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037. 아르키스 대미궁(5) (37/730)



〈 37화 〉037. 아르키스 대미궁(5)

“으윽.”

“선배! 정신 차려요!”

알렉스는 아이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오래 걷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알렉스를 부축하기 위해 그의 몸에 손을 댄 아이샤는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따스하고 축축한 감촉을 느껴 쓰러진 알렉스의 몸을 눕히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아….”

“흡!”

“이런….”

새빨간 피로 흥건해진 갑옷과 비가 오듯 땀을 뻘뻘 흘리는 알렉스의 얼굴을 보고 그제서 세 사람은 알렉스의 복부에 생긴 관통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참고 걸어왔던 것일까.
아이샤는 알렉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 빨리 지혈을….”

“일단 자리부터 옮겨! 이렇게 미궁 한복판에서는 다같이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라고!”

“하지만 이 미궁 안에서 안전한 곳이 어디있어요!”

놀라서 허둥대는 아이샤를 메르딘이 진정시키며 어떻게든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횃불이 밝혀주며 제공해주는 시야를 제외하고는 새까만 어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 미궁 안에서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는 발견해보지도 못했고 이 미궁 속에서 자신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도 특정할  없었다.
막막한 현실에 이를 갈던 메르딘은 어쩔 수 없이 곧장 알렉스의 응급처치를 먼저 우선순위로 정했다.

“왕녀님. 혹시 결계 마법을 사용해주실 수 있습니까?”

“성능이 그렇게 좋지는 못하겠지만 가능해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리아를 뒤로 하고 메르딘은 부러진 한쪽 다리 대신, 자신의 대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걸으며 알렉스의 앞으로 다가왔고 자리에 앉아 알렉스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상태는 심각했다.
등까지 아예 관통당하여 구멍이  뚫린 몸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람의 몸 구조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알렉스의 장기 상태까지 파악할 겨를은 없었지만 이미 그가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것은 알  있었다.

“이거…응급처치를 한다고  수 있는 건가…?”

자신처럼 다리 하나가 분질러졌다면 모를까, 복부에 큼지막하게 난 구멍은 일반적으로 교육받은 응급처치 요령으로 해결될 영역이 아니었다.
의사나 사제가 나서야할 영역이었다.
오늘만큼 파티에 사제가 없다는 점이 이렇게 크게 와 닿았던 적이 없었다.

“하아, 하아.”

“알렉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며 메르딘은 자신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지고 있었다.

“메르딘선배! 장난해요? 지금?!”

하지만 아이샤는 달랐다.
그녀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배낭을 거칠게 뒤지고 있었고 구급약이 든 상자를 꺼내들고 알렉스의 앞으로 가져오며 메르딘을 질타했다.

“아직  죽었어요! 일단은 뭐라도 해봐야 하잖아요!”

입단한지 1년도되지 않은 풋내기 신입이 자신이 가장 잘 따르는 선배를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 대는 모습에 메르딘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같았으면 건방지다고 진즉에 노발대발하며 그녀를 나무랐을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선배, 죽으면 안돼요. 절대로 죽으면 안돼. 내가  때문에 근위기사단에 입단했는데….”

소독약을 붓고는 거즈로 상처를 덮었다.
붕대로 있는 힘껏 압박하여 그의 허리를 둘둘 감았지만 겨우 이정도로 그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렉스는 아이샤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후우.”

아이샤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다시 알렉스를 어깨에 짊어지며 부축하고는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녀 저하. 저는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검을 지팡이 삼아 걸어보죠. 대신 알렉스의 부축을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유리아는 이내 알렉스의 상태를 잠깐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는 알렉스의 상태가 더욱 중상이라는 것을 눈으로만 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샤는 이 사태의 원인이나 다름없는 왕녀를 잠깐 노려보았으나 그것은 모독죄나 다름없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미궁의 안을 걷는 것에 집중했다.

“죄…송합니다…. 왕녀님….”

힘겹게 마른 목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사죄하는 충실한 기사의 모습에 아이샤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나무랄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살아야 해요. 살아서…제 사과를 받아주셔야 해요.”

