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017. 신목(神木)의 비밀(2) (17/730)



〈 17화 〉017. 신목(神木)의 비밀(2)

“아버지가 저자가 레니온 헤르샤를 죽일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줬다고?”

“그렇다.”

엘빈은 알렉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실제로 레니온이 투옥된 감옥은 왕국 군대의 관리에 놓여있는 곳이었다.
알렉스와 엘레노아의 아버지인 아르미타스 공작은 현 페르니아스 왕국의 군무장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왕국 모든 군대와 군시설이 그의 지휘 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죄수도 하나 없는 감옥으로 레니온을 투옥시키고, 간수들이 순찰과 경계근무를 서지 말도록 명령함으로써, 엘빈과 레니온이 둘만 있도록 상황을 만드는  또한 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약속을 지키려고 했지. 하지만 그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더군.”

엘빈은 깨달았다.
아르미타스 공작은 일이 끝나면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건 금화를 돌려받고 죽여도 상관없었을 텐데. ‘왜 굳이  타이밍이었는가?’라는 건데. 아무튼  마법의 제어가 어려워져 그림자 속으로 숨어서 휴식을 취해야했다. 생각보다 길었던 잠에서 깨어났을 땐,  동생은 실종 되어서 찾을 수 없는 상태였고 가장 의심이 갔던 공작가 사람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동생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그리곤 ‘에린 헤르샤의 행방을 찾았다.’라는 저희 쪽이 일부러 흘린 단서에 낚인 엘레노아 공녀께서 손수 저희가 제시한 장소에 나타나셨고, 공교롭게도 공녀님의 그림자에 숨어있었던 흑마법사님 또한 함께 나타나셨다는 거죠.”

“난…. 몰랐어요. 아버지와 당신 사이에 그런 거래가 오갔다는 것도, 배신에 대한 이야기도.”

“한 가지 이해가 안가는 점은 흑마법사님이 어째서 공녀님을 죽이려 했을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 자리에서 굳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공작가에 대한 나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두 번째는 저 여자를 인질로 삼아 내 동생에 대한 단서를 찾도록 아르미타스 공작에게 요구할 생각이었지.”

“응? 그때 분명 공녀님은 흑마법사님한테 목이 졸려 죽을 뻔했는데요?”

“기절만 시킬 생각이었다.”

“아니, 누가 봐도 그때 딱 하늘로 올라가기 직전이었는데…….”

“죽일 거였으면 더 간단히 죽였겠지. 그 사람의 목을  것처럼.”

“아, 그렇군요.”

은현은 엘빈이 레니온을 죽였을 때를 떠올리고는 간단히 납득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의 대화가 분위기에 맞지 않게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살해당할 뻔했던 엘레노아는 더더욱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엘레노아는 주먹을 꽉 쥐며 엘빈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과 아버지 사이에 그런 거래가 오가고 있었던 것도 몰랐습니다.”

“그럼  동생을 찾았다는 암살자의 정보에는 왜 직접 거기까지 갔던 거지?”

“그건…. 아버지의 명령이었습니다. 실종된 에린 헤르샤라는 아이의 행방을 찾으라는.”

“하, 어째서 공작이 직접 내 동생을 찾을 이유가? 누가 보더라도 나에게서 금화를 뺏기 위해 인질로 삼으려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

엘레노아는 어째서 자신이그런 살해 위협을 겪어야 했는지도 이해했다.
엘빈의 원한 또한 알게 됐다.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의도였다.
정말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딸인 자신에게 명령했던 것일까.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자, 사건의 설명은 이제 끝났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볼까요?”

은현은 다시 한 번 엘빈과 엘레노아의 사이에 끼어들어 이야기를 중재했다.

“먼저 버나드 재무장관님?”

“음….”

지금껏 가만히 연극과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버나드 보리스가 은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나님께 의뢰하셨던 레니온 헤르샤가 빼돌린 금화는 지금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저희 쪽에서도 보수를 받고 싶군요.”

“…뭘 원하지? 돈인가?”

“설마요. 저희가 원하는 건 ‘헤르샤 남매에 대한 간섭금지, 그리고 보호’입니다.”

“……? 진심인가?”

경악스러운 목소리는 올리버가 터뜨린 말이었다.

