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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020. 아르미타스 공작가문(2) (20/730)



〈 20화 〉020. 아르미타스 공작가문(2)

배신하고 뒤통수를 치려했던 것은 공작가 쪽, 애슈턴의 독단행동 때문에 벌어진 행동이었다면.

“참 아이러니 한 일이죠? 공작은, 공녀님의 아버지께선 처음부터 레니온 헤르샤의 배임횡령에 대해서는 일절 모르셨습니다. 엘빈이 공작가를 찾아와 거래를 제안하게 되면서 사건이 완만히 수습되도록 엘빈과 약속을 했던 것에 불과했죠.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던 자가 또 다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렸네요.”

“어째서….”

애슈턴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은현의 말을 듣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내가 나쁘다는 거지?! 어떻게 그 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있지? 그놈은 흑마법사고, 배임횡령을 해서 왕국의 돈을 빼돌려 이득을 보고 있던 자의 아들이다. 그자도 돈에 욕심을 보이고 우리를 배신하거나, 우리 가문을 적대하는 귀족들에게 팔아넘기지 않았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었냐는 말이야!”

“횡령을 하도록 눈감아주고 꼬드긴 새끼가 하는 말이 가관이네.”

핑계를 대는 애슈턴을 보며 중얼거리는 은현의 말에는 더 이상 귀족으로서의 존중과 존대 따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을 정도라서 헛움음이 나왔다.

“그리고 말이죠. 사실 에린은 학교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

알렉스가 놀라 반문했다.
그토록 공을 들여 환각을 보여주면서까지 연출했던 진실이 거짓이었다는 충격과 어째서 은현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

“사실은 말이죠. 진실은 이렇거든요.”

딱!

또 다시 일변하는 배경.
이미  번째 경험이었기에 알렉스와 엘레노아는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아브로스와 애슈턴은 달랐다.

“이건….”

“환각 마법?”

두 사람은 아직 제대로 된 상황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와는 관계없이, 은현의 환각은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옥상위에선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에린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검은 복면을 쓴 암살자였다.

당신…누구야.

- …네 신변을 원하는 분이 계신다. 조용히 따라와줬으면 좋겠는데?

- 오빠는…?  오빠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왔어! 당신이 나를 여기로 부른 거야? 우리 오빠는 어디있어!

- …….

암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단검을 하나 빼들고는 순식간에 에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빛에 비쳐 서슬 퍼런 빛이 비치는 칼날을 보고 숨을 삼킨 에린은 급하게 몸을 뒤로 뺏다.
이내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옥상의 난간위에 발을 딛었다.

- 오지 마!

-  하는 거지?

-  신변을 원한다고? 그럼 내 목숨이 중요하다는 거네? 더 이상 다가오면 정말로 떨어질 거야!

에린은 후들거리는 다리의 떨림을 억지로 힘을 주어 멈추게 만들려고 했지만 이미 두려움에 지배당한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런 에린의 상태를 알아본 암살자도 복면의 안에서 미소를 지으며 에린에게 걸어갔다.
그녀가 뛰어내릴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저, 정말로 뛰어내릴 거야!

그런 공포에 젖은 감정으로 이야기해봤자 설득이  리가 없었던 암살자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순간.

- 엇…?

- 이런…!

평범한 바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강한 돌풍이 두 사람을 덮쳤고 돌풍에 휘말린 에린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던 것이다.

딱!

환각의 연극이 끝나고 은현을 포함한, 사람들을 둘러싼 주위의 배경은 다시 공작가의 침실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건….”

“에린은 자살 같은 걸 했던 게 아닙니다. 그 아이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죠. 어딘가에 엘빈이 살아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엘빈의 흔적을 찾아다녔고, 에린을 납치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누군가’의 수작이 있었고, 옥상의 난간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협박을 하다가 실수로 떨어진 거였습니다.”

“…….”

“‘소망의 나무’가 들어줬던 에린의 정확한 소원은 이거였죠. ‘나를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리고 오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 정확히는 소망의 나무가 아닌 하늘의 신에게 간절히 빌었던 거지만.”

하지만 소망의 나무는 에린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며, 그녀를 위협하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그녀를 감췄고, 언젠가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에린을 구하고, 엘빈을 찾아준 남자인 은현은 자신이 소망의 나무의 의도대로 이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것도 우리 여신님의 계획이었던 걸까.’

제대로 된 구분을 지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둘 사이에는 명확한 이해가 일치한 셈이었다.
은현은 웃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브로스를 향해 물었다.

“자, 공작님? 공작님께선 제가 이 진실을 감춰드린다면 저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요?”

마치 뱀의 혀가 자신의 귓가를 속삭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아브로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뭘 해줄 수 있냐고?”

아브로스는  쥔 손을 떨며 은현을 노려보았다.

“오히려  놈이 원하는 게 있어서 굳이 이렇게 비밀리에 나를 찾아왔겠지. 말해라.  원하는 거냐.”

은현은 자신의 의도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아브로스를 보며 웃었다.

“저게 더 이상 에린한테 직접거리지 않도록 관리 잘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아들 교육 좀 똑바로 시키시고.”

“감히 나를…!”

은현이 애슈턴을 보며 조롱하자 그는 갖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팔을 부들부들 떨고 은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은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뭘 잘했다고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네 놈이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을 주고 있지 않나! 다른 이도 아니고 공작가문의 나를 감히 평민에 불과한 네놈이….”

“그럼 네가 저지른 짓들은?”

“뭐?”

“하….”

이건 정말로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흘끗 시선을 돌려 아브로스를 보고 있자니 그 또한 철없는 아들의 말과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공작님?”

“뭐냐.”

“얘, 좀 패도되나요?”