유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죄책감이 어린 표정으로 알렉스에게 말했다.
자신이  더 준비를  했고, 능력을 키운 뒤,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로 왔다면.
아니, 아예 이곳을 찾지 않았다면.
자신을 위해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목숨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이렇게 그가 죽어버린다면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아는 필사적이었다.
자신 때문에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그것은 너무 큰 책임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는,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과도 같았다.

쿠르르!

“이런….”

가장 뒤에서 걷던 메르딘은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소리에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자신들을  꼴로 만든 마수의 목소리였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그 정체를 확인했고 제발 아니길 바랐던 메르딘의 염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쿠르르

알렉스의 배를 꿰뚫으며 무서운 돌진력을 보여주었던 불보어는 어째서인지 화가 난 모양이었다.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잔뜩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불보어가 메르딘과 앞서 걷고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불보어의 콧소리를 들은 아이샤와 유리아도 경악한 얼굴로 몸을 딱딱하게 굳힌다.
아이샤가 던진 최루병의 효과로 어느정도의 시간을   있을 줄 알았는데,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자신들을 찾아낸 것이었다.
불보어는 새하얀 연기를 푼 범인이 유리아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복수하기 위해서 그들의 냄새를 쫓아온 것이었다.
정말로 두려운 집념이라고 생각한 아이샤는 어깨에 두르고 짊어졌던 알렉스의 팔을 풀었다.
자신들을 노려보고는 언제든지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던 불보어를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려 했다.

“아니.”

“메르딘 선배?”

“그냥 앞만 보고 쭉 달려. 저 놈은 내가 막는다.”

메르딘은  명 전원이 살아나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한 명이 남아서 조금이라도 불보어의 발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가장 가망이 없는 사람이 남는 것이 맞는 선택이 아닌가.
 중 한 명은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자신과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알렉스 중, 조금이라도 불보어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셋이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무리야. 우리로썬 저 놈을 감당해내지 못해. 탈출하는  최우선으로 생각해라. 왕녀님, 너무 원망하지 말고.”

아이샤는 자신이 가끔 불만어린 시선으로 유리아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사실에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불보어는아이샤가 고민을 끝내고 결정 둘   가지를 결정할 틈도 주지 않았다.

쿠오오오!

불보어의 포효가 미궁을 떨게 만들었고 바닥을  맹수의 거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쿵! 쿵!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미궁이 울리고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몸집이 내뿜는 위압감이피부에 가까워질 때마다 온몸의 모든 감각이 곤두서는것만 같았다.

‘서, 선배는 이런 마수를 정면으로…….’

새삼 알렉스의 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느끼며, 아이샤는 자신의 활시위에화살을 걸고 마력을 담아 쏘았다.
푸른색의 마력이 담긴 아이샤의 화살이 한줄기의 빛을 그리며 불보어의 미간에 정확히 명중했지만, 불보어는 미간에 박힌 화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돌진해올 뿐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해오는 불보어를 보며 아이샤가 경악했다.

‘맙소사! 제대로 들어갔는데!’

마력이 담긴 아이샤의 화살은 연무장의 과녁이 맞았다면 과녁을 관통하여 뒤의 벽까지 파손시킬 정도의 관통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보어의 질긴 가죽과 살, 두개골을 뚫고 목숨을 앗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위력이었다.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마나를 담아 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미 불보어의 거구는 메르딘과 아이샤와 1m도  되는 가까운 거리까지 근접해있었다.
메르딘이 검을 들어 올려 한쪽 다리만으로 몸을 지탱하여 서있는 채로 불보어를 향해 검을 내리치려는 순간.

콰아앙!

거대한 파쇄음과 함께 불보어의 거대한 몸체가 옆으로 밀려났다.

“뭐, 뭐야!”

미궁의 벽이 깨지면서 생긴 회색의 먼지들이 미궁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충돌할 줄 알았던 불보어가 옆의  너머에서 벽을 파괴하고 날아오는 공격을 맞고 반대쪽 벽에 부딪쳤다.
메르딘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자욱한 먼지들을 걷어내고 파악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쿠, 쿠르르!

