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018. 신목(神木)의 비밀(3)
은현의 말을 들으며 올리버는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술을 짓씹으며 머릿속을 굴리고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학교의 교수들이 모여 동일한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한 것이다.
뛰어난 마법 능력과 이론,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지식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높았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학교에서는 투신자살을 한 여학생은커녕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하지만 은현이라는 남자가 보여준 ‘환각’이라는 것의 내용은 어떠한가?
마치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재현한 것처럼 너무나도 현실적인 환각.
게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소녀를 보며 절규의 말을 내질렀던 그녀의 오빠, 흑마법사, 엘빈 헤르샤의 반응.
올리버는 아까 전까지 그렇게 무시했던 은현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거리를 생각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환각은 자네가 만들어낸 것이지 않나. 도대체 누가 그 환각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걸 증명해준다는 거지? 첫 번째 환각은 저 흑마법사 본인이 맞다 증언한 거나 다름없지만, 저 소녀의 투신자살은 증명할 사람이 없지 않나.”
“목격자라면 있지 않습니까? 한밤중에 한 여학생의 투신을 목격했고 그걸 제보한 한 여학생이.”
“하!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은가! 저 높이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자연스레 추락한 바닥에 시체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거늘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네! 심지어 어떤 마법의 사용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네! 그래서 나와 교수들이 결론을 내린 걸세.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이 없다고!”
“확실히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건 이상하죠. 정말 신비로운 현상이지 않나요? 학교장님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에린은 옥상에서 투신했다.’ 하지만 그게 ‘바닥에 부딪쳐 사망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마법이 사용됐을 가능성을 생각하신 거겠죠. 그렇죠?”
“…맞네.”
올리버는 살살 달래듯이 자신을 다루는 은현의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그의 말 자체에는 수긍했다.
“도대체 ‘추락하는 에린을 누군가가 구했다.’라는 생각을 어째서 하지 않으신 거죠?”
“그건…애초에 그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이니스라는 여학생이 그 학생을 구한 누군가도 목격했어야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렇죠. 하지만 그 학생도 단지 에린을 구한 누군가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하죠.”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있다는 겁니다. 옥상에서 몸을 던져 투신한 에린을 구한 누군가가.”
“하! 재밌군. 그럼 자네는 그 ‘누군가’라는 인물이 에린이라는 소녀를 구하고 지금까지 숨겨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꼭 인물일 필요도 없죠.”
“뭐?”
은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올리버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고 ‘페르니아스의 신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은현의 시선을 따라 정원의 중심에 위치한 나무를 보았다.
은현의 시선의 의미를 눈치 챈 엘레노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 터무니없는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나무가…사람을 구했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하! 어이가 없군! 겨우 한다는 말이….”
“이 나무에 대한 것은 이 중에서 학교장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실 텐데요?”
터무니없는 주장에 겨우 반박할 거리가 생겼기 때문에 올리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은현을 조롱하려 했지만 이어 들려온 그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왕가를 제외하면 오직 이 학교의 최종 책임자에게만 전승되어오는 ‘페르니아스의 신목(神木)’의 비밀. 설마 모른다고 잡아떼진 않겠죠?”
“그…걸 어떻게…?”
“신목?”
“비밀?”
은현의 추궁과 올리버의 경악스러운 표정을 번갈아 보며,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남매들은 은현의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왕가와 학교장에게만 전승되어오는 비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대체 왕국의 백성도 아니며, 외부인에 불과한 은현이라는 남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가.
“이 나무에 무슨 비밀이 숨어있다는 거지? 몇 십 년도 더 됐지만, 나 또한 이 학교의 졸업생이다. 하지만 이 나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어. 그저 나이 어린 학생들의 소문을 들어준다는 미신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리오드의 말에 은현과 일리아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 출신이었다고 하더라도, 준귀족의 신분을 가진 레니온으로 인해 아이테르에 입학했던 엘빈도 ‘소망의 나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은현과 일리아나를 제외하면 모두 아이테르에 입학하고 졸업을 했던 귀족가의 자제들이었기에, 그들 모두 ‘소망의 나무’에 대한 은현의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오직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학교장, 올리버를 빼고는.
“이 나무는 말이죠. 확실히 아이테르의 학생들, 또는 졸업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죠. 단장님께서 아이테르에 계셨던 때에도 존재했던 만큼 긴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소망의 나무’라는 이름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지어지게 된 것일까요?”
“그건….”
은현의 질문에 사람들은 모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리오드가 재학 중이었던 20년도 더된 그때도 또한, 이 나무의 별칭은 ‘소망의 나무’였었다.
나무의 진짜 이름이 따로 있었음에도, 이 나무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이름보다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나무가 탄생하게 된 계기를 모르고 성장해온 시간과 역사를 모른다.
그들에게 ‘소망의 나무’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나무에 불과했다.
