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035. 아르키스 대미궁(3) (35/730)



〈 35화 〉035. 아르키스 대미궁(3)

“이 유적을 만든 주인, 인형사, 아르키스는 공허의 시대에 ‘인형술’이라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마족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영웅 중 한명입니다. ‘인형술’이라는 기술이 대해서는 지금은 잊혀져버린 기술이나 마찬가지지만요.”

은현은 담담히 유적의 내부를 걸으며 이 유적을 만든 주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인형술이라는 건 뭔가요?”

“말 그대로 인형을 만들어 조종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말로는 ‘마리오네트 컨트롤’이라고도 하죠. 인간을 본떠 만든 인형에 각종 마법과 주술을 걸어 강화시킨 인형을 앞세워 전투에서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현대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잖아요?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골렘’들이 비슷한 경우죠.”

“‘인형’과 ‘골렘’에 차이가 있나요……?”

“제작 방식의 차이가 있죠. 만들어지는 목적도 틀리고요. 연금술사들이 골렘을 전투와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었다면, 인형사들이 인현을 만들었던 목적은 ‘인간’의 모습과 한없이 가까운 새로운 생명의 창조였습니다.”

“새로운 생명의……창조?”

“잠깐 멈추죠. 앞에 함정이 있네요.”

콰앙!

돌을 내던지자, 소음을 감지한 함정이 발동되었다.
미궁의 천장에서 수  개의 쇠창들이 쇄도하더니 둔탁한 충격음을 내며 바닥에 꽂혔다.
쇠창에 파손 된 돌바닥들을 보며 엘레노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아무런 생각 없이 앞으로 나갔다면 자신의 몸이 저 쇠창에 꽂혀 그대로 살점들이 터져나갔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은현은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면서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함정을 귀신같이 감지하고는 담담히 함정을 해체했다.

“알렉스님의 마력 신호는 다시 잡히나요?”

“네. 다시 잡히고 있어요. 분명히 유적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는데…어떻게  건가요?”

“이 던전이라는 장소가 원래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독립된 공간이라서 그렇습니다.”

“단절…? 독립된 공간?”

엘레노아는 은현의 설명에 대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은현은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  양손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적혀있는 책이 한 권씩 있다고 가정해보죠. 책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권의 책에 적혀있는 세계들은 완전히 독립된 세계라고 볼 수 있겠죠?”

“네.”

“하지만 모종의 방법으로 이쪽의 책 속의 ‘주인공’이 저쪽의  속의 ‘세계’로 넘어간다면  ‘주인공’의 흔적은 이쪽 세계에도, 저쪽 세계에도 발자취를 남기고 흔적이 존재하게 되는 거죠.”

“즉, 저희의 세계와  던전은 서로의 세상에 간섭할  없게 단절이 되어 있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어째서 우리는 이 던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죠? 게다가 던전 안에 있던 대규모의 마수들이 세상 바깥으로 나오는 대범람 사태도 있잖아요.”

“원래는 간섭할 수가 없는 게 맞아요. 하지만 어떤 현상으로 던전과 세계 사이에 통로가 만들어졌고 그 통로를 이용해서 서로의 세상에 간섭할  있게 된 거지요.”

원래 이 세계에는, 지구에는 던전이나 마수, 마법이 존재하는 문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와 다른 세계는 본래 서로에게 간섭을 할 수 없었으나, 어떠한 원인으로  세계가 통합이 되어버렸던 것이 시작이었다.
지구에 마족과 마수들이 등장하여 지구의 문명을 멸망시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은현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노른의 세 여신들의 사도가 되었을 때도 여신들에게 지구에 마족들이 침공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물었지만, 여신들 또한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하구나…. 다 우리들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잘못이었다.]

라고만 베르단디가 안쓰러운 얼굴로 사과를 했을 뿐이기에, 은현은 그냥 그렇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렇…군요.”

학교에서도, 가문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새로운 지식.
그것을 받아들이며 엘레노아는 지금껏 자신이 들어와 보았던 던전과는 명백히 다른 살벌한 이 공간에 대해 조금 두려움에 떨면서도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은 본래 마족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었던가요? 이 던전을 만들어낸 아르키스라는 영웅은 전쟁 속에서 마족들을 몰아냈던 영웅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마족이  던전을 만들어낸 건 맞지만, 아르키스가 그 마족을 죽이고  던전을 탈취했으니까요.”

