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034. 아르키스 대미궁(2)
엘레노아는 갑작스레 코볼트들을 해체하고 있는 은현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공녀님. 사제시니까 ‘정화’ 하실 줄 아시죠?”
“그건…가능은 한데….”
“잘 됐네요. 그럼 이 코볼트들. 정화 좀 시켜주시겠어요?”
“네?”
“정화요. 도축해서 고기는 따로 챙겨두고 먹어야하니까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은현의 발언에 엘레노아는 경악했다.
“이, 이걸 먹는다고요?!”
은현은 경악하며 소리치는 엘레노아를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아니, 마수를…먹는다고요?”
“원정 경험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모르셨나요?”
“제, 제가 갔었던 원정에서는 마수를 먹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꽤나 점잖은 원정을 다니셨군요. 원정은 기본적으로 모험가들이 가는 원정은 짧게는 3일부터 길게는 1개월까지 다양합니다.”
은현은 담담히 마수를 해체하면서도 딱딱하게 굳어 있는 엘레노아에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짧은 기간이라면 별 상관이 없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또한 원정 인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원정 기간 동안 필요한 식량은 몇 배로 불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원정에서 중요도가 가장 높은부분은 바로 식량의 자급자족 능력이죠.”
원정에서 후위직이 되는 사제가 필수 직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전투에서 파티원의 회복과 보조를 도맡을 뿐 만 아니라, ‘정화’라는능력을 통한 식량의 조달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
사제인 그녀가 참여한 원정이라기에 마수의 도축 과정과 식용으로 활용하는 방법쯤은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공작가라는 귀한 신분의 아가씨라는 점 때문에 마수를 식용으로 먹어본 경험은 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수를 먹어본 경험이 없으신 걸 보니, 배려 받을 여유가 있는 쉬운 원정들을 다니셨나 보네요.”
“으….”
엘레노아는 은현의 지적에 반박하지 못하고 신음했다.
확실히 그녀가 다녔던 원정은 수도 외곽의 마수 구제와 같은 간단한 원정으로 대부분 왕복 3~4일 밖에 걸리지 않는 간단한 원정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원정들조차도 모두 합해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적은 숫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엘레노아가 다녔던 원정 경험은 모험가들의 원정 경험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순 없어요. 지금도 오라버니와 왕녀님의 상태가 어떤지 알 길이 없는데….”
“우리가 서두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심지어 운 좋게 왕녀님 일행을 찾는데 성공했다고 쳐도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해보셨나요?”
“이후의 일이라고요?”
“공녀님의 반응을 보아하니 왕녀님의 파티도 마수를 해체하고 식용으로써 사용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 같고, 만약 가지고 있던 식량들이 모두 떨어졌다는 걸 가정해본다면, 그분들을 구출했을 때, 그분들에게도 나눠 드려야 할 식량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
“우리가 가져온 식량만으로 충분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마세요. 원정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해결하는데 3,4일을 예상했더라도, 실패한다면1개월이 넘게 걸리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게 원정입니다. 만약을 대비하는 거죠.”
“그…렇군요.”
엘레노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자신이 경험해왔던 원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수박 겉핥기 수준의 어설픈 경험 밖에 하지 못했다는 것이 들켜 부끄러운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급한 건 사실이니까 정화를 끝내고 고기만 챙겨가도록 하죠. 가죽이나 다른 것들은 아깝지만 저것까지 손질해서 챙기려면 시간이 너무 걸릴 테니.”
가장 우선적으로 식량만을 챙기고서둘러 이동하겠다는 말에는 엘레노아도 동의하는 바였다.
엘레노아는 은현이 해체하여 한데 모아둔 코볼트 고기들에 정화를 걸었다.
생리적 혐오감까지 들게 만드는 기분 나쁜 오염된 마나들이 엘레노아의 정화에 의해 깨끗하게 사라지고 정화가 끝난 고기들을 은현은 여행용 백팩에서 커다란 천 하나를 꺼내더니 그 천안에 코볼트 고기들을 모두 담았다.
