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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033. 아르키스 대미궁(1) (33/730)



〈 33화 〉033. 아르키스 대미궁(1)

“으음, 그건 말이죠.”

은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엘레노아를 보며 미소지었다.

“영업 비밀인데요.”

“…지금 나랑 장난쳐요?”

가장 중요한 핵심만큼은 말해주지 않으면서 저런 표정을 짓는  너무나도 얄미웠다.

“멈추시오! 신분을 밝혀주시오!”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엘레노아 아르미타스입니다.”

엘레노아는 품에서 공작가의 휘장을 꺼내 성문을 지키고 있는 위병에게 보여주었다.

“고, 공작가의 영애께서 어째서 이 시간에……?”

“비밀리에 도주한 범죄자를 추적 중에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함구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그런데……시종이 저 남자 하나 뿐입니까?”

“네. 문제가 있나요?”

“아뇨, 그게…….”

위병은 흘끗 은현을 바라보았다.
이렇다 할 흔한 방어구 하나 걸치고 있지 않고 오직 여행용 다용도 백팩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보통 공작가의 여식이라면 호위 기사 하나가 따라붙기 마련인데, 엘레노아의 옆에 있는 은현은 그녀의 호위처럼 보이기는커녕 짐꾼 같은 차림새였으니 이상할 법도 했다.
엘레노아가 검사 같은 전투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몰라도, 그녀가 사제라는 것은 수도의 백성이라면 평민이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비전투직인 사제가 짐꾼 하나만을 대동하고 성문 밖을 나간다니, 위병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뭐라 말할  있겠는가.
위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엘레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문을 마치고 수도를 나온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숲 속을 걸었다.
계속되는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레노아였다.

“정말 괜찮나요?”

“뭐가요?”

“당신 무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무슨…앗!”

은현은 허공에 손을 내뻗더니 어느새 그의 손에는 검 하나가 소환되어, 은현의 손안에 쥐어졌다.
갑작스레 허공에서 검이 생겨난 것에 엘레노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법인가요?”

“뭐 그런 거죠.”

생각해보니은현은 폐창고에서 엘빈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을 때, 엘레노아를 구했을 당시에도 갑작스레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무슨 마법이죠?”

“영업 비밀입니다.”

“그 말, 너무 자주 써먹는  아닌가요?”

엘레노아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은현이 보여주는 이 능력은 마법이 아니라 여신이자신에게 부여한 권능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시켜서 납득을 시킨단 말인가.

“당신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항상 궁금했어요.”

“그래서요?”

“왕국의 국민이 아니라 외국의 다른 사람들 중에는 당신처럼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더군요.”

“…….”

은현은 숲 속을 걷던 발걸음을 멈칫했다.

“당신, 고대인의 후예인가요?”

고대인이란 아르케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인류와 마족과의 전쟁에서 마족들을 몰아내는데 큰 기여를 한 소수민족을 일컫는말이었다.
공허의 시대라는 전쟁이 끝난 이후, 살아남은 고대인들은 대륙으로 흘러들어와 정착을 결심했고 대륙 안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피와 전통 등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갔다.
특히 고대인들의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저렇게 짧은 이름이었다.
고대인들 중에서도 각기 다른 문화나 풍습 등 다양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맨 앞 자에 성을 대고 뒤에 여러 의미를 가진 글자들을 조합하여 이름을 지었다는 부족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고대인들의 전승에서는 이름을 지을  글자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대륙 안에서 고대인의후손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극히 드문 일  하나인데, 엘레노아는 자신과 함께 걷고 있는 남자가 그 고대인들 중에서도 더욱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대인의 작명 방식을 따라 아직까지 ‘은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긴 시간동안  명맥과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뜻이 아닌가.

“고대인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군요.”

“당신의 이름은 너무도 독특하니까요. 알아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은현이 지구가 멸망하기 이전의 시대부터 4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게 살아온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사실만큼은 그녀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당신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야기인가요?”

“어째서 저와 우리 가문을 구해줬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고 싶은 건지. 당신에게 궁금한  너무많았어요.”

그렇게 기를 쓰고 자신과 동행을 하겠다고 이야기 했던 것은 이런  때문이었던 걸까.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

갑작스럽게 은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 그러세요?”