“네…?”

“정확히 말하면 이 던전을 이렇게 개조한 건 아르키스가 맞습니다.”

“그럼 저 하늘에서떨어지는 쇠창들이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함정, 허공에서 나오는 독연기 같은 함정들은 모두….”

은현은 엘레노아의 짐작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아르키스가 설계한 함정들입니다.”

“어째서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저런 흉악한 함정을!”

“글쎄요…그것까진 저도 잘….”

은현은 시선을 피하며 궁색한 대답을 했지만 실제로는 어째서 아르키스가 이런 함정들을 설계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이 정도 시련도통과하지 못할 정도라면, 자신의 후계를 물려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실제로 인간들의 생사에는 관심도 없던 녀석이었고.’

아르키스가 이 던전을 탈취하고 미궁으로 개조하며 같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악질적인 함정들을 설치했던 이유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물려줄 후계를 선별하기 위함이었다.
은현은 그녀의 본심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엘레노아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신은 어째서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죠?’라며 의심 섞인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미 고대 유적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역사에 대해서 주저리 설명을 늘어놓았기에 어느 정도 그러한 인상을 품고 있던 엘레노아에게 더 이상의 수상쩍어 보이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삼가고 싶었다.

“그리고  유적에 대한 이야기들,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하지마세요.”

“어째서죠?”

“여긴 아마 아직 왕국에서도모험가 길드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던전일 겁니다. 왕녀가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으니까요. 아, 또 왜냐고 묻지 마요. 이건 대답해줄 수 없으니까.”

이곳은 아르키스가 남긴 유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생을 마감한 무덤이기도 했다.
유리아 왕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아르키스의 입장에서는 유리아 왕녀 일행은 자신의 무덤에 부장품을 훔치러온 도굴꾼이나 다름없는 인식이기도 했다.
유리아 왕녀가 아르키스가 남긴 시련들을 모두 클리어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시련을 클리어하고 ‘인형사’의 후계로 인정받았다면 아직도 행방이 묘연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동행한 알렉스의 흔적이 아직도 던전 안에 남아있고 나간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선 시련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미궁 안에서 조난을 당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은현의 추측이었다.
은현은 꼬치꼬치 캐묻는 엘레노아의 질문을 시작 전부터 차단시키고는 어쩔  없다는 듯 엘레노아의 승낙을 얻어냈다.

쿵!

둔탁함 소음과 함께 미궁 내부가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소음과 충격을 몸소 체험한 엘레노아가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점차 가까워져가는 소리의 근원을 향해 응시했다.

쿵!

한발자국 씩 앞으로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미궁 전체가 진동하고 있다.
자신에게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그 형체를 드러냈고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미궁 속에 배치된 횃불에 밝혀져 그 정체가 밝혀졌다.

“미, 미노타우로스….”

거대한 배틀엑스를 한손으로 쥔,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이족보행의 소, 미노타우로스였다.
자연스레 스태프를 쥔 엘레노아의 손이 벌벌 떨리며 그녀의 얼굴 또한 공포에 젖어있었다.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사나운 붉은색의 눈동자가 이윽고 인간 둘을 직시한 순간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은현과 엘레노아를 발견한 미노타우로스가 두 사람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꺄악!”

귓속을 흔드는 마수의 사나운 포효를 정면으로 맞이한 엘레노아가 자신의 귀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은현은 그대로 미노타우로스의 위세에 짓눌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엘레노아의 상태를 냉정하게 관찰했다.
은현은 그녀가 그저 혼미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파악한 뒤, 곧장 롱소드를 소환하고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은현의 존재를 눈치 챈 미노타우로스도 그를 향해 만전의 태세를 취했고 둘의 무기가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카아앙!

