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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024. 여신과의 재회(2) (24/730)



〈 24화 〉024. 여신과의 재회(2)

“…여신님? 정말로 그…일리아나와  일들…다 보셨던 건가요?”

[그, 그렇다.]

“여, 여신님…. 아무리 그래도 관계를 맺는 것까지  보시는  좀….”

[아, 아이의 일이니,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다른 이상한 아이가 접근하여 내 아이를 홀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나는…그런 여자가 아니에요. 함께 여행을 하고 하계를 구하는데 일조한 영웅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저를 지켜봐주지 않으셔도….”

[그것은 안 된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를 지켜 볼 것이니, 이것만큼은아이의 간청을 들어줄 수 없구나.]

“…….”

은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묘하게 베르단디의태도가 완고하기까지 한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지만, 이것을 캐묻는다고 알려줄 것도 같지 않았기 때문에, 은현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단념했다.

[아무튼 나는 아이의 인간관계와 감정을 강요시킬 생각은 없다. 아이가  마녀 아이와 그런 관계를 맺게 되어 아이가 행복해지는 미래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정말 기쁜 일이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어째서 내가 반대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나는 아이의 생각을 모르겠구나.]

“그게….”

은현은 사도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언제나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이끌어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강구해왔다.
어쩌면 일리아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사도의 임무를 수행하는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자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될지도 모른다고, 신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은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결혼할 여성을 집에 데려왔는데, 자신의 부모가 자신과 애인의 결혼을 반대하는 분위기를 상상해버리고 만다.

[아이야.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 은현의 마음속의 고뇌를 읽은 베르단디는 은현의 머리를 살포시 껴안으며 그의 머리를 토닥여준다.

[적어도 나는 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아이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은현은 포근한 베르단디의 품속에 안겨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가려는 것이냐?]

“어…하실 말씀이 뭔가 더 남았나요?”

[아이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나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을  알았다. 그게 원망이라도 다 들어주리라 결심하고 있었는데…. 다시 만난 아이는 생각보다 담담하구나. 나는 아이와 나누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

은현은 아무 말 않고 잠깐 생각이 잠기더니 이내 베르단디에게 다가갔고, 그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아, 아이야?! 여, 여신에게 손을 대는 것은 불경한…!]

그럼 아까 전 자신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은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서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읏…?!]

당황하며 허둥대던 베르단디의 몸이 한  떨리더니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왜 나의 부름에 답해주지 않으시는 걸까. 나를 버리시는 걸까. 내가 쓸모가 없어진 걸까.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을까. 힘든 생각이 들 때마다 항상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베르단디는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은현의 담담한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알고 있었다.
모른 척 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부름에 모두 대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신의 금기나다름이 없었기에 베르단디는 은현의 외침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제 사도의 권능을 확인하며 계속 확인했습니다. 대답해주지는 않으셔도 계속 저를 지켜봐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아….]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는 한 마디.
신계에서 은현의 행적을 모두 지켜봐주고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은현은 그게 너무나도 기뻤다.
자신의 고행을 알아봐주고 있었다는 것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기에 은현은 말했다.

“여신님께서 계속 지켜봐주신다면, 저는 다시 힘낼 수 있습니다.”

이보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신자가 어디에 있을까.
미소 지으며 확신에 찬 믿음의 말을 해주는 은현.
베르단디의 눈에는 너무나도 눈부시고 순수한 영혼의 빛을 볼 수 있었다.
4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살아가면서 지쳐가고 마모되어 갔던 영혼이 다시 한 번 활력을 되찾고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활력의 원동력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에 베르단디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기쁨은 오히려 여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그 말은 너무 비겁 하구나….]

“네?”

[아, 아무것도 아니다!]

은현은 베르단디를 놓았고 둘은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이제 가거라. 아이의 진심을 확인했으니 되었다. 이제 나도 결심을 할 수 있게 됐어.]

“결심이요?”

[그래. 곧 알게 될 터다.]

“알겠습니다.”

은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옥좌의 계단을 내려갔고 처음 이곳에 왔던 곳을 향했다.
이곳에 온 시작점으로 돌아온 은현은 몸을 돌려 계단 높은 곳에 위치한 베르단디의 옥좌에 시선을 옮겼고 몸을 굽혀 경건한 인사를 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나도 그렇단다.]

베르단디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며 은현을 배웅했다.
그렇게 은현의 의식이 하계로 내려가고, 혼자만 남게 된 베르단디의 옆에 그녀의 자매 여신들이 나타난다.

[정말로 할 거야?]

[물론이야.]

[난 네가 이렇게까지 저 아이에게 정을 베풀어주는 이유를 모르겠어.]

우르드는 베르단디의 결심에 눈살을 찌푸렸다.
신들의 입장에서 하나의 인간은 아주 작은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다.
그것은 자신들의 사도도 마찬가지이며, 은현이라고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전쟁시뮬레이션의 세계 속에서 특별한 유닛하나를 특정하여 권능을 내리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누리게 해주었을 뿐, 우르드는 은현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아니야.  아이는 굉장히 잘해주었고, 개인적인 감정을 죽여가면서 까지 우리의 방침에 아주 잘 따라주었어. 그 아이의 능력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그 결과로 마음이 부서져가고 있지.]

