 밖에  먹어 봤는데.”

“간은 조금 세지만 야외에서는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하니까, 생각보다 냄새도 안 나고. 원정을 많이 다녔나보군?”

“하지만 왕녀님께는 이런 음식을 드린다는 게 죄송할 따름이라…저희가 따로 마련해온 보존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드시는 게….”

“아뇨, 괜찮아요. 함께 먹도록 하죠.”

유리아는 비위가 그렇게 세지 않았는지 엘레노아처럼 좋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이 모두 먹는 상황에서 자신만이 이런 것으로 투정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결심하는 표정을 보였다.
알렉스와 아이샤, 메르딘이 은현이 만든 스튜를 먹으며 각자의 감상을 품었다.
아르티아나 그라시아 같은 왕국 기사단의 단원들은 다양한 종류의 훈련 속에 원정 훈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처럼 마수를 잡은 다음, 해체의 과정과 정화를 통해 야전에서 마수 고기로 배를 채우는 생존능력을 키우는 식의 훈련도 왕국 기사단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교육과정 중 하나였다.
당연 마수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엘레노아와 유리아는 적응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계속 굶으며 행동을 해오면서 찾아온 공복감에 저항하지 못하고 스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로 공복감을 채우고 마수들의 위협으로 가득했던 미궁에서 탈출하자마자 파티원들에게 긴장이  풀린 것처럼 갑작스레 피로감과 권태감이 찾아왔다.
남녀로 구분된  개의 텐트 안에 다섯 명의 파티원들이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은현은 홀로 모닥불 속에 장작을 넣으며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은현 혼자 불침번을 서게 하는 것이 파티의 지휘자였던 알렉스는 크게 신경을 은현, 본인이 괜찮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하고는 몸속을 잠식하고 있는 피로감과 나른함을 느낀 알렉스는 은현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텐트 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약 두 시간이 지났을 때.

“할 말이 있으신 것 같군요.”

“…….”

여자 쪽의 텐트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은현을 살피던 시선의 주인이 몸을 떨었다.

“피곤하셨을 텐데, 모두가 곤히 잠들기를 기다릴 때까지 버틴 정신력만큼은 대단하네요.”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당신의 정체가 무엇일까.”

텐트에서 나온 유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은현을 응시하며 자신이 생각했던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당신, 혹시 ‘지구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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