살벌한 금속음과 함께 롱소드와 배틀엑스가 부딪치며 생성된 충격의 여파가 미궁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처음의 충돌을 시작으로 인간과 마수가 서로를 공격하며 살벌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통나무마냥 어마어마한 크기의 팔뚝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근력으로 휘두르는 배틀엑스를 두 합, 세 합 받아낼 때마다 은현의 검이 맥없이 튕겨나가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체급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두 존재간의 싸움은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미노타우로스 쪽이 당연 우위였다.
하지만 은현은 그렇게 수명을 다해가는 자신의 무기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늠하면서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그것이 이상했다.
명백히 자신이 더욱 유리한 상황이고, 인간의 무기는 부러지기 직전.
 무기만 깨부순다면 더 이상 자신의 도끼를 맞받아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상태로 인간을 압박만 해도 인간의 검은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릴 것이고, 위태위태하면서도 겨우 버티고 있던 이 상황은 자신 쪽으로 넘어오리라.
미노타우로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인간의 표정은 마치 이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 지극히 담담했다.
무언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일까.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도끼를 휘둘러 인간을 궁지로 몰아넣는 전법을 계속 고수했다.
이윽고 은현의 롱소드가 미노타우로스의 배틀엑스의 맹공에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순간.
미노타우로스는 흉흉한 미소를 지으며 무기를 잃고 무방비가 된 은색머리카락의 남자의 머리에 도끼를 내려찍는 순간이었다.

우오?

미노타우로스는 확실히 인간을 베었다고 생각하고 승리에 찬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살을 내려찍는 손에 익은 감각이 아닌, 허공을 베는 감각을 느꼈기에 의문을 느낀 것이다.
그 의문을 해소할 여유도 주지 않고, 은현은 자연스럽게 미노타우로스의 품 안으로 접근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내려찍는 배틀엑스를 몸을 한쪽으로 틀어  끗 차이로 피한 은현이 곧바로 물이 흐르듯 미노타우로스의 품 안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너무나도 신속하고 유려한 움직임과 이겼다는 확신에 찬 판단의 착오가 만들어낸  한 번의 실수였다.
유려하게 미노타우로스의 품으로 파고든 은현이 자세를 잡았다.

[은현 고유 능력]
[시간 가속]

무게의 중심, 하체의 고정과 허리를 비틀어 최대한의 힘을 싣는 동작,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는 주먹을 쥐고 내지르기까지의 시간이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 빠른 시간 속의 행동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눈에모두 담겨졌지만, 마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눈으로 보고, 이해했음에도 어서 움직이라고, 저 주먹을 맞아서는 안 된다고 본능적인 마수의 감이 호소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시간의 속박에 묶여있는 미노타우로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주현성극원류]
[삼매붕권(三昧崩拳)]

마력이 응집된 은현의 철권이 미노타우로스의 배에 직격했다.

우오오오오오!

뭐라 반응할 틈도 없이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미노타우로스의 복부가 터져나갔다.
거대한 몸집의 정중앙에 뚫려버린 구멍이 생겨났고 살점과 함께 찢어발겨진 내장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형태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구멍이 뚫린 복부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솟구치며 주위를 새빨갛게 물들어갔고은현은 마수의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뒤로 빼며 자리를 피했다.
뒤늦게 이루 말할  없는 통증이 밀려오던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었지만 마수의 비명에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배틀엑스를 떨어뜨린 미노타우로스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아….”

이내 은현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이를 덜덜 떠는 것이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자각한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몸을 떠는 은현의 행동에  광경을 지켜보던 베르단디가 놀라며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이야? 왜 그러느냐?]

“여, 여신님, 그게…….”

[무슨 일이냐? 무언가 잘못된 것이냐? 혹여 아이의 몸에 뭔가 이상한 문제라도…….]

베르단디는 황급히 은현의 몸 상태를 살폈지만 그의 몸 상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실수했어요….”

[실수?]

“저 소 녀석을 저렇게 죽이면 안됐는데…. 차라리  더 단단한 검을 소환해서 베어버릴 걸 그랬나….”

은현은 정말로 아쉽다는 듯 은현의 주먹으로 터져버린 미노타우로스의 살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고기들은 저렇게 되어버리면 못 먹잖아요. 차라리 검으로 잘라서 죽일 걸…소고기가 얼마나 귀한데….”

[…….]

베르단디는 은현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은현을 바라보곤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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