그리곤 소금을 치고 각종 조미료들을 뿌린 뒤 천을 묶어 포장했다.
“원래는 지방을 다 짜내야하지만 어쩔 수 없나.”
뭔가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으나, 이내 고기가 담긴 천보따리를 다시 백팩 속에 집어넣었다.
“자, 다시 이동하죠.”
두 사람은 다시 추적용 아티팩트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만약 원정에서 사제가 없다면 마수들을 아예 식용으로 사용하지는 못하는 건가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본래 죽어서 시체가 된 마수에서 나오는 오염된 마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멸합니다. 때문에 일단 해체를 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린다면 오염된 마나가 소멸하고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기를 얻을 순 있어요.”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찜찜한 방법이기도 했다.
“단지 오염된 마나가 정말로 완전히 소멸한 것인지, 아닌지 완벽한 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찜찜해하는 경우도 있죠. 독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고서라도 굳이 먹으려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사제들의 정화가 나온 거군요.”
“사제가 정화를 사용한 고기라면 ‘이 고기는 완전히 안전합니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잖아요?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니까요.”
위생이 안전하다는 인증마크를 찍어주는 것처럼 사제들의 정화는 마수의고기를 식용으로써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증과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마수를 먹는다는 건 좀….”
“싫으시면 안 드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책임지지 않아요. 하지만 굳이 생떼까지 쓰며 따라오기로 마음먹으셨으면 제 말 정도는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공녀님까지 무슨 일이 생기신다면 불똥은 저한테 튈게 뻔한데.”
“가정을 해도 꼭 그런 식으로 가정을 해야 직성이 풀리나요?”
“그래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혼자가 편하다고. 먹는 것에서부터 투정을 부릴 거면 지금부터라도 돌아가세요.”
“…좋아요. 먹을게요. 먹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당신의 말에도…토 달지 않고 잘 따를게요.”
“아주 좋습니다.”
은현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자, 엘레노아는 꼭 이런 식으로 얄밉게 자신에게서 확답을 들으려 하는 은현의 나쁜 성격에 스태프를 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진짜 때리고 싶네.’
자신이 억지를 부려가며 은현을 따라 나왔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도 저런 식으로 자신에게꽁해 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얄미운 성격이 아닌가.
‘쫌생이.’
“맞아요. 저 쫌생이.”
“흡!”
엘레노아는 순간 자신이 머릿속으로만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
놀라며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은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엘레노아의 표정에 은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내 생각을 읽었냐?’라는 표정이네요.”
“…….”
“자주 듣거든요. ‘쫌생이’라는 말, 우리 마녀님한테.”
엘레노아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반응을 보아하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군요.”
“맞아요. 쫌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왜요.”
이렇게 다 들킨 이상 엘레노아는 당당해지기로 했다.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은현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요. 딱히?”
두 사람은 코볼트 무리와 조우했던 경험이 아예 없었던 일인 양 다시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딱히 긴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그렇게 약 두 시간 정도를 걷기만 하자,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운밤이 찾아왔다.
“슬슬 어두워졌네요.”
은현이 고개를 올려다 밤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원정에서는 밤에 이동을 감행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어둠이 잠식한 숲은 사람들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낮에 활동했던 피로와 공복감으로 판단에 미약하게나마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때문에 원정에서 야간행군이란 모험가들 사이에서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니면 선호하지않는 수단이었다.
“어떻게 하시려는 건가요?”
엘레노아는 마음 같아선 알렉스의 수색을 조금이라도 빨리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여기서 야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원정의 경험에서 은현과 자신에게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고, 그의 결정에 불만을 가지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다.
만약 은현이 여기서 야영을 한다고 선택을 한다면 엘레노아는 어쩔 수 없이 그 결정을 따라야만 했다.