“보호라니! 저자는 흑마법사일세! 지금 여기서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아,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간섭금지와 보호는 정확히는 여동생인 에린 쪽에 해당하는 이야기에요. 그 아이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고 이 일에 휘말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흑마법사님은 저희 쪽에서 신병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저 자는 왕국의 범죄자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아니라 네가 그걸 정한다는 거냐!”

“흐음. 학교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라고?”

“여기서 흑마법사의 신병의 인도를 양보해주신다면, 저희 쪽도 학교장님이 하셨던  실수 하나를 묵과해드릴  있는데요?”

“무슨…소리를…?”

은현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 올리버를 내버려두고 아르미타스 공작가의 남매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공작가의 남매 분들 쪽에서는 이 일을 아예 모르셨던 모양이니 선택권이 없으시겠고? 흑마법사님의 체포가 임무였던 리오드 단장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접 데려가시겠습니까?”

리오드는 웃고 있는 은현의 표정을 보며 미간을 좁히고는 그의 장단에 맞춰 놀아나주었다.

“마음대로 해라. 가장  문제였던 금화가 왕국에 다시 회수된다면 크게 문제가 것도 없지. 죄인의 신병을 인도하지 못하는 건 기사단장으로썬 불명예이기도 하지만, 마법사인 죄인은 마법사가 관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수사의 총책임자였던 리오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버나드 또한 은현의 말을 반박하기 매우 어려워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횡령된 금화가 되돌아오는 것을 생각하며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현은 버나드의 약속을 받아내자 엘빈에게 눈짓했고 그 의미를 알아들은 엘빈이 품에서 금화를 꺼내 은현에게 건냈다.
은현은 곧장 그것을 버나드에게 건냄으로써 문제가 하나 해결이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빌어먹을 것이 눈앞에 있는데…. 모두 찢어서 불태워 없애 버려야하는데…. 흑마법사는 전부….”

“아직도 불만이 많은  같네.”

매우 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올리버를 보며 일리아나가 웃었다.

“뭐, 개인적으로 안 좋은 추억이 있나보지.”

은현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엘빈을 쳐다보았다.
그가 눈빛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며 은현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은현도 그의 시선에 반응하여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그래. 나도 약속은 지켜.”

짝!

“자, 그럼? 두 번째 연극으로 넘어가볼까요?”

“두 번째?”

“모든 게 끝난 게 아니었나?”

“다들 잊어버리셨네요? 헤르샤 준남작 사건에 대한 건 레니온과 엘빈에 대한 것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

사람들은 그제서 떠올렸다.
헤르샤 일가족은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기이한 형태로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었다.
아버지인 레니온은 ‘처형’이라는 형태로.
오빠인 엘빈은 ‘도주’라는 형태로.
여동생인 에린은 ‘실종’이라는 형태로.
현재까지는 레니온과 엘빈에 대한 진실만이 밝혀졌던 것이다.
아직 에린의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다.
엘빈이 은현과 했던 약속은 자신이 스스로 이 자리에 나서서 모든 것을 밝히고 금화를 공작가가 아닌 버나드 재무장관에게 인계하는 것, 그 대가로 은현은 에린의 신변과 안전을 약속했다.

“자, 여기서 제가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저희가 어째서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초대했는지 알고 계신가요?”

“설마  소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오?”

“맞습니다. 이 장소가 바로 에린 헤르샤라는 소녀가 실종된 장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흑마법사님께  소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설마 그 학교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여학생의 목격담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우리도 그 여학생의 제보를 받고  학교 안은 이미 나를 비롯한 모든 마법학 교수들이 나서서 수색했소! 실종된 그 아이의 흔적은 전혀 나오지 않았단 말일세!”

그런데도 그 주장을 하는 은현의 행동은 올리버를 비롯한 아이테르에서 마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과 같았다.
은현은 불같은 노성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학교장님. 이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없습니다. 말이 되는  그만한 원인과 과정이 있기 때문이죠. 부디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설명이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해서, 그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하! 지금 자네가 나를 가르치는 건가? 겨우 이런 신비로운 마법 하나를 보여줬다고 해서 자네가 나보다 위라고? 정말 어이가 없는 소리군! 뭘 믿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고작 평민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아니, 저 X끼가 진짜?”

