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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040. 아르키스 대미궁(8) (40/730)



〈 40화 〉040. 아르키스 대미궁(8)

알렉스의 제안으로 은현이 파티의 오더를 맡게 되었던 것에는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보여주었던 투창의 위력이 너무나도 강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불만이나 의문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선배애….”

아이샤가 울먹이며 알렉스의 소매를 붙잡았다.
글썽거리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마치 자신은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겠다는 것처럼 들렸기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알렉스는 그런 아이샤의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설득했다.

“이건 너에게도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저자의 이상할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은 도저히 흉내 낼 수는 없겠지만, 아마 배울 수 있는 것도 있을 거야.   보고 배워봐. 나는 네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해, 해볼게요!”

아이샤는 언제 서운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바로 의욕을 내고 있었다.
원정에서 위협을 미리 탐색 및 감지하고 파티의 존망을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더로서 갖춰야할 덕목이기도 했다.
 파티원들을 이끄는 것은 겉보기에는 유리아 왕녀였지만 실질적인 리더의 자리는 알렉스가 맡고 있었으며 오더의 자리는 아이샤가 맡고 있었다.
근위기사단에 입단한 이후로 기사단의 궁사들 중에서는 신참에 속했던 아이샤는 능력의 면에서는 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경험 면에서는 아직 미숙하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도 망설이고,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었기에, 알렉스는 아이샤가 은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성장할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은현이 오더라는 역할에 대해서도 경험이 풍부할 것이라는 것도 순전히 알렉스의 추측에 불과했지만, 그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훌륭한 리더는 오더의 권한을 존중해주는 리더라는 말도 있지.’

[제법 사람을 이끌 줄 아는 아이구나.]

웬만하면 다른 인간을 칭찬하지 않던 베르단디도 알렉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흐음, 저 눈빛은…….’

은현은 자신의 뒤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하며 알렉스를 바라보는 아이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설마 싶은 생각을 하며 알렉스의 여동생인 엘레노아를 바라보았고, 그녀 또한 은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알렉스와 아이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아뇨. 단지, 오라버니가 기사단에 재능 있는 궁사 하나가 들어왔다고 전에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어요. 저랑 같은 나이라서 여동생 같다고 자주 챙겨줬다고 했는데 그게 저 여자였네요.”

“근데  언짢아하시는 거죠? 오빠를 뺏겼다고 질투할 나이는 지나신  같은데.”

엘레노아는 은현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네요. 제 나이가 몇인데 그런 생각을? 단지…저랑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데, 적어도 여자를 만나게 된다면 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고생하고 있는 오빠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라는 것일까.

“그렇군요.”

은현은 고개를 주억였다.

“아르키스 대미궁은 총 세 계층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이 미궁이 미궁의 주인인 아르키스의 후계를 맞이하는 시련이 설치된 미궁이라는 건 아까 전에 설명을 드렸죠?”

파티원들은 은현의 말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정에서 던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미리 알고 행동하는 것과 모르고 행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 던전에 대해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유리아가 사전에,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명백한 실수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 던전의 정보를 알았냐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되려 경계를 하고 파티원들을 죽음으로 내몰 뻔 했다.
은현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리아는 그것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의심을 받더라도 저 사람처럼 나도 정보를 공유했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함정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유리아는 은현의 설명에 경청했다.
자신보다 이 미궁에 대해서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은현의 정체가 너무 수상했지만, 일단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1계층은 기본적으로 마수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에 층에서 마수들과 몇 차례 조우한 바가 있다.”

“그건 2계층에서 올라오는 마수들이죠. 기본적으로 미궁의 입구와 이어져 있는 1계층은 주로 사람을  말리게 하는 많은 함정들이 메인이에요.”

엘레노아는 네 명의 파티원들이 1계층에서 당했던 악질적인 함정들을 떠올렸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땅이 꺼지는 함정으로 2계층으로 떨어졌던 것 또한 1계층의 함정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인형사는 모든 활동에서 자신이 만든 ‘인형’아니, ‘골렘’이라고 해두죠. 골렘을 활용하는 방식을 고수합니다. 그건 정찰이나 탐색에서도 마찬가지죠. 궁사이신 아이샤님에게 여쭤보죠. 만약 원격으로 정밀한 조작을  수 있는 사람과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골렘이 있고, 그것을 마수나 함정의 탐색에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어……위험부담도 줄어들고 굉장히 편할 것 같은데요?”

“그게 인형사의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만큼 인형 하나를 정밀하게 조작하는데 엄청난 신경을 써야하고 재능을 갖춰야한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렵다는 명백한 단점도 존재하죠.”

“그렇게 어렵나요?”

“자신의 몸을 조작하여 움직인다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지만, 동시에 다른 물체의 수십 개의 부품이나 되는 관절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아이샤는 잘  닿지 않는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있는 2계층은 뭐지?”

“2계층은 간단히 말해서 가지고 있는 힘을 시험하는 거죠. 간단히 말해서 강한지, 약한지.”

“심플하군.”

“잠깐 멈추죠.”

“뭐지?”

“함정입니다. 아이샤님 따라오세요.”

“네, 넵!”

자신을 지목하는 은현의 목소리에 아이샤가 긴장하며 대답했고 은현의 뒤를 따랐다.

“이건 마법이 인챈트된 함정입니다. 일정 공간을 누군가가 발을 들이밀게 돼서 움직임이 감지가 된다면…….”