거대한 불보어의 몸체를 관통한 채로 미궁의 벽에 박혀있는 하나의 장창(長槍).
불보어의 짧은 다리들은 자신의 몸에 박힌 창을 빼기는커녕 바닥에 닿는 것조차 할  없어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거칠게 저항하고 있었다.
어떻게는 빠져나오려는 불보어의 안간힘은 소용없었다.
몇 백 킬로나 나가는 마수의 거대한 몸통을 관통해 벽에 꽂힌 장창은 거구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부러질 기미는커녕 흔들림조차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죽음으로 몰아넣을 것만 같았던 마수가 허공에 꽂힌 상태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모습은 어딘가 허무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메르딘과 아이샤는 그런불보어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저 창은 도대체 누구의…?”

그렇게 메르딘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의문을 입에 담았던 순간.
또 다시 자신들의 눈을 지나치는 푸른색 한 줄기의 일섬.

콰앙!

푸른색의 ‘무언가’가 다시 불보어의 몸에 직격했고, 일어난 먼지가 걷어진 순간 메르딘은 그것이  하나의 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예 형체도 남아있지 않은 불보어의 머리가 위치했던 부분에 박혀있는 장창을 보고 정확히 불보어의 머리를 노린 ‘투창’이 불보어의 머리를 터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벽 너머에서 불보어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불보어를 노린 투창 공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마수의 위치를 감지했을까?
이 압도적인 위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가 한 공격일까?
적일까, 아니면 우릴 구하러 온 아군일까.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를 느낀 메르딘이 머릿속으로 오만가지의 생각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부서진 미궁의 벽을 바라보며 투창 공격을 행한 사람을 찾았다.

“세상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메르딘처럼 파쇄된 미궁의 벽을  아이샤가 아연실색을 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부서진 벽은 하나가 아니었다.
옆의 옆도, 그 옆의 옆도, 그 옆의 옆의 옆 또한.
몇 겹의 벽 너머의 거리에서 ‘누군가’가 불보어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하고 벽을 부수고 불보어의 몸체를 관통시킬 정도의 위력을 낼 있는 누군가.

“이게 인간이  수 있는 일인가?”

의심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이샤 또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

아이샤는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자욱한 먼지들로 가득한 벽 너머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형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키가  보이는 남자 같은 형상 한 명에, 머리카락이 긴 것으로 보이는 상대적으로 외소한 모습의 여자  명.
그리고 가까워지자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메르딘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화사한 금발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양의 경갑, 그리고 손에 꽉 쥐고 있는 스태프는 이전 한 번 함께 원정을 했던 사이였기에 눈에 익은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질감 또한 짙었다.
어째서? 어떻게?

“엘레노아? 네가 여기엔 어떻게….”

그리고 자연스레 그녀와 동행한 남자에게로 눈이 갔다.
제대로 장비하나 걸치지 않고, 여행용 백팩을 짊어진 전형적인 짐꾼의 모습.
남자인 자신이 봐도 신비로운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새빨갛게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진 외모.
남자는 웃으며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는 자연스레 메르딘과 아이샤를 지나쳐갔다.
알렉스는 바닥에 누워 위태위태한 상태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남자의 얼굴을 발견하자 반가운 듯이 미소 지었다.

“배달 왔어요. 고객님. 부탁하신 ‘도움’ 제때 맞춰 도착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평생을 감사해야할 지도 모르겠군.”

“그럼 다음부턴 이렇게 ‘배달의 부족’을 부려먹는 것 마냥 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무리 협력관계라고 해도, 또 이러시면 다음부터는 진짜로 화낼 겁니다.”

경고가 담긴 말투에 알렉스는 힘겨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없군. 네 도움이 절실한 일은 끊이지 않을 것 같아서.”

“뭐, 그건 그때 가서 또 상담해보고. 일단은 그  죽어가는 몸부터 어떻게 해보도록 하죠.”

“후우우….”

 말을 들은 알렉스는 드디어 ‘살았다.’라는 감상을 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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