“이 나무의 탄생이 바로 ‘아이테르’라는 학교의 창립의 시작점입니다.”
“뭐라고?”
“……?”
은현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내버려두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먼 옛날, 인간과 마족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싸움의 종지부를 찍고, 그 ‘공허의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것이 아르케나 대륙력 0년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구의 문명’이 멸하고, ‘아르케나 대륙’의 시작을 알리는, 이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은현의 뜬금없는 역사 강의에 의문을 품었지만 숨죽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공허의 시대, 인류의 편에서 서서 마족과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신수(神獸)’들의 도움이었죠.”
“신수?”
“동화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신의 힘을 품고 있다고 전해지는 영험한 짐승’들을 말하는 건가?”
은현 리오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신수들은 실재했던 존재들입니다. 공허의 존재들인 악마족에게 대항하기 위해 인간과 함께 힘을 합쳐 평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던, 실로 은혜로운 종족입니다. 지금은 이전의 힘을 잃고 쇠퇴하여, 그 힘의 일부를 받아들인 소수의 종족들만이 살아남은 모양입니다만.”
은현은 신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신목의 시작점도 바로 싸움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세상 속에서 한 신수의 결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악마와의 전쟁의 여파로 어느 나라나 한창 힘겨운 시절을 보냈고 각 국가들이 자국의 재건과 부흥에 힘을 쓰고 있을 때, 한 신수가 페르니아스 왕국을 찾아왔고 당시의 국왕과 독대를 합니다.”
[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나의 시체를 왕국의 땅에 묻고 그 위에 많은 아이들이 살 수 있도록, 많은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라.]
“신수의 유언을 들은 페르니아스 국왕은 신수의 유언대로 신수의 유해를 땅에 묻었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왕립학교 아이테르의 시초입니다.”
은현은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며 물었다.
“여러분들은 한 번도 의문을 느껴본 적이 없었나요? 어째서 재능을 가진 젊은 인재들이 마법사나 기사가 되는 과정에서 평민보다 귀족의 자제들이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건 우리 귀족들이 평민들보다 우수한 재능과 많은 양의 마나를 가지고….”
“틀렸습니다.”
“크윽….”
올리버는 애써 이유를 갖다 붙여 진실을 감추려 했지만 그런 그의 시도를 매몰차게 은현이 끊어버렸다.
“정확히는 땅속에 묻힌 신수의 유해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원인입니다. 소망의 나무는 신수의 유해에서 흘러나오는 이 영양가 높은 마나를 영양분으로 흡수하여 성장했죠. 그리곤 마나를 정제하여 학교를 범위로 전체에 뿌리고 있었던 겁니다. 공기 중에 녹아들어있는 순도가 높은 정제된 마나들이 한창 성장기의 학생들의 몸에 스며들었고 훈련을 통한 강인한 육체의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장시간 마나에 노출된 학생들이 자연스레 마나의 운용을 몸에 익혀 마력 사용자로서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페르니아스의 귀족들이 평민들과 달리 압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들은 평민들과 달리 자신을 둘러싼 환경부터가 달랐다.
왕가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과 귀족 가문들의 자식에게만 이 특권이 이어지도록, ‘귀족만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한 것이었다.
대부호나 타국 유학생의 입학을 받아들인 것은 학교의 운영자금을 비롯해 왕국의 재정을 충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 학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그 특권을 판매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굉장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된 귀족들이 ‘재능 있는 혈통’으로 만들어지고 귀족들 간의 혼인을 통해서 ‘혈통의 대물림’으로 태어난 귀족가의 자제들이 평민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마나를 가지고 재능 있는 기사나 마법사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즉, 너희들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이 나무가 특별한 것이다.
너희는 재능, 혈통의 차이 같은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직 이 신목의 혜택을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은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강한 마법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세요!’라며 철없는 소원을 비는 어린 귀족자제들의 소망을 이루어주었던 ‘소망의 나무’의 정체입니다.”
“…….”
올리버는 비웃는 은현을 보며 이를 갈았고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만약 정말로 이 사실이 들통나버린다면 귀족들은 물론, 평민들의 반발, 타국들의 욕심이 섞인 간섭 일어날 것이다.
‘내가 총책임자로 있을 때 이 비밀이 들통이 나버린다면 내 자리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험해!’
“즉, 네 말은 ‘소망의 나무’가 에린 헤르샤를 구했다는 뜻이냐?”
“맞습니다. 그녀는 몸을 던져, 투신하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을 빌었었죠.”
- 아무도…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제발, 누가 제발, 나를 숨겨줘.
“아.”
엘빈은 절망에 빠져 옥상에서 투신하기 직전, 동생이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나를 숨겨줘.’”
“맞습니다. 나무는 그 아이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죠.”
“…….”
은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엘빈은 은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말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힘들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은현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제대로 믿지 못하신 분들이 계신 것 같군요. 그럼 제가 직접 그 아이를 찾아보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곤 은현은 소망의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파직!