“알렉스 님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니까 일단은 계속 가보겠습니다. 단지, 이쯤부터는 공녀님의 체력이 걱정되네요.”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요. 조금 지치긴 했지만 신성마법으로 회복시키면서 가면 어느 정도 버틸 수도 있어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신성력을 낭비하는 건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은현은 그렇게 엘레노아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는 등에 매고있는 여행용 백팩을 풀더니, 앞쪽으로매고는 엘레노아에게 말했다.
“스태프 이리 주세요.”
“네?”
“스태프이리 주시라고요.”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엘레노아는 일단은 은현에게 스태프를 건내자, 은현은 스태프를 허리 뒤쪽으로 양 끝을 쥐고는 엘레노아에게 등을 보이며 한쪽 무릎을 꿇고서 자리에 앉았다.
“업히세요.”
“…….”
엘레노아는 은현의 이 판단이 이해가 가지 않아 그의 말을 들었음에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말과 행동의 뜻은 자신의 체력을 온존시키기 위해 자신을 업고 은현이 혼자서 걸어가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그는 작은 사람만한 크기의배낭까지 짊어진 상태였다.
저럴 바엔 차라리 각자 걸어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자신의 체력을 온존시키기 위해 은현의 체력이 몇 배로 소모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제가 혼자가 편하다는 말을 했는지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죠.”
엘레노아가 등에 업히지 않고 가만히 있자, 은현이 한마디를 덧붙여서 어서 그녀에게 등에 업히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엘레노아가 은현의 등에 업혔다.
엘레노아의 스태프로 그녀의 다리를 확실히 받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은현은 말했다.
“꽉 잡아요.”
“네?”
[은현 고유능력]
[시간 가속]
순간적으로 너무 빠른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한 엘레노아가 은현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칠 뻔했다.
“꺄아악!”
은현의 등에서 떨어질 뻔 했던 엘레노아는 비명을 지르고는 양 팔로 은현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맞부딪치는 강한 바람은 현재 은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척도가 되었다.
‘뭐, 뭐야 이 인간 도대체? 사람 두 명분의 무게를 짊어지고서 이렇게 뛸 수가 있다고?!’
거의 마차와 같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은현에 대해 생각하던 도중 갑작스레 이동을 멈추고 엘레노아에게 물었다.
“방향은 이 방향이 맞나요?”
“아…네.”
엘레노아는 얼떨결에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추적용 아티팩트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하아, 아니길 바랬는데….”
“네?”
“아닙니다. 다시 이동하죠.”
은현은 다시 권능을 이용한 고속 이동을 개시했다.
그렇게 30분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리는 은현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고는 엘레노아를 내려주었고, 크게 숨을 들이쉰 뒤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당신…인간 맞나요?”
자신과 배낭을 짊어진 채로 마차와 같은 속도로 질주해온 은현의 모습은 지쳤다기보다 왠지 모르게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엘레노아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응? 아, 괜찮아요. 오랜만에 좋은 운동이 됐네요. 몸 풀기는 이쯤 했으면적당하죠.”
“그게 몸 풀기….”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엘레노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도작한 목적지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의 마력이 여기서부터 끊겼어요. 아마도 이 안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요….”
“진짜 어떻게 알고 들어간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되어 쳐 먹은 개연성인지….”
[아이야, 예쁜 말을 쓰거라.]
은현은 머릿속으로 꾸짖어오는 여신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베르단디는 한숨을 내쉬며 은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눈앞의 거대한 유적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정말로 아이의 말이 맞았구나. 게다가 아직도 남아있는 ‘공허의 시대의 던전’이라니….]
“당신은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여기는 ‘아르키스 대미궁’, 공허의 시대에 존재했던 한 ‘인형사’가 만든 유적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고대인의 유산이 잠들어있는 장소이죠.”
“고대인의…?”
엘레노아는 눈을 크게 뜨며 은현의 대답을 조용히곱씹으며 중얼거렸다.
은현은 인상을 찡그리며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대미궁의 입구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제발 이곳과는 연관이 없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생각한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구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들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