[그래서 고작 인간 하나를 다시 살리겠다고 다른 신들을 설득하고 다닌 거냐?]

[우리의 사정 때문에 그렇게 죽었고, 우리의 사정 때문에 또 다시 되살린 거야.]

우르드의 질책어린 목소리를 들은 베르단디는 손에 힘이 들어가며 옥좌의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던 모서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아이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어.]

[…난 이해하지 못하겠어.]

[언니….]

[저도 찬성이에요.]

[스쿨드, 너까지? 너까지 그 아이의 편을 드는 거니?]

스쿨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적어도 이 상태로 간다면 얼마 못가서 저 아이의 정신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수명을 벗어나 불멸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은아니다.
수많은 시간 속의 경험을 겪고  축적된 경험과 능력으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은현만의 장점이지만, 평범한 인간의 영혼은 그 불멸의 시간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이미 은현의 영혼은 정신적인 마모로 인해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더라도, 많은 힘을 쏟아 부어  아이를 살린 이상, 저 아이는 하계를 위해서 더 일해 줘야만 해요. 베르단디 언니의 선택은 신으로서는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생각이지만, 그로 인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이득은 매우 합리적이에요.]

스쿨드는 은현에게 베르단디처럼 특별한 감정을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부여한 ‘운명개척’으로 인해, 읽을 수 없는 은현의 미래가 어떤식으로 그려질지에 대한 흥미만이 있었을 뿐이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내가 말린다고 듣지도 않았을 테지.]

[고마워. 언니.]

신으로서의 권위와 신계의 규칙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우르드
은현만을 걱정하면서 사적인 감정으로 행동하는 베르단디
효율과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는 스쿨드
세 자매이면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여신들은 성격도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결국에는 은현을 사도로 삼은 여신들이었다.

◆ ◆ ◆


그 작별인사를 끝으로 은현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뜬 은현은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며 가만히 있었다.
잠에서는 깼지만, 은현은 아직도 머릿속으로 꿨던 꿈의 여운에 잠겨있었다.
몸을 움직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후우…. 일단 정리부터 해보자.”

은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책상으로 향했고, 종이와 펜을 꺼내 꿈에서 있었던 내용을 토대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여 정리했다.

[깨어나자마자일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그럼요. 웬만하면…어?”

은현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까지 꿈속에서 함께있었던 화사한 금발의 여성.
육체와 질량이 존재하지 않는 영체 상태로 자신의 방안을 부유하고 있는 여신을 보며, 은현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 여신…님?”

[많이 놀란 얼굴이구나. 후후.]

여전히 냉정을 찾지 못한 은현의 얼굴을 본 베르단디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다, 당연히 놀라…! 죠!”

은현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크게 내었으나 이내 급하게 말을 끊고는 작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도대체 하계에는 어떻게 현신하신 거예요?!”

[나는 아이의 여신이 아니더냐. 아이에게 부여한 나의 힘으로 인해, 우리 사이의 연결이 강해졌다. 그래서 신력이 모이는 대로 아이를 나의 옥좌로 부른다음, 아이가 나갈 때 아이를 따라왔다.]

“…….”

은현은 어이가 없어져 멀뚱히 베르단디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세상에 어떤 미친 여신이 인간의 뒤를 따라와 하계에 직접 현신한단 말인가?

[…아이는 생각보다 불경한 생각을 잘 품는 구나.]

은현의 생각을 읽은 베르단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을 보았다.

“아니, 그게…좀 그렇잖아요. 신계에서의 업무나 그런  어떻게 하시려는 건가요?”

[걱정하지마라. 이곳에 현신한 ‘나’는 분신체의 개념이니. 신계에서의 ‘나’도 제대로 존재한다.]

은현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뜬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이게 허용이 되는 일인 것인가?
다른 신들은 그녀의 이 제멋대로인 행동을 용납을 했던 것일까?
다양한 생각들이 은현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것은 걱정할  없단다. 말했지 않느냐. 너의 고행을 지켜봤던 신들이 너에게 협조적으로 대할 것이라 정했다고. 그것에는 나의 현신도 포함이었다. 많은 신들이 신력을 모아 하계의 간섭에 대한 제약을 조금 풀어주었지.]

“헐….”

뭘까, 이 룰 브레이크 같은 전개는.

[룰 브레…? 그것은 무엇이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은현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은현의 몸속에 깃든 베르단디는 그런 은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살포시 은현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신기하게도 질량이나 육체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감촉은 느껴졌다.
꿈속에서만 느껴보았던 포근한 느낌을 현실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되었음에 기쁜 마음도 들었지만, 복잡한 감정도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외로이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야.]

베르단디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도 들리지 않을 작은 마음의 다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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