“공녀님. 지금 추적 아티팩트 지금 이 방향 맞나요?”

“네.”

“그 아티팩트는 알렉스 님의 마력의 흔적을 추적하고길을알려준다고 하셨죠.”

“그런데요?”

“그 말은 그가 이동하면서 남긴 마력의 잔재를 쫓는다는 말은….”

거의 그의 발자국을 찾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알렉스 님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는 말씀이군요.”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정보까지는 알 수 없다는 뜻.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그냥 이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문득 든 생각입니다.”

은현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걷기시작했다.
갑작스럽게미간을 좁히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은현을 의아하게 바라보면서 엘레노아도 그의 뒤를 쫓았다.

[아이야?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이냐?]

‘그게…. 이 방향으로 가다보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 하나가 있거든요.’

[그것이 왜?]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정황상 호위로 기사와 마법사 세 명을 데려갔을 정도라면, 처음부터 왕녀는 전투를 염두 해 두고 어딘가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어쩌면 그 ’미발견 던전‘을 향해 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으음, 확실히….]

‘더 이상한 건 그 ‘미발견’ 던전의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는가? 라는 의문인데….’

베르단디는 침음하며 은현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이나 모험가 길드에서도 아직 발견해내지 못한 던전의 존재를 도대체 유리아 왕녀는 어떻게 알고 그곳을 찾아갔을까.

‘설마 싶지만 일단은 거기에는 들어가지 않았기를 바래야죠.’

은현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제발 유리아 왕녀의 가출이  던전과 연관이 없기를 기도했다.

“잠깐 정지.”

“네? 무슨…이, 이봐요!”

숲길을 걷던 도중 은현이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행동을 제지했다.
갑작스레 엘레노아의 손을 붙잡고는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뜬금없는 은현의 행동에 엘레노아는 그에게 항의를 하려 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코볼트가 보이네요. 수는아홉 마리.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저게…보여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아야 겨우 보이는 형체들을 보고 엘레노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속을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는 이족 보행을 하는 늑대형 마수, 코볼트 무리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은현은 생각을 마치고 행동을 개시했다.

“처리하죠.”

“아홉 마리 전부를 우리 둘이서요?”

“혼자 하겠습니다.”

“코볼트 아홉 마리를 혼자서요?! 그건 너무…”

은현의 행동은 엘레노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빠르게 검을 소환하여 손에 쥐고는 코볼트들을 향해 달려갔다.

크륵?

수풀을 헤치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코볼트들은 고개를 들어 올려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이미 코볼트 무리가 있는 곳에 당도한 은현이 가장 가까운 코볼트의 머리를 베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크르륵!

머리가 날아가고 몸통만 남아 바닥을 나뒹구는 동족의 시체를 본 코볼트들은 순식간에 털을 곤두세우며 은현에게 달려들었다.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이미 ‘감지’를 펼쳐두고 있었던 은현에게는 코볼트들의 공세는 그렇게 위협적이지 못했다.
가장 앞장서서 은현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코볼트의 입속에 은현이 팔을 내밀었다.
너무 쉽게 은현의 팔을 물은 코볼트는 한심한 판단으로 팔을 내준 은현을 속으로 비웃고는 턱에 힘을 주어 은현의 팔의 살점을 아예 뜯어버릴 생각이었다.

크릉?

있는 힘껏 턱에 힘을 주던 코볼트가 이상을 감지했다.
은현의 팔뚝에 코볼트의 이빨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강철이라도 입에 물고 있는 듯한 감각.
팔을 두르고 있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코볼트의 이빨은 은현의 팔을 전혀 상처 입히지 못했다.
이미 마력을 통해 ‘신체 강화’를 이루어낸 은현의 방어력을 뚫기에는 코볼트의 이빨과 치악력은 너무나도 부실했다.
코볼트의 그 잠깐의 당황하는 순간을 놓칠 리가 없는 은현이었다.
은현이 팔을 위로 휘두르자 은현의 팔을 물고 있던 코볼트까지 함께 딸려 올라가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되었다.
곧장 코볼트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자, 코볼트가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켰다.
시체가 되어버려 바닥에 축 늘어진 코볼트의 복부에서 검을 뽑아 회수한 뒤, 은현은 자신의 다리를 노리고 돌진해오는 다른 코볼트를 걷어찼다.