잠자코 듣고 있던 일리아나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그녀의 옆에 있던 리오드가 일리아나를 제지하며 막아섰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을 말리는 리오드를 보며 일리아나는 이를 갈면서 은현을 모욕하고 있던 올리버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만으로도 화염계의 고위 마법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올리버는 갖은 수단을 이용하여 은현을 깎아내리느라 바쁜지, 일리아나의 눈치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은현이 마녀의 연인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에서 리오드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동떨어지다 못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은현은 당연히 그의 분개를 예상했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럼 두 번째 연극을 봐주시고 판단해보시겠습니까?”

딱!

올리버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은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또다시 세계가 일변했다.
 번째로 선보이는 능력임에도 엘레노아는 이 현상이 적응이 되지 않는 듯 어깨를 떨었다.
본래의 배경이었던 감옥이 흐려지며 새로운 배경으로 학교의 건물 옥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찬 어두운 시각, 옥상의 난간을 짚고 주저앉은 여학생이 서러운  몸을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 오빠…. 엘빈 오빠아아. 도대체 어디 있어? 너무 힘들어….

몇 일 동안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자신의 오빠, 엘빈을 애타게 찾았다.

“…….”

동생의 독백을 들은 엘빈이 주먹을 꽉 쥐며 입으로 나오려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감정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해놓고…. 곧 그 집에서 나올 수 있다고 했으면서….

에린은 어머니가 죽고 유일하게 에린이 기대고 의지할  있었던 엘빈의 행방마저도 묘연해진 상황에서 세상에 홀로 남아 버려진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진들의 모멸과 멸시가 섞인 보이지 않는 학대를 당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몰릴 대로 몰려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언젠가  자신을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안정적인 생활을 약속했던 엘빈의 말을 떠올리며 버티고 버텼건만.
에린의 이성은 이미 어느 정도 망가져있었다.
범죄자의 가족이 된 자신은 귀족의 자제들이 다니는 명문 학교인 이곳에서  이상 인간으로서의 취급을 받을 수 없었고, 학교의 모두가 그녀를 외면했다.
외면도 귀여운 표현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몸에 가해진 폭력은 절대로 고귀한 귀족들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녀가느끼는 슬픔, 외로움, 절망감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침음한 소리를 흘리며 숨을 죽이고 환영을 보고 있었다.
특히나 엘빈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힘들어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명복과 아버지의 학대에서 에린을 벗어나게 해주고픈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것인데.
지금껏 자신이 동생을 위해 해왔던 모든 일들이 결국 동생의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이 점점  엘빈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차라리 레니온을 죽이는 것보다 그가 숨겨둔 금화들을 가지고 아예 왕국을 탈출하는 선택이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엘빈은 생각했다.
동생의 행복을 바라며 이것도 저것도 모두 유지한 채로 평화로운 일상을 안겨주려 했던 것 자체가 욕심이었던 걸까.

- 차라리…. 엘빈 오빠도 더 이상 없다면….

엘빈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런 죄악감을 느끼며 후회하고 있는 동안.
허탈한 듯 멍한 표정과 동공이 풀린 눈동자.
절망으로 물든 듯 망가진 표정을 짓고 있던 에린이 마침내 터덜터덜 바닥에서 일어섰고, 발을 움직여 옥상의 난간 위에 올라섰다.

“안 돼.”

그동안 큰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엘빈이 처음으로 동요하는 표정을 보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어 눈에 보이는 환영 속의 상황을 부정했다.
환영은 환영일 뿐.
환영 속 동생에게 그의 말이 전달될 리가 없는데도, 엘빈은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면 안 돼.”

에린은 멍하니 옥상의 난간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발자국만 앞으로 뻗으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을 보며 엘빈이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 한 거였어. 잘못 선택했어. 제발, 제발 그러지마. 에린!”

- 나도 엄마랑 오빠를 따라서 갈래….

- 아무도…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누가 제발, 나를 숨겨줘. 더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 제발….

몸을 앞으로 기울인 에린의 머리가 그대로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엘빈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좌절했다.
에린은 결국 정신적으로 망가져버렸고, 오빠인 엘빈마저도 기사단들의 추적을 받아 죽어서 자신에게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종된 에린에 대한 진실은 삶에 희망을 잃은 에린이 그대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었다.
환각을 통한 연극이 끝나자 은현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사람들을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 가장 처음, ‘소망의 나무’가 있는 학교 정원으로 되돌아왔다.

“이게 진실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교장님?”

은현은 ‘이제 한 번 떠들어봐.’라는 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벙어리 같은 표정을 짓는 올리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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