은현은 주위에 떨어져 있던 돌을 하나 집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구역을 향해 던졌다.

치이익

양 옆의 벽들 사이에 있던 작은 구멍들에서 새하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구멍들에서 분사된 연기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동시에 미궁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은현과 아이샤는 연기에 접촉하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두었다.
이윽고 연기의 분사가 끝나고 연기들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아이샤는 꽁꽁 얼어버린 벽들을 보고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주위를 얼려버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뿜었던 연기들을 보고 안색을 굳혔던 것은 아이샤 뿐만이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약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앞을 향해 걸어갔고 함정을 발동시켰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저런 함정들을 겪지 않았던 것이 행운이었다고 느꼈을 정도.

“해체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죠.”

“네!”

탐색의 분야에서도 확실히 자신이 은현보다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아이샤는 이내 알렉스가 해줬던 격려를 떠올리고는 마음을 다잡으며 은현의 말을 집중하며 들었다.
그 이후로 미궁을 탐색하면서 은현은 아이샤에게 다양한 함정들을 직접 경험해보게 만들었고, 해체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이샤는 이해하는 것도 빠르고 가르쳐준 것을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며 은현의 가르침을 습득하는 것에 굉장히 바빴다.

“너, 이걸 노리고 오더의 자리를 넘긴 거냐?”

“적어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은현의 가르침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아이샤를 보며, 메르딘은 흘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저거 진짜 대단한 물건이네. 어지간한 베테랑 모험가보다 훨씬 낫잖아. 기사단에 입단 권유는 해봤냐?”

메르딘은 이미 은현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자신들보다 강해보이고 원정에서 많은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거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아이샤에게 다양한 함정들을 겪게 하며 성장을 도모시켜주는 모습이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걸 원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알렉스도 은현만한 인재가 기사단에 입단해준다면 굉장히 든든할 것이라고 잠깐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의 행동방식과 성격을 생각해보면 답은 정해져있었기에 알렉스도 권유하지 않았다.

“쩝. 아쉽네. 저런  만나는  쉽지 않은데.”

“그건 동감이야.”

알렉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메르딘의 의견에 동의했다.

“전방에 마수가 있습니다. 개체의 특징으로 보아 미노타우로스군요.”

‘소고기가 다시 찾아왔군. 이건 기회다.’

은현이 눈을 번뜩이며 감지한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이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베르단디의 말을 못들은 척 무시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은현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번 잡아보도록 할까요?”

“그거 위에 층에서도 그 마수 잡다가 죽을 뻔했는데…….”

“아까랑은 틀릴 겁니다. 전 나서지 않을 테지만 마침 실력 좋은 사제가 들어왔으니까요.”

“제가 원정에 동행하는 걸 그렇게 내켜하지 않으셨으면서 이제는 잘도 써먹으시네요.”

엘레노아가 입을 삐죽이며 은현에게 비아냥대자 은현도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제대로 된 마수 사냥을 경험해보지 않으신 것 같아서 좋은 경험 하나 해드리려고 하는 거죠.”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엘레노아의 눈이 어느새 긴장하기 시작했다.
쿵쿵 울리는 미궁의 내부의 진동에 낯설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1계층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조우했을 때와 같은 느낌을 연상한 엘레노아는 자신의 스태프를 꽉 쥐며 어두운 전방을 주시했다.

“회식은 소고기로 하고, 자 그럼.”

은현은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미노타우로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사냥, 시작해보죠.”

우오오오오!

거친 콧김을 내뿜고 있던 미노타우로스의 포효가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이미 한 번씩 조우하며 경험했던 마수의 사자후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엘레노아를 포함한 파티원들은 크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녀님. ‘여신의 축복’을.”

마수를 조우할 경우, 사전에 정해두었던 대로 은현이 명령을 내리자, 엘레노아가 빠르게 신성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자애로운 여신님. 여신님이 굽어 살피는 어린양들을 그 누구도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굽어 살피소서.]

[경건한 자여, 그대의 행동에 축복을]

[베스타의 축복]
[스트렝스]
[헤이스트]

엘레노아의 기도로 발현된 베스타 여신의 축복이 파티원 전원을 감싼다.
근력과 민첩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체감한 메르딘이 긴장한 분위기를 던져버리고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축복인데. 역시 네 동생은 장난이 아니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집적거리면 죽여 버린다.”

“예이~예이~”

“아이샤님 화살 장전하고 대기하세요. 왕녀님, 사용하실 수 있는 마법 중에 가장 높은 화력을  있는 마법을 준비해주세요. 메르딘님, 아까 말씀드린 타이밍 잘 노리셔야합니다.”

“…네.”

“까짓 거 해보지, 뭐.”

어차피 은현이라는 남자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한 메르딘은 일이었다지만 자신을 구해준 은현의 행동에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친우인 알렉스가 이상할 정도로 은현을 신뢰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경험도 쌓을 수 있도록 자신들을 이끌어주고 있기까지 한데,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그 마음가짐은 알렉스와 아이샤 또한 마찬가지.
새롭게 구성된 유리아 왕녀의 파티가 은현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자, 공격!”

은현의 호령을 듣자마자 메르딘과 알렉스는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돌진했다.
처음 미노타우로스와 조우했을 때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살 떨리는 살육전이 아닌, 은현에게는 너무도 익숙했던, 신입의 모험가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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