“어……?”
나무의 줄기에 얹은 은현의 손이 녹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그것에 일리아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마법을 전개하려 했지만, 은현이 반대쪽 손을 들어 보여 제지했다.
파직! 파지직!
계속해서 스파크가 튀며 소망의 나무의 저항이 거세졌지만 은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 아이를 구하러 온 거니까. 이 결계 그만 풀어.’
쩌적!
나무를 둘러싼 무언가, 얇은 벽 같은 장막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 변화를 인식한 사람들이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의심했던 사람들의 반응도 점차 ‘설마?’ 싶은 얼굴로 변해갔다.
은현은 균열이 생긴 그 장막을 손으로 붙잡았고 거칠게 잡아 뜯었다.
쩌저적!
깨진 장막이 완전히 걷힘과 동시에 ‘소망의 나무’는 은현이 처음 나무를 보았을 때와 같은 밝은 빛을 품은 고밀도의 마나가 소망의 나무 주위를 맴돌며 나무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와아….”
엘레노아는 처음 보는 녹색 빛의 향연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이건….”
밀도가 높은 마나가 응집되어 있는 녹색의 불빛의 정체를 알아본 일리아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법사로써 이런 광경을 보게 된 그녀는 그녀의 탐구심과 지식욕을 억제 할 수 있는지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
“분석은 나중에 하자?”
“으으….”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설득하는 은현의 말에 일리아나는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놀라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을 삼키고 있는 동안에 유일하게 한명이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내질렀다.
탄식을 내지른 주인은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에린, 에린…!”
나무에 기대어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있는 에린 헤르샤의 모습은 정신적으로 몰려 피폐해진 인상도 아니었고.
옥상에서 투신한 것으로 인해 머리가 깨지거나 다른 외상의 흔적 따위도 없었으며.
너무나도 평온한 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 상태임을 확인한 엘빈이 그녀를 끌어안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로?”
올리버는 나무에 기대 잠을 자고 있는 소녀를 보며 이것이 정말로 현실로 있을 수 있는 일이었는지 생각했다.
은현은 소망의 나무가 정말로 자살을 시도한 에린을 구했다는 주장을 이렇게 증명해냈다.
실종된 당사자가 이렇게 발견된 이상 반박할 수 있는 거리도 없었다.
명백히 자신을 비롯한 아이테르의 마법 교수들보다 ‘은현’이라는 단 한 남자가 더욱 뛰어나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상처 입히고 난도질하며 갈기갈기 찢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딱 한 가지.
“어떻게…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지…? 저렇게 편하게 누워있는데…어째서 4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저렇게 멀쩡한 상태가 보존된 거지…? 게다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서….”
“그건 에린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소망의 나무가 만든 결계 때문입니다.”
“결계?”
“네. 에린의 소원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나를 숨겨 달라.’ 그래서 만든 결계가 이거였죠. 멀쩡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소망의 나무는 결계를 만든 겁니다.”
올리버는 아까 전, 은현이 맨손으로 찢어버리듯이 해체된 결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아무것도 먹지 않고 영양이 공급되지 않은 채로 3일이 넘는 시간 생명을 유지시킬 수 없네.”
“맞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결계의 두 번째 특성입니다. 소망의 나무는 언젠가 에린을 구해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는 몰랐죠.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 1개월이, 1년이 될 수도 있었죠. 그래서 소망의 나무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에린을 둘러싸고 있는 결계의 안이 시간이 흐르지 않도록 말이죠.”
“시간을 멈췄다고…?”
“그렇습니다. 시간이 멈춘다면 에린의 육체도 생명활동을 하지 않은 채로 몇 년이 걸리든 결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 아이를 구해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나무는 저 아이를 사람들 사이에서 숨기고 지키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 소망의 나무를 보았을 때를 떠올리며, 은현은 지금처럼 밝은 녹색 빛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광경이 소망의 나무가 감춰온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평범한 나무의 행세를 하다가, 처음 은현을 보자마자 자신의 본 모습을 보인 것은 어쩌면 나무는 은현에게 에린을 구해달라는 의사표시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은현은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 올리버 바오트만 학교장님?”
“…뭐냐.”
올리버는 은현을 잔뜩 노려보는 시선으로 짜내듯이 대답했다.
마법적 현상에 대한 지식으로 새파랗게 어린 청년에게 졌다는 것이 매우 굴욕이었던 모양이었다.
은현은 그에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제가 드렸던 말씀 기억하시죠?”
“했던 말…? 아….”
- 여기서 흑마법사의 신병의 인도를 양보해주신다면, 저희 쪽도 학교장님이 하셨던 큰 실수 하나를 묵과해드릴 수 있는데요?
그것은 이것을 두고 했던 말이란 말인가.
올리버는 이를 갈며 은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은현의 뒤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일리아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올리버는 깨달았다.
자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