오랜만에 감정의 조절이 되지 않는 은현은 싱긋 웃어 보이며 아브로스에게 허락을 구했지만, 그가 그것을 허락해줄 리는 만무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아쉬운 표정을 지은 은현은 애슈턴에게 다가갔다.

“이봐, 소공작?”

“뭐, 뭐냐.”

“네 생각도 이해해. 의심할  있고, 배신을 당하기 전에 먼저 배신을 한다는 그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인간 사회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존재들의 집합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그런데….”

은현은 애슈턴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문제란 문제는 다 벌려놓고선 제대로 된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은현이 천천히 걸어와 애슈턴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기세에서 눌린 애슈턴이 주춤거리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내가 평민이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귀족을 대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고 역정을 내고 신분의 차이를 들먹이는  태도나.”

“크으….”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것은 물론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듯 당당히 서 있는  면상이.”

애슈턴은 계속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은현이 지적하는 말들이 하나하나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인 아브로스와 배다른 동생들인 알렉스와 엘레노아의 앞에서 당하는 수모라는 것이 더욱 애슈턴의 기분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 공작가의 당주로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야할 귀족의 태도인가?”

은현은 애슈턴을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기고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너 같은  나라의 위에 있으니까 나라가 망하는 거야.”

“무…슨!”

“왜? 인정 못하겠어? 그럼 이번 헤르샤 준남작 사건에서 니가 했던 짓들을 쭉 나열해볼까? 시작점은 레니온 헤르샤의 배임 횡령 사실을 니가 덮어주는 것에서부터야.”

“…….”

“이후 엘빈이 공작을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걸로 자신이 해온 짓이 들통이 난, 너는 왕실과 다른 궁정귀족으로부터 자신의 범죄가 들통이 나는 걸 두려워해서 엘빈을 죽이려는 암살 시도를 벌이고.”

“크윽.”

“엘빈의 암살을 실패하고 종적을 감춰버리자 엘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의 여동생인 에린을 납치하려 했지만, 이것조차도 실패해버렸고. 이외에 네가 한 게 뭐가 있어?”

“그건….”

“게다가 이번에 에린의 행방을 찾는 올리비온 후작 영애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것도 너였지? 하아, 원래는 배후에 있던 흑막인 너를 끌어내려고 했던 계획이었는데, 보고가 저 아가씨한테 가서 일이 꼬여버렸잖아. 덕분에 저 아가씨만 고생했잖아. 너 하나 때문에 피해본 인간이 대체 몇 명인 줄 알아?”

애슈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엘빈을 배신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일은 마무리가 됐을 텐데.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나서는 바람에 일이 더 꼬여버렸잖아. 게다가 말이지. 내가 만약 에린이 자살한 게 아니라 너한테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걸  자리에서 진실을 밝혔으면 흑마법사와 공작가 사이에 전면전이었어. 알아?”

그 어리석은 행동으로 엘빈과의 전면전이 벌어졌다면.
엘빈의 그림자를 다루는 흑마법으로 직접적으로 살해당할  했던 엘레노아는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지 않는 싸움이 벌어진다 했더라도, 공작가는 큰 피해를 면치 못했으리라.
은현이 엘레노아를 구한 순간부터 공작가는 은현에게  은혜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은현은 손에 꽉 쥐고 있던 애슈턴의 멱살을 거칠게 내치고는 아브로스에게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뭐, 공작님의 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상황이었으면 아드님이 이런 더러운 짓에도 손을 댔을까요.”

“…….”

아브로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은현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도움을 드리려 합니다.”

“도움?”

“네.”

그렇게 말하고는 은현은 품에서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는 주머니 하나를 꺼냈고 그것을 알렉스에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주머니를 받아든 알렉스는 묶여있는 끈을 풀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고, 경악했다.

“이, 이건!”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대량의 화폐들을 보고 알렉스는 곧장 아브로스에게 주머니를 넘겼고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화폐들을 확인한 아브로스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놀라웠던 것은 주머니의 정체가 ‘화폐의 정체’ 뿐 만이 아니라 ‘화폐의 양’ 또한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레니온 헤르샤가 횡령한 금화의 양보다는 많은 것은 물론이고,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6개월분 예산과도 맞먹는 금액을 떡하니 일시불로 내놓은 것이다.

“무슨 생각이냐.”

“백금화 600닢입니다. 이정도면 적어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아야 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힘드시진 않겠죠?”

일반적으로 금화 100닢이 백금화 1닢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 백금화의 양은 도저히  인간이 개인으로 가지고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을 떡하니 아무렇지도 않게 양도하겠다는 은현의 의도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슨 생각으로 이 돈을 주는 거냐고 물었다.”

“그냥 이상한 짓 하지 마시라고요. 아드님 교육도 좀 똑바로 시키시고.”

은현은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에 대답해주며 피식 웃었다.

“내가…이 돈을 뭐에 쓰려는지 알고 지껄이는 말이냐?”

“‘복원’하셔야 하잖아요? ‘성검’”

“어, 어떻게 그걸!”

은현의 대꾸에 놀라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낸 것은 애슈턴이었다.
그는 공작가의 집안에대대로 내려오는 전승에 대한 이야기를 어째서 오늘 처음 본 남자인 은현이 알고 있는지 몰라, 경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현은 그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았다.

“조건은  가지입니다.  번째는 제 이름이 이 사건에서 나오지 않도록 조치해주시는 것. 두 번째는 ‘에린 헤르샤를 처벌하지 않겠다. 그녀는 피해자다.’라는 발표. 이 두 가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좋다.”

“아버지!”

너무나도 손쉽게 성사된 거래에 애슈턴이 아브로스에게 소리쳤다.

“저 자는 너무도 수상합니다! 어서 빨리 저자를 체포해서 심문하고 의도를 밝혀야…”

“그 입 다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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