끼이잉!

은현의 다리에 걷어차인 코볼트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날았고 복부를 걷어차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했다.
순식간에 자신의 동족을 두 마리 더 처치해버린 은현을 본 코볼트들이 그 순간이 돼서야 멈칫하며 무작정 은현에게 달려드는 행동을 멈췄다.

크르릉

사나운 울음소리를 내며 코볼트 아홉 마리가 매서운 눈매로 은현을 당장이라도물어뜯을 기세를 내뿜으며 은현과 대치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동족을 셋이나 처리한 은색머리카락의 인간에게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협을 느낀 코볼트들은 처음 은현을 보았을 때처럼 쉽사리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명실상부 ‘야생의 감’이라는 것이 코볼트들의 뇌리에 경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덤비면 죽는다.’라는 경고가.

“생각보다 감이 좋네.”

적어도 한 마리 더 죽일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돌진해오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코볼트들을 보며 은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마냥 본능에날뛸 것이라고 예상을 했던 예상과는 달리, 코볼트들은 동족의 죽음을 보고는 은현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굳이 권능을 쓸 필요도 없겠고.’

은현은 담담이 중얼거렸다.

“안 오면 내 쪽에서 가야지.”

은현은 몸을 튕기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코볼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코볼트들은 은현의 돌진이 너무 빨랐기 때문인지 미처 대처하지 못했고, 그대로 가장 앞에 있떤 코볼트 하나가 은현의 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미처 은현의 행동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시 동족 하나를 잃게 되자 코볼트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인간을 사냥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사냥을 당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사실을 깨달은 코볼트들의 안색이 점차 창백해져갔다.

“갈 길이 멀다. 빨리 처리해야지.”

크, 크르륵!

처음만 해도 동족의 죽음에 분개하며 은현을 찢어죽일 기세로 노려보던 코볼트들의 눈에는 공포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점차 뒷걸음질을 치며 조금씩 은현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지만, 코볼트들의 기세가 잔뜩 위축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할 은현이 아니었다.
은현이다시 검을 휘두르며 코볼트들을 베고 다니자, 위기의식은 생존본능으로 바뀌어버렸고, 어느새 세 마리 밖에 남지 않은 코볼트 무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은현에게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어딜.”

도주를 눈치챈 은현이 단검을 소환하고는 도주하고 있던 코볼트들의 다리를 조준하여 투척했다.

크륵!

명중을 확인한 은현은 또 다시 단검들을 소환해 투척하여 다른 코볼트들의 다리를 명중시켰다.
은현은 그렇게 도주 중이었던 코볼트를 포함해 총 아홉 마리의 코볼트를 몰살시키는데 성공했다.

“세상에….”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엘레노아는 멍하니 은현을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코볼트가 아무리 하급마수라고는 하더라도 아홉 마리나 되는 개체수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마수들을 정리하는 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의 능력이었다.

“크라시르의 단원급 이상…일까? 오라버니보다는 강한 같은데, 어쩌면….”

기사단장급의 수준까지 떠올렸지만 검술에 문외한인 그녀가 은현의 실력을 가늠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엘레노아는 머릿속으로 왕국의 기사들을 떠올리며 은현과 비교를 해보면서 그의 실력을 가늠했다.
왕국의 기사들에게도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코볼트들을 모두 일격에 보내버리는 실력이나 빠른 몸놀림, 젊은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경이로울 정도의 능력이다.
이전 흑마법사 엘빈과의 전투에서 그의 전투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갑작스러운 살해 위협을 받았던 직후라 혼란스러움에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현의실력을 가늠할  있을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엘레노아는 먼 곳에서 은현의 전투장면을 유심히 관찰한 지금에서야 은현의 대단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오셔도 됩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는 은현을 보며 엘레노아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은현은 도주 중이었던 코볼트의 시체  구를 질질 끌며 가져왔고 다른 코볼트들의시체로 산을 쌓고는 단검으로 코볼트들의 몸을 해체하고 있었다.

“뭐…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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